2023_69
2023.4.1. (토) 오후에 잠시 탐방
경주여행 이틀째의 마지막 일정이다.
경주 남산을 오르려다 77세 연세인 형님을 생각해 오전에 잠깐 남산 배동 삼릉계곡만 훑었다.
이후 시계 방향으로 남산자락을 돌며 주변에 있는 문화재를 둘러봤다.
마지막으로 염불사지에서 칠불암의 마애불상군과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보러 오른다.
형님은 어제, 오늘 이틀 내내 걷는 게 힘들었는지 중간에 그냥 내려가자고 하신다.
물론 즐풍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니 오히려 잘 됐다 싶어 냉큼 내려선다.
사실, 이 두 군데 국보인 문화재를 이미 몇 년 전 봤으니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
내려서는 길에 염불사지에 있는 동·서 삼층석탑을 둘러본다.
경주 (전)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慶州 傳 念佛寺地 東‧西 三層石塔)
「경주 (전)염불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은 2003년과 2008년에 걸쳐 진행된 발굴조사를 거쳐,
8세기 초반에 창건되어 12세기에 폐사된 사찰로 추정된다.
이 사지에 위치한 동ㆍ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기인 8세기 전반에 건립된 5.85m 높이의 삼층석탑이다.
두 탑은 모두 상, 하 2층의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탑신(塔身, 몸돌)과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은
각각 1매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륜부는 대부분 사라지고 노반석(露盤石, 탑의 상륜부를 받치는 돌)만 남아 있다.
동탑은 1963년에 불국사역 광장으로 이전되었던 것을 2009년 사지 정비와 함께 원위치에 이전
복원되었으며, 탑지 발굴조사 결과 서탑과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기초부를 추가로 조성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서탑은 무너져 있었던 것을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동탑과 함께 원위치에 복원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동탑과 동일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두 탑은 복원 과정에서 일부 새로운 부재들이 사용되었으나, 전체적인 조영 기법과 양식,
석탑 기초부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등을 고려할 때, 8세기 전반에 건립되어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과 양식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러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고려할 때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보물로 지정되었다.
(출처_문화재청)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선도산 용작골의 주상절리다.
용작골 주상절리가 궁금하면...
영남알프스 8봉 인증하고 귀로에 다시 본 용작골 주상절리
경주국립공원의 여러 지구 중에 선도산도 포함되었다.
용작골 주상절리는 묘하게도 경주국립공원에 드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이제부터 보게 될 같은 산자락에 있는 경주 헌안왕릉이나 문성왕릉, 진지왕릉, 진흥왕릉 등의
왕릉은 경주국립공원에서 배제되었다.
이는 경주의 다른 지역에 있는 왕릉도 마찬가지다.
지역 주민의 불편을 초래하지 않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 사진의 오른쪽 릉은 경주 진지왕릉이다. 안내문을 살펴본다.
ㅁ 경주 진지왕릉
이 능은 신라 제25대 진지왕(576~379 재위)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진지왕의 이름은 사륜 혹은 금륜이며,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태자인 형 동륜이 먼저 죽어서
부왕의 왕위를 이었다.
즉위 후 거칠부에게 국정을 맡겼고, 진흥왕의 뜻을 받들어 내리서성을 쌓았다.
또한 백제군을 격퇴하고 중국 진나라와 외교관계를 맺는 등의 치적을 쌓았으나 재위 4년 만에
화백회의에서 폐위가 결정되어 왕위에서 물러났다.
진지왕이 죽은 후 영경사 북쪽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선도산 산기슭의 경주 전흥왕릉과 가까이 있다.
봉분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둘레돌로 보이는 석재가 일부 드러나 있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니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일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 후기에 인근에 있는 서약동 삼홍석탑 소재지를 영경사 터로 보면서 이 무덤을 진지왕릉으로 정하였다. (안내문)
ㅁ 경주 진흥왕릉
이 능은 신과 제24대 진흥왕(540~576 개위)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진흥왕은 제23대 왕인 법흥왕이 아들 없이 세상을 뜨자 조카로서 왕위에 올라 37년간 재위하였다.
즉위 당시 나이가 7살에 불과하여 왕태후가 섭정*하였다.
진흥왕은 대가야를 병합하고 한강 유역과 함경도 일부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다.
화랑제도를 마련하고 '국사를 편찬하였으며, 불교를 장려하였다.
진흥왕이 세상을 뜨자 영경사의 북쪽 봉우리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선도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끝자락에 있다.
조선 후기에 인근의 서약동 상충석탑보를 제85호 소재지 일대를 '영정사터'로 보아
이 무덤을 '진흥왕릉'으로 정하였다.
능의 주변에 자연석으로 만든 둘레돌의 일부가 드러나 있다.
*섭정 : 군주가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에 군주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림 (안내문)
왕릉은 선도산 자락에 많이 있다.
비석이 없는 릉은 주인을 알지 못하는 무덤이다.
능이 많아 대충 사진만 찍고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서악동 삼층석탑 위쪽에 있는 능들이다.
능이 네 개 있는 것으로 보아 길 건너 서악리 고분군 같은 데, 사실관계는 잘 모르겠다.
왼쪽 고분은 일부 무너진 게 보인다. 장마가 오기 전에 복구를 끝내야 하는데,...
서악동 삼층석탑은 지금까지 둘러본 선도산 자락의 신라 왕릉 아래에 있다.
ㅁ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보물
경주 서약동 삼층석탑은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이다.
바닥들은 낮게 받침돌을 깔고 그 위에 8개의 거대한 직사각형 돌을 2단으로 쌓아 올렸다.
1층은 남쪽 면에 네모꼴로 파서 문을 표시하였고, 그 좌우에 금강역사상을 새겼다.
문 모양 부분에는 문고리를 달았던 구멍이 2개씩 남아 있다.
지붕돌은 벽돌탑처럼 아래위쪽이 모두 계단식이고 처마가 평행한 직선이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큰 직사각형 돌을 쌓아 바닥돌을 구성한 것은 경주 남산동 동삼층석탑 보물이나
남산 용장계 지곡 제3 사지 삼층석탑과 같은 방식인데,
서악동 삼충석탑은 바닥돌 위에 놓인 몸돌받침이 1단으로 줄어들고 크기도 작아졌다.
이러한 모양은 경주 지역의 탑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형태이다. (안내문)
40일 후 다시 경주에 올 일이 있어 서악동 삼층석탑을 다시 들렸다.
두 달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시점에 경주여행을 포스팅하려니 지각도 이런 지각이 없다.
포스팅하기 편한 것부터 하려니 그렇다.
아직 몇 개 더 남은 거 마저 해야 하는데, 별로 손이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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