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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등등/사찰 탐방

철당간이 유명한 계룡산 갑사

by 즐풍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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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30. (일)  오후에 잠시 탐방

 

 

이번 공주 여행의 목적은 공산성과 공주 갑사의 철당간 탐방에 있다.

이왕 공주에 왔으니 국립공주박물관과 무령왕릉, 마곡사와 중동성당은 덤으로 보는 셈이다.

공주 갑사는 계룡산을 종주하며 두어 차례 지나간 곳이기도 하다.

그때는 산행이 주목적이었기에 사진 한두 장 그냥 끼워 넣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냈다.

공주 갑사의 철당간은 청주 용두사지의 철당간, 안성 칠장사의 철당간과 함께 관심을 가졌던 곳이다.

세 곳을 철당간은 포스팅을 마쳤기에 공주 갑사의 관심사는 이미 털어낸 셈이다.

갑사는 오전에 본 공주 마곡사에 비해 규모가 작으니 쉽게 끝내야겠다.

 

 

공주 갑사의 청당간이 궁금하면... 

 

보물인 공주 갑사 철당간(公州 甲寺 鐵幢竿)

2023_50 2023.4.30. (일) 오후에 잠시 탐방 15년 전 등산을 처음 시작할 땐 남는 시간은 오로지 등산에 몰두했다. 그렇게 여가를 등산으로 메꿔가다가 어느 순간 여행이 살짝 끼어들었다. 어찌 보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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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계룡산 갑사 

 

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예로부터 이곳은 계룡갑사(鷄龍甲寺)·갑사(岬寺)·갑사사(甲士寺)·계룡사(鷄龍寺)라고도 하였다.
갑사는 420년에 계룡산 천진보탑을 보고 아도가 창건했다는 설과 556년(진흥왕 17)에 혜명이 창건했다는 설, 

아도가 창건하고 혜명이 중창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679년(문무왕 9) 의상대사(義湘)가 갑사를 중수하여 ‘화엄대학지소 (華嚴大學之所)’로 삼았으며,

 이때부터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가 되었다(최치원 「당대천복사고사주번경대덕법장화상 전」, 904).

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 초기 숭유억불정책 와중에도 선종 18개 사찰로 이름을 올리면서 사세가 확장되었다.

(「세종실록 24권」, 세종 6년 4월 5일 경술기사).  

이후 1597년 정유재란으로 사찰이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1604년 (선조 37)을 시작으로 1654년(효종 5) 

사정·신휘·경환·일행·정화·상균 등의 승려가 관찰사 강백년의 도움을 얻어 갑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1659년에는 여주목사이지천이 지은 계룡산 갑사사적비명을 건립하였고,

1875년(고종 12)에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계룡산 갑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 기허당 영규대사와 승병들의 숨결이 있는 곳으로 호국불교의 중심에

서 있으며, 현재 국보 1점, 보물 8점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는 전통사찰이다.
현존하는 부속 산내암자로는 신흥암, 대자암, 내원암, 대성암이 위치하고 있고,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가 아름답다고 하여 춘마곡 추갑사라고 불리는 관광명소이다.

                                                                                                                                  (출처_계룡산 갑사)

 

 

역사가 깊은 사찰은 계곡을 끼고 오래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계룡산 자락의 갑사도 계곡을 따라 조성된 입구는 고목이 많아 운치가 좋다.

 

 

ㅁ  일주문

 

사찰에 들어갈 때 처음 만나는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고 부른다. 

십자형의 주좌(柱座)가 있는 초석에 두 기둥을 나란히 세워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올린 형태로 세워졌다. 

일주문에는 사찰 현판을 걸어 놓는데 갑사는 계룡산 갑사로 산과 사찰명이 표기되어 있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불법(佛法)에 귀의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세속의 잡다한 번뇌를 떨치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출처_계룡산 갑사)

 

도토리를 세워 놓은 듯한 직은 버섯이 키재기를 하듯 뭉쳐 자란다.

 

대부분이 단풍나무라 가을에 오면 엄청 멋지겠단 생각이 든다.

같은 공주의 마곡사와 갑사의 풍경을 얘기할 때 "춘마곡 추갑사"라고 한다니 이해할만하다.

추갑사를 느끼기 위해 가을에 다시 와야겠다.

 

갑사를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황매화 단지가 있다.

시기적으로 많이 질 때라 시들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풍경은 압도된다.

그중에 멋진 꽃 하나를 잡아낸다.

 

사천왕문

 

 

 

 

ㅁ 갑사 강당

갑사 강당 보수공사 시 나온 상량문에는 정문이라고 되어 있으며 창건된 것은 만력 42년(광해국 6년, 1614년)에 

상량하였고 그 후 가경(嘉慶) 2년(정조 22년, 1798년)에 중수하고 광서(廣西) 16년(고종 27년, 1890년)에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강당은 스님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뒤로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의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를 짰는데,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단청은 완전히 퇴색되어 무늬의 흔적만 남아 있다. 절도사 홍재의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출처_계룡산 갑사)

 

 

 

 

 

 

ㅁ 갑사  대웅전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년)에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이 있다.

 679년에 의상이 수리해서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모두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중건되고 효종 5년(1654)에 가람이 전면적으로 개축 중수되었으며 

고종 12년(1875)에 다시 중수되었다고 전한다.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지을 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인(人) 자 모양으로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가운데 3칸은 기둥 간격을 양 끝칸 보다 넓게 잡아 가운데는 공포를 2개씩, 끝칸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되어있고, 불단을 만들어 석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갑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출처_계룡산 갑사)

 

 

 

 

 

 

ㅁ 삼성각

삼성각은 칠성·산신·독성의 삼성을 모신 곳이다. 

칠성은 도교의 북두칠성이 불교화한 것으로 수명장생을 주관하는 별이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난 만사형통의 신이며, 

독성은 혼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각각의 건물을 따로 지어 삼성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삼성각 안에 같이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각은 대웅전 우측 자연석 기단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외부는 정면 여닫이문으로 처리하고 공포는 이익공 양식으로 내부는 우물마루 바닥 위에 불단을 설치하여 

칠성 탱화 좌우로 산신 탱화와 독성 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출처_계룡산 갑사)

 

 

 

 

 

 

 

 

ㅁ 공우탑(功牛塔)


갑사 경내의 대웅전에서 대적전에 이르는 계곡변에 위치하고 있는 이 탑은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에는 탑의 건립내용이 음각되어 있고 2층의 탑신에는 『우탑(牛塔)』이란 

이름과 3층 탑신에는 『공(功)』이란 명문이 각각 음각되어 있다.

이 탑은 탑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갑사 중창 시에 큰 공을 세운 소가 늙어 죽으니 그 은공을 기려 

세운 것이라고 전해진다.                              (출처계룡산 갑사)

 

 

 

 

대적전은 안채와 함께 돌담을 쌓아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ㅁ 갑사 대적전

갑사 대적전의 연혁은 정면 어간에 걸린 현판에 『도광 6년 4월 목암서』(道光6年4月牧岩書)라는 기록으로

도광 6년(순조 26년, 1826년)이 대적전의 건립연대로 추정된다. 
갑사 대적전은 현 갑사 경내 앞으로 흐르는 계곡 건너편의 원금당지(原金堂址)로 추정되는 곳에 

요사채 1동과 일곽을 이루면서 서향 하여 위치하고 있는데,

대적전 우측으로 원금당지에는 한단의 쇠시리가 있는 원형 초석이 현재도 제위치에 남아 있다.

대적전은 원래의 금당지 옆에 있는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공포가 2개이며, 양 끝칸은 1개의 공포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고 위에 천장을 한단 올림으로써 닫집의 효과를 나타내었으며 내부 단청이 아름답다.

                                                                                                        (출처_계룡산 갑사)

 

 

ㅁ  갑사 부도

갑사 부도(浮屠)는 전체 높이가 205cm로 고려시대의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부도양식을 겸비하고 있다. 

본래의 위치는 갑사의 중사자암에 위치했던 것을 현 대적전 앞으로 이전하였다고 전한다.
대석(臺石), 탑신(塔身), 옥개(屋蓋)와 상륜부(上輪部)를 갖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상륜부는 오래전에 결실되었다고 전한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뉜다.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下臺石]에는 사자·구름·용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그 표현이 힘차 보이고, 

가운데받침돌[中臺石] 역시 8 각형이나 볼륨 있는 조각 수법으로 마치 원형에 가깝고 각 귀퉁이마다. 

꽃 봉오리가 솟아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양각되어 있다. 

윗받침돌[上臺石]에는 32 엽의 연꽃 연화문(蓮花紋)을 둘러 새겼다. 

탑신 역시 8각으로 각 면에 문과 열쇠를 새겨 놓았고, 그 사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8 각정 지붕형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서까래, 부연, 용마루 등이 세밀하게 조각되었다. 

상륜부는 후대에 만들어진 보주(寶珠 :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올려 전체적인 모습은 섬세하고도 화려한 

느낌을 주고 기백이 넘쳐흐른다.

                                                                                                                (출처_계룡산 갑사)

 

사자와 구름, 이이 조각된 하대석은 제법 화려하다.

우리나라 화강암은 워낙 단단해 이렇게 조각하지 못하는 데, 회색 점이 촘촘히 박한 석재라 평소 보지 못하던 재질이다.

지금까지 본 부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조각의 문화재이다.

 

대적전에서 개울가로 난 제법 넓은 길을 따라 내려간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오늘 공주에 온 목적의 하나인 공주 갑사의 철당간을 볼 수 있다.

공주 철당간은 맨 위에 링크를 걸어놓았으니 참고할 수 있다.

 

철당간 탐방을 끝내고 내려가는 길이다.

 

어느 고목을 타고 오르는 등나무 꽃이 인상적이다.

아카시아 꽃처럼 피는 등나무 꽃 열매는 넓적한 단추처럼 검게 생겼다.

 

 

 

이 괘불이 모셔진 전각이 어딘지 모르겠다.

수직·수평을 맞추고 한 달이 지나 포스팅하다 보니 어딘지 제 집을 잊었다.

 

 

문화재청에서는 갑사를 공주 갑사라 칭하고, 갑사 홈페이지에서는 계룡산 갑사라고 한다.

주인이 자기 이름을 대와에 이렇게 불러달라고 공표했으니 갑사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겠다.

계룡산 자락에는 갑사와 동학사, 신원사 등 명찰이 많다.

세 군데 다 들려보기는 했으나 갑사는 이번에 비교적 자세히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