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50
2023.4.30. (일) 오후에 잠시 탐방
15년 전 등산을 처음 시작할 땐 남는 시간은 오로지 등산에 몰두했다.
그렇게 여가를 등산으로 메꿔가다가 어느 순간 여행이 살짝 끼어들었다.
어찌 보면 등산도 여행의 범주에 들어가니 굳이 둘을 나눈다는 것도 애매하다.
요즘은 산성이나 읍성에 매료되어 멀리 여행 갈 때는 일부러 주변의 산성 등을 함께 찾기도 한다.
이렇게 취미를 하나둘 넓혀가니 이번에는 전에 안 보이던 문화유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 3개밖에 없다는 철당간을 알게 되었다.
근교에 있는 안성 칠장사의 철당간은 이미 다녀왔다.
이번엔 목우와 함께 공주 여행에 나선 김에 마지막 코스로 갑사의 철당간을 찾는다.
ㅁ 공주 갑사 철당간 (公州 甲寺 鐵幢竿)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_문화재청)
철당간은 기단으로 된 바위에 하부는 묻고 돌기둥인 당간지주 상부의 홈을 판 곳에
철당간의 걸쇠가 걸리게 맞추었다.
그런 후 철당간의 마디 하나씩 레고를 끼우듯 쌓은 것이다.
이 철당간은 대나무속처럼 속이 비었다.
빈 속에 튼튼한 나무를 흔들리지 않게 박아 견고성을 더욱 높인 것이다.
철당간 연결 부위가 일부 삭아 떨어졌어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속에 나무로 보강했기 때문이다.
돌 기단과 돌 당간지주가 만나는 지점에 살짝 홈을 파 물이 흐르도록 배수처리를 했다.
이 기단석은 작아 보여도 철당간의 무게를 견질 수 있게 깊이 묻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15m나 되는 철당간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아래쪽 철당간은 기름을 먹인 듯 녹도 안 생기고 생기가 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축, 짐대와 당간
지금도 민속 현장에서 농민들은 짐대, 진대, 돛대, 오릿대, 오리짐대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민속 연구의 기본은 현장 민속어를 그대로 쓰는 일이다.
진대는 ‘진압鎭壓하는 장대’를 말하고, 돛대는 배 모양의 ‘행주형 지세行舟形地勢의 장대’를 일컫는다.
진압은 풍수지리 용어인 압승壓勝과 동의어다.
짐대를 세우는 목적은 땅의 사악한 기운과 재앙을 눌러서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있다.
이처럼 짐대는 지기地氣가 센 터를 눌러준다는 풍수비보의 상징물로써, 행주형 지세에 세워지면 돛대가 된다.
행주형 지세는 배의 형국을 말하는 것으로, 배가 돛대도 아니 달고 항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헌에 따르면 행주형 지세에 세워지는 돛대를 주장舟檣이라 하고 돛대의 재질은 쇠, 돌, 나무인데
쇠돛대는 철장鐵檣, 돌돛대는 석장石檣, 나무돛대는 목장木檣이라고 한다.
사찰의 당간은 신성한 곳의 경계점이며 불보살의 위신을 상징하는 번幡을 달아두는 장대이다.
그러나 모든 당간이 당번을 거는 깃대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담양읍의 석당간과 안성 칠장사와 공주 갑사의 철당간은 당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왜냐하면 풍수비보가 건립 목적이기 때문이다.
당간이 쇠와 돌로 만들어진 것은 압승의 의미가 있다.
땅의 나쁜 기운을 눌러서 압승하려면 무겁고 강한 철당간과 석당간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공주 갑사의 철당간은 입지의 원형성을 보여준다.
통일신라 말에 건립된 갑사의 철당간은 사찰 내 행주형 지세에 세워져 있다.
신라 말에 사찰의 행주형 지세에 세워지던 당간이 풍수비보사상이 성행하던 고려시대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행주형 지세의 읍성으로 확산되었다.
사찰 당간이 읍치당간邑治幢竿으로 변모하면서 돛대라는 명칭으로 불리었고 진압하는 장대인
‘진대’가 나오고 진대와 비슷한 ‘짐대’라는 소리음으로 정착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송화섭 전주대학교 교수)
위 글에서 송화섭 전주대 교수님은 "공주 갑사의 철당간은 당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없다."라고 하는 데
갑사 철당간은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하는 걸 감안했는지 모르겠다.
벼락을 맞아 없어졌으면 맨 위부터 4개가 없어졌을 테니 당연히 당을 거는 장치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갑사 철당간의 높이는 15m이지만 4개가 더 있었다면 약 1.5m 정도 더 높은 것이다.
그런데 28개가 온전히 다 있었다고 해도 당을 걸기 매우 불편한 건 사실이다.
당幢은 직물로 짠 깃발이나 휘장이므로 비바람에 삭아 자주 교체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16m 높이까지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거푸집 형태의 사다리를 만들어야 게양이 가능하다.
3년에 한 번씩 교체한다고 해도 사찰에서는 큰 공사를 해야 하는 역점사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송화섭 교수는 말씀대로 풍수비보의 목적으로 보는 게 맞다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안성 칠장사의 철당간을 먼저 살펴봤다.
그 철당간은 어느 한쪽으로 살짝 굽은 형태지만, 갑사 철당간은 어느 곳에서 봐도 곧추섰다.
거대한 대나무를 보는 느낌이다.
완벽한 형태다.
쭉쭉빵빵 잘 생긴 미인을 보는 느낌이다.
공주 갑사 철당간은 종각과 적묵당의 남서쪽에서 대적전을 지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다.
이제 철당에서 마지막 눈길을 거두며 귀갓길에 든다.
공주 여행의 마지막 구간에 둔 갑사 철당간을 먼저 포스팅한다.
경주 여행을 다녀온 얘기 보따리도 다 풀지 못했는데, 순서 없이 철당간부터 끝냈다.
여행기도 작성하다 보니 일이라 손대기 쉬운 것부터 처리하다 보니 그렇다.
어느 정치인 말처럼 “아무 일 안 하면 아무 일 안 생긴다"니 시체놀이나 할까?
안성 칠장사 철당간이 궁금하면...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이 궁금하면...
'■ 박물관 > 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과 야외 전시관 탐방 (0) | 2023.05.07 |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탐방 (0) | 2023.05.07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상설 전시장 (0) | 2023.05.06 |
안성 칠장사 철당간 너무 장엄해 (0) | 2023.04.06 |
국립중앙박물관의 별관인 국립한글박물관 관람 (0) | 2023.04.05 |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관 탐방 (0) | 2023.04.05 |
국립중앙박물관의 청자관 탐방 (0) | 2023.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