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025F
2023.3.2. (목)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보며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집트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양문화는 거대한 피라미드나 대리석을 중심으로 한 석조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이집트 피라미드 안에 있는 문화재는 많이 도굴되었어도 최근에 발굴된 문화재도 상당하다.
피라미드에서 발굴된 문화재는 3~4천 년 전에 만들었어도 요즘에 만들었다고 믿을 만큼 과학적이고 세련된 제품도 많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문화재는 신석기시대의 돌검이나 신라를 비롯해 근대에 이르기까지 석탑이나 석불이 주류를 이루고 상하지 않는 도자기가 많이 남아 있다.
선시시대나 신석기시대의 토기를 제외하면 대개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가 많다.
불교 문화재의 대부분은 사찰에서 소유하고 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유출된 불교문화재 대부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불교관은 이러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불교조각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상이 소개된 때는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이며
본격적으로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6세기부터이다.
불상 제작 초기에는 단순히 중국 불상을 모방했으나, 점점 우리나라 특유의 조형감각이 두드러진 불상을 만들게 되었다.
삼국시대 고구려 불상이 사실적인 인체 표현보다 강건한 기상을 강조하였다면,
백제 불상은 정교한과 세련미가 더 보이며, 신라 불상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통일신라 불상은 삼국 불상의 특징을 하나로 아우르는 한편,
8세기에는 중국 당나라의 사실적인 조각 양식을 받아들여 조화와 균형을 이룬 이상적인 불상을 만들었다.
9세부터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유행하지 않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갖춤)을 한 불상이나 지권인智拳印(곧추세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손갖춤)을 비로나자불毘盧遮那佛(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 유행했다.
고려시대에는 새 왕조의 활력을 반영한 거대한 불상과 지역별로 특색 있는 불상을 만들었다.
고려 후기에는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불상을 만들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을 피던 시기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왕실이나 상류계층에서도 불상 제작을 후원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여성과 지역민의 후원 아래 전국 각지에서 승려 조각가들이 집단을 이루어 불상을 제작했다.
불교 조각실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표적인 불상과 보살상을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쇠와 돌로 만든 대형 불상,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과 금동으로 만든
작은 작은 불상들을 통하여 우리나라 불교 조각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안내문)
중국 일본 등 외국 작품을 살펴보고 대리석으로 만든 경천사 십층석탑을 지나 우측의 불교관으로 들어선다.
부처(철조, 고려 10세기)
부처와 아미타불
황복사로 전해오는 절터의 삼층석탑 사리함에서 발견되었다.
신문왕이 세상을 떠나고 692년 아들 효소왕은 어머니 신목태후와 함께 석탑을 세웠고,
효소왕이 승하하자 706년 성덕왕이 금제 아미타상 1구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권을 석탑에 안치하였다.
불입상은 얼굴 이목구비의 경계와 윤곽이 부드럽고, 두툼한 옷주름에 가려 신체가 드러나지 않는 등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이 남아있어 692년 석탑을 세울 당시에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얇은 옷주름으로 강조된 불좌상의 풍만한 신체는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므로
706년 봉안한 아미타상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위 두 부처님을 하나씩 다시 찍은 것이다.
공양탑(금동 다층 소탑)
고려 전기에 제작된 높이 74.5cm의 금동 소탑으로 불전 안에 두는 사리탑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탑은 사각형의 기단과 11층의 탑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단부의 한쪽에 계단을 놓아 탑으로 연결하고 있다.
1층 탑신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모서리에는 사천왕상을 부착하였다. (안내문)
이 공양탑은 동으로 만들고 금박을 한 11층 소탑이다.
먼저 실물 모양의 나무로 탑을 만든 다음 흙으로 된 거푸집에 녹인 쇳물을 부어 만든다.
그렇다고 한 번에 다 만들 수 없고, 기단은 기단별로 탑은 탑대로 한 층 한 층 만들어 조립한 것이다.
청동을 부울 때 온도 차이로 미세한 뒤틀림이 있어 조립이 잘 안 되면 다시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11층을 쌓고 상륜부 또한 4~5층 높이라 대단한 공력이 들었다.
이런 명작은 기계의 도움 없이 지금도 제대로 만들지 못할 텐데, 우리 조상은 1천 년 전에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
고려시대에 만든 정교한 팔찌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무늬
정병은 원래 인도의 승려들이 수행생활을 할 때 휴대하고 다니던 물병이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용도가 조금 바뀌었다.
휴대용 물병으로도 쓰였겠지만, 불교 의식에서 깨끗한 물을 담는 병으로도 사용된 것이다.
이 물가풍경무늬 정병은 고려시대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을 잘 보여준다.
금속의 표면을 판 다음 다른 색상의 금속을 끼워 넣는 입사 기법은 한국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와서 매우 발달하였다.
버드나무, 갈대, 오리, 기러기, 배에 탄 사람 등 각 무늬대로 홈을 판 다음 얇은 은선을 끼워 넣어 표현하였다.
마치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가느다란 은선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이 정병은 고려의 뛰어난 금속공예품이다.
버드나무 무늬만 확대하다 보니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어 위 사진을 빌려왔다.
위 설명이 없다면 도자기 작품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금속공예품이다.
철제 은입사 화로 조선 19세기
천왕무늬 허리띠 장식
고려 시대, 경기도 연천군 호로고루 출토
용·나무·전각무늬 거울
고려시대
공작무늬 허리띠 고리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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