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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상설 전시장

by 즐풍 202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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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국립경주박물관 홈피

 

 

2023.3.31. (금) 오후에 탐방

 

 

형님이 경주 여행을 가자고 하시길래 3박 4일 일정을 예정하고 원주에서 08:00에 출발했다.

경주는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2016년에는 4박 5일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뒤로도 한 차례 스치듯 다녀오긴 했으나 늘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경주뿐만 아니라 어디든 여행을 간다는 건 심장을 뛰게 하는 설렘을 갖게 한다.

 

경주를 제일 잘 알기 위해서는 먼저 국립경주박물관부터 들려야 한다.

소장 물품은 시기별 또는 주제별 전시는 물론 해설서까지 있어 당대 역사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달 국립중앙박물관보다 경주박물관을 관람하며 신라의 문화가 더 월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1천 년 전의 문화재인데도 금속공예는 물론 석공예까지 이후 모든 시대를 압도하는 느낌이다.

 

 

간돌검

 

우리 세대가 배울 땐 마제석검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우리말로 바꿔 「간돌검」이라고 한다.

석기시대를 지나고 청동기시대도 지나 초기철기시대 작품이라고 한다.

간돌검과 돌창이 전시되었는데, 칼날은 물론 손잡이까지 정교하다.

돌의 성질을 잘 알아 무르고 연한 돌로 만들었다.

 

 

구리와 주석을 녹여 만든 청동검이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기술이겠지만 제일 먼저 철광석을 발견하는 게 청동기문화를 발전시키는 기술이다.

이런 청동기는 지배계층에서 사용하므로 간돌검 같은 무기는 초기철기시대까지 계속 사용된다.

 

초기 빗살무늬토기에 비해 많이 발전한 토기다.

받침대가 안정적이고 뚜껑까지 있어 음식물을 위생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아직은 유약이 없던 시대라 표면이 거칠다.

 

말머리가리개 (다른 명칭鐵製馬面胄)​

경주시 사사리 출토, 신라시대
전체길이 49.0㎝​


경주 사라리 65호 덧널무덤[木槨墓]의 으뜸덧널[主槨]에서 출토되었다.

전투에서 말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말의 몸통을 보호하는 말갑옷[馬甲]과 함께 방어용 무구(武具)에 속한다.

이러한 마구는 수준 높은 제작기술로 만들어지며,

그 소유에도 제한이 따르기 때문에 당시 사회적 성격과 문화상을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출처_국립경주박물관)

 

더 중요한 건 군인도 철제갑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장군 등 고위직이나 입었을 이런 철갑옷은 몸통은 물론 머리까지 보호한다.

철판을 두드려 가공하고 구멍을 뚫은 부위를 가죽끈으로 연결했다는 주장이다.

 

왕실이나 상류사회에서 사용한 패물

 

드디어 금을 이용해 왕관을 만들었다.

금은 두드리는 대로 펴져 금속 중에서 가장 가공하기 쉬운 재료다.

초기 작품이라 아직 세련된 멋은 별로 없다.

 

점점 다양해지는 부장품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다양한 디자인이 나타난다.

 

관꾸미개

 

관꾸미개는 일반적으로 ‘고깔형태의 관[帽冠]’ 정면에 있는 포켓에 끼워 쓴다.

이 관꾸미개는 힘찬 새의 날개를 연상시키며, 앞판과 양쪽 날개 세 개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앞판의 윗부분을 비롯하여 양쪽 날개에는 용무늬를 새겼는데,

너무 추상화되어 흡사 덩굴무늬처럼 보인다.

앞면에는 고깔에 끼우는 부위를 제외하고 빼곡하게 달개를 달았으나,

뒷면에는 고깔과 맞닿지 않는 날개의 윗부분에만 달개를 달았다. (출처_국립경주박물관)

 

1,500여 년 전의 귀걸이가 오늘날 귀걸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장식용 금신발

이 금신발은 신을 수 없다.

저승 갈 때 신는 신발로 무덤에서 출토도힌 신발이다.

 

토기류

 

금관인데, 너무 높게 있다 보니 아래쪽 장식품에 초점이 잡혔다.

 

관구미개

 

ㅁ 금제나비모양관장식 

출토지 경상북도 경주시 천마총
폭 23.0cm , 높이 23.0cm​


새 날개모양 관 장식과 같이 관모의 앞쪽에 꽂기 위해 만든 장식구이다.

다만 새 날개모양 관식보다는 크기가 작고, 한 장의 금판으로 만드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작게는 뚫림무늬나 달개의 배치 등의 화려함이 다소 떨어진다.

나비 모양 관식도 새 날개 모양과 마찬가지로 모양과 재질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신라의 지방 수장묘에서 출토되는 위세품 중의 하나이다.

새 날개 모양 관식과의 관계는 향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출처_국립경주박물관)

 

 

ㅁ 금제관모金製冠帽​

출토지  경주시 황남동 천마총, 신라시대
높이 19cm​

 

금관과 함께 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의 하나이다.

금제관모는 모자의 모양이기는 하나 머리에 직접 착용하기에는 작기 때문에 가죽 혹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의 윗부분을 장식한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매의 금판을 연결하여 만들며, 연결부위는 두툼한 금테를 두르고 금실로 마감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금판은 보통 앞면에 2개, 뒷면에 1개, 상부에 1개 등 모두 4개의 뚫음무늬[透彫文]가 장식된다.

뚫음무늬 형태는 T자, 마름모꼴, 반고리(半環), 변형된 용 모양 등이 많다.

뚫음무늬가 없는 부분은 점[點]을 직선 또는 곡선 모양으로 찍어 장식한다.

금제 관모는 "마립간"기로 불린 5세기대에 화려함이 절정에 달했다.

                                                                                                         (출처_국립경주박물관)

 

포항 중성리 신라비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재물 소송과 판결을 기록한 비석이다.

비석에는 과거에 모단벌이라는 사람의 재물을 다른 사람이 빼앗았는데,

그 진상을 조사하여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 내용이 담겨 있다.

비석의 제작 시기는 첫머리에 적힌 신사辛巳라는 간지와 비문 내용, 표기법 등으로 볼 때

지증왕 2년(501)으로 추정한다.

이는 포항 냉수리 신라비(503)보다 2년 앞선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이다. (안내문)

 

곱돌 십이지상 돼지

 

곱돌로 만든 십이지상(돼지)으로 김유신 묘라고 전해오는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

십이지상에서 돼지를 묘사한 것으로 이 외에 말과 토끼상이 더 발견되었다.

멧돼지의 머리 형상에 사람 몸을 하고 바윙=모양의 대좌 위에 서 있는 이 십이지상은 갑옷을 입고

오른손에 칼을 든 이른바 무장형이다.

특히 지석의 성격을 지닌 점에서 통일신라 십이지상으로는 가장 먼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통일신라시대 무장형 십이지상의 무복(武服)은 사천왕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곱돌은 사암이나 대리석처럼 가공하기 쉬운 재질이다.

동그란 구슬모양이나 손가락까지 섬세한 문양이 특징적이다.

 

십이지상 원숭이

경주 조양동 성덕왕릉에서 출토

단단한 화강암이 아닌 다른 석재로 만들었다.

 

사자모양 석수石獸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 신성함과 절대적인 힘, 위엄을 나타낸다.

이 사자상은 원래 어디에 세워졌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발견된 곳이 교동이기 때문에 신라 금성과 연관 가능성이 있다.

교동 근처의 춘양교터, 월정교터에서도 사자상이 발견되었다. (안내문)

 

도깨비얼굴 기와

 

경주 월성 해자에서 발굴

이런 기와는 지붕마루의 막음기와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산 사이에 구멍이 있어 못으로 고정했을 것으로 본다.

 

도깨비얼굴 기와 

 

 

 

기와 

 

명주성이란 문양이 있는 기와 

강릉에 있는 명주성터에서 발굴, 통일신라시대

 

아직 청자나 백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토기

 

신장상(神將像) 돌문 

 

경주 서악동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돌문이다.

보문에는 천정과 바닥에 결합될 수 있도록 돌출부가 만들어져 있다.

옆면, 뒷면은 신장상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머리 뒤에 두광이 있고, 하체에만 군의를 입고 있다. 

손에는 긴 금강저를 들고 있고, 손목·발목에는 장식이 있으며 연못대좌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당당하고 위엄 있는 신장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왼쪽 돌문에는 앞뒷면 모두 신장상 조각이 있다.

오른쪽 복제품은 왼쪽 돌문 뒷면의 모습이다. 선명한 문양을 볼 수 있도록 탁본 처리하였다. (안내문)

 

 

 

얼굴무늬 수막새

경주 영묘사터 출토, 통일신라 

 

'신라의 미소'라고 소개된 신라의 원형 기와이다.

이 수막새는 1934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가 골통상점에서 구입하여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1972년 10월 국내에 반환되었다.

일반적인 기와 조성 방법처럼 틀에 찍어 일률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먼저 형태를 잡은 후 손으로 

직접 빚어 얼굴의 세부 형상을 만들고 도구를 써서 마무리 한 작품이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솜씨로 보아 숙년 된 장인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실제 사용한 흔적도 있다.

오른쪽 하단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와 두 뺨의 턱선이 

조화에 이르기까지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손으로 빚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의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 작품으로써 당시 우수한 기와 조성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이다.  (안내문)

 

금동여래입상 통일신라

 

 

지금부터는 별도의 방을 차지한 국은 수집 기증품이다.

 

간돌검(마제석검)

 

검은 손잡이의 형태 따라 자루에 끼워 고정하는 부분인 슴배(유경有莖)식과 자루(유병有柄)식으로 나뉜다.

자루식 검은 자루의 모양에 따라 다시 일단과 이단으로 구분된다.

칼자루 끝장식은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안내문)

 

청동 투겁창  경주 안계리, 초기 철기

 

오리 모양 그릇

 

오리의 부리와 눈 등 머리 부분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속이 빈 몸통 부분은 간략하게 표현했다.

등 위에는 원통 모양의 입구가 있고 꼬리 부분은 뚫려 있다

오리모양 토기는 진한과 변한 영역인 경상도 지역에서 한 쌍으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썼던 토기가 아니라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려는 뜻으로 무덤에 함께 묻었던 껴묻거리로 추정된다.

                                                                                                                (안내문)

 

「건통9년」 글자를 새긴 쇠북

"乾統九年" 銘 盤子

 

쇠북을 '금고(金鼓)', '금구(禁口)', '쇠북'이라고도 불리는 불구(佛具)이다.

징과 같이 소리를 내어 절에서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릴 때 사용했다.

얇은 북 모양인 이 유물에는 중앙의 연꽃을 중심으로 동심원(同心圓) 수 겹이 표현되어 있다.

앞면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글귀를 통해, 고려(高麗) 제16대 임금 예종(睿宗) 대인 건통(乾統) 9년(1109년)

중림사(重林寺)의 주지였던 현의대사(顯儀大師) 충조(忠祚)가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중림사는 지금의 경산(慶山)에 있던 절로 추정된다. (안내문)

 

 

국립경주박물관은 상설전시관, 신라미술관, 월지관과 야외 전시장으로 나누어졌다.

일일이 사진에 다 담을 만큼 양이 적지 않기에 세 개의 관을 각각 포스팅할 예정이다.

국립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외에도 경주, 대구, 광주, 제주, 전주, 공주, 나주, 춘천 등 많은 곳에 있다.

중앙에 편중되지 않게  지역에도 나뉘어 있어 멀리 가지 않고도 근교에서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다.

경주에는 신라 천 년의 역사가 담긴 많은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