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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등등/사찰 탐방

철당간이 유명한 안성 칠장사 탐방

by 즐풍 2023. 4. 6.

2023_028A

 

 

 

2023.3.13. (월) 오후에 탐방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당간은 청주 용두사지와 공주 갑사 그리고 안성 칠장사에도 청당간이 있다.

평택에서 제일 가까운 안성 칠장사의 철당간부터 볼 생각에 칠장사를 들린다.

칠장사는 안성시가 자랑하는 8경 중 제1경에 선정된 사찰로 많은 이야기를 품은 사찰이다.

궁예가 활 연습을 한 활터와 어사 박문수가 기도를 드리고 장원급제를 했다고 전해지는 나한전 등이 있다.

 

 

 

ㅁ 칠장사 (安城 七長寺)

 

칠장사는 칠현산 산기슭에 바짝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철 따라 바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울창한 숲에 고풍스러운 칠장사가 안겨 한적한 풍광을 연출한다. 

칠장사는 손때가 묻지 않아 찬찬히 살펴봐야 할 보물들이 많다. 

칠장사에서 약 200m 앞쪽 길가에 전국에 몇 개 없는 철당간이 서있고, 

진흙소조로 만든 사천왕상이 찾는 이들을 압도한다.

칠장사는 선덕여왕 5년(636)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이곳에서 수도하고 입적한 고려 때 고승 혜소국사가 현재 비각이 있는 자리에 홍제관이라는 수행처를 세웠고,

현종 5년(1014) 크게 중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칠장사는 예로부터 깊은 차령산맥이 그 줄기를 품고 있어 고려 말 왜적의 침입이 잦을 때

사서를 칠장사로 옮겨 8년간 비장해 소실을 면한 일이 있다.

칠장사의 묘미는 빛바랜 단청이 고색창연한 대웅전을 찬찬히 굽어보는 것이다. 

새것을 덧씌우는 것만이 아름다움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칠장사 대웅전이 말해준다. 

오랜 풍상을 겪은 대웅전은 단청 문양을 세월에 날려 보냈지만 힘 있게 뻗은 추녀에서 힘찬 자태를 느낄 수 있다.

대웅전 오른쪽 옆에 조각솜씨가 빼어난 석불입상 한 기가 모셔져 있다. 

본래 죽산리 봉업사터에 있었던 이 불상은, 절이 폐사되자 죽산중고등학교 교정에까지 흘러갔다. 

자연 방치되다가 이곳 칠장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출처_안성시청 문화관광)

 

 

 

 

칠장사에 들어올 때 왼쪽에 철당간이 있는 걸 보지 못하고 들어섰다.

넓은 주차장이 맘에 든다.

 

극락전이 먼저 보인다.

 

주차장은 시멘트 포장이 되었으나 경내는 흙이 있는 맨땅이다.

이렇게 경내만이라도 흙을 밟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칠장사의 평균 고도는 해발 250m이다.

뒤로 보이는 칠장산 정상이 492.1m이고 보면 칠장산 절반의 높이에 세워진 사찰이다.

 

 

ㅁ 안성 칠장사 대웅전 (安城 七長寺 大雄殿)


「안성 칠장사 대웅전」은 1790년(정조 14년) 중창되고 1828년(순조 28년) 이건 된 건물로서, 

경기도권의 조선후기 사찰 중심 불전의 건축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전체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화려한 다포식 공포를 전후면에만 두고, 

구조는 짓고 관리하기 쉬운 2고주 5량의 맞배집으로 처리한 것은 전반적으로 교세가 위축되어 있던 

조선 후기 불전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공포의 구성과 초각, 내부의 가구 구성과 불단의 조성, 소란반자와 연등천장, 

닫집을 함께 사용한 천장의 처리, 고주와 우주 등에서 두드러지는 자연목의 사용, 

사방의 벽면에 둔 창호의 배열 등도 모두 18-19세기 불전 건축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전면의 석축과 계단, 초석 등에서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수준 높은 석공작의 기법도 엿볼 수 있다. 

천장 우물반자 청판에 일부 남아 있는 화초모양을 도드라지게 그린 금색의 고분단청은 

몇 안 남아 있는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고분단청은 호분 등으로 여러 번 칠해 도드라지게 한 다음 채색하는 것으로 입체감을 주는 채색법이다.

                                                                                                           (출처_문화재청)

 

 

ㅁ 대웅전 목조 석가삼존불좌상 (大雄殿 木造 釋迦三尊佛坐像)

 

제작 연대가 분명하고 만든 스님의 이름까지 알 수 있는, 조선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중형 나무 불상 가운데 하나이다.
이 삼존불의 본존 부처는 앉은 자세에서 오른손을 곧게 펴서 무릎 아래로 내린 이른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는

석가모니불 특유의 손갖춤(수인)을 하고 있어 석가삼존불로 불려 왔다.

그러던 중 2007년에 삼존불의 표면 금칠을 새로 하면서 왼쪽 협시보살에서 ‘왼쪽 보좌 미륵보살(左補處彌勒菩薩)’

이라고 쓴 발원문(發願文; 바라고 원하는 것을 적은 글)이 발견되어 이 삼존불이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 미륵보살이, 오른쪽에 제화갈라보살이 보좌하는 수기 삼존불(授記三尊佛; 장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삼존불) 형식의 삼존불임을 알게 되었다.

불상을 조각한 때는 1685년(숙종 11)이며, 만든 이는 조각승 마일(摩日)과 천기(天機) 스님을 비롯한

모두 8명의 조각승이다. 특히 조각승 마일과 천기 스님은 17세기 중반에 전국을 무대로 조각 활동을 했던

혜희(慧熙) 스님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다.
본존 부처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표정한 사각형의 얼굴과 블록적인 신체 구성,

굴곡이 무시된 평면적인 신체 등에서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출처_문화재청)

 

대웅전의 삼존불 뒤에 가운데 그려진 대웅전영산회상도 (安城七長寺大雄殿靈山會上圖)는 
‘영산회상도’는 인도의 영취산(靈鷲山)에서 펼쳐진 석가모니의 설법회를 그린 불화이다.

‘안성 칠장사 대웅전 영산회상도’는 상하 2단 구도로, 상단에 석가모니 삼존을 비롯한 권속들을 배치하였고,

상단과 하단의 중간 가장자리에는 준제보살(準提菩薩)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을, 

하단에는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그리고 사천왕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화면 중앙의 청련화(靑蓮華) 대좌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광배는 키형 광배인데 비해 

좌우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은 두광과 신광 모두 원형으로 표현되어 위계를 달리했다. 

비단 바탕에 녹색과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하고, 청색·백색·황색 등을 보조색으로 사용하였다. 

여기에 화면의 빈 공간이나 인물들의 의습에 부분적으로 청색을 사용한 점은 19세기에 유행하였던 설채법(設彩法)이다. 

하단 중앙의 화기에 의하면, 이 불화는 1886년에 금곡영환(金谷永環)·한봉창엽(漢峰昌燁)·완오(翫悟)·

봉순(奉順)·성전(性典)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출처_문화재청)

 

 

 

괘불 탱화

 

 

‘칠장사’는 신라 때 처음 세워졌다고 전한다.

고려 때는 혜소 국사 정현스님(972~1954년)이 이곳에서 머물면서 크게 고쳤다.

조선 시대에는 인목대비(선조의 왕비)가 일찍 죽은 아버지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크게 후원하였다.

칠장사가 자리하고 있는 칠현산 고개는 조선 시대에 충청북도 진천과 경기도 안성을 오고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이런 교통의 요지에는 유난히 도적과 관련된 설화가 많다. 칠현산(七賢山)이란 이름도 칠장사를 도적질 하려던

도적 7명을 혜소 국사가 제자로 받아들여 바르게 가르쳤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 중기의 의적인 임꺽정의 스승이라 전하는 갖바치가 머문 곳도 칠장사라 전한다.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1691~1756)가 과거 보러 가는 길에 이곳 나한전에서 기도하고 잠이 들었다는 설화도

이곳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넘어가는 교통로이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칠장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문화재로는 혜소국사비와 당간이 있고, 대웅전 건물과 오불회 괘불탱, 삼불회 괘불탱, 대웅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

영산회상도, 명부전의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 범종, 소조사천왕상 등이 있다.

칠장사의 문화재 중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는 이곳이 왕실의 후원을 받던 곳임을 보여준다.

                                                                                                                       (출처_안성시청)

 

 

 

석조여래좌상

 

 

ㅁ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安城 奉業寺址 石造如來立像)


원래 봉업사지에 있었던 것을 죽산중학교로 옮기고 그 뒤 다시 선덕여왕 5년(636년)에 자장율사가 세운 

경기도 안성의 칠장사(七長寺)로 옮겼다.
불상과 광배(光背)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불상 높이는 1.57m이고 총높이는 1.98m이다. 

눈·코·입은 심하게 닳았고, 옷은 양 어깨를 감싸 입고 있다. 

옷주름은 여러 겹의 둥근 모양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치마가 양다리 사이에서 지그재그 모양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인 신체표현에 있어서는 손이 다소 큰 편이기는 하나 머리, 어깨너비 등의 신체비례가 비교적 좋다. 

불상의 뒷면에는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가 있는데 주위에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당당한 어깨, 발달된 신체표현, U자형의 옷주름, 그 밖의 조각기법 등으로 미루어 이 불상은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이 지방 불상양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높이 평가된다.  (출처_문화재청)

 

 

 

 

 

 

 

 

ㅁ 죽림리삼층석탑 (安城竹林里三層石塔)

원래 죽산면 지역 폐사지에 방치되어 있던 몇 개의 부재를 모아서 복원한 것을 

2005년 11월 칠장사 대웅전 앞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전체 높이 363cm로 기단부는 단층이고 지대석은 상면에 호각형(弧角形)의 2단 괴임을 마련하였다.

탑신부는 3층을 이루고 있는데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은 돌)은

다른 석탑의 부재를 사용하였다.

1층 탑신석은 2매의 석재로 결구했는데, 문비(門扉)가 있는 부재는 가까운 밭에서 출토된 것을 옮겨온 것이고

다른 부재는 새롭게 보강한 것이다.

문비는 감실 형태로 세로로 선을 그어 문을 표현하고 좌우에 원형 고리를 조각했다.

옥개석은 일부가 파손되기는 하였지만 1층부터 3층까지 같은 치석 수법을 보이면서 체감되고 있으며,

비례가 잘 어울려 같은 석탑에 활용되었던 부재였음을 알 수 있다.

옥개석 층급은 모두 4단으로 동일 높이로 각지게 치석 하였다.

낙수면은 완만하게 경사져 내려오면서 가운데를 오목하게 하여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도록 하였다.

기단과 옥개석 낙수면 표현, 탑신부 체감 등을 통해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출처_문화재청)

 

 

 

 

 

 

 

국사전

 

원통전

 

나한전

 

국사전

 

 

ㅁ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安城 七長寺 慧炤國師碑)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하였으며 17세에 융천사(融天寺)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

현재 비는 비받침인 귀부(龜趺)와 비몸돌·머릿돌이 각각 따로 놓여 있는 상태이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몸돌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씨에서는 고려인다운 뛰어난 풍모가 느껴진다.

문종 14년(1060)에 세워진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의 장수인 가토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어 베었다.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리니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다 한다. 

현재 이 비의 몸돌이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혜소국사비

 

비문이 새겨진 비신의 갈라진 부분

 

비신 측면에는 섬세한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비석이 흑대리석이라 화강암보다 글을 새기고 조각하기가 한결 수월한 재질이다.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용이 조각된 이수는 혜소국사비 옆에 있다.

 

칠장사 전경

 

 

 

 

 

 

 

대웅전 앞 당간지주

 

 

명부전

 

 

 

공덕전

 

 

 

 

 

범종각

 

일주문

 

 

 

 

 

일주문을 나서면 오늘 칠장사를 방문하게 된 철당간을 만나게 된다.

철당간 앞에 칠장사 사적비기 있어 칠장사의 창건과 중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알 수 있다.

 

 

칠장사 철당간을 칠장사와 묶어 올리기엔 사진이 많아 별도로 올린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과 공주 갑사 철당간에 이어 칠장사 철당간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칠장사 철당간이 궁금하면...  

 

안성 칠장사 철당간 너무 장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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