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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등등/사찰 탐방

보물인 철조여래좌상이 모셔진 평택 만기사

by 즐풍 2023. 3. 11.

2023_015

 

 

2023.2.8. (수)

 

 

이왕 밖으로 나온 김에 보물로 지정된 철제여래좌상이 있는 평택 만기사로 들어선다.

평택시 무봉산 청소년 수련원 옆에 있는 만기사는 아담하고 작은 절이다.

들어가는 입구의 일주문은 화강암 기둥으로 세워 제법 견고하게 보인다.

만기사는 l972년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과 요사를 중건하면서 현재의 사세를 갖추게 되었다.

 

 

ㅁ 평택 만기사 (平澤 萬奇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942년(태조 25년) 남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세조 때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대웅전 안에는 보물 제567호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어정이라고 불리는 우물은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마시게 되었는데 물맛이 특이하였으므로 

샘 이름을 감로천이라 명명하였다.

                                                                            (출처_평택시청 문화관광)

 

 

새가 춤춘다는 무봉산 자락에 만기사가 있다.

 

천왕문에 마련된 사천왕

 

 

 

 

사찰은 크지 않으나 산의 경사를 이용해 1층은 반 지하식으로 만들고

2층에 건물을 올린 독특한 구조다.

 

대웅전

 

대웅전 앞에는 최근에 조성된 5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종각과 석탑 위에 조성된 부처님이 멀리 보인다.

 

 

 

 

ㅁ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平澤 萬奇寺 鐵造如來坐像)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만기사에 있는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平澤 萬奇寺 鐵造如來坐像)은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불상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불상을 받치는 대좌(臺座)는 없고 불신만 남아 있는 상태이며, 

오른팔과 양손은 새로 만들어 끼운 것이고 원래의 것은 절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있다. 

갸름한 얼굴의 세부표현은 분명하고 목에는 3줄의 삼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 어깨는 거의 수평을 이루면서 넓은 편이다. 

어깨 부분에서는 크게 접어 계단식의 주름을 만들었고, 

팔과 다리 부분에도 주름을 표현하였는데 매우 형식적이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고 있는 모습이다.

상체가 약간 긴 편이나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은 편이어서 안정감이 있다. 

당당한 형태이지만 도식적인 옷주름의 표현과 단정해진 얼굴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_문화재청)

 

가운데 검은 머리의 부처님이 보물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이다.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은 근래에 조성된 협시보살 좌상과 함께 삼존을 이루고 있다.

좌우에 봉안된 협시보살과 뒷벽의 목각탱은 철조여래좌상과 달리 매우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목각탱에 조각되어 있는 두광(頭光), 신광(身光)의 광배(光背)도 화염문이 세밀하고 화려하게 나타난다.

연화대좌(蓮花臺座)도 중대(中臺)에 사각형의 구획 안에 연화문이 새겨지는 등 

철조여래좌상에 비해 화려하여 다소 이질감을 준다.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은 불신의 허리 부분이 길고 날씬하게 표현된 세장한 신체이다.

그러나 좌우로 넓게 퍼진 높은 무릎으로 전체의 느낌은 장대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모습이다.
일률적인 평행 밀집형 옷주름은 형식적이며, 신체의 탄력성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넓게 벌어진 무릎, 신체에 비례적으로 적합한 두상표현 등에서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는 당당하지만 도식적인 옷주름과 단정한 얼굴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정을 보여준다.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철불은 국내 72구가 현존하고 있으며, 중부지역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 철불은 중기·후기에 조성된 것에 비해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많은데,

대체로 왕실, 귀족보다는 육두품 이하 일반 백성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는 왕실이나 귀족이 금동불을 선호했던 데 비해 철은 재질이 투박하나

일반 백성도 쉽게 구할 수 있어 조성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의 철불 조성은 보림사 철불, 도피안사 철불, 삽화사 철불 등의 조성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출처_2012년 중요동산문화재 목불 철불 건칠불 기록화사업 결과보고서 中)

 

 

민가의 전통신앙과 결합한 삼성각

 

 

 

멀리서 볼 땐 탑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납골당이다.

 

 

 

탑 뒤에는 사찰로 들어서는 건물 2층은 명부전이고, 1층은 천왕문이란 편액이 걸렸다.

 

원통전

 

 

 

 

만기사에 철조여래좌상이 있다기에 찾아갔다.

대웅전에 모신 철조여래좌상 좌우에는 협시보상이, 뒤에도 많은 부처님이 봉안되어 있다.

공산주의 운동가인 박헌영의 아들인 원경스님(1941~2021)께서 한 때 이곳의 주지로 계신 곳이기도 하다.

쇠락했던 만기사가 1972년 중창하며 새롭게 거듭난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