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자 2016.8.20.토 09:56~14:26(이동시간 4:30, 이동거리 6.5km) 날씨: 맑음
잠시 고민에 빠진다.
늘 주말은 어김없이 돌아오니 그때마다 어느 산으로 가야할지 결정하는 건 쉽지않다.
물론 계절마다 가야 할 산은 많다.
봄엔 꽃의 종류에 따라 가야할 산, 여름엔 계곡 중심의 산, 가을 단풍, 겨울의 눈꽃 산행 등...
아직 식을 줄 모르는 더위는 당연히 계곡으로 유혹하지만, 사실 계곡 산행엔 별 흥미가 없다.
봄부터 지금까지 비다운 비가 오지 않은 터라 계곡으로 나가봐야 발등을 적실 물도 별로 없으니 비 온 다음이라면 모를까.
산악회에서 나온 여러 산 중에 천태산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문을 보니 적당한 릿지에 짧은 산행시간이라 흥미가 당겨 신청한다.
천태산 등산코스
천태산은 입구부터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많아 꼭 소풍온 기분이다.
이 바위는 삼신할멈바위다.
쭈글쭈글한 주름이 삼신할멈을 연상시켜 지은 이름이라는데 여기서 보니 비슷해 보인다.
삼단폭포
예전엔 용추폭포라 했으나 삼단으로 구성돼 있어 요즘엔 삼단폭포라 불린다.
올여름 유난히 마른장마가 지속되다보니 폭포의 위용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드디어 천태산 영국사 경내로 들어선다.
별로 볼 것도 없는 절 하나 갖고 입장료 1천원을 받는다.
국립공원도 입장료가 없는데 지역에 있는 작은 산 하나에도 입장료를 받는다는 게 조금은 불편하다.
그 유명한 영국사 은행나무다.
높이 31m, 가슴 높이의 둘레는 11m로 약 1천살 정도로 추정되며 천연기념물 223호다.
가을에 노란 단풍이 들었을 때 가장 많은 방문객으로 넘치겠다.
영국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를 고증할 수 없다고 한다.
삼층석탑은 신라후기(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반 석탑이다.
영국사를 지나 숨이 가빠질만 하면 암벽이 나타난다.
이 암벽까지 올라올 때도 제법 바위를 탔지만, 앞으로 더 많은 바위를 타야한다.
이 소나무와 아래 있는 바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을 디뎠느지 소나무는 속살을 드러내고 바위는 움푹 파였다.
등산객이 다닌 발자국으로 먼지가 가라앉을 새도 없이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았다.
영국사를 포근히 감싼 천태산 산세
여기가 천태산의 자랑거리인 75m 암벽로프구간이다.
시작부터 거의 직각에 가까운 바위를 로프로 올라야 하니 릿지력이 좋은 등산화가 제격이다.
등산화는 발을 잡아주지만, 더 중요한 건 팔힘이다.
75m를 팔힘으로 당기고 발로 온몸을 지지하며 올라가자면 등산도 하기 전에 힘이 빠진다.
위험하면 우측 우회로를 이용하면 된다.
겨울에 눈 올 땐 참 위험하겠군...
여름용 샌달형 keen 등산화는 단화형인데 깔창을 더 깔았더니 높이가 낮아져 자꾸 신발이 벗겨져 오르기가 불편하다.
그래도 제법 릿지감이 좋아 오르는 데 크게 불편하진 않다.
저 바위 아래까지 오르면 75m 구간은 끝난다.
저 바위 왼쪽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며 얼려온 망고 통조림을 먹고 바위를 오르려는데 길을 막았다.
길을 넘어 간신히 바위 홀더를 잡고 난코스를 오른다.
밑에 있던 두 여성이 갈 수 있겠냐고 물어 릿지를 잘하면 가능하다고 하니 그냥 돌아간다.
수락산 기차(홈통)바위보다 더 길고 좀 더 짜릿한 구간도 있다.
자주 다니다보면 별거 아니겠지만, 처음이라 더 스릴을 느낀다.
오형제 바윈가?
앞쪽 능선으로 내려가면 C코스인데 위험하니 뒤쪽에 더 경관이 좋은 D코스로 가라는 안내문이 있다.
드디어 천태산 정상이다.
옆쪽에도 스텐레스 사각 뿔에 파란 바탕색을 씌우고 천태산이라고 표식을 설치했지만 오래돼 색이 날리고 글자가 헤졌다.
재정비를 하면 좋은데, 방치된게 흉물스러워 지워버렸다.
정상 사진 찍을 때가 11:43,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 50여 분만에 정상에 올랐으니 릿지만 빼면 좀 싱거운 산행이다.
하산길이다.
이 암벽구간 뒤로 릿지를 하며 올라간 코스가 있다.
영국사 전경
산행 마감시간이 오후 3시 30분까지니 지금 내려가면 두 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영국사로 바로 내려가지 않고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가 시간을 봐 가며 주차장으로 하산할 생각이다.
충청도 지역에서 이렇게 산이 많은데, 작년 속리산을 다녀온 후 처음인 거 같다.
호남이나 영남지역은 오가는 시간이 많으니 앞으로는 충청권 산행을 좀 더 해야겠다.
앞쪽 능선 정상이 앞으로 밟게 될 옥새봉이다.
전망바위, 참 잘 생겼다.
능선에서 내려오면 남고개와 만난다.
어느 산이든 고개는 산을 넘거나 능선으로 오르는 요충지다.
오늘 일정상 남고개에서 영국사로 가는 게 맞지만, 시간이 너무 남아 조금 더 돌 생각이다.
내려오는 길에 본 건너편 능선 어디 쯤에서 하산하면 된다는 걸 봤으니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
길을 왜 막아놨는지 모르겠다.
아는 사람들만 다니는 길이되다보니 갑자기 인적이 끊겨 잡초를 헤치고 나가야 한다.
길은 끊어질듯 이어지지만, 눈썰미 좋게 잘 잡아내며 능선으로 향해 오른다.
가는 길에 만난 바위다.
뭐 특별할 것도 없지만, 불량한 내 마음엔 좀 더 특별하게 보인다.
가랑이 사이로 삽입된 양물인듯 보이는 건 정말 내 마음의 불량끼 때문일까?
그 불량한 바위 아래로 빠져나가야 하는 건 불량바위의 신묘한 능력에 따른 출산이라고 보자.
드디어 옥새봉(490m)이다.
바위 하나가 북쑥 튀어나오긴 했으나 더 이상 특별할 건 없다.
옥새봉 오르기 전에 왼쪽으로 길이 있길래 억새봉 뒤로 보이는 마지막 봉우리로 넘어가는 우회로라 생각하고 내려갔다.
가다보니 능선을 따라 내려 가는 길이길래 다시 올라와 이 옥새봉을 넘어 다시 전진한다.
바로 앞에 보이는 능선이 다음 봉우리를 찍고 내려갈 능선이다.
좀 전의 맨우측 옥새봉과 연결된 능선
좀 전 옥새봉에서 하산하던 길은 길이 좋았으나 마지막 봉우리에서 주차장쪽으로 하산하는 이 능선엔 사실 길이 없다.
그래도 한두 사람 발자국이 보이긴 하니 나처럼 길 없는 길을 사방팔방으로 다니는 사람도 있나보다.
길이 없어도 길을 내며 다니다보면 언젠가 길이 되니 길은 없다가도 생기고 있다가도 없어진다.
영국사로 하산하며 망탑과 진주폭포를 보려던 계획은 산을 더 타고 싶은 욕심에 없던 일이 됐다.
무더운 여름이라지만, 그늘을 걸을 때 바람은 어느 새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니 아무리 덥다한들 가을도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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