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5.8.22.토 10:20-16:15(6시간55분 산행) 14.2KM 이동 날씨: 흐림, 하산 후 비 약간 내림
백두대간을 걷는다는 건 매우 의미 있어 보이지만, 절반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일정상 18km~25km 구간을 짧게는
여덟 시간에서 많게는 열두 시간도 넘게 걸어야 하니 대부분은 무박 산행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귀가를 고려하여 여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랜턴을 켜고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다녀오긴 했어도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곳이 많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종주를 끝냈을 때의 성취감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런 과정의 속전속결을 중시하는 백두대간보다 오늘처럼 여유가 있고 짧게 걷는다면 부담 없이 즐기는 산행을 할
수 있다.
산행은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다스리고 산하에 대한 심미적인 정서를 함양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극한으로 가느냐, 아니면 우보 산행을 하며 자연에서 치유를 받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 문제다.
4~5년 전, 극한을 추구했던 적이 있다. 비가 오든 눈이 내리던 혹한이거나 배낭에 넣어둔 냉수가 지글지글 끓는 혹
서든 불구하고 주말 내내 산행하기도 했다. 결과는 피로만 쌓일 뿐이다. 극한을 버리니 훨씬 수월해진 산행이지만,
소걸음처럼 천천히 걷는다고 해도 그때의 습관은 아직도 남아있다.
오늘 등산 구간에 삼도봉이 있는데, 지리산 종주할 때도 삼도봉을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전국에 삼도(三道)를 지나는 삼도봉은 몇 개나 될까?
그래서 조사해 봤다.
먼저, 지리산 반야봉 삼거리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약 0.6km 지점에 있는 삼도봉은 해발 1,499m로 전남 구례군과
전북 남원시, 경북 하동군과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지리산 종주코스 구간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다.
두 번째는 초점산으로 거창 삼도봉(1,248.7m)이라고도 불리며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 전북 무주와 만나는 꼭짓점
에 있다.
세 번째 삼도봉은 강원도 영월과 충북 단양, 경북 영주에 솟은 어래산(1,063.6m)의 한 봉우리로 가장 북쪽에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 탐방하게 되는 민주지산의 삼도봉(1,177m)은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전북 무주 등 3도가 지나는
곳으로 전부 네 개나 된다.
삼도봉은 전국에 네 개가 있지만, 나라의 스승이란 의미가 있는 국사(國師)봉과 국태민안을 생각한다는 국사(國思)
봉의 동음이의인 국사봉은 138개, 같은 이름 다른 전설을 갖는 옥녀봉은 95개나 된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국토지리
정보원의 자료로 이건 덤이다.
요즘은 100대 명산이나 종주산행을 넘어 이런 국사봉 50좌 완등, 봉화산만 찾아다니는 봉화산 43좌 완등 등 수많은
테마를 만들어 도전수첩을 채워가는 게 새로운 유행이다.
하나씩 채워가는 도전의식도 좋지만, 일부러 일을 만들 필요는 없겠다.
산행은 백두대간 나들목인 부항령에서 시작한다. 백두대간은 긴 구간 속도전에 의미를 두는 건지 능선으로 연결된
정상이 별로거나 의미가 없다면 생략하고 사면 길로 가며 건너뛰는 구간이 많다.
삼도봉을 가자면 백수리산을 거치게 되는 데, 백수리산까지 가는 길의 대부분 능선은 생략하고 사면 길로 질러감에
따라 거리를 단축하는 축지법을 쓴다. 그에 따라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이 없게 되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는다.
우거진 숲길은 서로 교행할 수 없을 정도로 좁지만, 낙엽이 쌓이고 쌓여 부토가 된 흙길이 주는 느낌은 부드럽고
감미롭게 전해진다. 능선의 딱딱한 길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내내 이런 길을 걷고 싶지만 지루하다
싶을 때 즈음 능선을 잡아탄다. 그때까지 보이는 건 오직 우거진 숲과 좁은 길뿐이니 사진에 담을 풍경이 없다.
이런 게 대간 길의 한 특징이다.
배가 고프다. 워낙 입이 짧아 소식하다보니 축적된 에너지가 없는 데 먹은 거라곤 버스에서 나눠준 김밥 한 줄이 전부다.
라면이나 김밥은 별로 입에 대지도 않던 음식들인데 산행을 하면서 점점 익숙해지는 음식이다. 아무리 그래도 김밥 한 줄로
아침을 때우고 정오를 넘긴다는 건 일상에서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활동량 많은 등산에서 정오를 넘기다니
등산은 때로 극한을 요구한다. 필요할 때 언제든 수낭에서 물 손쉽게 섭취하듯 음식도 그런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사실 40여 명이 식사할 장소가 없다. 등산로는 한두 명함께 걸어갈 공간은 커녕 숲이 우거져 서너 명 앉을 공간도 없다.
드디어 오후 1시 10분 쯤 습지를 관통하는 긴 나무 데크로 된 통로에서 식사를 한다. 가장 절실했던 민생고가 해결됐다.
식사를 해결한 장소
대간을 뛰는 사람들은 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무 계단을 만들었어도 수풀이 자라 바짓단에 감기는데 숲길에선
나뭇가지가 모자를 벗기고 배낭에 달라붙는 길을 헤쳐야 하는 구간도 많다. 대간 길이 이런데, 정맥이나 지맥으로 들어가면
등산 인구가 훨씬 더 줄어드니 그곳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겠다. 괜히 사서 고생이다.
드디어 삼도봉이 가까워진다. 지나온 길을 보니 삼림이 우거져 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거의 다섯 시간만인 오후 세시 7분에 삼도봉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산에서 가장 화려한 정상 표지석이 맞아준다.
지난 정권에서 지역감정을 유발하여 민심을 갈가리 찢어놓고 그 민심을 수습하고자 여기 이렇게 화합의 장을 마련했지만,
선거 때만 되면 여전히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다. 한심한 정치가에 속는 여전히 어리석은 국민이다.
삼도봉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가장 빠른 하산길은 영동에 있는 물한계곡이니 충청도 땅이라 생각한다.
잠시 쉰 뒤 물한계곡으로 하산하는데, 올라온 거리만큼은 아니어도 계곡이 깊어 하산길은 지루하다.
석기봉과 민주지산 방향
삼도봉 옆 전망대
전망대에서 보는 삼도봉
음주암폭포, 제법 높으나 수량이 적다
음주암의 뜻이 뭘까? 알듯 말듯 묘한 여운을 남긴다
내려오며 한 군데 더 폭포가 있지만, 상수원보호로 철책이 쳐져 있어 사진에 담지 못했다
여름엔 계곡 피서지로 물한계곡이 유명하지만, 대부분은 상수원보호로 철책이 쳐져 있어 물놀이할 공간은 별로 없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을 건너며 잠시 발을 담그는 회원이 있기는 했지만, 여름 피서지로 추천할만한 곳은 아니다
삼도봉의 모조 축소판을 물한계곡 입구에서 다시 본다
혼자 여유롭게 산행하던 목우가 이번에 함께 따라나서 고생 좀 했다. 초반에 잘 달리는가 싶더니 체력 부진으로 밀리기 시작한다.
결국엔 양 종아리에 쥐가 난다고 하더니 어찌어찌 견디더니 무사히 산행을 끝냈다. 운동부족이다. 남들 몇 년씩 고생한 산행경력
인데, 잠깐 산행해 본 산행으로 아직 그들을 따가 가긴 역부족이다. 더 많은 산행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업히지 않고 내려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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