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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충청도·대전·세종

희양산 암봉 탈출기

by 즐풍 2019. 6. 5.




2017.2.25.토  09:43~15:15(이동시간 6:33, 이동거리 12.36km, 평균속도 2.2km)    날씨: 맑음


지난 12월과 1월 그리고 2월을 올겨울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입춘은 물론 일주일 전에 우수까지 지난 마당이니 이젠 봄이라고 해야겠다.

지금은 다소 추위가 남아있는 봄이니 올겨울이 아니라 지난겨울이라고 하자.

지난겨울은 겨울치고는 별로 춥다고 느끼지 못했다.

물론, 함백산이나 가리왕산을 찾아갔을 때 바람이 워낙 심해 속옷까지 파고들었어도 견딜 수 있는 추위였다. 

예년 겨울 같으면 핫팩을 서너 개는 썼을 텐데, 지난겨울 배낭에 넣고 다니던 비상용 핫팩이 그대로 있다.


한파야 으레 있게 마련이지만, 작년 1월처럼 서울이 영하 15℃ 이하로 떨어지는 극한 추위는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 늦가을에 사 놓은 구스다운을 끌고 다니긴 했어도 정작 등산할 땐 땀이 나 입지도 못했다.

그래도 배낭이 빵빵하도록 넣고 다니다가 점심 먹을 땐 체온 유지를 위해 두어 번 입기는 했다.

이제 봄의 경계선에 있다 보니 추위보다 칼바람이 온몸을 할퀴고 지나가는 꽃샘추위가 극성이다.

잠깐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자면 유난히 긴 내 목선을 후려치는 바람 때문에 한기를 느끼게 된다.

그런 바람이 분다 해도 2월의 모퉁이를 돌면 봄은 한결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을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평균기온은 13.6℃로 기상관측 사상 가장 온도가 높았다고 한다.

통계를 보아도 사실 지난겨울은 춥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0년간 겨울철 평균 기온은 0.3℃인데 비해 지난겨울은 이보다 1.2℃나 높은 1.5℃를 기록했다.

이러한 이변은 봄꽃 소식에서도 들려온다.

2016년 광양매화축제는 2016. 3. 18.~3. 27.까지 진행됐다. 

그런데 올해엔 2017. 3. 11.~3. 19.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매화 꽃소식도 일주일이나 빠르게 다가온다.

오늘 아침은 싸한 느낌이었으나 희양산 들머리에 도착했을 땐 벌써 날씨가 풀려 봄기운을 느낀다.



화양산 등산코스




산행대장이 산행을 안내할 땐 600m 정도 걸어 내려가야 된다고 했는데, 다행히 분지리 안말까지 차량이 들어와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날씨가 풀려 봄인줄 알았더니 고도를 높여 갈수록 눈이 점점 많아져 응달엔 발이 푹푹 빠지기도 한다.

산은 처음부터 지루한 오름길인데, 눈도 제법 있어 쉽지는 않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데까지 가보잔 생각에 아이젠은 착용하지 않는다.

40분을 쉬고 않고 걸어서야 주능선과 만나는 사다리재에 도착했다. 저기 보이는 봉우리가 곰틀봉이렸다.




꼭 한 시간만에 곰틀봉(972m)에 도착했다. 봉우리란 이름 하나는 얻었으나 특별할 건 없다.


앞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 능선이 날카로워 어느 쪽이든 경사가 심해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  




어디를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 산이다.


이만봉 오르기에 앞서 지나온 곰틀봉을 바라본다.


이만봉(991m)까지 오르는데 72분 소요


희양산은 큰 바위로 된 산인데 아직까지는 무난한 육산이다. 여기서 조그만 바위 봉우리를 만난다.


이만봉에서 바라보는 희양산이다. 남쪽으로 하얗게 드러난 암봉이 거칠게 보인다.

바로 지척인 듯 보이지만 산길을 따라가다 보니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지나온 능선


다시 만난 암봉, 오른쪽은 로프를 잡고 내려서야 하고 왼쪽 암봉은 우회하여 돌아간다.


해를 받는 남쪽은 눈이 다 녹았으나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벽면은 바위에도 그대로 눈이 남아 있다.


정규 등산로에서 떨어진 시루봉(914m)을 오기 위해선 다소 모험을 해야 한다.

600여 m를 다시 뒤돌아와야 하니 정해진 시간에 왕복 1km가 넘는 눈길을 헤쳐 다녀오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찾지 않아 눈길은 발자국이 없어 어림짐작으로 찾아 가야 한다.

막상 시루봉에 도착하긴 했으나 되돌아가기는 시간과 거리가 너무 멀어 길을 가로질러 가기로 한다.

지도엔 점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표시되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워낙 다니지 않아 길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사가 워낙 심한 데다 나무가 갈구치긴 하지만, 겨울이라 풀섶이 없어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요령껏 내려서다 한 번 미끄러져 넘어진다.

남쪽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쌓인 낙엽 뭉치엔 동물들이 기거했던 흔적이나 배설물이 더러 보인다.

어렵게 작은 계곡을 지나 등로를 만났을 땐 길을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좀 더 걸어 앞서가던 사람을 만나니 '시루봉을 다녀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다녀올 수 있느냐기에 그런저런 상황 설명을 했다.





다시 희양봉으로 가는 동안 크고 작은 봉우리 몇 개는 잘 넘어야 한다.


제법 조밀하게 잘 지어진 희양산성이 꽤 길게 늘어서 있다. 언제적 산성인지 궁금하다.


은티마을로 이어지는 지능선도 암봉이 보기 좋은데 짧게 끝난다.  


드디어 희양봉 정상이 가까워지자 암봉이 보기 좋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희양산(999m)

희양산은 충북의 괴산과 경북의 문경에 걸쳐 거대한 하나의 바위덩이로 이루어진 듯 당당한 위세를 뽐내고 있는 산이다.

정상에서 북쪽은 시루봉, 서쪽으로는 구왕봉으로 이어져 나가며 기세를 진정시키지만,

동남서쪽으로 노출된 암장은 곡클라이밍 코스로 다시 없이 좋아 이미 여러 개의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
병풍처럼 둘러쌓인 거대한 화강암벽은 설악산 울산바위에 필적할 만 하며, 암벽 하단부인 2백여 m의 슬랩과 암벽은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정상 남쪽 아래 유서깊은 봉암사가 있고, 옥석대와 그 주변 일대에 펼쳐진 옥석계곡의 뛰어난 정경은 등산의 또 다른 맛을 준다.


산림청 100대명산 선정이유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고 바위 낭떠러지들이 하얗게 드러나 있어 주변의 산에서뿐만 아니라 먼 산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기암괴석과 풍부한 수량이 어우러진 백운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마애본좌상 등 역사유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산림청 자료 인용


희양산(曦陽山)은 햇빛 희, 볕 양 字를 쓰는 산으로 햇볕에 바위가 하얗게 드러난다는 뜻에서 희양산이라고 한다.


희양산 정상 인근에 있는 암봉


정상을 오를 때 정상에서 암봉으로 흘러내린 로프를 봤다.

지금 구봉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얼어 있기에 그 로프를 따라 내려가면 암봉을 통과해 구봉산으로 가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규 등산로에서 떨어진 곳에 있으니 일반인은 찾지 못하는 지점인데, 코스를 단축하고 쉽게 건너갈 수 있겠단 생각에 횡재란 생각이 든다.

막상 로프로 내려가려다 보니 옆에 숲으로 충분히 걸어갈 수 있어 숲길을 이용해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서다 보니 아래쪽으로 끝도 안 보이는 바위 절벽이다.

다시 올라가기엔 너무 많이 내려와 올라갈 엄두가 안 난다. 하여 옆으로 돌면서 내려갈 위치를 찾아보지만, 여전히 낭떠러지기다.

할 수 없이 적당한 곳을 찾아 올라가려 해도 마땅치 않다.

한 곳으로 올라가려는데 적당한 높이와 돌출부위가 없어 포기하고 다음 코스로 어렵게 옮겼으나 이곳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 군데를 찾았으나 이곳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고 혹여 떨어지면 영원히 골로 가게 생겼다.

마지막 한 군데는 돌출부위에서 소나무가 바위 밖으로 튀어나온 것을 이용해야 하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도저히 나무를 잡고 오를 방법이 없다.

마침내 생각해낸 것이 소나무 가지에 옷을 걸친 다음 돌출부위와 옷을 잡고 오르면 오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옷보다는 손을 감싸는 스틱의 스트랩 두 개를 손수건으로 단단히 묶어 나무에 걸친 후 돌출부위와 스틱을 잡고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탈출했다는 안도감에 그간 생사의 갈림길에서 바짝 말라가던 목도 추길 겸 간식을 먹는다.

시간을 보니 벌써 14:40분이 넘었다. 대장은 하산 시간을 고려하면 희양산 정상까지 14:30에 통과해야 한다고 했는데, 마음이 급하다.

어쨌든 일단 활로를 찾았으나 2차 관문이 또 기다리고 있다.

다시 주 능선 등산로로 올라가는 데 다시 급경사의 암봉이 가로막고 있으나 1차 관문보다는 쉬워 보인다.

나무가 길을 막기도 하지만 바위 틈사이 홀더와 적당 거리의 나무 밑둥지를 잡고 어렵게 등산로를 찾아 올랐을 때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때가 15:25이니 대장이 말한 통과 예상시간 보다 한 시간이나 지체되었으니 늦어도 너무 늦게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불과 900m의 거리를 꼬박 두 시간만에 탈출한 것이니 잠깐의 판단 실수로 모험에 나섰다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룬 셈이다.



이크 낭떠러지기를 보니 소름이 쫙~


저길 어떻게 다시 올라가지?


그래도 바라보는 풍경은 좋다.


애초 구양봉으로 넘어가려 했으나 암봉 탈출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렵더라도 구양봉 방향인 이 코스로 내려가려고 했으나 경사가 심한 얼음판인데다 시간도 촉박해 결국 포기하고 쉬운 길을 택한다.

성터 갈림길에서 은티마을 쪽으로 내려가야겠다고 길을 내는데 같은 산악 회원인 여성 세 분이 내려간다.

내가 꼴찌가 아니라는 데 일단 안심하며 그들을 추월해 길을 서두른다.


드디어 마을과 멀지 않은 곳이다.

남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을 이 길이 내게 너무 반갑고 살았다는 안도감에 감개무량하다.


마을에 내려오며 보는 희양산 정상으로 노란 원형 지점에 갇혀 한동안 고생했던 곳이다.


마을 뒤편 희양산의 한 구간


매번 산행은 늘 좌충우돌이다.

희양산 암봉에 갇혀 조난 위기가 있었으나 어렵게 모든 역량을 발휘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모두가 북한산과 도봉산, 관악산 등 서울의 암봉 많은 산에서 익히고 놀던 경험이 큰 힘이 되었다.

어젯밤에만 해도 로프를 지참해야겠단 생각을 했으나 아침에 집을 나설 땐 모두 잊고 나왔다.

이제 배낭엔 작은 슬링 하나라도 넣어야 이런 암봉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산에선 늘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