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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충청도·대전·세종

민주지산의 설경

by 즐풍 2019. 6. 5.

  

 

산행일자 2014.12.23.화(연가)  10:05-16:35(6시간30분 산행)   날씨: 맑음

 

어제 동지를 지났으니 아직은 밤이 다섯 시간이나 긴 시기다. 6시에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에 탑승하려고 5:40분에 집을

나설 땐 여전히 칠흑 같은 밤이다. 이승만 정권까지만 해도 한국 표준시를 쓰던 걸 수출에 사활을 걸던 박정희 정권이

30분 빠른 동경시에 우리의 표준시를 맞춘게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다. 그러고 보니 생체리듬이 늘 30분 딸

린다. 서울시를 표준시로 한다면 지금보다 30분 늦어지겠지만 그놈의 경제적 이득이 뭐가 있다고 아직도 표준시는 일본

에서 독립하지 못해 시간이 왜곡되는 건지 궁금하다.

 

하기야 중국은 동서로 세 시간의 시차가 발생해도 공식적으로는 북경시를 표준시로 쓴다. 북경이 오전 8시일 때 서쪽의

신장위그르는 새벽 5시이지만 중국 표준시로 8시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하여 신장위그르 지역은 유일하게

자치구 내에서 독자인 시각 체제를 쓰고 있다. 이러한 중국에 비한다면 30분 늦는 게 무슨 대수이겠냐 마는 그래도 표

준시의 자주성은 있어야 한다.

 

러시아 같은 경우에는 최대 11개의 표준시가 존재하지만 1개는 쓰지 않고 현재 10개의 표준시가 쓰인다고 하니 표준

관한 한 양호한 상태로 서양의 합리적 사고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아침과 저녁이 함께 공존하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러

시아가 부럽기만 하다. 산악회 버스타러가며 잠깐 가져본 생각이다.

 

 

민주지산의 의미

산 이름이나 성명이 세 자로 굳어진 판에 네 자를 가진 산 이름은 흔치 않다. 한글 이름이라면 그 뜻을 알아내기 어렵지

않겠으나 민주지산이라니 그 의미를 한참 생각하게 만든다. 뭐 그렇다고 세 자 이름의 한문으로 된 산 이름의 의미를 아

는 건 아니겠지만 네 자라 더 궁금해진다. 이리저리 뒤적여보니 두루두루 여러 산을 볼 수 있는 첩첩산중의 산이란 뜻이

라고 한다. 다른 설(說)로는 충청도쪽에서 보면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으로 렸는데, 일제시대 때

지도를 제작하며 민두름산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민주지산으로 잘못 굳어졌다는 말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백운산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 중국이나 산 이름과 사람 이름은 대부분 세 자인데 간혹 두 자나 네 자 이상인 경우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내 아

이들만 해도 둘 다 성까지 포함하면 네자로 불과 한 자 더 많을 뿐인데도 이름을 말하면 대개는 다시 한 번 더 묻는다.

이름은 세 자라는 확고한 믿음이 혹시 잘못 듣지는 않았나 하는 의구심으로 더 물어보거나 머리의 한계가 세 자를 넘지

못하는 건 아닐는지. 적어도 우리세대에선 구시대의 유물이자 개성 없는 돌림자는 다 버리고 인디안 이름처럼 예쁜 우리

말로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눈이 많은 덕유산이 지척이라 그런지 민주지산도 같은 같은 기압골의 영향으로 눈이 많아 근래 설산 산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민주지산 등산코스

 

예정대로라면 고도 840m인 도마령에서 산행을 시작하겠지만 폭설로 길이 끊겨 물한계곡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능선을 올라설 때까지 계곡은 여느 계곡과 다를 바 없으나 눈이 습기 머금은 습설이라 아이젠에 달라붙어

돌만 보이면 눈 뭉치를 밀어내고 걸어야 한다. 거의 능선에 올라서서야 건설로 변해 걷는데 자유롭다.

눈이 없다면 각호산을 거쳐 민주지산 정상을 찍고 석기봉을 거쳐 삼도봉을 도는 원점회귀 산행이 되겠지만

발이 빠른 건각 세 분만 각호산을 다녀온다. 이번 산행은 상의에 고소내의를 입어 몸이 후끈 달아올라 땀

안나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걷는다.

이놈의 내의는 추울 땐 좋지만 영하 10도가 안 되면 너무 더워 곤욕을 치루지만 발수기능이 좋아 그나마 다행이다.

 올라올 때 발목 보다 조금 더 깊던 눈길이 능선에 올라서면 바람이 실어논 설구가 때로는

 사람 키보다 높은 게 자주 나타나는 비경을 보여주니 요즘 들어 입소문을 타고 설산 산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첩첩산중의 산이라 능선길의 대부분은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지만 오늘은 기온이 많이 올라 상고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이 제법 쎄 방풍의를 입어야 운행이 가능하다.

 

눈언덕 한 켠에 길을 내 조심스럽게 걷지만  정상적인 코스는 아닌 듯 싶 나뭇가지를 헤치며 걷는 곳도 여러 곳이다

바람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곳이 나무에 핀 설화가 목화꽃을 보는 듯 비경을 보여준다

 

눈이 쌓이고 바람이 밀어내며 형성된 설구는 사막의 모래 사구와 다른 모습이다

 

 

 

 

 

 

능선을 걷는 동안 낸 이런 설경을 맞는게 지난 주말에 다녀온 치악산 설경보다 더 멋진 모습이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던 2007년 겨울 특전사가 천리행군 중 그야말로 첩첩산중인 민주지산에서 조난 당해 여러 명이 순직한

사고 이후 민주지산인 이곳에 아담한 대피소가 생겼다. 덕분에 지금 같은 한겨울엔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장소

로 요긴하게 쓰인다. 실내엔 평상과 난로를 설치하여 엄동설한의 한기를 제거할 시설도 마련돼 있다. 젊은 영혼들의 희생

으로 병사들 보다 등산객들이 더 애용하는 장소가 되었으니 편안하게 식사를 마치며 그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드디어 올라선 민주지산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산은 대부분 활엽수림이라 쭈삣하게 키만 커 나무 사이로 조망되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엔 한계가 있다. 몇 시간 눈길을 헤쳐 정상에 올라서야 비로소 주위를 조망할 권한이 주어진다.

산맥은 나무결로 더 확실해지니 예전 대동여지도를 보는듯 정겹게 보인다. 등고선 지도는 많이 보고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편할지 모르나

고지도는 나름대로 보기에 더 편한 점이 있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보이는 것은 모두 산이니 민주지산의 이름이 걸맞다

 

 

 

민주지산에서 석기봉 방향으로 한 칸 내려온 언덕에서 보는 풍경은 정상에서 비켜난 상고대의 비경을 보여준다.

북서벽이라 해가 들지 않고 고지대라 기온이 낮아 언덕에 올라선 사람에게만 슬쩍 비경을 흘린다.  

우측에 뾰족히 솟은 봉우리가 석기봉이라는 데 서둘러 발걸음을 떼어야만 도착할 수 있겠다

 

한 칸 아래서 보는 민주지산 정상

석기봉까지 가려면 예정시간을 훨씬 초과하기에 포기하고 계곡으로 하산하지만 러셀이 안 돼 선두 대장의 고생이 심하겠다  

 

 

단출한 황룡사

여섯 시간 30분만에 원 없이 민주지산의 심설산행을 마치고 원점회귀한다

 

우리 직원이 퇴임사 중에 무문선사의 선시를 인용하였기에 옮겨본다.

 

     무문선사(無問禪師) 선시(禪詩)

     春有百花秋有月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있네

     夏有淸風冬有雪   여름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하얀 눈

     若務閑事掛心頭   부질없는 것들에 마음 매이지만 않으면

     便是人間好時節   언제나 한결같이 좋은 시절 이라네

 

자연을 벗하며 산하에 몸을 맡기니 사계절 좋지 않은 때가 어디 있겠는가?

겨우내 살을 에이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햇빛에 반짝이는 설화나 한여름엔 보이지 않던 심심산천의 속살을 보기위해

옷 속으로 땀을 흘리며 오늘도 산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