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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충청도·대전·세종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삼존불

by 즐풍 2019. 6. 27.






2019.04.07. 일  점심 무렵에 잠깐



오전에 일찌감치 예당호 출렁다리를 본 후 이른 점심을 먹으며 목우와 함께 용봉산을 갈 예정이었다.

목우는 요즘 들어 다리 상태가 좋지 않다기에 서산에 있는 마애삼존불과 개심사, 해미읍성을 둘러보기로 한다.

내가 아무리 산이 좋아도 이미 두 번이나 다녀온 용봉산보다 새로운 명소를 보는 게 좋겠단 생각도 든다.


예당호 출렁다리에서 서산 마애삼존불까지는 약 28km로 약 40여 분 거리다.

가는 동안 산이라기보다는 구릉에 가까운 낮은 산에 초지가 잘 조성되어 있길래 현대 아산의 서산목장인 줄 알았다.

중간에 간판을 한 번 봤는데,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서산목장은 아니었다.


마애삼존불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서 읽었고, 솔담님에게도 여러 번 들어 알고 있었다.

서산9경 중 잠시 후 가게 될 해미읍성이 서산 1경이고, 삼존불은 서산 2경에 속하는 명소다.

예산의 예당호 방문으로 서산 9경 중 세 개의 절경을 구경하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마애여래삼존상을 바라볼 때 중앙의 석가여래 입상을 기준으로 왼쪽에 제화갈라보살,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이 조각된 백제 후기의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선을 새겨 넣거나 도톰하게 솟아오르도록 다듬어 만든 불상을 말한다.

여래는 진리에 도달한 사람으로 부처의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삼존불은 6~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보편적 형식이지만,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입상 보살과 반가 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중국이나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불상은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2.8m의 거대한 불상으로,

단정하고 유연하게 조각된 솜씨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마애여래삼존불이 자리한 충남 서산 운산면은 중국 불교 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백제 수도 부여로 가던 길목이었다.

6세기 당시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곳으로 서산 마애여래삼존불상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보통 백제의 불상은 균형미가 뛰어나고 단아한 느낌이 드는 귀족 성향의 불상과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서민적인 불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민적인 불상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다. (안내문)





서산 마애삼존불


소재지 :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65-13
문의 : 041-660-2538(마애삼존상 관리사무소)
국보 84호/크기 : 본존불 280cm, 미륵보살 166cm, 제화갈라 170cm / 조성시기 : 서기 600년경




서산 마애삼존불


암석에 백제를 부드러이 새기다...

이야기 :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 발견에 관한 일화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있는디유.
양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도 있지유. 근데 작은마누라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쥐어박을라고 벼르고 있구만유.

근데 이 산신령 양반이 가운데 서 계심시러 본마누라가 돌을 던지지도 못하고 있지유.”


1959년,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 발견 당시,

국립부여박물관장 홍사준 박사가  현장조사 중 지나가던 한 나무꾼에게 들은 이야기예요.

나무꾼에게는 암벽중앙의 본존불이 산신령으로 보였고, 본존불 우측의 보살은 본마누라,

좌측의 다리를 꼬고  턱을 괴고 앉은 반가사유는 작은 마누라로 보였던 것이지요.
나무꾼의 생각이 참 재미있네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 후기의 작품으로 얼굴 가득히 아름다운 미소를 뛰고있어요.

오랜세월 수풀에 파묻혀 잠들어 있다가 1958년에 발견되었고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빛의 각도에 따라 미소가 오묘하게 변하는데 아침 햇빛에 비취는 얼굴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죠.

백제인만의 세련된 기술로 부드럽게 조각되었고,

80도로 기울어진 채 조각되어 있어 비 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게 한 점은 과학적으로 우수하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서산 시청 홈페이지)



버스까지 대절한 어느 단체에 대한 해설사의 안내가 이어진다.

뒤늦게 올라와 하나라도 새겨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마애불상은 머리 위로 바위가 덮여 있어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바람의 방향에서도 틀어져 있어 비바람에 풍화되지 않는 절묘한 위치에 조각된 보물인 셈이다.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 입상, 따듯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한 제화갈라보살 입상,

천진난만한 미소를 품은 미륵반가유상은 백제 특유의 자비로움과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이들 불상의 미소는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다.

동동남 30도, 동짓날 해 뜨는 방향으로 서 있어 햇볕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 우수함은 물론 과학적 치밀함도 감탄을 자아낸다.

                                                                                                                                                           (안내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어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으며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져 있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다르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중앙에 현세를 의미하는 여래입상, 보는 방향의 왼쪽에 과거불을 의미하는 반가사유상,

우측에 미래불을 의미하는 반가사유상이 삼세불로 조각되어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불상은 법화경의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팜플렛 내문)






서양의 대리석이나 캄보디아 앙코르왓의 석조 건축물에 사용된 샌드스톤은 처음 채취했을 때

가공하기 쉬울 만큼 재질이 무르다고 한다.

그러므로 섬세한 조각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의 화강암은 바위가 강해 갈라지기 쉽다.

그런데도 이렇게 부드럽게 섬세하게 불상을 만든다는 건 현대 기술로도 어려운 신의 작품인 셈이다.

난 신라의 석조기술이 좋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마애삼존불로 완전히 생각을 바꾸게 된다.
















사실, 이 사람들이 있는 평탄한 이곳은 낭떠러지였다고 한다.

돌로 석축을 쌓고 흙으로 메꾼 곳으로 아무것도 없던 옛날에 장비도 변변치 않았을 텐데 이런 걸작을 남겼다는 게 기적인 셈이다.




마애삼존불의 가치가 높아지자 당국에선 이를 보호할 목적으로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게 건물로 세웠다고 한다.

당장 비바람은 막을 수 있었지만, 습기가 차고 겨울엔 그 습기로 얼음까지 얼어 오히려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결국 건물은 철거되었다는데, 그 흔적으로 벽에 기둥을 꽂았던 자국이 보인다.




이 식당은 마애삼존불 덕에 장사가 잘돼 돈을 긁어모은다.

우리가 잠깐 있는 동안에도 거뜬히 1회전을 하니 주말엔 보통 10회전 잘 하지 않을까 싶다.



카메라로 찍고 핸드폰으로도 찍다 보니 서너 장이면 될 마애삼존불 사진이 넘친다.

이제부터는 핸드폰 사진이다.



해가 가장 뉘었을 때가 동지인데, 겨울엔 오른쪽 미륵반가사유상까지 햇볕을 다 받을 수 있으나 지금은 얼굴에 바위 그림자가 졌다.

아쉽게도 양쪽 팔이 훼손되어 가슴이 시리다.  



이 부처님은 어디서 뵈어도 눈이 따라올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

정면 보다는 약간 우측으로 틀어진 형태라고 한다.













내 웬만하면 사진을 중첩해 올리지 않는 데 마애삼존불 만큼은 같은 사진이라도 버리기 아까워 욕심을 냈다.

언젠가 다시 볼 때 더러 뺄 게 있겠으나 그 작업은 뒤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