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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충청도·대전·세종

청화산 조항산의 서리꽃 비경과 옥량폭포

by 즐풍 2019. 6. 27.

 

 

 

 

 

 

2019.03.31. 일 10:10~16:58(전체 거리 14.41km, 전체 시간 06:58, 휴식 시간 55분, 평균 속도 2.4km/h)  하루종일 흐림

 

 

운동이라곤 걷기밖에 모르던 내가 어느 날 나태한 게 싫어 달리길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뱃가죽이 놀래 뛸 때마다 가려울 만큼 운동에 담쌓고 살았던 나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는 1km를 넘어 5km 단축 마라톤에도 나가게 됐다.

내친김에 10km를 넘는가 싶더니 어느새 하프를 달렸으니 잠깐에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딱 거기까지면 좋았을 걸 후딱 해치우고 싶은 마음에 목표를 높여 풀코스에 도전하게 됐다.

풀코스라면 적어도 하프 코스를 20번 이상 뛴 다음에 도전해야 하는데, 불과 열 번 남짓 뛴 후 도전했으니 너무 성급했다.

첫 도전치고는 좋은 결과인 sub 5를 기록했지만, 무릎 관절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 게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더 이상 뛰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몇 년 지난 다음에야 겨우 등산을 할 수 있었다.

 

등산이라고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무릎이 아파 겨우 세 시간 등산 후 하산할 땐 정말 기다시피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끔찍했다.

깔창 하나 더 깔고, 무릎아대를 채우고 스틱으로 의존한 다음에야 점차 거리를 늘릴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무릎은 신통치 않지만 오랜 노하우인 새털처럼 가볍게 착지하여 무릎에 걸리는 부담을 최소화한다.

 

등산이라고 쉬웠을까?

처음엔 고소공포증으로 경사진 바위만 봐도 오금이 저렸는데, 어느덧 극복하게 됐다.

이젠 단순한 극복을 넘어 때론 릿지를 즐기게 됐으나 여전히 어렵고 두려울 때도 있다.

그렇게 이어온 등산을 1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내 취미 중 가장 생명력이 긴 셈이다.

 

처음 2년은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이나 관악산 등 근교 산행에 국한됐다.

다행스럽게도 처음 입문한 산이 국내에서도 내노라하는 명산이다 보니 산행을 오랜 기간 지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2년을 주말엔 거의 이틀 내내 산을 뱅뱅 돌았으니 안 가 본 능선이나 골짜기 없이 다 휘젓고 다녔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북한산이나 도봉산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 만큼 구석구석 다녔다.

 

그런 근교 산행에 식상할 때 즈음 세상은 넓고 갈 산은 많다는 걸 산악회를 통해 알게 된다.

하나둘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등 명산부터 시작해 오지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산까지 탐닉한다.

그러기를 10여 년 만인 연초에 "한국의 산하 100 명산"을 끝낸 데 이어 "산림청 100대 명산"도 성인봉만 빼고 완주했다.

오늘은 청화산을 마지막으로 블랙야크에서 정한(정했던) 100대 명산까지 끝내기에 이른다.

 

 

 

청화산 조항산 등산코스

 

 

 

운전기사가 내비를 켜고 운전하면서도 전혀 엉뚱한 국도에서 30여 분을 해메고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왔다.

요즘은 다들 산행지로 출발할 때 도착 예정시간을 폰으로 찍어보며 얼마나 정확하게 도착하는 지켜본다.

이 기사는 최근에 내비를 다운받았다면서도 엉뚱한 시골길로 들어가 돌아나온다고 후진하다 뒤쪽 하부가 바닥에 긇혔다.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고 차는 차대로 긇힌데다 회원들의 따가운 눈총까지 받아내야 하니 뜨겁겠다. 

자동차 내비가 현재 상황과 실시간 연동되지 않는다면 실시간 업데이트가 되는 스마트폰 내비가 가장 좋다.

운전기사는 두 눈으로 철 지난 내비를 보지만, 회원들은 90개의 눈으로 실시간 스마트한 내비로 지켜본다.

 

늘재에서 내리니 해발 고도 380m다.

 

 

 

이 늘재는 속리산을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으로 이어주는 백두대간의 경계다.

 

 

 

정국기원단

'靖國'은 '나라를 다스려 안정케 한다'란 뜻이라는 데, 사전에서도 찾기 힘든 이런 말을 써야하는 지 모르겠다.

상식이 있는 일반인과 소통할 수 없는 문자는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한다.

정국기원단 보다 뒤에 서 있는 소나무가 더 근사하다.

 

 

 

아랫쪽은 드문드문 눈이 보이더니 고도를 높이자 점점 눈의 양이 많아진다.

뉴스를 보고 강원도 산간지역엔 눈이 제법 내렸다기에 아이젠은 준비했으나 아직까지 착용하진 않는다.

 

 

 

멀리 시루봉이 보기 좋게 보이지만, 제법 거리감이 있는데다 눈이 쌓여 포기한다.

 

 

 

 

청화산(靑華山, 984m)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와 상주시 화북면 경계에 위치하며, 속리산을 바라보고 있다.

청화산 서쪽 아래로 우복동과 용유동 계곡이 한데 이어진듯한 모습으로 내려다 보이며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전통 사찰 원적사가 있다.

백두대간이 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청화산을 이루고 다시 뻗어 내려 속리산을 형성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청화산이란 이름이 지어진 유래는 수십리밖 어디에서 바라보더라도 항상 화려하고 푸르게 빛나고 있다.

시루봉도 장엄한 자세로 그 위엄을 덜치고 있다하여 청화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산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마을 이름도 청산리, 또는 청화동으로 불려지며 청화정, 청화연이란 명칭도 이산의 이름을 빌린 것이라 한다.

                                                                                                                                           (문경시청 안내문)

청화산 표지석은 작은 배낭 정도로 크기가 작다.

넓게 잡은 사진은 글자도 잘 안 보일 정도로 작아 더 크게 찍은 사진을 올린다.

검은 검버섯이 피어 글자도 잘 안 보이는 게 제법 오래 된 느낌이다.

청화산이 블야 100명산이지만, 조항산까지 연계 산행해 보니 사실은 조항산이 백미인 걸 나중에 알게 된다.

 

 

 

 

소나무가 뒤집어 쓴 눈이 운치가 있으나 날씨가 흐려 제모습이 안 나온다.

 

 

 

바람이 쓸고 온 눈이 높은덴 무릎을 넘는 곳도 많다.

 

 

 

 

 

 

 

점점 가까워지는 조항산 정상

 

 

 

바위가 점점 많아지는 걸 보면 조항산도 그만큼 가까워진다는 증거다.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요즘은 어려운 산을 오를 때마다 양희은의 "한계령"이란 노래가 자꾸 머리에서 맴돈다.

꼭 산악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더 생각나는 노래다.

 

 

 

지나온 청화산 능선

 

 

 

능선을 따라 맨 우측이 조항산 정상으로 갈수록 암릉의 많아 보인다.

 

 

 

당겨본 정상 방향

 

 

 

 

 

 

 

 

 

 

 

역시 바위엔 소나무가 더 잘 어울린다.

거기다 이런 눈까지 뒤집어 쓰고도 언제나 푸른 소나무의 기상은 더 살아난다.

 

 

 

 

 

 

 

블랙야크 100명산을 뛰기 위해 간단히 청화산만 보고 내려간다면 낭패다.

조항산이 근육이 웅툴붕툴한 20대 잘 발달된 남성이라면 청화산은 순한 40대의 아낙같은 느낌이다.

 

 

 

올라올 때 보던 모습과 다르게 더 높은 데서 보니 바위 봉우리가 속속들이 다 보이는게 새로운 느낌이다.

 

 

 

이 바위 뒤로 올라가 맨오른쪽 바위 사이로 내려와야 한다.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은 저 산객들이 있는 곳에서 찍은 것이다.

 

 

 

 

 

 

 

백두대간엔 이런 길도 많을 테니 완주하고 나면 남다른 느낌을 많이 받겠다.

 

 

 

 

 

 

 

이 가운데 통로를 이용해 진행하게 되는 데 눈으로 미끄러워 조심해야 한다.

 

 

 

조항산까지 다 오르면 이 상고대 가득한 능선을 따라 하산하게 된다.

막상 저 능선을 지날 땐 눈길을 걷는다고 상고대를 쳐다볼 경황도 없었다.

 

 

 

해가 반짝 떠 상고대의 영롱하게 반사되는 풍경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태양이 없어도 서리꽃은 시원스레 빛난다.

 

 

 

조항산 정상도 상고대에 숨겨져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니 서둘러 올라가기로 한다.

 

 

 

좀 전에 내려온 바위

 

 

 

 

 

 

 

드디어 만난 조항산 정상석 역시 청화산 표지석과 다를 바 없이 작다.

청화산은 푸를 청(靑)이라 파란색 글씨더니 여긴 흰색 글자다.

청화산이나 조항산 모두 백두대간을 지나는 산이라 백두대간(白頭大幹)을 함께 넣었다.

 

 

 

조항산(鳥項山, 951m)

 

백두대간이 대야산을 만들고 다시 속리산 청화산 방면으로 가다가 농암면 궁기리와 괴산군 청천면 사이에 솟은 산이다.

남쪽의 청화산과 북쪽의 희양산, 둔덕산이 보이며 곳곳에 암벽이 아름다운 산이다.

대야산에서 청화산을 가는 중간지점에 있으며 고모재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갓바위재를 지나 정상으로 갈 수 있다. 
                                                                                                                                                (문경시청 안내문)

 

 

 

잠깐 사이에 상고대도 줄어든 느낌이다.

바람이 쌩쌩 불어 덧옷을 벗지 못할 정도지만, 기온이 올라가니 눈꽃도 일장춘몽처럼 잠깐 사이에 사라진다.

 

 

 

조항산으로 올라오던 능선

 

 

 

청화산이야 그런대로 견딜만큼의 눈이었으나 조항산에 제법 많은 눈이 가로막아 푹푹 빠진다.

내가 온 산악회말고도 인천산누리산악회와 다른 산악회에서도 먼저 지나갔기에 러셀은 다 되어 있었다.

인천산누리산악회는 나도 몇 달에 한 번 정도 동행하는 산악회로 인천대공원에서 6시에 출발한다.

그 시간이라면 차가 밀릴 시간이 아니므로 우리팀 보다 적어도 한 시간 반 이상 일찍 도착했겠다.

 

하산하며 산누리 리본을 단 회원이 한 사람 보여 하산 시간이 몇 시에 마감이냐고 물으니, "하산이 다 마무리 되면 가겠죠."라고 한다.

그를 앞질러 15m 정도 지날 때 그에게 전화가 오는 데 어디쯤이냐고 묻는 거 같다.

그가 제일 늦어 독촉 전화인 것 같은데, 자기가 다 내려가야 버스가 출발할 거라는 천연덕스러운 답변인 셈이다.

친목산악회나 안내산악회 모두 시간을 지킬 정도는 되어야 함께 산행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제법 눈이 많이 내렸어도 습기가 많아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미끄러지지 않겠다싶다.

하여 준비한 아이젠은 배낭에 그대로 두고 조심스럽게 하산했다.  

 

 

 

산 위는 서리꽃과 눈발이 가득한 겨울인데, 아래쪽은 진달래와 생강꽃이 봄을 알린다.

3월 말에 이렇게 두 계절을 오가며 산행하는 복 받은 날이다.

 

 

 

의상저수지 뒤로 보이는 조항산과 우측의 청화산

예상치 못한 설경과 상고대의 비경을 선물로 받은 청화산, 조항산 산행이다.

 

 

 

산행을 끝내고 저수지를 다 내려온 다음에야 파란 하늘이 열렸다.

서너 시간 앞서 이런 하늘이 열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소나무를 앞두고 우측 개울 건너에 왕소나무가 있는 걸 알고 개울을 건넌다.  

 

 

 

이게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가진 왕소나무라는 데, 2012.8.28. 태풍 볼라벤의 강풍으로 피해를 입어 결국 고사됐다.

후계 나무가 지정되었으나 가지가 많이 잘려 위엄은 별로 없으니 안타깝다.

 

 

 

멀리서 다시 잡은 소나무 군락지

 

 

 

 

 

 

 

 

옥량폭포(玉樑瀑布)

 

입석1리 옥양동의 석문사 깊은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구름다리사이로 무지개빛 옥수를 토해내는 옥량폭포이다.

백악산이 길게 뻗은 줄기의 북면(北面)과 달리 남면인 용화쪽의 유순(柔順)과는 대조적으로 암만이 험준하고 인상이 강직하다.

이러한 산세로 계류 또한 굴곡(屈曲)과 격탄(激灘), 청간(淸澗)과 청담(澄潭)이 연속되며 조화의 극치인 이 옥량폭포가생겼다.

옥량은 길이 약 20m, 넓이 2m, 암석이 대들보와 같이 또는 교량과 같이 폭포위에 걸쳐져 있는 천상작품이다.

처음은 둥글고 가늘다가 갈수록 모나고 넓고 커지며 표현이 어려울 만큼 멋지다.

밑으로 물이 흐르는 하나의 돌다리이나 다시 보면 백포(白布)와 같이 폭포를 매어 단 대들보이다.

이 돌다리는 전후(前後), 방원(方圓), 후박(厚薄) 모두 다 있으나 흔들림 없이 가운데에 큰 바위로 고임돌을 세워 안전을 다하였다.

다리를 건너 가려면 약간 비탈져서 조심스러워 기어가거나 타고 가야하므로 조심스럽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무언의 교훈을 준다.

옥량 위 바위밑에 청담(淸潭)을 만들어 물을 모은 후 넓은 암반에 다 넓게 펴서 살며시 옥량밑으로 내리다가 그대로 10여장을 떨어진다.

                                                                                                                           (상주시청 안내문 편집)

 

 

 

아래쪽에서 보는 대들보는 칼로 자른듯 뭉툭하게 덜어져 나갔다.

하지만 위에서 보면 영겁의 세월 동안 폭우로 물이 넘치며 바위를 조금씩 갈고 나아가 지금은 부드럽게 잘 다듬어진 형상이다.

이 암반이 생기고 난 뒤 지금까지의 세월이 고스란히 이 대들보에 담겼다.

 

 

 

 

 

 

 

바위에 새긴 글자는 옥량폭포(玉樑瀑布)다.

많은 곳에서 木자를 생략한 玉梁瀑布로 표기하고 있다. 木자 하나가 더 들어가든 말든 '대들보'란 의미는 변함없다.

시간이 남아 주차장에서 300m 거리의 옥량폭포를 보는 것으로 알뜰하게 산행을 마친다. 

 

 

 

 

블야 100명산 중에선 가장 볼거리가 없다는 장성 축령산이나 영월의 태화산을 마지막에 갈 줄 알았다.

이 두 산 다음으로 순위에서 뒤로 밀려 속리산 국립공원을 지척에 둔 청화산이 마지막 산행지가 됐다.

순위와 상관없이 어느 산이든 나름대로 다닐 만 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끝냈으나 이것은 산행을 끝내는 게 아니라 더 큰 세계로 나가는 첫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