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아주 천천히 식사를 한다.
초등학교 3-4학년쯤 어느 선생님이 밥은 20번 이상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은연중 내 의식을 점령해서인지 아니면 천성이 게을러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직장에서 업무처리는 남들보다 늦지 않으니 꼭 천성이 게으르다는 것도 사실은 겸양일 수밖에.
지금이야 운전대를 잡으면 이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규정속도 내지는 좀 더 밟는다면 10% 이내에서 오버는 하겠지만 몇 년 전만하더라도
무조건 달려야 직성이 풀렸는데 유독 식사만큼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제일 늦게 끝냈으니 내 운전습관을 아는 사람들의 아이러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사실 내가 빠른 게 아니라 일반인들이 빠르다는데 주목하게 된다.
우리 음식문화의 특성상 식당에서 국이나 찌개를 주문하게 되면 식탁의 불판위에서 끓인 다음 먹게 되니 가히 음식폭력에 가까운데
대부분은 용케도 입천장이나 식도를 데는 일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시원하다며 잠시 잠깐이면 어느 새 식사를 마치고 수저를 놓는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어렵던 시절, 보릿고개를 넘기며 여러 형제들 틈에서 양푼 하나에 모여든 가족이 숟가락으로 전쟁을 치르듯 먼저 입안으로 넘겨야 살아남던
그 가난의 전쟁이 대물림으로 이젠 우리민족의 원천기술로 남은 걸까. 아니면 폭력난무 하는
군대의 훈련병 시절에 강요된 "1분 식사”의 틀이 사회문화 전체로 확대 재생산된 것일까?
사실 어쩌다 급히 먹으면 밥알이 곤두서듯 식도를 타고 내려가고 나면 다음 반나절은 속이 영 거북한 게 말이 아니다.
배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이내 가스가 차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참지 못하고 나오는 방귀 냄새
또한 지독할 테니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피해를 줄 소지는 다분하다.
우리는 더 이상 식사문화에서까지 속도전을 벌일 필요는 없다.
아침밥도 못 얻어 먹고 오는 한심함보다 운전대를 잡으며 한 손으로 패스트푸드를 집어넣는다는 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다.
빨리 먹는 사람이 남보다 더 먹는 건 분명하니 더 먹는 만큼 살찐다.
천천히 먹는 사람보다 뚱보일 가능성은 패스프푸드를 즐기는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비만인 것으로 증명된다.
음식물을 씹는 과정에서 분비되는 타액은 항산화제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소화를 돕고 위장의 각종 질병을 예방한다고 한다.
빠른 식사 습관은 위장병도 일으킨다니 가능하면 식사시간은 길게 잡고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씹어 먹는 습관을 들인다.
혹자는 식습관과 성생활의 습관은 대개 일치한다고 한다. 빨리 먹는 사람은 성생활에서도
전쟁 치르듯 후딱 해치우고 천천히 먹는 사람은 맛과 향을 음미하듯 천천히 즐긴다.
음식남녀는 인간본능임엔 틀림없지만 천천히 즐긴다면 분명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미쓰들은 총각의 식사습관을 눈여겨보는 것도 나중에 있을 성 격차로 이혼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하지 않을까!!
한 줄로 요약하면, 음식은 즐겁게 천천히 먹자.
'■ 기타 등등 > 생활 속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로 등산복 사러간다 (0) | 2012.03.08 |
---|---|
양복을 짝짝이로 입고 출근하다니 우째 이런일이 (0) | 2012.02.01 |
한겨울의 일산 호수공원 (0) | 2012.01.24 |
맛을 아는 행복_옻오리 옻닭 (0) | 2011.11.28 |
적성 두지리 매운탕 (0) | 2010.06.25 |
무릎 통증 (0) | 2010.06.22 |
블로그를 만들며 (0) | 2010.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