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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한라산

어승생악의 얼음꽃 비경

by 즐풍 2020. 1. 19.

 

 

 

탐방일자 2016.3.12.토 14:28~15:27( 한 시간, 2.15km 이동)   날씨: 맑음

 

 

새순이 돋는 봄 산행은 언제나 설레게 한다.

뒤이어 진달래나 철축 산행, 그리고 야생화 산행도 한껏 기대를 높인다.

여름이 되면 계곡을 따라 걸으며 물을 건너는 모험도 즐길만 하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온 산을 뒤덮는 붉은 단풍과 억새의 장관이 눈앞에 삼삼하다.

어디 그뿐이랴.

멀리 발길을 돌리면 선운산이나 불갑산의 꽃무릇도 볼 수 있다.

겨울은 어떨까?

추위를 이겨내고 산으로 들어서면 상고대부터 눈꽃까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비경에 온통 눈길을 뺏기기 마련이다.

지난 겨울엔 별로 눈이 없어 시원치 않은 겨울을 보내는가 했더니 다늦게 지난 2월 27일 남덕유산에서 마지막 눈꽃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

혹한에 장독이 얼어 깨지는 추위에도 배낭 메고 산행을 이어갔으니 늦바람치곤 고약하게 걸려든 셈이다.

 

지난해 11월 14일에 올랐던 영실에서 윗세오름 구간의 비경이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게 너무 멋져 오늘 다시 올랐다.

오전부터 영실에서 네 시간 40여분의 산행을 마치고 어리목으로 내려왔다.

어리목 광장에서 건너편 어승생악 정상을 보니 응달진 곳엔 상고대처럼 얼어있다.

불과 한 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면 등산을 마칠 수 있다고 하니 일단 올라가 상고대를 보기로 한다.

 

올라가며 보니 내국인보다 중국인이 더 많아 보인다.

들리는 건 온통 중국어뿐이다.

말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가 신은 신발과 옷가지, 생김새 등으로 중국인임을 알아챌 수 있다.

그들이 산행을 목적으로 이곳 어리목에 온게 아니니 배낭이 변변할 리 없고 등산화를 제대로 신었을 리 없다.

가끔은 영실에서 내려와 어승생악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게는 쉬운 어승생악을 더 많이 선택한다.

그마저도 눈이 많아 절반도 오르지 않은 채 내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실에서 윗세오름 구간엔 큰 나무래야 대부분 구상나무가 많으나 그 외에는 키 작은 철쭉이나 조릿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고도가 낮은 어승생악은 꽤 큰 나무가 즐비하다.

나무가 크다보니 그늘이 져 등로엔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운게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니 등산화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국인들이 절반도 못 오르고 그냥 내려갈 수밖에 없다.

주난 주 후반 제주에는 130mm가 넘는 많은 비가 왔다.

어승생악이 윗세오름보다 상대적으로 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다.

그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중에도 나무에 언 빙화가 아직까지 그대로 얼어 있어 비경을 보여준다.

 

 

잠시 후 오르게 될 어승생악

 


 

둥근 바위에 눈처럼 구멍이 두개나 뚫렸으니 신비롭다.

 

 

 

어승생악의 나무는 엄청 크다. 여름이면 숲으로 가려 등로가 어두컴컴하겠단 생각이 들만큼 크고 빽빽하다.

 


 

눈이 아니다. 비가 흘러내리며 얼어 얼음꽃ㅇ디 피었다.

몇년전 어느 3월 북한산 백운대에 핀 빙화를 본적이 있다.

그때 무게에 못이겨 나뭇가지가 부러진 걸 봤는 데, 그 이후 이곳 어승생악에서 제대로 된 빙화를 다시 본다.

 

빙화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시가지 나뭇가지에 반짝이는 작은 전구를 달아놓은 느낌이다.

하지만 카메라의 한계로 그 반짝거림을 잡아낼 수 없는 게 아쉽다.

 

 

 

빙화는 수정이 반짝거리듯 햇빛에 찬란하게 반응한다. 빙화에도 고드름이 제법 크게 생겼다.

햇볕을 제대로 받은 오른쪽 구상나무의 푸른색과 빙하의 흰색 대비가 너무 뚜렸하다.

 

올겨울 제주 서귀포엔 이상한파로 감귤이 얼어 감귤농가의 피해가 매우 크다고 한다.

1989년 한파로 감귤나무가 동사한 이후 올겨울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 한라산의 나무는 참 강인하다.

얼음으로 철갑을 둘렀어도 봄이면 그 추위를 이겨내고  여리디 여린 새순이 돋을 테니...

 

 

 

이런 빙화를 내 생애 다시 볼 수 있을까?

3월, 봄의 문턱에서 만나는 이런 행운을 언제 다시 얻을 수 있을까!!! 

 

눈송이보다 더 흰색 빙화의 풍경이다.

 

1,950m인 한라산에 올랐어도 이런 빙화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못 갔으니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선명하게 잡을 수 있는 고급 카메라였다면 보석처럼 반짝이는 빙화를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쉽다.

 

 

 

저 망원경이 설치된 곳 아래엔 일제가 설치한 동굴진지가 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45년 4월, 일본군 제58군사령부는 한라산을 방어진지로 지구전을 펼치겠다는

전술 목적하에 이곳 어승생악에 2개의 둥굴 진지를 건설했다.

30m 거리를 두고 동북쪽과 서북족을 참호로 연결했는데 조천, 제주시, 애월, 한림 등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약 70년 된 진지의 내부는 아직도 견고하며, 한번에 5~6명이 설 수 있는 구조다.

일본군은 이 고장 사람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여 이 진지를 만든 것으로 조상들의 피와 땀이 얼룩

진 한 맺힌 군사 진지인 것이다. (안내문 옮김)

 

햇볕이 드는 정상인데, 비가 온지 일주일이 넘었어도 빙화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

 

 

 

 

 

어승생악 정상

멀리 한라산 정상도 보인다.

 

은빛 찬란한 빙화가 설화나 상고대보다 더 아름답다. 이런 비경을 보다니 천운이 따로 없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코스라고 별거 아니란 생각으로 올랐지만, 윗세오름과 달리 완전 반전이다.

언제 또 다시 이런 빙화를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