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5.3.14.토 10:35-14:35(네 시간 산행) 날씨: 맑음
지난달 웅석산에 이어 세미백두대간 두 번째인 오늘 걷게 되는 산행지는 지리산 노치마을에서 수정봉, 입망치를 거쳐 여원재까지
이어지는 구간(이하 '수정봉구간'이라 한다)이다.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대원사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나 삼신봉, 뱀사골, 바
래봉, 중산리코스는 다녀봤어도 오늘 가게되는 '수정봉구간'은 처음이다. 지리산은 너무 큰 산이라 이틀 내내 꼬박 열 시간을 넘게
걸으며 그 지루함에 다시는 안 오겠다고 다짐했던 산이기도 하지만 늘 다짐으로 끝난다.
그런 고난의 행군보다 차라리 오늘 같이 너댓 시간 이내의 짧은 산행이라면 언제든 해 볼만 하다. 암봉구간이라도 있어 화려하기
라도 하다면 걷는 재미라도 있겠지만 지리산은 몇몇 구간을 제외하면 유장하게 펼쳐진 육산이니 지루함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 입맛에 맛는 산만 다닐 순 없다. 애주가가 청탁을 가리지 않듯 진정 산을 좋아한다면 화려하든 유장하든 원근을 가리
지 말아야 한다.
'수정봉구간'처럼 처음 가는 구간은 언제나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 넓은 지리산을 언제 다 가보겠냐 싶어도 연년이 이렇게
하나둘 코스를 연결하다 보면 얼마간의 시간이야 필요하겠지만 주요구간은 얼추 다 다니지 않을까?
그러나 희망과 달리 그날은 환갑을 지나 칠순이 다가와도 숙제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은퇴하고 두어 달씩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명산 언저리에 방 얻어 놓고 등산을 일과로 시작하면 주요코스는 섭렵할 수 있겠다. 이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오늘은 '수정봉구간'을 달려보자.
사실 오늘은 성삼재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구간을 가기로 했으나 요즘 산방기간에 묶여 입산금지가 되었다기에 어제 갑작스레
코스를 변경하였기에 이를 모르고 나온 회원도 꽤 되는 거 같다. 계획된 구간은 이달이든 내달이든 언젠가 다 가게될 테니 순서가
뒤바뀌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세미백두대간 '수정봉구간' 등산코스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이 마을을 통과하는 유일한 곳이다. 해발 550m에 이르는 고지대로 이 지역엔 억새가 많아 갈재라 불렀는데
요즘은 한자로 노치(蘆峙)마을로 부른다. 같은 노(蘆)자를 쓰는 곳으로 서울의 노원구도 갈대(蘆)가 많은 들판(原)에서 유래했다
는 말이 있다. 이런 한자보다 순 우리말이었으면 더 정겹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산행중 제일 높은 수정봉은 805m라지만 노치마을이 해발 550m 지역이니 산행은 그리 어렵지 않게 시작한다. 산행하는 내내
솔밭을 지나기에 길따라 솔잎을 밟으며 상큼한 붐기운을 느낀다.
노치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는 약 500년의 수령으로 높이 15m에 4.8m의 둘레를 가진 고목이니 마을의 역사도 깊다
요즈음 뒤늦게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폭압에 맞서는 민초들의 수난을 그린 작품이다.
이제 5권을 읽고 있는데 왜놈들이 우리 백성을 핍박하고 의병을 죽이고 악랄한 수탈이 날로 더해질 때마다
무능했던 조정에 대한 원망과 힘 없는 백성들이 당하는 피해에 울분이 커진다. 그런 참담한 시대를 살았던 우
리 조부모와 부모님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은 이제 우리 시대엔 일부 제품에선 일본을 뛰어넘는 단계까지 왔
으니 어느 정도 보상받는 느낌이다.
그런데 오늘 이곳 노치마을에서 전시된 목돌을 목격하면서 분노가 다시 인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민족의 정기를 끊겠다"며 “덕음산과 지리산 고리봉의 연결 부분만을 보면 신체의 목에 해
당한다. 일제는 우리 국토와 민족의 목을 조여 숨을 못 쉬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잠금돌을 설치해 민족
정기를 단절하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목돌을 원위치로 옮기더라도 돌들의 배치방법을 바꿔 애초 일제가 의도했던 잠금돌 기능은 수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2013년 8월 주요일간지 기사 편집>
노치마을 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등로에 할아버지 당산으로 불리는 노송 네 그루가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킨다.
수령은 약 250년에 둘레가 2.9~3.8m로 산림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매년 3월 이곳에선 '백두대간 노치마을 당산제'가
열려 국태민안, 무병장수, 풍년농사를 기원하고 백두대간을 찾는 산행인들의 무사안녕을 빌고 있다.
이 노송이 할아버지 당산이라면 앞서 본 느티나무는 할머니 당산이다.
소나무는 삼공(三公,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나무다. 번성하고 당당하고 의연한 나무의 품위가 그렇다.
벼슬의 세계가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소나무는 금·은·동의 경우처럼 등급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언제나 으
뜸을 차지하는 상징물이다. 나무나 화초에 벼슬의 품위를 달아주는 유교적 질서와 자연관 자체가 소나무
의 문화 코드와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나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대나무, 연꽃, 국화와 함께 1품으로
분류된다. <이어령의 소나무 중 일부 옮김>
신이 만든 고인돌바위
오늘 산행코스 중 최고봉인 수정봉이지만 주변에 나무가 커 사방을 조망항 수 없는게 아쉽다
산행 내내 빽빽한 소나무 숲을 지난다. 전에 벌목을 하여 황폐했던 산에 소나무를 식재한 것이라는데, 소나무는 양지식물이니 자연적으로 생겼을 수도 있겠다.
지나온 능선
산행 내내 숲이 우거져 조망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잠시 고개가 낮아지니 산을 넘는 입망치 고개가 보인다.
잠시 후 작은 정상을 찍고 저기 보이는 바위를 지나게 된다
지나온 능선을 보니 유장하다
삼국시대 때 축성된 노치산성인가?
이제 산행도 거의 끝날 조짐을 보인다. 멀었던 마을도 시야가 가까워지고 도로도 더욱 선명해진다.
멀리 주지봉이 보인다. 최근 주지봉 정상에 부처님을 모셨다고 웹 검색에서 보았는데 '수정봉구간'에서 처음이자 제일 멋진 암봉이니 들려볼 생각이다.
주지봉은 여원재쪽에서 보면 30-40m 정도 되겠지만 주지사 방향에선 20여m 정도만 오르면 되는 암봉으로 오르기가 쉽지 않다
이 주지봉은 솔담님과 함께 한 단 둘만의 비경 파헤치기다
암봉 정상에 모신 불상은 사람 앉은 키 정도의 작은 크기다
이 사다리가 아니면 오르내리기도 힘들다
오가는 길에 만난 바위
지리산이긴 하지만 '수정봉구간'은 백두대간 중 일부 구간으로 대간팀이 아니면 거의 찾는 사람이 없다.
굳이 지리산을 찾는다면 명코스가 많으니 오늘처럼 '수정봉구간'을 찾을 이유는 없다. 세미백두대간을
뛴다기에 일부러 찾았는데 다행이 날씨가 선명하고 날씨도 풀려 산행으로는 최적의 조건이다.
이 산하를 걸으며 역사의 현장에서 아픈 역사를 떠올리며 다시는 그런 불행한 시대가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짧은 산행이었으나 의미있는 걸음이 되었다.
산행을 끝내고 마을로 내려와서 보는 주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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