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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지리산

단풍과 함께 한 지리산 종주의 비경

by 즐풍 2019. 5. 21.

 

 

 

탐방일자 : 2012.10.12. 04:20-16:03(10시간 50분)  날씨 : 청명 

 

 

기껏 북한산 위주로 길어야 예닐곱 시간을 겨우 4년 남짓 산행하고 어쩌다 지방산행을 하던 차에

지리산 1무1박2일의 산행공지가 올라왔을 때만 하더라도 내 실력으론 감당할 수 없겠다싶어 시큰둥했다.

일주일 남겨두고 솔담님과 설악산 구간을 탈 때 지리산을 가 보라는 권유를 받고 마음이 동한다. 

 

솔담님도 코스가 좋아서 신청을 했으나 사무실 일정과 겹쳐 부득이 하게 취소 했다.

하지만 첫 번째 신청자라 전화로만 못 간다는 사정을 전했다며 대로님이 코펠, 버너니 취사도구 일체를 준비하므로

이런 기회가 아니면 개인적으론 절대 갈 수 없는 산행이라기에 귀가 솔깃하여 동참하기에 이른다.  

 

 

기차로 용산역에서 출발, 구례구역을 빠져나와 재첩국으로 새벽식사를 하고 봉고차로 성삼재에도착한다.

산행을 시작할 때가 새벽 420분, 노고할매탐방안내소의 기상현황을 보니 -2.3℃를 가르킨다.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가 랜턴 불빛에 반짝거리며 반사되고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하늘엔 교교한 그믐달과 수많은 별빛이 각자 추억 하나식 품은 채 저들끼리 반짝거린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므로 여유 있게 발길을 디뎌 본다.

 

첫날 등산코스

 

 

 

노고단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니 여명이 밝아온다.

 

여명이 밝아오자 어둠에 잠겼던 산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드디어 찬란한 일출이 시작된다.

 

이쪽 코스는 참나무의 갈색단풍으로 물들어 붉은색의 황홀함이 없다.

 

노루목에서 한 칸 올라온 삼거리로 반야봉까지 다녀온다면 한 시간이 소요되는 데 여로님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배낭을 지키고 대로님과 목화님을 따라 반야봉을 향해 올라가 보니 1732m의 고봉이라 사방에 막힘이 없어 조망이 좋다.

 

 

 

반야봉 정상은 1732m로 웬만한 산 높이보다 높고 지리산의 천왕봉, 노고단과 함께 3대 주봉에 속하지만 천왕봉, 중봉, 하봉, 노고단 등

쟁쟁한 봉우리에 가려 겨우 이름 석 자 새겨진 표지석이 있을 뿐이다. 또한 주능선에서 살짝 비켜 있어 일부러 들리기엔 한 시간을 소요

하면서까지 구태어 올라와야 한다는 부담까지 있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끝없이 이어진 산맥만 보이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 중에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경상남북도와 전라북도의 연결 지점이라 삼도봉(三道峰)이라 불리는 데 '산은 사람을 갈리고, 물은 사람을 모은다'고 이렇게 넘기 힘든

산맥으로 지역이 갈린다. 큰산은 지역의 왕래를 묶어 놓기에 지역마다 독특한 말씨로 억양과 느낌이 전혀 다른 사투리가 생겨나고 말은

또한 기질까지 바꾸는 계기가 된다.

 

화개재를 지나며...

 

설악산에 나무 개선문이 있더니 지리산에서 누운 나무가 길안내를 한다.

 

연하천대피소, 설악산이 다섯 개의 대피소가 있는 데 반해 지리산은 여덟 개의 대피소가 있으니 그 산악의 넓음을 알겠다.

 

지리산 형제봉 소나무가 부부 같기도 하고 형제 같기도 한데 기품이 고상하여 지리산 최고의 모델이다.

 

소나무는 식생이 부적합한 땅을 골라 자라기 때문에 다른 나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굴곡의 조형미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시인들은 푸른 용이 하늘에 뜬 구름을 안고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송피(松皮)를 용의 비닐로 보고

그 몸통을 꿈틀거리며 하늘로 승천하는 적룡(赤龍)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 이어령의 소나무 텍스트 읽기에서 -

 

추석 전날 북한산에서 떨어진 밤 겨우 5kg을 줏어 배낭에 넣고 한 시간 정도 걸은 걸로 다음날 하루종일 부디꼈는 데 오늘 1박2일의

지리산코스엔 음식과 간식거리로 무게가 만만치 않아 무게를 허리로 지탱해 보지만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는 힘에 다리는 점점 풀려간다.

한 끼 식사와 한 번의 간식 때마다 무게가 주는가 싶어도 다시 배낭을 매면 도루목인 이 긴 고난의 터널은 언제쯤 벗어날까?   

 

벽소령대피소

 

잠깐 쉬고 반야봉을 오르는 데 소비한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또 걷는다.

 

진달래 나무라는 데 지금가지 이렇게 예쁜 색은 처음이다.

 

백송인가 멀리서 보니 빛에 반사되어선지 나무가 희다.

 

오가는 등로에 단풍이 점점 많아지니 힘들던 어깨도 잊게 하는 마력이 숨어있다.

 

 

 

지리산은 정말 지리하게 긴 트래킹 코스지만 때론 험란한 암봉을 만나 타 넘어야 하는 가 하면,

영신봉 도착 전엔 악마의 계단을 끝도 없이 오르고 나야 비로소 세석대피소에서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대로님의 머리보다 한 칸 더 높은 배낭을 볼 때면 힘들다는 투정은 애써 삼켜야 한다.  

 

저 놈의 암봉 뒤에 악마의 계단이 숨어서 험란한 여정을 지나온 산객에게 마지막 덫을 놓는다.

 

악마의 늪에 빠져 겨우 헐떡거리고 올라와 한 숨 돌리지만 끝없는 계단에서 악마의 저주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이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지리의 품에 영면하신 분도 있다는 안내문. 삼가 편안히 영면하시길...  

 

 

 

영신봉을 지나니 세석평전이 드리워졌고 오늘의 고행에서 해방될 시간이 눈앞에 있다.

 

드디어 오늘 일정을 마무리 짓고 편안한 휴식에 들어갈 세석대피소

 

오후 4시를 막 넘긴 시각에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등산객으로 붐벼 어렵사리 한 쪽 자리를 차지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담요를 구입하여 산장에 자리를 펴니 개인 공간이라야 겨우 등판 댈 정도로 비좁다.

어젯밤 기차로 내려오면서 역 마다 잠깨우는 안내방송과 시도 때도 없이 자지러대는 아이 울음으로 잠을 설쳤다.

숙면을 취해야 산행 피로를 잠재우며 지리산 정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내일 산행에 무리가 없다. 

산장은 다락방 2층이 나무로 돼 있어 걸을 때마다 쿵쿵거리며 삐그덕 거리는 소리로 시끄럽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 소란스럽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돼 먹지 못한 인간들이 몇 명씩은 꼭 있다. 

게데다 이리저리 들락거리며 짐 푸는 소리와 술 한잔에 씩씩거리며 벌써 잠에 떨어져 코고는 소리가 확성기처럼 귀로 파고들어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에고~~ 달아난 잠을 어쩐담.

 
 

 

 

산행시간  05:10 - 13:58(8시간 50분)    날씨 : 조금 흐림

 

 

비몽사몽하며 선잠이 들었다 깨기를 여러 번이다.

대로님이 슬며시 몸을 흔들어 깨우길래 잠깬 기척을 하자 구름이 끼어 일출을 보기 힘들 거 같다며 아침을 준비할 테니 잠시 후 나와서 식사를 하란다. 

얼마 후 담요를 반납하려 나오니 실내가 시끄럽거더웠는 지 1층 로비에서 자는 사람과

추운날씨에도 아예 밖에서 비박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대단한 체력소유자들이다.

 

대로님이 정성들여 만든 구수한 누룽지탕으로 넉넉하게 아침을 먹고 촛대봉으로 올라간다.

아직 어둠에 잠겨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겠다.

이동 중에 일출을 보려 해도 구름이 끼어 짐작으로 알뿐 태양은 구름에 가려보기 어려우니 덕을 좀 더 쌓와야할까.

그간 세 번의 식사와 간식으로 무게 부담이 준 데다 오늘만 버티면 지리산 탈출이라는 희망으로 몸도 마음훨씬 가벼워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가뿐하다.

 

지리산 둘째날 산행코스

 

밝아오는 여명

 

길은 끝없이 이어져 있고 그 길은 걷는 자들은 저 마다의 생각에 사로잡힌 체 인생을 음미한다.  

 

구름을 딛고 일어선 해오름도 겨우 구름 사이로 내밀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연하봉 주위엔 더 많은 암봉이 줄지어 있으나 설악산의 그것과는 규모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설악산보다 더 많은 탐방객이 이어지는 이유는 바위보다 흙길이 많아 어머니 같은 포근함과

구비구비 능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장엄미를 보여주는 음산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서산대사의 지리산에 대한 평가는 장이불수(壯而不秀)로 '장엄하기는 하나 수려하지는 않다'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본다.

 

누구나 특정 산에 대한 호불호는 있기 마련이어서 유장한 트래킹 코스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북한산이나 설악산 관악산처럼 불길이 치솟는 형상의 암봉을 타는 재미에 소위 악산을 좋아하는 등산객이 있다.

나는 늘 바위에 오르며 진퇴양난의 갈림길에서 겪는 긴장미 넘치는 스릴을 좋아한다. 

그러기에 지나는 길에 곁눈으로 몇 개 암봉을 보이는 대로 담아본다.

 

 

천왕봉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터목대피소

 

어느 순간 한꺼번에 고목이 되고 빈 자리를 또 다른 수목이 채워가는 산림의 변화는 계속된다.

역사도 마찬가지로 흘러간 물로는 수레바퀴를 돌리지 못 하듯 새로운 변화로 새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 데....

 

 

 

 

 

드디어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이다, 한 분은 감격에 겨워 돌 위에 앉아 생불이 되어 보기도 하고... 

 

어제 성삼재에서 시작하여 오늘까지 16시간을 달린 끝에 비로소 천왕봉에 도착했다.

1박2일의 종주가 목표라지만 수많은 발자국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산행이었기에 한 숨 한 땀의 노고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겠다.

 

어제는 극한상황의 피로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비몽사몽 선잠을 잤어도 

지리산의 정기를 흡수해서인가 아침을 상쾌하게 맞았으니 산이 주는 정기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알겠다.

 

 

 

 

천왕봉과 어울리는 단풍

 

또 한참을 걸어서 중봉이다.

 

 

 

치밭목산장  

 

 

 

 

 

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단풍과 환상적 조화를 이루는 무제치기폭포가 더 없이 아름답다.  

 

전에 있던 현수교는 장마에 유실돼 새로 만들었다.

 

여덟시간 오십분만에 하산을 완료하고 조개골산장에서 미리 예약한 닭백숙을 먹는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각종 나물반찬에 버섯을 무친 반찬이 입에 사각거리며 달라붙는 맛은 이곳이 아니면 절대 멋 볼 수 없는 진미중의 진미이다. 

이틀을 함께 한 대로님 여로님 목화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