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5.5.9.토 11:20-17:05(5시간45분 산행) 날씨: 흐린 후 갬
이번 세미백두대간의 지리산 마지막 편은 이청준의 『자유의 문』 첫머리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녘의 영산 지리산의 산역은 경상과 전라 3도에 걸치고, 함양과 산청, 남원, 구례, 하동의 다섯 고을에 뻗친다.
둘레가 7백리의 거대한 산해. 표고 1,915m의 주봉 천왕봉에서 서쪽 구례 땅의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만 하여도
백여리 먼길을 헤아리는 거리에,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일대에는 제석, 반야, 영신, 덕평 등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20여 준령들과 연봉들이 일망무제로 운해 위를 달린다.
그러나 지리산은 어느 쪽 어느 고을에서든지 그 산령 안으로 한 번 발을 들여놓고 나면,
고을과 고을의 경계들이 대번 무의미해져 버린다.
첩첩이 이어져 나가는 운해와 산세 속에 고을의 경계가 쉬 구분될 수도 없고,
또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산봉우리들이 미처 다 제 이름을 점지받지 못한 곳, 사람들이 제 이름을 지어 붙여도
산들이 스스로 제 이름을 잃어버리고 지리산(!)으로 돌아가 버리는 곳, 모든 것이 지리산의 이름 뒤로 숨는 곳,
모든 봉우리와 골짜기의 이름들을 지리산으로 대신하며 그 하나의 이름만으로 온전한 세계를 이루는 곳.』
오늘은 이런 지리산의 한켠인 성삼재에서 만복대를 거쳐 고기리로 하산하는 11km 구간을 등산하게 된다.
해발 1,433.4m인 만복대는 지리산에서 가장 큰 억새 군락지로 가을이 되면
억새가 봉우리 전체를 뒤덮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또한 산세가 복스럽고 부드러운 구릉지대로
많은 사람들이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전해진다.
하여 풍수지리설로 볼 때 지리산 10승지에 해당하는 명당이라고 한다.
지난 설날, 마니산에서 받은 좋은 기운을 받은데 이어 오늘 만복대의 충만한 복을 더하면
올 한해도 행운이 가득할 것이다.
들머리인 성삼재는 해발 1,090m로 만복대가 높다한들 고도 340여 m만 더 오르면 되니
처음부터 산행에 대한 압박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산술적인 생각일 뿐 막상 산행을 시작하면 산행은 그리 녹록치 않다.
성상재-만복대-고기리 구간 등산코스
산행을 시작하고 한동안 계속된 나무숲을 빠져나오니 이제야 제대로 된 시야를 만난다
바위 하나만 달랑 올리기엔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워 우리 산방에 최고로 훤출한 비쥬얼을 자랑하는
파랑새님을 올려본다
마을이나 낮은 산엔 이미 신록을 지나 녹음이 짙어졌지만 1,100m가 넘는 지리산 만복대 구간엔 이제 새순이 돋는다. 100m 오를 때마다 기온이 0.7℃ 내려간다니 이곳은 지상보다 평균 8℃ 정도 낮아 이제야 봄이 시작되는 셈이다.
만복대 구간을 산행하며 초봄과 봄, 그리고 산행 열기로 인한 여름까지 여러 계절을 함께 만난다
좀 전의 바위도 보이지만 구름에 덮인 구릉이라 시야가 좋지 않다
즐풍은 목우와 여동생 부부 등 넷이 함께 이달 말 설악산 대청봉을 찍고 공룡능선을 타기로 했다.
한동안 등산으로 다져진 여동생네는 겨울을 지나며 등산을 게을리 하다보니 걱정을 많이 한다.
목우 또한 직장을 핑계로 거의 산행을 하지 않던 터라 불과 3주 앞으로 다가온 설악산 등산에 대한 부담이 있다.
목우는 오늘 혼자 북한산 의상능선을 다녀온다는 걸 즐풍과 함께 지리산 만복대 구간을 가자고 했다.
체력을 테스트 할 겸 능력을 검증해보고자 선두팀에 따라가라고 한다.
만복대 구간이 쉬워보여도 백두대간을 전문으로 하는 모모대장이 길을 잡다보니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만큼 땀도 송글송글 흘러 내린다.
결국 선두를 놓치긴 하지만 그리 많이 쳐지진 않는다.
몇 시간이야 견디며 따라간다고 하지만 13시간 남짓 걸릴 설악산 공룡능선은 만복대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체력부담이 클 텐데 그들과 함께 할 즐풍이 더 걱정된다.
두 시간 10분만인 오후 1시 30분에 정상인 만복대에 도착한다.
아침은 김밥 한 줄로 때운 터라 시장기를 느껴 중간에 쵸코렛을 섭취하며 겨우 시장기를 재웠기에 점심은 꿀맛이다.
지나온 능선이다. 정상 부근엔 성질급한 풀은 새싹이 돋기 시작하지만 더 많은 나무는 아직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어린아이 말문 트이듯 서둘러 푸르름을 더하겠지만 올라오는 동안 활짝 핀 철쭉부터 이제 몽우리가 올라오
는 철쭉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았다. 구간 마다 다른 이런 봄기운을 느끼는 건 봄 산행의 별미다.
어, 목우님이 어느새 선두 그룹에 끼었군~!!
지리산 고봉준령 중에 만복대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이곳 만복대 구간에선 최고봉으로 백두대간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한 명당이다. 오늘 이곳을 함께 회원 모든 분들의 행운이 자자손손 만대까지 전해지길 기원한다.
지리산의 끝이 어딘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길게 펼쳐진 유장한 능선이다
만복대에서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고기봉으로 가는 길은 순하고 포근하다. 수종이 다르면 새순이 돋는 시기도 다른 모양이다.
뒤돌아 본 만복대, 오늘 떠나면 언제 너를 다시 보랴!!
능선을 지나며 구간 마다 다른 수종으로 산색이 틀린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령치를 관통하는 도로가 보이니 고개 두어 개 넘으면 잠시 쉴 참을 가지 수 있으니 다시한번 힘을 내 본다
드디어 정령치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산행을 시작한지 세 시간 50분만이다.
정령치는 지리산 등산의 여러 갈래로 드나드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오늘 바래봉 철쭉이 절정이라 내려오다 들린 고속도로 휴게소 여자화장실에 두 줄로 늘어선 행렬이 끝이 안 보인다.
용감한 여성분들은 남자화장실까지 줄을 서며 점령했을 정도로 바래봉으로 향하는 등산 버스가 많았다.
아침 한나절 이곳 정령치엔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렸겠지만 오후 세 시가 넘은 지금도 주차장엔 차량이 빼곡하다.
목우는 커피 한 잔으로 잠시 피로를 풀며 당분섭취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낸다.
지리산을 좋아한다면 몇 번을 마주했을 유명한 시를 담아본다
이곳은 다음 주말이 철쭉 절정이겠다
산이 높으니 길 또한 오르기가 쉽지 않은듯 이리저리 어렵게 산 귀퉁이를 잡아가며 힘겹게 오른다
드디어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고기봉이다.
계속 직진하면 지리산 중에 가장 아름다운 바래봉 철쭉화원을 만나겠지만
목적지가 다르니 좌측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성삼재에서 만복대까지 불과 340여 m를 올라온데 반해 하산길은 마을까지
거의 해발 1,200m를 내려가야 하므로 만만히 생각했다간 큰코다친다.
그 긴 하산길을 두 시간 넘게 걸으며 쉬지 않았더니 다 내려와서야 무릎에 압박감을 느낀다.
하산을 늘 조심해야 하는 걸....
몽우리 올라오는 철쭉, 연두색 나뭇잎, 부드러운 능선 등 산행내내 많은 선물을 안고 간다
눈을 돌리면 또 다른 산색에 흠칫 놀란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은 만복대 구간을 끝낸다.
목우님은 설악산 예비산행으로 1차 검증을 받았다지만 겨우 여섯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산행이다.
여덟 시간을 지나면 장거리산행으로 일반인이 한계점을 넘는 시간이기도 한데
13시간이라면 고통이 따르기도 할 텐데 걱정이다.
남은 2주 동안 북한산 종주 등으로 산행 부담을 덜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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