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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등등/생활 속 발견

마라톤으로 잃고 얻는 것

by 즐풍 2018. 8. 29.

 

천성적으로 운동이라면 죽어라 하고 싫어했다. 생존을 위해 숨을 쉬고 식사를 하고 이동하는 게 전부였던 젊은 시절은 그렇고 보내고 나이

마흔 줄에 들어서 문득 달려야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은 어느 봄날 아파트 한 동 건너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두

어 바퀴 돌았다. 피부가 깜짝놀라면서 먼저 뱃가죽이 가렵다며 난리를 친다.

왜 안 그럴까? 평생 운동이라곤 모르던 내가 드디어 달리기 시작하며 팔 다리를 움직여대니 피부도 그때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저들끼리 좌충우돌하며 난리를 치는 게다. 한 서너 날은 뱃가죽이 가려웠으나 점차 사라지면서 운동장을 도는 거리도 늘려갔다.

 

오전에 달리던 걸 오후로 돌리면서 달리는 시간은 좀 더 여유로워졌고 거리도 길어짐에 따라  중산근린공원으로 진출하게 된다. 공원은 정

규 축구장에 빈공간과 농구장을 트랙이 감싸고 있으니 상당히 넓다. 운동장 밖으로 둘레길도 있어 밖으로 돌면 대략 800m 정도의 큰 트랙

이니 학교운동장과는 비교도 안 된다. 이렇게 달리기를 시작하고 두어 달쯤 지났을 때  우연히 중산마을에서 시작하는 중앙일보 단축마라

톤 5km 구간에 참가하게 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저 공원 트랙 두세 바퀴 돌던 것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반환점을 가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데 후반부는 정말 걷는 구간이 더 많았다. 죽을 맛이다.

 

이렇게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달리기 시작하면서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함께 달리면서 감동과 희열을 느끼게 된다.  다시 5km에

도전하고 10km에 도전하고 이어 하프코스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곤 몇 번을 하프코스를 쫒아 다녔다. 하프는 5km나 10km와는 또 다른 차

원이다.  달리는 사람들은 좀 더 노련하고 체계적으로 보인다.  달리면서 여자들에게 추월당하면 자존심이 상해 추월해 보려하지만 그들은

이미 나보다 한 수 위라 추월을 허락하지 않는다. 금새 지쳐 떨어져 나가며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하프에 실력이 쌓이면서 두 시간이 넘던

기록은 한 시간 50분대에서 40분대로 진입하더니 드디어 한 시간 30분대를 마크한다.

 

 

 

 

서울에서 열린 어느 하프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허리가 반은 꼬부라진 할머니도 참가하여  머리를 치켜 세우고 진력을 다해 완주하는 걸 본

순간 완전 감동이었다. 내가 그 나이에 저 할머니만큼 뛸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 시절,  마라톤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자고나면 지

역마다 마라톤 대회가 열렸으니  이런 마라톤 대회를 섭렵하는 인구도 덩달아 늘어났다.  나도 일산과 서울에서 진행하는 마라톤이 있으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참석하길 일년여만에 제법 하프코스의 기록을 단축하며 드디어 해서는 안 될 풀코스에 뜻을 둔다.

 

마라톤의 중독성은 묘하다. 시간만 나면 운동화를 신고 달리고 싶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길을 달리고 심지어는 여행을 가서

도 달리고 만다. 길은 늘 새롭다.  이젠 근린공원이 아니라 거리로 나서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며 주변을 음미하며 달린다. 도로를 달리기도

하고 산길을 달리기도 하며 때로는 농로를 달리며 풀향기에 취하기도 한다.  풀코스에 도전해야 하니 달리는 길 밖엔 없다. 그 동안 운전을

하며 달리던 길은 앞만 보고 달렸기에 주변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신을 신고 달리는 동안 비로서 주변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힘들

면 멈추고 싶지만 이를 이겨내고 달렸다는 데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

 

3.1절 기념 하프마라톤대회를 뛰고 17일만에 드디어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2001 동아서울국제마라톤 마스터스대회」를 뛰기 위해 광화문

사거리에 섰다. 광화문 사거리의 도로는 통제되고 총성이 울리자  몇 천명의 사람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일제히 달리기 시작한다. 대략 종주

시간을 가늠해 본다. 풀코스는 하프코스에 두배 거리라 후반부는 아무래도 힘들 테니 하프 최고기록에 2.5배 정도 가중치를 두면 얼추 종주

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뛴 하프코스는 전반부 보다 후반부 기록이 더 빠르니 몸이 나중에 풀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풀코

스는 하프에 비해 두 배 거리라는 산술적 계산을 너머 체력한계의 극한과 싸워야 한다.

 

그러자면 평소 풀코스 정도의 거리를 적어도 두세 번 정도 뛰어줬어야 실전에서 무난하게 풀코스를 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평

소 달린 거리는 고작 25-30km 정도에 불과하다. 내가 뛴 정도의 거리인 30km까지는 어느 정도 무난하다 싶었지만 그 구간을 지나면서부터

죽을 맛이다. 무릎이 아파오니 걸음을 자주 멈추거나 무릎운동을 하게 된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오늘 못 하면 영영 못 뛸 수 있겠

단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힘을 내 달린다. 걷거나 걷는듯 뛰며 어렵게 아주 어렵게 잠심운동장이 눈에 들어왔을 땐 환호성이라도 내지

를 만큼 반가웠다. 운동장에 들어와서도 거의 한 바퀴를 다 돌아야 결승점이다.  풀코스는 황영조가 마라톤을 뛰며 버스바퀴 밑으로 들어가

고 싶다고 했을만큼 힘들다는 걸 온몸으로 체험한 하루였다.

 

 

 

 

비록 마라톤 풀코스는 종주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달콤한 종주의 유혹은 무리한 완주로 무릎이 나가 사무실에서 화장실 가는 데도 무릎이

시큰거리는 고통이 찾아들었고 스틱차량을 운전하는 데도 애로가 있었다. 두어 달 쉰 끝에 다시 시작해보았으나 여전히 무릎통증을 느낀다.

또 얼마 만큼 쉰 다음 운동장에 나갔다. 누군가 뛰고 있길래 뒤따라 뛰었더니 그가 좀 더 속력을 높인다. 덩달아 그를 쫒아 같이 뛰고 집에와

소변을 보는 데 좌변기가 시뻘건 피로 그득하다.  허걱, 드디어 마라톤을 뛰고 죽기에 이른다는 생각이 들며 겁이 난다.  혈변을 본다는 얘기

는 들어봤어도 혈뇨를 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아내에게 말도 못 하고 밤새도록 고민하다 다음날 병원에서 검사를 했다.

 

의사 말로는 심하게 뛰면 지방이 어느 정도 완충작용을 해야 하는 데 나 같이 마른 사람은 신장을 받쳐주는 지방이 부족하여 그러질 못해 신

장이 고스란히 충격을 받은 결과라고 한다. 다행히 죽음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아니었으니 천만 다행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무릎 나간 게

게 결과적으로 내가 아직까지 생존하게 된 것으로 믿는다. 어머니와 형, 그리고 내가 심장수술이나 시술을 했으니 유전적인 심장질환자였는

데, 간간이 마라톤 경기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그때 무릎이 나가지 않았으면 내가 당사자가 됐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에

가끔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니 인생은 새옹지마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 지금 당장은 나쁜 것도 잘 생각하고 극복하면 분명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늘 우리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