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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중앙국립박물관, 일본 불교 유물의 세계

by 즐풍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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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18. 목요일

 

일본 유물전을 보면 좀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교만 보면 불교 발상지인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한국,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들어간 불상은 일본에서는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불상은 나무로 된 게 많아 청동으로 주조하는 기술이 좀 떨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수많은 내전을 거치며 막부의 권력을 키우던 무사의 힘이 초기엔 칼(刀)에 있었던 만큼

그들의 칼은 조선의 검보다 예리하고 날카롭게 보인다.

임진왜란 직전에 오다 노부가나가 조총을 이용한 전술로 일본 전역을 통일하는 기초를 닦았다.

이후 도검에서 조총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후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일본 전시관은 도검과 갑주를 맛보기로 시작해  불교와 도자기로 넘어간다.

그들이 우리의 기술을 전수받았지만, 임진왜란이 시작될 즈음엔 우리보다 훨씬 앞섰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안내문을 수록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이 전시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의 불교조각품을 특별 공개하는 전시입니다.


일본의 불교미술은 6세기 이후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불상을 만들었으나, 헤이안 시대에 해당하는 9세기부터는 일본의 독자적인 불교문화가 나타납니다.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한 밀교密敎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한 정토교淨土敎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일본 고유의 신앙과 불교가 합해진 신불습합神佛習合 또한 한국과 중국에서는 없는 일본의 독특한 불교문화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의 불교신앙인 밀교, 정토교, 신불습합을 대표하는 5점의 조각품을 선보입니다.

 

일본에서 불상은 주로 국가사업이나 귀족, 무사 가문의 후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완성된 불상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불상에 담긴 염원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먼바다를 건너 우리를 찾아온 부처와 만나, 그 염원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기간: 2022년 4월 5일(화) ~ 2024년 10월 9일(수)

ㅇ 장소: 상설전시관 3층 세계문화관 일본실

ㅇ 전시품:  목조대일여래좌상, 목조아미타여래입상 등 5건 5점

ㅇ 대여기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ㅇ 관람안내 : 무료 관람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 말기, 강해진 사원 세력을 누르고 수도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고자 고용한 무사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무사는 처음에는 귀족에게 고용된 신분이었으나 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중앙 조정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동시에 토지를 지배하며 점차 전국으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결국 이들은 막부 체제를 탄생시키고 지배 계급이 되었다.

그러나 무사들은 무력만을 앞세운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본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여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흐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전 지배 계층이었던 귀족들과는 다른 독특한 미적 감각으로 전통 예능, 다도, 회화, 공예, 도자 등에서 자신들만의 예술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예술은 무사가 '전사'라는 자아를 유지하면서 '통치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세계문화관 일본실에서는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킨 무사의 새로운 면을 바라볼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인다. 칼을 든 전사이면서 교양을 갖춘 문화인 이자 통치자였던 무사를 아는 일은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치가타나 打刀 Long sword (Uchigatana)

에도시대(江戸時代), 19세기, 철 2011년 구입

 

전국 시대 이후에 일본 칼의 주류가 된 우치가타나는 칼집 그대로 허리춤에 끼워 칼날을 위로 향하게 하여 찬다. '가타나'라고 부르기도 하며, 날 길이는 60센티미터 이상이다.

 

Uchigatana, which became the standard Japanese sword since the Sengoku period, is worn at the waist with the blade inserted into the sheath to face upward. It is also simply called "katana." Swords with a blade length of more than 60 centimeters are called uchigatana.

 

 

와키자시 脇差 Short sword (Wakizashi) [위 가운데 칼]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철, 2011년 구입

 

와키자시는 우치가타나와 같이 허리에 끼워 칼날을 위로 향하게 하여 찬다. 우치가타나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며, 날 길이는 30~60센티미터이다.

 

Wakizashi is a sword worn at the waist like the uchigatana and serves as a secondary weapon to the uchigatana. When it is sheathed, its blade faces upward. Swords with a blade length between 30 and 60 centimeters are classified as wakiza-shi.

 

 

우치가타나 打刀 Long sword (Uchigatana)  (위 사진 맨 아래)

에도시대(江戸時代), 17세기, 철, 2011년 구입

 

칼자루에 끼우는 칼날 부분에 제작자의 이름인 "오미 다이조 후지와라 다다히로(近江大接藤原忠)”가 새겨져 있다.

The maker's name "Omi Daijyo Fujiwara Tadahiro (近江大掾藤原忠廣)” is engraved on the blade that is inserted into the hilt.

 

 

 

일본 칼의 역사는 야요이 시대(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에 한반도로부터 칼날이 직선인 큰 칼(大刀)이 전해지며 시작되었다. '일본도’라고도  불리는 ‘다치(太刀)’는 헤이안 시대 후기인 11세기에 처음 등장했는데, 칼날이 약간 굽은 곡선 모양의 긴 칼로 무사들이 허리에 차고 다녔다.

16세기에 전국 시대가 되자 많은 군사가 직접 부딪쳐 싸우는 접근전으로 전투 방식이 바뀌면서 다치보다 가볍고 뽑기 쉬운 ‘우치가타나 (打刀)’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와키자시(脇差)’는 우치가타나보다 짧은 칼인데, 에도 시대 무사는 한 쌍의 우치가타나와 와키자시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

 

 

 

무사의 칼과 갑주

 

몸을 보호하는 투구와 갑옷, 그리고 적을 베는 칼은 무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다. 칼(刀)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573~1603)까지는 무사와 승려, 농민이 모두 쓰던 무기였다. 그러나 1588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가 농민이 칼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도수령을 전국에 내렸다. 그리고 에도 막부 제5대 통치자인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 1646~1709)는 무사만이 칼을 가질 수 있도록 엄격히 규제했다. 이로써 칼은 무사 계급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한편 헤이안 시대 기마 무사가 입었던 '오요로이(大)'는 아름답고 튼튼했지만 무겁고 대량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런데 16세기 전국 시대에 전투 방식이 보병 집단끼리 가까이에서 싸우는 접근전으로 바뀌면서 갑주甲(갑옷과 투구)도 가볍고 쉽게 착용할 수 있으며 대량으로 만들 수도 있는 '도마루(丸)', ‘하라마키(巻)' 등으로 바뀌었다. 그 뒤에 몸통 부분을 판 하나로 만들어 구조를 단순하게 하고 철을 이용해 방어력을 높인 '세이구소쿠(當世具足)'라는 갑주도 나타났다.
평화로운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가 되자 무사는 칼과 갑주를 무사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고 더는 실제로 쓰지 않았다. 무사는 차츰 칼과 갑주 이외에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며 새 시대의 주역이 되어 갔다.

 

 

갑주

 

일본의 갑주는 몸을 감싸는 갑옷 ‘요로이'와 투구 '가부토(晩)'로 이루어진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부터 가마쿠라시대(倉時代, 1192~1333)에 걸쳐 사용했던 상급 무사용 갑주 '오요로이(大)'는 본래 말을 타고 화살을 쏘는 기마 무사가 입었다.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1336~1392) 이후에 전투 방식이 가까이 붙어서 벌이는 접근전으로 바뀌면서 차츰 가볍고 입기 쉬운 '도마루(丸)'와 '하라마키 (腹巻)’를 입게 되었다. 대규모 전투를 겪으며 무기와 기술 수준이 높아지고 스페인, 포르투갈 등 서양 갑주의 영향을 받으면서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3~1573) 말기에는 도마루보다 방어 성능을 높인 도세이구소쿠(世具足)라는 갑옷이 나타났다.

 

 

일본 불교 조각의 세계 The Buddhist Sculpture in Japan

 

일본의 불교미술은 6세기 이후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불상을 만들었으나, 헤이안시대에 해당하는 9세기부터는 일본의 독자적인 불교문화가 나타납니다.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한 밀교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한 정토교淨土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일본 고유의 신앙과 불교가 합해진 신불습 또한 한국과 중국에서는 없는 일본의 독특한 불교문화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의 불교신앙인 밀교, 정토교, 신불습합을 대표하는 5점의 조각품을 선보입니다.

전시품은 모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에서 불상은 주로 국가사업이나 귀족, 무사 가문의 후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완성된 불상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불상에 담긴 염원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경을 넘어 우리를 찾아온 부처와 만나, 그 염원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목조아미타여래입상 木彫阿彌陀如來立像 Amitabha Buddha

가마쿠라 시대(時代), 13세기, 나무에 칠

 

이 불상은 양손의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맞대어 오른손은 가슴 앞까지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린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손 모양을 '내영인來迎印'이라고 하는데, 아미타여래가 중생을 맞이할 때 갖추는 손 모양이다. 헤이안 시대에는 아미타여래상이 두 손가락을 구부린 채 맞댄 '미타정인彌陀定印'의 손 모양을 하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에는 새로 들어온 남송 불화의 영향을 받아 내영인을 한 채 서 있는 모습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불상 왼쪽 발아래에 먹으로 안아미타라고 쓰여 있어 눈길을 끈다. '안아미타불安阿彌陀佛'은 가마쿠라 시대 대표 불사인 가이케이(快慶, ?~1227 이전의 법명이다. 이를 서명으로 사용하여 제작한 3척(약 90센티미터)의 내영인 아미타여래입상이 있어, 이와 같은 불상을 '안아미 양식(安阿彌樣)'이라 한다. 

 

 

관음보살 觀音菩薩 Buddhist votive plaque (Kakebotoke)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후기, 동, 2017년 구입

 

둥근 청동 판에 두꺼운 부조로 구리 불상을 붙이고, 위쪽 양옆에는 사자 모양 금속 고리를 붙여 매달 수 있게 만든 관음보살상이다. 중앙에는 연꽃 대좌(蓮花臺座)에 앉은 불상이 있고 머리 뒤에는 넝쿨무늬의 둥근 빛 모양 조각이 있다. 불상 좌우에는 꽃병을 대칭으로 배치했으며, 불상의 머리 위에는 천개天蓋를 설치했던 흔적이 있다. 둥근 청동 판은 일본 고유 신앙에서 신이 머무는 장소인 거울을 의미한다. 이러한 청동 판에 관음보살 조각을 붙인 이 작품은 일본 고유 신앙과 외래 종교인 불교가 융합한 신앙인 신불습합神佛習合 대표하는 유물이다. 이러한 작품은 사찰이나 신사 내부에 걸려 숭배되었다.

 

 

여름과 겨울의 산수 夏景·冬景山水 Summer and Winter Landscapes

야기오카 순잔 (八木岡春山, 1879~1941), 20세기 초, 종이에 채색, 1980년 입수

 

야기오카 순잔은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한 근대 일본화 화가이다. 전통 가노파 화풍을 토대로 서양화의 유채화 표현을 구사한 것이 특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미술협회日本美術協會에 참가하였고, 문전 신문전에 주로 작품을 출품했다. 야기오카가 그린 이 한 쌍의 산수도는 전경의 버드나무, 인물, 물, 수목, 산의 구도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두 폭 모두 전통적인 주제와 유형적인 구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여름과 겨울의 버드나무는 짙게 채색해 서양 유화의 기법을 연상시킨다. 화면은 구도의 깊이감보다는 나무로부터 산에 이르기까지 색채가 강렬해 평면적으로 보인다. 원경 표현에서도 하늘을 실제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 산수화 요소가 아닌 새로운 서양화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요소들은 동양적 전통을 기반으로 발전하면서도 서양화의 기법을  도입한 근대 일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편의상 두 사진을 붙였다.

 

도카이도의 53개 역참: 사카노시타 후데스테야마(筆捨山)

東海道五拾三次: 坂之下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 1797~1858), 에도 시대(江戸時代), 1833년경, 종이에 수묵채색, 2002년 구입

 

사카노시타는 도카이도의 48번째 역참이다. 사카노시타역은 오늘날 미에현 가메야마시에 위치해 있었다. 이 그림에 묘사된 후데스테야마는 정상 부근 곳곳에 암석이 솟아올라 계곡을 형성했으며, 그 사이로 두 줄기 폭포가 흐르고 있다. 후데스테야마 맞은편의 길가 찻집에서는 여행자들이 평상 위에 앉아 쉬면서 후데스테야마의 절경을 감상하고 있다.

 

 

 

도카이도의 53개 역참: 오카자키 야하기바시(矢橋)

東海道五拾三次: 岡崎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 1797~1858), 에도 시대(江戶時代), 1833년경, 종이에 수묵채색, 2002년 구입

 

오카자키는 도카이도의 38번째 역참이다. 오카자키역은 오늘날 아이치현 오카자키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다리는 길이가 378미터에 달하여 당시 일본에서 가장 길었다고 전해지는 야하기바시(矢作橋)이다. 이 장면에서는 폭이 넓은 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 다이묘 일행과 그 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오카자키성을 묘사하고 있다. 오카자키성은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가 태어난 곳이어서 당시 에도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도카이도의 53개 역참: 닛사카 사요 고개(佐夜/中山)

東海道五拾三次: 日坂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 1797~1858), 에도 시대(江戸時代), 1833년경, 종이에 수묵채색, 2002년 구입

 

닛사카는 도카이도의 25번째 역참이다. 니사카역은 오늘날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시에 위치해 있었다. 닛사카 고개는 하코네 다음으로 험준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림의 장면에서는 닛사카의 이정표인 '밤에 우는 돌[石(요나키이시)]'을 사람들이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임산부가 이곳에서 산적들에게 목숨을 잃었고, 아기 어머니의 영혼이 이 돌로 옮겨가 밤새 울었는데, 결국 새로 태어 난 아기는 이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한 승려에게 구출되었다고 전해진다.

 

 

도카이도의 53개 역참: 시나가와 일출(日出)

東海道五拾三次: 品川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 1797~1858), 에도시대(江戸時代), 1833년경, 종이에 수묵채색, 2002년 구입

 

시나가와는 도카이도의 첫 번째 역참이다. 시나가와역은 오늘날 교통의 요지인 도쿄 시나가와구에 위치해 있었으며, 당시 일본의 수도 에도(江戶)의 현관 역할을 하며 번성했다. 현재는 간척하여 육지가 되었지만 에도시대에는 바다와 면해 있었다. 니혼바시를 출발해 교토로 가는 여행자는 한동안 왼편에 바다를 끼고 해변을 따라 걸어가야 했다. <시나가와> 바다가 왼쪽에 있어 교토로 향하는 여행자의 시점으로 묘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마지막 다이묘 행렬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손톱 다듬는 칼과 수납함 葵紋牡丹唐草蒔繪爪切箱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나무에 칠(마키에), 2004년 구입

 

손톱을 다듬을 때 사용하는 칼 두 자루와 그것을 보관하는 상자이다. 상자 안에 공간을 나눌 수 있는 별도의 칸막이가 있어 두 자루의 손톱칼을 분리하여 보관할 수 있다. 다른 혼례도구와 마찬가지로 칠을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금가루를 뿌려 고정시키는 '마키에 기법으로 접시꽃, 모란, 넝쿨무늬를 장식했다.

 

 

화장도구 수납함 葵紋牡丹唐草蒔繪櫛臺 Storage box for makeup tools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나무에 칠(마키에), 2004년 구입

 

네모반듯한 쟁반 모양에 3단 서랍을 배치한 화장 도구 받침대 겸 수납함이다. 서랍에는 거울과 빗 등을 넣어 둔다.

 

 

선인무늬 발 色繪琴高仙人文鉢

에도시대(江戶時代), 18세기, 고이마리 긴란데 양식 (古伊万里金欄手樣式), 2021년 구입

 

긴란데(金欄手) 양식은 청화의 유약 면 위에 붉은색, 금색 등을 칠한 자기를 뜻한다. 그중에서도 고이마리(古伊万里) 긴란데 양식은 중국 명나라징더전에서 만든 오채 자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긴란데는 겐로쿠(元, 1688-1704) 년간 만들기 시작하여 주로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그릇 안쪽 가운데에는 중국 주나라의 전설적인 거문고 명인 금고 선인이 청화로 그려져 있다. 금고선인을 둘러싼 원 여섯 개를 붉게 칠했으며, 그 사이에 영락 무늬를 표현하였다. 구연(입구나 언저리) 일부는 화려한 금채로 장식하였다.

 

 

푸른 파도와 모란무늬 접시 色繪青海波牡丹文皿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나베시마 양식(자기) [鍋島樣式(燒)], 2021년 구입

 

 

훈염薰染

고토 세이치 (後藤清一, 1893~1984), 1941년, 나무, 1980년 입수

 

가지런히 무릎을 꿇고 가는 몸체를 세워 턱을 위로 향하고 두 눈은 살짝 감았다. 하늘을 향한 얼굴 위로 나부끼는 날개옷 표현이 경쾌하다. 양손은 향로를 받쳐 들었다. '훈염'이란 본래 '향기가 스며들다'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변하여 '좋은 감화를 받다'라는 뜻이 되었다. 만든 이인 고토 세이치는 쇼와시대, 1926-1989) 전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왼쪽에 전시 중인 <기예천>의 작가인 다카무라 고운(雲1852-1934)에게 목조를 배웠다. '훈염'은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인 <마야부인과 천인상>의 천인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기예천 伎藝天 Heavenly Maiden

다카무라 고운(村光雲, 1852~1934), 1920년대 후반 이후, 나무, 1980년 입수

 

일본 근대조각의 거장 다카무라 고운이 만년에 제작한 불교조각 <기예천>이다. 기예천은 모든 기예를 관장하고 복을 가져오는 불교의 천부 중 하나로, 이와 관련된 밀교 수법에서 화려한 장식을 몸에 걸치고 오른손으로는 치맛자락을, 왼손에는 천화를 들고 등장한다. 고운의 기예천은 오른손으로 치맛자락을 쥐는 대신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왼손에는 꽃이 가득 담긴 그릇을 받쳐 들어 천화의 존재를 강조했다. 작은 크기이지만 형태는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노련한 기술로 완성한 세부 표현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상이다.

 

 

광원비약 曠原飛躍 Leap into a Vast Plain

나이토 신(內藤伸, 1882~1967), 1932년경, 나무, 1980년 입수

 

고대의 인물이 사냥을 떠나는 기마상이다. 둥근 능선이 겹친 산의 모습을 한 받침대 위로 대지를 박차고 달려 나가는 말은 두 앞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기세 좋게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다. 말 위의 남자는 상반신을 말머리에 닿을 만큼 깊이 숙이고 고삐를 세게 쥐어 엄청난 말의 속도를 견디며 앞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장신구와 마구는 화려하게 채색했다. 작가인 나이토 신은 도쿄미술학교 조각과 출신으로, 일본 목조각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다.

 

 

닭 주둥이 모양 꽃병 鷄口吹墨花甁

가와무라 세이잔(河村銅山), 1938년, 채색도자, 1980년 입수

 

12 각형으로 각이 진 기형의 목이 긴 꽃병으로 구연부는 닭의 머리로 형상화되었다. 구연부 곡선은 닭의 몸으로 형상화되었고 닭의 꼬리로 표현된 손잡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문양이 없이 투명하고 담백한 색채의 백자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목 부분에는 에도 시대부터 발달한 후키즈미(吹墨) 기법을 대담하게 응용해 분사기로 청화靑畫 안료를 뿌려 은은하게 색과 문양이 퍼져나가는 효과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