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by 즐풍 2024. 2. 24.

2024_42

 

 

2024. 1. 18. 목요일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인류의 4대 문명에  들어갈 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했다.

인류 최초의 문자를 발명했던 메소포타미아는 함무라비 법전도 만들 만큼 문명이 발전했던 곳이다.

중학교 다닐 때 인류의 4대 문명 중 메소포타미아는 위 내용만 거론했을 뿐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1990년대 초까지는 그 이상의 내용을 알기는 어려웠다.

이젠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에 대한 자료는 수없이 찾을 수 있으니 갈증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찾는 피상적 자료보다 박물관에서 4,000년 전의 유물을 마주하게 되면 놀라움을 크게 느낄 것이다.

 

'24년 9월 29에 전시가 끝나니 기회가 있을 때 서두르는 게 좋다.

안내문을 수록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인류 최초로 문자를 사용해 당시의 철학과 과학을 후대에 전하며 인류 문명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고대 문명으로 현대 사회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그러나 이집트 문명과 같은 다른 고대 문명에 비해 크게 조명받지 못해 그러한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이 전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요 성취를 소개하되 전문적 배경 지식이 없이도 관람할 수 있도록 문자, 인장, 종교, 초상미술 등을 접점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문화 혁신’ 은 도시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노동이 분업화·전문화되고 신전을 중심으로 물품의 수합과 재분배가 이루어지면서 사제 계급과 정치 계급이 통제권을 갖는 위계 사회로 나아갔음을 그릇을 키워드로 해 설명한다. 쐐기문자의 창안은 메소포타미아가 이룬 대표적인 문화 혁신이었다. 문자로 교역과 거래의 내용을 기록하였으며, 추상적인 개념을 발전시키고 주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갔다. 문자 창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원통형 인장도 발명되었다. 전시에는 13점의 쐐기문자 점토판 문서와 11점의 인장을 선보인다. 작은 점토판에 빽빽이 담긴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각 점토판의 내용과 해설을 담은 키오스크를 별도로 배치하였다. 또 신상과 의례 물품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신과 신전 건축, 의례 행위를 소개하였다. 거대한 신전을 짓고 그에 수반되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 또한 문화 혁신의 한 부분이었다.

 

2부 ‘예술과 정체성’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인장 역시 인장의 소지자가 섬기는 신과 글을 도안에 넣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쓰였다. 우르의 왕실 묘에서 발굴된 장신구들은 착용자의 신분을 드러내거나 죽은 자가 지하세계에 내려갔을 때 힘을 보태기 위해 고가의 수입 재료를 포함한 재료의 물성에 따라 맞는 형태를 선택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상’에 대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태도는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주제이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인물상을 만들 때 개별 인물의 개성적 특징을 본뜨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업적에 걸맞은 이상적인 속성을 조합했기 때문에 개별 상의 생김새는 매우 유사하다. 구데아, 우르-남마의 상에는 누구의 상인지 밝히는 명문이 몸체에 남아 있어, 글과 상의 보완적인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또 <나부쿠두르우쭈르(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명문을 새긴 원통>은 통치자의 군사적·종교적 공적을 적은 문자 기록이 통치자에게는 초상 미술만큼이나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3부 ‘제국의 시대’ 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대표하는 두 제국인 신-앗슈르(신-아시리아) 제국(기원전 약 911~612년)과 신-바빌리(신-바빌로니아) 제국(기원전 약 626~539년)의 대표적인 예술을 다루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반기에 등장한 두 제국은 정복 전쟁과 강력한 통치력 못지않게 왕성한 예술 활동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신-앗슈르 제국은 궁전 내부를 장식한 아름다운 석판 부조로 이름이 높았다. <조공 행렬에 선 외국인 마부>는 당시의 정세를 정교한 조각 기술로 담은 작품이며 <강을 건너라고 지시하는 앗슈르 군인> 등 여러 부조에서 상이 현실을 대리하는 힘을 가진다는 앗수르인들의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신-바빌리 제국은 수천 년 전통의 벽돌 제작 기술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수도 바빌리(바빌론)에 당시 세계가 경탄할 만한 건축물을 세웠다. 메소포타미아 건축을 통틀어 가장 잘 알려진 이쉬타르 문·행렬 길을 장식했던 <사자 벽돌 패널> 2점이 전시된다. 전시의 마지막은 이 모든 성취의 바탕에 소박한 벽돌 한 장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장식 벽돌로 끝맺는다.

 

전시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네 편의 영상도 준비했다. 전시에 출품된 인장을 실제로 사용하여 인장 찍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과 그 인장에 대한 큐레이터의 상세한 설명 영상이 1부에 상영된다. 전시품을 대여한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고대근동미술부의 킴 벤젤(Kim Benzel) 부장과 나눈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이야기도 2부에서 들을 수 있다. 영상실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세계관과 예술적 성취를 테마로 한 4미터 높이의 미디어큐브가 관람객을 맞는다. 메소포타미아를 상징하는 땅과 강,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인장 그리고 일상을 빼곡하게 기록한 쐐기문자가 담겨 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손바닥 안의 작은 점토판에 세밀하고 집요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오늘의 우리 이야기와 놀랄 만큼 닮아 있어 수천 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아주 먼 동료 인간과 오늘의 나를 잇는 희로애락의 이야기가 큐브 영상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고대근동학회와 협력하여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지명과 인명을 쓰는 대신 악카드어 원어의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하였다. 악카드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보편적인 공용어로 사용된 언어이다. 전시는 무료이며 전시 설명은 하루 3회(11:00, 13:00, 15:00) 진행한다.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에서도 직접 보기 어려운 메소포타미아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가 인류 역사에 큰 걸음이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적 혁신과 뛰어난 기술, 그리고 그들이 남긴 생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자 벽돌 패널

기원전 약 604~562년, 신-바빌리 시대, 바빌리 출토, 구운 점토에 유약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31년 Fletcher Fund로 발굴·입수

 

이쉬타르 여신을 상징하는 사자가 표현된 벽돌벽의 일부이다. 청금석처럼 반짝이는 파란색 배경에 사자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표면에는 유약을 발랐다. 이 같은 사자상 120구가 나부쿠두리우쭈르 2세가 세운 이쉬타르 문에서 '신년 축제의 집' 비트 아키투까지 이어지는 행렬 길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쉬타르 문의 정면도 아다드 신과 마르둑 신을 상징하는  575구의 황소와 무슈후슈 용으로 꾸며져 있었다.

 

 

벽돌과 벽돌 제작

 

다소 수수한 외양이긴 해도 벽돌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건축에 가장 중요한 재료였고 벽돌을 만드는 방식은 메소포타미아의 세계관과도 관련이 있다. 가장 단순한 벽돌은 충적토와 진흙을 섞은 뒤 겨나 동물의 배설물을 더해 단단하게 말린 것이다. 창세 신화에서 인간의 창조에 사용된 재료가 충적토였기에 고대 사람들은 벽돌 제작을 창조 그 자체로 여기기도 했다. 틀에 찍어 대량으로 생산한 벽돌로 지은 건물들이 거대한 도시의 건물 단지를 형성했고, 때로는 벽돌 표면에 정교한 부조를 더하거나 빛나는 유약을 발라  장식하기도 했다.

바빌리는 벽돌 건축물로 손꼽히는 도시였다. 대표적인 예가 기원전 6세기에 나부쿠두리우쭈르 2세가 세운 '이쉬타르 문'과 '행렬의 길'이다. 이들은 현재 베를린의 페르가몬박물관에 일부 복원되어 있다. 바빌리의 상징이 된 이 건조물은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온 고도의 벽돌 제작 전통 위에 건설되었으며 고대 서아시아 전역에서 형태나 함량이 비슷한 벽돌이 발견되고 있다.

 

 

제국의 시대

 

기원전 1000년 전후는 한때 우세했던 정치 세력들이 멸망해 메소포타미아, 지중해 동부와 이집트에 이렇다 할 세력이 없는 기간이었다. 이 권력 공백기 뒤에 신-앗슈르 제국(기원전 약 911~612년)과 신-바빌리 제국(기원전 약 626-539년)이 나타났다. 신-앗슈르 제국의 미술은 님루드, 코르사바드, 니네베 등 제국의 수도에 세워진 궁전을 장식한 대형 석판 부조를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부조에는 왕의 군사 원정 장면, 정복당한 민족이 추방되는 모습, 앗슈르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광경이 묘사되었다. 앗슈르 제국이 모으고 생산한 금은제 그릇, 상아가 상감 세공된 가구, 장신구 등의 사치품 역시 제국이 부조를 통해 드러내고 싶어 한 강성함, 우월함을 보여준다. 신-바빌리 제국은 우수한 건축으로 이름을 떨쳤다.

신-바빌리 왕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성스러운 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신들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 바빌리를 재건했다. 양질의 벽돌로 만든 건축으로 명성이 높았던 이 시기의 바빌리 인들은 벽돌 제작과 건축 기술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 면에 색을 넣은 벽돌들을 조합해 만든 다색의 부조 조각은 거대한 크기로 바빌리의 벽을 장식했다. 사자와 무슈후슈 용으로 장식한 이쉬타르 문이 가장 유명하다. 이 시기 바빌리는 고대 세계에서 불가사의로 불릴 만큼 경이롭고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다.

 

 

앗슈르 제국의 예술

 

기원전 9세기 초, 서아시아와 지중해 동부해안에 정치·사회적 혼란기가 끝나고 앗슈르 제국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차지했다. 앗슈르나찌르아플리 2세(기원전 883-859년 재위)의 통치 아래 앗슈르 제국은 중기 앗슈르 시대(기원전 약 1400~

1000년) 때의 영토 대부분을 되찾았다. 앗슈르나찌르아플리 2세는 앗슈르 제국의 수도를 기존의 앗슈르에서 님루드로 옮기고 신전과 기념비적인 새 궁전을 짓는 대규모 건설 사업을 진행했다.

앗슈르나찌르아플리 2세를 상징하는 건물인 님루드 궁전은 앗슈르 정치 이념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궁전의 내부는 앗슈르나찌르아플리 2세와 그의 군대, 신하, 시종들이 의례, 전쟁, 사냥에 참여하는 장면을 부조로 조각한 커다란 석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앗슈르나찌르아플리 2세가 신으로부터 받은 축복과 앗슈르의 영토 확장을 과시하려는 목적이었다.

기원전 7세기 앗슈르 제국의 권세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의 영토는 이란 서부의 자그로스 일대부터 지중해, 이집트까지 확장되었다.

 

 

조공 행렬에 선 외국인 마부

기원전 약 721-705년, 신앗슈르 시대, 코르사바드 출토, 설화 석고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33년 John D. Rockefeller Jr. 기증

 

말 두 필을 고삐로 끄는 마부를 묘사한 부조이다. 마구의 정교함이 돋보이는데, 굴레에 앗슈르식 장미 장식이 있고 이마 장식에서 술이 내려오며 머리 위에는 근사한 문장(紋章)이 보인다. 마부는 차림새와 머리 모양으로 보아 앗슈르인이 아닌 외국인이다. 이 부조는 앗슈르에 조공을 바치는 외국 사절단의 모습을 담은 큰 조각의 일부이다.

 

 

통치자의 두상

기원전약2300~2000년, 초기청동기시대, 이란 또는 메소포타미아 출토, 구리 합금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47년RogersFund로구입

 

 

두상

기원전 8세기 후반~7세기 초반, 신-바빌리 시대, 구운 점토,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79년 Fund로 구입

 

초인적인 존재로 생각되는 이 작은 두상은 눈매가 깊고 눈썹이 두드러지며 수입이 풍성하여 앗슈트왕의 표준 이미지와 유사하다. 끝단을 걸어 올린 관은 메소포타미아 조각에 흔히 나타나지만, 관만 바꿔 싸운다면 신과 왕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인이 다른 재료로 더 큰 상을 만들기 전에 제작해 본 견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구니를 인 우르-남마 상 

기원전 약 2112-2095년, 우르 제3왕조시대, 구리 합금,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47년 William H. Moore 부인 기증

 

통치자들은 자신을 '건물을 짓는 사람'으로 이상화하기도 했다. 사람 모양 말뚝은 건물 아래에 묻는 의례 물품으로, 구리 합금으로 주조되었다. 바구니를 이고 있는 모습은 신전을 짓는 데 쓸 첫 벽돌을 제작하는 것과 같이 기념할 만한 건축 행사에 참여했다는 표현이다. 하반신에 새겨진 명문은 우르 제3왕조의 통치자 우르-남마(기원전 2112~2056년 재위)가 인안나 여신의 신전을 지으면서 이를 묻었다고 적고 있다.

 

 

구데아 왕의 상

기원전 2090년경, 신-슈메르 시대, 기르수 출토 추정, 섬록암,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59년 Fund로 구입

 

도시 국가라가쉬의 왕 구데아(기원전 2150-2125년 재위)를 섬록암으로 조각한 상이다. 구데아는 단순하고도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되었으며 맞잡은 두 손과  커다란 눈은 사려 깊고 경건한 성정을 나타낸다. 오른팔의 다부진 근육은 신체 건강한 통치자라는 점을 드러낸다. 구태아는 라카이의 신전 재건을 기념하려고 이를 비롯한 여러 조각상의 제작을 지시했다. 이 내용이 치마에 슈메르어로 적혀 있다. 구데아 왕의 상은 라가쉬의 신전에도 놓았다.

 

 

통치자의 상과 초상 미술

 

'초상'이라는 단어는 한 개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뜻하며, 묘사 대상과 재현된 이미지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묘사 대상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의 관념 체계에서는 이러한 초상 미술의 개념이 성립되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통치자를 형상화할 때 통치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속성을 조합했는데 그 문화에서 통하는 약속된 표현과 엄격한 양식적 전통을 따랐기 때문에, 명문이 함께 있어야만 어느 왕의 상인지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더욱이 초상은 대상을 단순히 '다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가진 본질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초상이 왕의 대리적 성격을 지닌다고 믿었기 때문에 전쟁이나 분쟁이 나면 상의 감각기관을 훼손하여 왕의 이미지를 '살해'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눈, 코, 입, 귀가 없는 통치자들은 감각을 잃게 되고 이들의 초상은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수호 여신 라마의 비

기원전 약 1307-1282년, 카슈 시대, 메소포타미아 남부 출토, 설화석고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61년 E. S. David 기증

 

신격을 상징하는 뿔 모양의 머리 장식을 갖춘 라마 여신을 얕은 부조로 새긴 비다 
두 팔을 들어 위계가 더 높은 신에게 인간을 데려가는 중재의 신이다.

 

 

이쉬타르 신상에 기도하는 장면을 새긴 원통형 인장

기원전 9세기 후반~8세기 초반, 신-앗슈르 시대, 옥수(석영),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89년 Martin & Sarah Cherkasky 기증

 

구획된 공간 중앙에 놓인 아쉬타르 여신상을 묘사한 옥수제 인장이다. 이쉬타르의 왕관과 대각선으로 맨 화살통, 그리고 몸에서 벌이 솟아 나온다. 그 앞에슨 무릎을 꿇은 숭배자가 잇고 두 정령이 공간을 보호한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유적은 남아 있지만 그 안에 놓였던 신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인장의 숭배 장면으로 실제 신전에서 숭배가 행해졌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현악기에 달았던 황소 머리 장식

기원전 약 2600~2350년, 초기 왕조시대 후기, 청동에 조개껍데기와 청금석 상감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47년 Fletcher Fund로 구입

 

야생의 황소와 가축화된 황소는 메소포타미아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로, 조각, 인장 등 다양한 장르에서 힘과 생식력을 상징한다. 황소 머리 장식은 그릇, 기구, 악기부터 건축과 기둥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을 장식하는데 쓰였다.

 

 

연회 장면을 새긴 판장식

기원전 약 2600-2500년, 초기 왕조 시대 후기, 닙푸르 출토, 설화 석고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69년, 1962년 Rogers Fund로 발굴·입수

 

연회와 술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판 장식을 봉헌하는 것은 기원전 3000-2000년대에 메소포타미아 종교 활동의 한 방법이었다. 여기에는 대개 왕과 왕비남자와 여자 사제, 시종들이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여러 단으로 묘사되었다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남긴 명문은 고대인들의 신앙생활과 의례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보통 이런 용도의 부조에는 중간에 벽에 걸기 위한 구멍이 나 있다.

 

 

 

 

 

 

 

신과 정령을 새긴 원통형 인장

기원전 12세기경, 중-앗슈르 시대, 벽옥, 대리석,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41년 W. Gedney Beatty 유증

 

물이 나오는 병을 든 신과 새 머리를 한 정령을 새긴 중-앗슈르 시대의 원통형 인장이다. 신의 모습은 앞 시대의 짐리림 궁전 분수조각과 비슷한 데 반해, 새 머리를 한 정령의 모습은 약 300년 뒤 님루드에 지어진 궁전을 장식한 석판 부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는 원통형 인장에 조각된 이미지는 크기와 무관하게 다른 예술 분야와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려준다.

 

 

결투 장면을 새긴 원통형 인장

기원전 약 2250~2150년, 악카드 왕조 시대, 조장석,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99년 Nanette B. Kelekian 기증

 

결투 장면을 새긴 원통형 인장으로 특별히 근육의 세부를 공들여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메소포타미아의 결투 장면에는 사자, 황소 인간, 나체 영웅이 흔히 등장하는 데 비해 이처럼 인더스 계곡에 서식하는 물소가 등장하는 경우는 드문데, 이는 악카드 제국과 하라파 문명(인더스문명)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악카드어 명문에 따르면 이 인장을 소유했던 이는 이쉬리-일룸이다.

 

 

사자 모양의 인장 부적

기원전 약 3300-2900년, 후기 우룩~젬데트 나쯔르 시대, 메소포타미아 남부 출토, 대리석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58년 Walter Hauser 기증

 

대리석으로 만든 사자 머리 형태의 인장으로 도장면에도 사자로 생각되는 동물 세 마리가 새겨져 있다. 이 같은 도장형 인장은 서아시아 지역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였으며 기원전 5000년대부터 사용되었다. 인장은 문서를 인증하는 용도로도 쓰였지만, 재료의 속성이나 인장에 새긴 내용에 깃든 보호 의미 때문에 부적처럼 인식되어 사용자가 늘 가까이 지니거나 착용하였다.

 

 

봉헌용 상

기원전 약 2600~2350년, 초기 왕조 시대 후기, 돌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50년 Rogers Fund로 구입

 

경건한 자세로 건 남성의 모습을 한 원인을 상이다눈썹과 눈은 조개껍데기청금석 또는 다른 귀금속으로 상감 세공했을 것이다. 초기 왕조 시대에 일반적으로 작용했던 여러 겁으로 싼 치마를 입고 있다커다란 눈과 맞잡은 손은 신성에 압도되었다는 뜻이며봉헌자들은 신에게 존경을 표한다는 의미로 신전 안에 이러한 값비싼 상을 바쳤다.

 

 

 

 

 

황소 머리 장식

기원전 약 2100~2000년, 신-슈메르 시대, 동석 또는 사문석,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73년 Alastair Bradley Martin 기증

 

야생의 황소와 가축화된 황소는 메소포타미아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로조각인장 등 다양한 장르에서 힘과 생식력을 상징한다황소 머리 장식은 그릇가구악기부터 건축과 기둥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봉헌용 그릇

기원전약 2600~2350년, 초기 왕조 시대후기, 닙푸르 출토, 방해석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62년 RogersFund로 발굴·입수

 

 

봉헌용 그릇

기원전 약 2600~2350년, 초기 왕조 시대 후기, 닙푸르 출토, 방해석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59년 Rogers Fund로 발굴·입수

 

인만나 여신에게 바친다는 명분을 새긴 그릇이다. 이와 같은 봉헌용 그릇은 신심을 표현하고 소원 성취를 빌기 위해 신전에 바치는 물품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품질의 그릇을 바치려면 수입한 돌과 솜씨 좋은 장인이 필요하므로 봉헌자들은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인안나 여신께, 한파-아누쿠쉬의 아내 헤-우투가 [이 그릇을] 봉헌한다"

 

 

맥아와 보릿가루 수령 내역을 적은 장부

기원전 약 3100-2900년, 젬데트 나쯔르 시대, 우룩 출토 추정, 점토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88.433.3

1988년 Raymond & Beverty Sackler Gift로 구입

 

베개 모양의 점토판 앞뒷면에 초기 수메르 쐐기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 점토판에는 양조업자로 보이는 쿠심이라는 사람이 수령한 보릿가루와 맥아의 수량이 기록되어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기록은 경제활동과 관련된 것이 많은데, 숫자 기호와 그림 문자를 조합해 간단한 거래 내역을 적었다. 그림 문자는 그림의 대상만을 지칭하는 방식으로 형용사나 부사 같은 문법적 요소가 없는 문자 발전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파종 축제 때 바칠 동물의 수를 적은 장부

기원전 2043년경, 우르 제3왕조 시대, 드레헴 출토, 점토,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1911년 교환 구입

 

기원전 2043년경 바빌리에서 열린 아키투 파종 축제에 참여한 40여 명이 신에게 제물로 올릴 동물의 종류와 수를 정하여 그 내역을 상세하게 기록한 장부이다. 동물의 종류는 살찐 황소, 살찐 양, 최상급의 살찐 양, 양, 다 자란 염소로 구분되어 있다. 지금도 회계 분야에서 사용되는 일람표의 아주 이른 사례이다.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지금의 이라크가 있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비옥한 지대에 자리했다. 기원전 3400~ 3000년 무렵 최초의 도시들이 탄생하였고, 쐐기문자를 발명해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으며, 예술과 건축이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러한 중대한 문화 혁신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신전이 있었다. 신전은 신을 모시는 성스러운 공간인 동시에 생산물이 모이고 재분배되는 경제 활동의 공간이었다. 복잡해지는 경제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 쐐기문자 점토판과 인장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관심사와 세계관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전시에서 소개하는 기원전 3500년대에서 기원전 500년대 사이에 만들어진 전시품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창의성과 높은 기술력을 보여준다. 원통형 인장과 장신구, 통치자의 상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관념은 복잡하고 세심하게 발전했다. 금속, 보석용 원석, 원목과 같은 희귀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광범위한 주변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세계문화관 '메소포타미아실'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공동으로 기획하였으며, 2024년 9월 29일까지 운영된다. 이번 전시가 인류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적 혁신과 뛰어난 기술, 그리고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