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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에서 용 그림 찾아보기

by 즐풍 202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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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18. 목요일 오전

 

 

2024년이 된 지 벌써 18일째 접어들었지만, 아직 갑진년甲辰年 용띠 해는 아니다.

음력이 보통 한 달 전후로 늦게 오니 까치설날까지는 토끼띠 해인 셈이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용띠 해를 맞아 「용을 찾아라」라는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

새해가 되기 전에 용의 그림을 찾아 나서며 설날에 맞춰 올릴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게으른 즐풍은 번지를 잘못 찾아 여기저기 헤매다 이제야 올린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 하나가 생긴다.

 

용띠면 용龍 자를 써서 갑룡년이라고 하는 게 맞는데, 왜 전혀 다른 辰 자가 들어갔을까?

비단 용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띠에 해당하는 한자가 다 그렇다.

쥐는 鼠, 소는 牛, 호랑이는 虎, 토끼는 兎.... 등등이 그렇고,

뚜껑 달린 술병에 든 술을 의미하던 酉 자는 닭띠에게 글자를 뺏기며 氵자를 더해 酒 자로 문패를 바꿨다.

그러니 子를 쥐라고 못하고 「첫 번째 간지 자」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 다른 간지도 마찬가지다.

이런 12간지는 중국에서 들어왔으니 중국 포털인 바이두에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

 

늘 그렇듯 이번에도 안내문을 옮기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서화書畫

 

서화書畫(서예와 회화는 인간과 사회, 자연에 대한 선조들의 생각과 마음을 획과 면·색채·문자 등으로 표현한 고도의 예술입니다. 옛사람들은 글씨와 그림을 ‘같은 뿌리에서 자란 것’으로 보아 함께 쓰고 그리며 감상하였습니다. 서화는 지필묵紙筆墨, 즉 종이 바탕, 붓, 먹 등의 재료를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이 같고, 필묵筆墨의 운용과 기법에서도 일치하는 점이 많습니다. 이러한 서화는 일찍이 문인文人의 예술로 애호되어 시·서예·회화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역대로 신분이 고귀한 왕실과 사회적 영향력이 큰 상류층 가문에서 서화가가 배출되는 한편, 서화를 주관했던 관청에서도 유능한 직업 서화가들이 양성되었습니다. 서화관에서는 각 시기의 특징을 잘 대변하는 서예와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돌과 금속에 새긴 금석문이나 이를 본뜬 탑본搨本 등을 감상하면서 문자 미美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문자의 예술, 서예書藝

 

문자는 삶과 역사를 기록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한자漢字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 즉 서예書藝가 오래전부터 발달하였습니다. 역대 명필가들은 다양한 서풍으로 각 시대의 미감을 드러냈고, 후학들은 이들의 글씨를 거울삼아 전통을 계승하고 학습해 나갔습니다. 여기에 각자의 개성과 예술성이 덧입혀지며 다양한 서체들이 등장하여 서예의 발전을 이끌어 갔습니다.

명필가의 글씨는 서예를 연마하는데 좋은 교본이 됩니다. 사람들은 대가의 글씨를 모아 첩으로 엮거나 비석을 세웠습니다. 금석金石에 새겨진 옛 선현의 아름다운 글씨는 시대별 서체書體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처럼 서예는 시詩·화畫와 함께 예술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손세기·손창근 기념실 孫世基·孫昌根 纪念室

손세기, 손창근 선생의 우리 문화재 사랑과 기증의 높은 뜻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사자유희 獅子遊戲圖 

작가 모름 作者未詳, 1915-1918 추정

 

종이 다섯 장을 이어 붙인 커다란 화면에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두 마리의 사자와 꽃과 과일, 그릇이 늘어져 있는 바닥에서 공을 갖고 자유롭게 노는 다섯 마리 새끼 사자를 그렸다. 그림 속 사자는 붉은 주먹코, 녹색의 머리 갈기와 꼬리 갈기, 어깻죽지에서 뻗어 나온 화염 뿔 등을 가진 상상의 동물이다.

꽃가지와 청동기, 과일류 표현은 19세기 후반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畫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군청색 물감을 넓게 흩뿌리고 그 위에 적색, 녹색, 흰색으로 작은 원을 표현한 기법이나 금박, 은박을 붙인 구름 표현은 일본 장식화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사자 가족의 정겨운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경복궁 교태전 대청 상부의 부벽화였다는 기록이 있다.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선인 《고사인물화보첩> 정貞, 제5면

한후량 韓餱良(18세기 전반 활동), 종이에 색, 2021년 이건희 기증 

 

하늘에서 신선과 같은 인물이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오고 있으며, 건축 누대에서는 손을 모은 인물이 이를 맞이하고 있다. 정확한 출전을 확인하기 어려우나 도교신선과 관련된 일화로 생각된다. 그림을 그린 한후량과 진재기는 영조대 화원으로, 두 사람은 인물 표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채색을 능숙하게 잘 사용해 당대 회원의 높은 기량을 보여준다.

 

 

청룡 靑龍圖

작가 모름作者未詳, 조선 朝鮮 19세기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청룡이 여의주를 쫓고 있다. 4개의 발톱을 가진 사조룡으로, 화가는 용의 형태를 자세하게 그리면서 푸른색으로 농도를 달리하며 비늘과 점 문양 등을 표현했다. 몸통의 푸른색은 커다란 주먹코, 어깻죽지 위의 화염문 서기瑞氣, 배 부분 등의 붉은색과 대비된다. 옆의 <쌍룡희주도>와는 달리, 용의 형태나 화면을 채운 구름 표현이 도식적이어서 기존의 도상을 충실하게 따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여의주를 갖고 노는 두 마리 용 雙龍戱珠圖

작가 모름 作者未詳, 조선 朝鮮 19세기 후반

 

황룡과 청룡이 바다 위에서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다. 이처럼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갖고 노는 도상을 쌍룡희주雙龍戱珠라 한다. 이 도상은 조선시대 때 명나라에서 들어와, 왕의 상징물인 교룡기蛟龍旗나 어좌 위 천장 보개寶蓋에 사용되었다.

17세기 중반 창덕궁 후원이 조성될 때 존덕정尊德亭 천장에 쌍룡희주 그림이 그려졌으며 19세기 왕실용 청화백자항아리, 경복궁의 동쪽인 건춘문의 천장에도 이와 같은 도상이 그려졌다. 쌍룡을 묘사한 활달한 필선, 구름과 파도의 과감한 표현, 먹과 채색을 아우르는 뛰어난 채색기법으로 볼 때 기량이 높은 화가가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용과 호랑이 龍虎圖

 

가로, 세로 각각 2m가 넘는 규모가 큰 용과 호랑이 그림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용은 대길大吉을, 호랑이는 나쁜 것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와 수호를 뜻한다고 여겨 함께 그리거나 각각 다른 폭에 짝을 지어 제작하곤 했다. 이러한 용호도는 정월 초 궁궐이나 관청 대문에 붙여져 일 년 내내 귀신이나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역할을 했다.

푸른 바다 위에서 먹구름을 휘감고 있는 용이 입을 크게 벌려 앞에 있는 벽옥 모양의 여의주를 물려고 한다. 용의 용맹한 얼굴 묘사, 꿈틀거리는 긴 몸통을 그린 완숙한 필선, 먹의 농담을 조절한 겹겹의 구름 표현 등에서 화가의 뛰어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역동적인 용의 모습과는 달리, 호랑이 그림은 정적이지만 긴장감이 감돈다. 소나무 아래 멈춰 선 호랑이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노려보고 있다.

 

 

여동빈과 용 高士雲龍圖

 

동굴 앞 벼랑에 한 명의 도사道師가 앉아 구름에서 나온 용과 마주하고 있다. 도사가 착용한 두건과 도포, 동자가 들고 있는 커다란 칼로 미루어 볼 때, 이 인물은 팔선八仙 중 검으로 용을 제압한 여동빈呂洞賓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동빈과 용은 서로 싸울 생각이 없어 보이며 평화롭게 노니는 두 마리의 학까지 그려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면 오른쪽에 심사정의 호 '현재 玄齋’가 쓰였고 인장으로 「현재玄齋」, 「이숙頤叔」이 찍혔지만, 심사정의 고사인물화에 비해 구성이 어색하고 인물 표현의 자연스러움이 덜하다.

 

 

하늘로 오르는 용 雲龍圖

현재玄齋(심사정의 호), 인문:「호선毫傷」, 전傳 심사정沈師正 (1707-1769), 조선 朝鮮 18세기 중반

종이에 먹 紙本水墨, * 최초 공개

 

심사정의 묵룡墨龍은 당대 견줄 이가 없었다고 한다. 1764년, 이웃에 살던 이덕무李德懋가 방문했을 때에도 심사정은 도사道士가 용의 승천을 바라보는 그림을 제작하고 있었다. 옆의 작품과 유사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용을 그렸는데, 긴 수염을 휘날리는 용은 고개를 돌려 감상자를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에는 용의 코 아래와 뿔에 각각 '김영로金永老'라고 적혀 있는데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양陽을 상징하는 용이 음陰의 기운이 가득한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운룡도는 대길大吉이나 입신양명의 상징을 갖고 있다.

 

 

하늘로 오르는 용 昇龍圖

현재玄齋(심사정의 호), 인류「심씨이숙沈氏頤叔」

 

용은 비구름을 다스린다고 믿어져 조선시대 기우제祈雨祭(비가 오길 기원하는 제사)에서는 용 그림이 사용되었다. 이 구름 속에 있는 운룡도뿐 아니라 물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승룡도昇龍圖, 두 마리의 용을 그린 쌍룡도, 호랑이와 짝을 이룬 용호도, 인간과 싸우는 격룡도擊龍圖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그러나 1700년 이전에 제작된 용 그림은 남아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 18세기 문인화가 심사정은 선수, 인물, 동물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으며 특히 수묵 화법을 이용한 수묵 그림에 뛰어났다고 한다. 먹만을 사용해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용을 그렸는데 농담을 탁월하게 조절한 먹구름과 세찬 비바람 표현이 돋보인다.

 

 

 

 

 

구름 속의 용 雲龍圖 A Dragon in Clouds

윤덕희 尹德熙 (1685~1776), 조선 朝鮮 18세기, 비단에 먹 絹本水墨

연옹蓮翁(윤덕희의 호), 인문경백敬伯(윤덕희의 자), 덕희德熙연옹蓮翁

 

옛사람들은 용이 물을 다스려 비구름을 몰고 온다고 믿어서 구름과 함께 용을 그리곤 했다. 이 작품에서도 화면 전체에 먹구름이 파동 쳐 번지듯 표현되었고 그 사이에서 용 한 마리가 배를 내밀며 등장했다.

흰 눈썹과 턱 아래의 수염,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 갈기로 인해 용의 얼굴은 늙은이처럼 보인다. 윤덕희는 아버지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영향을 받아 용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목판에 새긴 운룡도를 비롯해 그가 그린 용 그림 여러 점이 전해진다.

 

 

오동나무 아래 봉황 梧桐鳳凰圖

오일영吳一英(1890-1960)

 

봉황은 어진 임금이 선정을 베푸는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는 상서로운 새로, 이상적인 군주를 상징한다. 또 대나무 열매만을 먹고 오동나무 위에만 둥지를 튼다고 전해 청렴, 고결함을 뜻한다. 앞쪽 봉황은 고개를 숙인 채 꽁지깃을 힘껏 펼치고 있는데 녹색, 연보라색, 노란색, 갈색 등 갖가지 색의 화려한 깃털 표현이 돋보인다.

정교하게 채색한 봉황 표현과 화면의 글로 미루어 뭇새의 왕인 봉황의상서로운 상징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오일영은 이 그림을 제작하기 일 년 전에 창덕궁 대조전 대청 동쪽 침실 문 위쪽의 공간을 꾸민 대규모의 <봉황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달밤풍경月夜山水圖

인문印김두량인 金斗樑印 (1696-1763)  甲子仲秋 金斗樑寫

 

김두량은 도화서 화원으로 영조英祖(재위 1724-1776)가 '남리南里'라는 호를 내렸을 정도로 화가로서 명성이 높았다. 이 그림은 달 아래 안개 낀 숲과 계곡을 그린 밤 풍경으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적막한 숲 속, 계곡의 세찬 물줄기가 정적을 깨는 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의 구도는 한쪽으로 치우쳐있고, 나뭇가지는 게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바위 표면은 짙은 먹으로 흑백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이는 조선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까지 유행한 절파浙派 산수화풍의 표현기법이다. 그는 18세기 유행한 붓을 가로로 뉘어 찍어 산의 표면을 표현하는 남종화풍도 구사했다. 이처럼 그는 그림에 따라 화풍을 다르게 하여 제작했다. 갑자년(1744) 8월, 김두량이 그렸다.

 

 

서화 감상의 즐거움

 

서화, 한 글자씩 떼어 읽으면 글씨와 그림일 뿐이지만 붙여놓으면 먹 향기 그윽한 낱말이 됩니다. 상고시대 사람들이 그림 같은 갑골문으로 하늘의 뜻을 점친 이후 동아시아에서 글씨와 그림은 늘 짝을 이루어 왔습니다. 서화 감상은 즐겁습니다.

종이와 비단 위를 쓸고 간 붓 흔적을 더듬어보아도 좋고, 솜씨 부린 채색의 맛을 보아도 좋습니다.

서화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문학과 상상, 현실과 소망이 한데 뒤섞인 옛 서화가의 마음자리가 드러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예와 산수, 화조와 궁중장식화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서화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옛사람들이 누린 서화 감상의 즐거움을 오늘 당신의 마음에 담아 가시기 바랍니다.

 

 

겨울풍경 山水圖

전傳 이교익李敎翼(1807-?), 조선朝鮮 19세기, 종이에 색 紙本彩色

 

이교익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꽃과 풀, 벌레 등 다양한 장면이 묘사된 화첩 중 한 면이다. 이교익은 특히 나비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알려졌지만, 산수도 잘 그렸다고 전해진다. 아홉 번째 면인 이 그림은 황량한 겨울 풍경을 담고 있다. 화면 가운데 먹의 농담을 달리 표현한 앙상한 나무들이 있고, 주변에 가옥이 있는 쓸쓸한 풍경이다. 나무들 오른쪽으로 물길이 지그재그로 놓여 더 깊은 산속으로 시선을 이끈다. 시선이 닿는 저 먼 곳에 초가집 몇 채가 안개에 싸여 소슬한 분위기를 풍긴다.

 

 

눈길을 지나 장으로 가는 행렬

전傳 이형록李亨祿(1808-1883 이후), 조선朝鮮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紙本淡彩 

 

 

대나무 墨竹圖

자하노인(신위)이 그리다 紫霞 老人寫, 인문印「자하 紫霞」

 

신위는 시··화에 뛰어난 삼절三絶로 불리며 특히 대나무를 잘 그린 화가이다. 그는 대나무 대를 유연하고 우아하게 처리하고 대나무를 사선으로 배치했다. 전체적으로 여백을 많이 두어 그의 대나무 그림은 담백하고 여유롭게 느껴진다. 또한 두 그루 이상의 대나무를 그릴 때, 한 대나무는 짙게, 다른 대나무는 연하게 표현했다. 신위 특유의 대나무 표현 방식과 화격이 이 그림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그림은 중국에서 수입한 냉금지冷金紙를 사용해 바탕에 반짝이는 금분이 있다.

 

 

지팡이를 짚으며 한가로이 거닐기 曳杖逍遙圖

인문印文: 「김희성인金喜誠印」

 

김희성(본관 전주)은 영조 때 화원화가로 1748년 숙종의 초상화 모사 작업과 1760년 청계천 진흙을 파낸 사업을 기념하는 준천첩濬川帖 제작에 참여했다그의 명성이 높았으나 전해지는 그림이 적은데, 깊은 산속 지팡이를 지닌 한 인물이 못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이 그림으로 그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당시 유행한 남종화풍南宗畫風을 구사했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다. 그림 위쪽 멀리 있는 나무를 붓을 가로로 뉘어 찍어 표현한 미점米點과 바위와 산등성이 표면을 구불구불 선을 길게 그어 그린 피마준披麻皴은 남종화풍의 표현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