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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청와대를 관람하니 분노만 부글부글

by 즐풍 2024. 2. 17.

2024_36

 

 

 

2024. 2. 7. 수요일 오후

 

 

그동안 청와대 방문을 미뤄왔다.

전임 대통령도 처음엔 청와대를 옮긴다고 했다가 마땅한 대안이 없어 결국 눌러앉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용산으로 옮기며 많은 우려 끝에 이태원참사를 빚었다.

대통령 경호로 인력이 빠지며 이태원 참사사 발생했으나 책임선상의 누구도 사과나 반성도 없다.

또한 유사시 대통령의 안위를 보장할 참호도 없어졌으니 한심하고 통탄한 일이다.

게다가 대통령실을 만든다고 얼마나 많은 예산 낭비가 있었던가.

대통령이 출근하는 걸 찍는 유튜버까지 있어 얼마나 많은 지각을 하는지 생중계까지 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대통령 동선이 유출되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된다.

참으로 한심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 靑瓦臺

 

청와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정 운영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대통령의 집무실인 본관, 국빈을 맞이하는 영빈관,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관저, 언론 취재 본부인 춘추관 등의 여러 건물과 대정원, 소정원, 녹지원 등의 녹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조선 시대 때 경복궁 후원이 있었던 자리로, 과거 시험, 군사 훈련,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 등의 행사가 치러졌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관련 시설들이 철거되었다. 청와대는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청와대 노거수 군(천연기념물), 서울 백악산 일원(명승), 서울 육상궁(사적),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 침류각 및 오운정 서울시 유형문화재 등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복합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안내문)

 

 

청와대 소나무 아래 초석에 새겨진 글

 

青瓦臺(청와대)의 이 터전은 高麗朝(고려조)의 離宮(이궁)으로 朝鮮朝 景福宮(조선조 경복궁)의 後園(후원)으로 千年(천년)에 걸친 歷史(역사)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日帝(일제)가 우리의 옛 建物(건물)들을 헐고 이곳에 지은 總督(총독)의 집을 國家元首(국가원수)가 建國(건국) 이후 이제껏 써왔다. 盧泰愚 大統領(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12월 17일 民族文化(민족문화)의 傳統(전통)을 잇고 드높아진 나라의 位相(위상)에 어울리는 青瓦臺(청와대)를 新築(신축)하도록 하였다. 官邸(관저)가 1990년 10월 25일 完工(완공)되고 本館(본관)이 1991년 9월 4일 되니 天下(천하)에 으뜸가는 福地(복지) 위에 겨레의 앞날을 무한히 밝혀 줄 青瓦臺(청와대)가 새로 지어졌다.

 

1990년에 만든 초석이라 많은 한자를 사용했다. 젊은 세대가 보면 그냥 한자려니 하고 넘어가겠다.

그 많던 한자도 이젠 신문에서 조차 보기 힘든 시대가 되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다.

 

 

 

 

청와대 방문객들은 현관 로비에서 이 층계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는다.

안내원은 층계에서는 머무르지 말고 올라가라고 하니 사진은 로비에서 계단을 배경으로 찍을 수밖에 없다.

 

2층은 나중에 올라가기로 하고 왼쪽 통로를 살펴본 후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세종실

서쪽 별채의 세종실은 정부 중요 정책을 심의하는 국무회의가 열린 공간이었다. 

세종실 입구에 있는 전실(前室) 벽면에는 역대 대통령 열두 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안내문)

 

역대 대통령 초상

 

 

 

 

성낙윤, 

〈흉배-문(文)〉 〈흉배-무(武)〉

1991 134.4×106.2cm, 134.4×106.2cm 비단에 자수

 

교사였던 성낙윤(成落倫, 1938~ )은 1970년대 중반부터 매듭과 길쌈을 배우고 80년대부터 매듭연구실을 운영하며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이후 ‘성낙윤이 만든 혼수’를 운영하며 매듭, 바느질 등 전통 수공예 문화의 전수에 기여했다.

학 두 마리가 영지버섯을 입에 물고 마주하고 있는 이 쌍학흉배는 당상관 이상의 문관의 관복 앞과 뒷면에 부착하여 품계를 표시하는 데 사용되었다.

호랑이 두 마리가 그려진 이 흉배는 당상관 이상의 무관이 관복의 앞 뒷면에 착용하여 품계를 표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국무회의장인 세종전실에서 세종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각각 문무관을 상징하는 흉배를 배치하고 세종실 북쪽 면에 일월도를 배치함으로써 이 공간이 조선시대 조정을 상징하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이 흉배는 다른 벽면에 설치된 걸 편의상 붙였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이 공간의 대통령 자리는 어디일까?

창가 쪽 태극기가 있고 탁자 밑이 막혀있는 곳이 대통령 자리이다.

국무위원들을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게 아니라 가까이서 보려는 느낌이다.

 

인왕실과 충무실로 이동하는 구간

 

 

인왕실

청와대 서쪽 산의 이름을 딴 인왕실은 한국적인 요소가 많은 본관의 주요 공간들과 달리 서양식으로 꾸몄다.

유백색의 벽과 촛대형 샹들리에가 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간담회나 오찬·만찬이 열리는 소규모 연회장,

그리고 외국 정상 방한 때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장소로도 활용한 공간이다.

                                                                                                        (안내문)

 

 

청와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그림이다.

대부분 그림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십장생이나 매듭, 병풍 등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데

이 그림은 현대적 색조로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나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충무실

동쪽 별채의 충무실은 대규모 인원의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회의를 하는 공간이었다.

외빈이 왔을 때 만찬과 공연을 하는 등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안내문)

 

 

이수덕,

<아애일일신지대한민국 (我愛日日新之大韓民國)》

1986, 194.4×56.7cm×(10), 종이에 먹

 

“나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제목의 거대한 이 서예병풍은 이수덕 서예가(小堂 李壽德,1926~2020)가 북에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과 애국심을 담고 있다.

이수덕은 황해도 연백이 고향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여군으로 군에 입대해 칼빈 소총 1등 사수로 나라를 위해 싸우고 1956년 대위로 전역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이는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우리 글씨를 후손에게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하여 우리 글씨체본을 남기는 일로 이어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양화대교', '한남대교' 등의 명판이 이수덕의 글씨다. 정의여중고 교사와 국전 심사위원, 예술원회원을 역임하였다. 힘차게 눌러쓴 예서체의 거대한 글씨들은 이러한 그의 삶과 일치되어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안내문)

 

이렇게 큰 글자는 대개 남자가 쓰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성의 글씨라니 놀랍다.

차를 타고 다니며 양화대교나 한남대교의 명판을 볼일은 없었지만, 기회가 되면 다리 명판도 자세히 보아야겠다.

 

 

김희진,

<청홍류소(靑紅流蘇) 한쌍> 

1991, 220×110cm×(2), 비단에 명주실

김희진(金喜鎭, 1934~2022)은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명예보유자이다. 유소는 매듭, 술, 다회(多繪: 실을 합사 하여 두 세 가닥 이상으로 짜서 만든 끈)로 구성되어 깃발이나 악기, 가마, 영정, 상여 등에 길게 늘어뜨려 장엄하게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이 유소의 바탕은 운문단으로 짜여 있고, 그 위에 11줄의 가늘게 짠 동다회(단면이 둥글게 짜인 끈)를 늘어뜨려 전통 한옥의 창문과 같은 형태를 만들었다. 그 위에 굵은 동다회로 만든 유소를 드리워 2중 구성을 하고 있다. 이 대형 유소는 청와대 본관 건립 시에 충무실 입구 좌우 벽면에 설치되어 충무실의 입장객을 맞이하는 역할을 하였다.

                                                                                                                              (안내문)

이 청홍류소 한쌍도 떨어져 있던 걸 묶었다.

 

 

 

 

 

 

한상봉,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1991, 552×1489cm, 종이에 실크스크린

 

청와대 건물에는 총 2점의 <천상열차분야지도> 벽화가 있다. 각각 본관과 춘추관의 천장에 설치되어 있다. 이중 춘추관 천정 중앙의 벽화는 한도룡이 도안한 작품이나 현재는 가려져서 볼 수 없다. 이렇게 청와대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벽화로 제작해서 설치한 이유는 ‘천지인’의 하늘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고, “예로부터 제왕은 하늘의 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고, 왕조는 하늘의 뜻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天命사상에 근거하여 국가는 천문도를 가져야 했었다. 이 작품의 원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인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으로 조선 태조 4년(1395년) 제작되었다.

                                                                                                                                          (안내문)

 

조선의 하늘 -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은 하늘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배열해 놓은 천문도로 돌에 새겨 만들었습니다. 태조 즉위 초인 1395년(태조 4)에 조선 건국 이전부터 전해지던 천문도 각석의 탁본을 구해 별자리 위치를 보정한 후 완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천문을 살피고 시간의 흐름을 파악해 백성에게 알리는 관상수시觀象授時의 의무를 실현하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천문도에는 1,467개의 별과 295개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중심원에는 1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자리가, 바깥에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별자리가 새겨져 있고 별의 크기와 깊이를 다르게 표현해 밝기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천문도와 더불어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 해와 달, 별에 대한 이론 등이 적혀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표면이 닳아 1687년(숙종 13)에 다른 돌에 옮겨 새겼으며, 각석 두 점이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출처_국립고궁박물관 안내문)

 

청와대 천장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가려져서 볼 수 없으니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을 참고로 올린다.

 

 

이기우,

<공심여일월(公心如日月)〉

1963, 63.1×287.7cm, 나무에 옻칠, 나전

 

서울에서 태어난 이기우(李基雨,1921~1993)는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1864~1953)과 무호 이한복(無號 李漢福, 1897~

1940), 그리고 전각가 이이다 슈쇼(飯田秀處, 1892-1950)에게 사사한 서예가이자 전각가다. 그는 전각을 독자적인 하나의 전시 분야로 개척하고 고전미와 현대적 추상미를 접목시킨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의 원본은 1959년 개인전에 출품되었던 서예작품이다. 옻칠한 큰 나무판에 자개로 한 획 한 획을 표현한 이 작품은 "공평한 마음은 해와 달과 같다."라는." 뜻으로,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정하고 평등한 국정운영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내문)

2층 복도에 걸린 편액이다, 이제부터 2층을 관람하게 된다.

 

 

 

대통령 접견실

대통령과 외빈이 만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동쪽 벽면은 황금색 「십장생문양도로 장식하였으며 창문은 나무 창틀과 문살 위에 한지를 마감하여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내문)

 

 

나정태,

<십장생문양도(十長生紋樣圖)〉

1991, 300×1000cm, 종이에 채색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난 나정태(羅正泰, 1952~)는 민화와 궁중채색화를 연구하였다. 본관 2층 접견실은 대통령과 귀빈의 접견과 같은 국가 행사가 진행되는 곳이다. 이곳 동쪽 벽면에 설치된 황금빛의 〈십장생 문양도〉는 보물인 경복궁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의 문양을 참조해서 유진형이 도안하고, 나정태가 채색하여 제작하였다.

십장생 굴뚝의 우편에 보이는 연꽃과 포도, 오리 등의 문양은 제외하고, 기존 십장생도에 등장하는 학, 불로초, 소나무, 구름, 거북, 해, 대나무, 물과 기존 도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천도복숭아가 등장한다. 또한 학의 동작도 날개를 펼친 모습으로 등장하는 등 볼로장생을 주제로 재편집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굴뚝의 우측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자(字) 문양으로 바탕을 장식하고 있어 더욱 밀도 있고 화려한 황금빛 화면이 되었다.

                                                                                                        (안내문)

왼쪽 벽면에 있는 황금색 「십장생문양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비스듬히 찍는다.

 

 

대통령 집무실

본관의 핵심공간으로 대통령이 업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국정 현안을 처리하거나 소규모 회의를 주재했던 장소이다.

남쪽 창문에는 방장(房帳, 가리개)을, 벽에는 금관의 금제 장식을 본뜬 조명 기구를, 바닥에는 십장생 문양이 표현된

카펫을 두어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식,

<금수강산도(錦繡江山圖)〉

1991, 533×1146cm, 종이에 채색

 

김식(金植,1952~ )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예술대학 보존수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약 4개월간 옛 진명여고 강당에서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본관 중앙 계단의 북쪽 벽면에 설치된 〈금수강산도〉는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한 '대동여지도'를 기본으로 하여 옛 지도들을 참고하여 제작한 벽화다.

삼면을 에워싸고 있는 출렁이는 금빛 물결과 함께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하여 한라산의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강의 흐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에 은을 혼합하여 채색한 금색 부분이 30여 년의 세월 동안 산화되면서 검게 변하였는데, 2023년 원 작가인 김식 작가의 복원을 통해 다시 금색으로 빛나게 되었다.

                                                                                                                      (안내문)

 

이 그림은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양쪽 계단으로 갈라지는 층계참 벽면에 걸렸다.

 

좀 전에 보았던 나전칠기 편액인 <공심여일원>도 보인다.

 

 

무궁화실

무궁화실은 영부인이 사용하던 공간으로 외빈을 만나는 접견실과 집무실로 쓰였으며, 역대 영부인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접견실은 서양식으로 꾸몄으며, 집무실은 한국적인 분위기로 연출하였다.

                                                                                                        (안내문)

무궁화실은 영부인이 쓰던 공간이라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이 난다.

 

영부인 접견실

다른 방식으로 묘사한 십장생도

 

아주 잠깐이지만 김건희 여사가 여기서 "아주 작은 파우치"를 받았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죄송합니다. 여사님처럼 고귀한 신분에 그런 시장잡배 같은 행동을 했을 리 없겠죠...

 

위엄이 있는 청와대에선 하늘이 보고 있으니 모든 일은 공평무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 모씨와 우 모씨는 뒤로 각각 4천억 원이나 되는 비자금을 받아 처먹기도 했다.

 

청와대 본관을 둘러보고 백악산에 있다는 미남불을 보기 위해 길을 잡는다.

 

미남불로 가는 길은 이렇게 쪽문이 열렸다.

제법 올라가야 부처를 만날 수 있으니 노약자에겐 힘든 길이다.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慶州 方形臺座 石造如来坐像

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한국 불교조각 중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하여 9세기경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되었다. 자비로운 얼굴,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 풍부한 양감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미남불'로도 불렀다.

머리에는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솟아 있으며, 양 눈썹 사이에는 무량세계를 비추는 부처님의 광명을 백호로 표현했다. 목에는 세 줄의 주름인 삼도가 뚜렷한데, 이는 번뇌, 업, 고등 윤희의 인과를 의미한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으로 걸쳐 입었다.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 즉 항마촉지인 석가모니가 모든 번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른 경지를 상징한다. 독특한 연꽃 문양이 새겨진 사각형 대좌는 이 시대의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로 매우 독창적이다.
이 불상은 본래 경주에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1913년경 서울 남산의 총독관저에 놓였다가 1930년대 총독 관저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겨졌다.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오다가, 2017년 6월부터 역사적 고증과 가치 재평가 등을 통해 2018년 4월 20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되었다.
                                                                                                        (안내문)

 

 

봄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나 만산홍엽의 단풍이 아름다울 때 문 열어놓고 차 한 잔 마시면 신선이 따로 없겠다.

 

 

오운정 五雲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오운정은 경복궁 후원에 휴식을 위해 지은 정자로, 자연의 풍광이 신선 세계와 같다고 하여 '오색구름'을 뜻하는 '오운五雲'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이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려 주는 기록은 없으나, 고종 4년 1867 경복궁을 다시 지은 이후의 모습을 그린 「북궐도형北闕圖形」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이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위치는 현재보다 아래쪽에 있었으나,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 정자는 정사각형 건물로, 지붕은 네 모서리가 한 꼭짓점에 모이는 사모지붕 형태로 되어 있다. 주위에 난간을 두르고 있으며, 사방에 문을 내어 자연스럽게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내문)

 

 

청와대에서 뒷산인 백악산 중턱에 있는 미남불과 오운정을 둘러보고 대통령 관저로 들어선다.

 

 

관저 PRESIDENTIAL RESIDENCE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했던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전통적인 목조구조이며 궁궐건축양식인 팔작지붕의 겹쳐마에한식청기와를 얹었습니다.

생활공간인본체와 접견형 사공간인별체가 기역자 도양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앞마당에는 우리나라 전통양식의 뜰과 사랑채가 있습니다.

                                                          (안내문)

대통령 관저는 개방했으나 방을 열지 않아 건물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끝난다.

 

청안당 淸安堂

 

 

 

건물 뒤로 돌아가는 길 

 

 

 

담장을 수놓은 문양 

 

 

 

침류각

1900년대 초의 전통가옥으로 경복궁 후원이었던 건물로 청와대 경내에 있던 누각을 옮겨온 것이다.

 

백악교를 건너면 다시 청와대로 갈 수 있다.

 

상춘재 常春齋

 

상춘재 앞 해태상

 

 

강태성〈해율海律>

1966, 대리석, 화강암, 69 x 106 x 79cm

 

강태성(姜泰成, 1927- )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60-1970년대 국내 화단에서 유행했던 신표현주의, 신구상 부문을 선도했던 작가는 오석, 화강암, 대리석 등 다양한 재료로 작업하며 '돌 조각가'로 불려 왔다.

<해율海律>은 《제1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다. 녹지원에 설치된 이 작품은 대리석의 재질감을 최대한 살려 어머니와 아들이 파도를 타고 있는 형상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안내문)

 

 

반송 Multi-stem Pine

 

외줄기로 자라는 소나무에 비하여 둥치 아래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둥그스름한 소반 모양을 만든다고 반송이다. 키 7.4m, 나이 약 170여 년에 이르며 청와대의 중심 공간으로서 여러 야외 행사가 있던 잔디광장 녹지원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나무다. 어느 계절에 찾아가도 상춘재와 함께 우아한 품위를 잃지 않고 조용히 맞아준다. 

 

Multi-stem pine(Bansong), a portmanteau of soban (small portable dining table) and song (pine tree), is a variety of pine tree that resembles the shape of soban with its base trunk split into several smaller trunks. This multi-stem pine(bansong) stands 7.4m tall and is more than 170 years old. It is the magnificent centerpiece of Nokjiwon, Cheongwadae's great lawn often used to stage outdoor ceremonies and events. It adds a tranquil elegance to Nokjiwon and Sangchunjae (traditional hanok building used as an audience hall).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