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31
2024. 2. 7. 수요일
이번에 보게 될 그림은 불교 또는 단순 명료하게 그린 일반적인 먹그림이다.
장욱진의 그림은 간결한 그림에 함축된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불교의 팔상도나 심우도는 작가의 생각을 반영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
1979년에 그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걸린 무제란 그림의 달마도는 요즘 사찰 근처에서 간결하게 그린
달마도의 원형일 것이다.
무거운 종교를 간결한 선으로 정리한 장욱진의 그림에서 많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안내문을 그대로 수록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진진묘眞眞妙 Zinzinmyo
My Wife's Buddhist Name, 1970,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진진묘'는 이순경 여사의 법명으로, 장욱진이 직접 제목을 붙였다. 장욱진은 명륜동 집에서 기도하던 여사의 모습을 지켜보다 화상(畵想)'이 떴다며 갑자기 덕소 화실로 향했고, 그 추운 곳에서 일주일간 오직 제작에만 몰두했다. 작품을 완성한 장욱진은 그 길로 부인에게 달려와 득의의 작품이라며 그림을 건네고 한동안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이 드라마틱한 일화를 지닌 <진진묘>는 장욱진의 첫 불교 관련 작품으로, 단순히 기도하는 부인을 그린 초상화의 성격뿐만 아니라 불보살상을 떠올리게 하는 종교성이 짙은 그림이다.
무제-강풍경
Untitled - River Landscape, 1982,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팔상도 Palsangdo: Eight Scenes from the Life of Buddha
197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팔상도'는 작은 화면에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압축해 그린 작품이다. 여기에서는 화면의 좌측 상단에서 내용이 시작되어 시계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는 성도(道) 장면을 화면 중앙에 핵심 장면으로 배치했다.
탄생, 출가, 수행, 성도, 열반 장면 외에 장욱진은 석가모니가 끝없는 보시행을 실천해 동물들에게까지 자비를 베푸는 전생 장면을 추가했다. 장욱진의 <팔상도>는 전통 불교회화의 석가팔상 도상을 취사선택해 자신만의 화풍을 유지하면서도 완전한 개인의 창작품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
무제 - 업경대 業鏡臺 Untitled - Karma Mirror
1984, 종이에 마커펜, 개인소장, Marke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무제 - 열반 Untitled - Nirvana
연도 미상, 종이에 먹, 개인소장, Date unknown,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팔상도八相圖 Palsangdo: Eight Scenes from the Life of Buddha
1985,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장욱진은 이미 1976년 석가모니의 전기를 한 화면에 그린 팔상도를 유화로 제작한 바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 내용을 더욱 축약해 빠른 필치의 먹으로 간략하게 그렸다. 화면 위쪽 우측에는 마야 부인이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 가지를 붙잡고 출산하는 장면, 좌측은 석가모니가 수행자가 되려고 왕자 신분을 버리고 말을 타고 출가하는 장면, 중앙은 수행 장면을 그렸다.
화면 아래쪽은 열반 장면이다. 출산 장면 중 마야 부인의 몸 안에 아기 석가모니가 한 손을 들어 사자후를 외치는 장면을 그린 점이 흥미롭다.
무제 Untitled
연도미상, 종이에 먹,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Date unknown, ink on paper,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무제 Untitled
1979, 종이에 먹,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Ink on paper,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무제 Untitled
1979, 종이에 먹,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Ink on paper,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장욱진의 먹그림은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먹그림의 주제는 장욱진이 즐겨 그렸던 가족, 아이, 동물 등 다른 매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히 미륵불, 사찰 등 불교 주제가 비중 있게 등장하는 점이 눈에 띈다.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는 듯 부릅뜬 눈은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인 달마를 연상시킨다. 장욱진은 즉각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붓질로 전하듯 빠른 필치로 그려 냈으며, 필획을 최소화한 감필(減筆)의 묘를 잘 보여준다.
정수리가 뾰족한 두상은 장욱진이 부처상을 그릴 때 참고한 문경 김룡사의 석불과 닮아 있다.
무제 Untitled
연도미상, 종이에 먹,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Date unknown, ink on paper,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무제 Untitled
1985,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무제 Untitled
연도 미상, 종이에 먹, 개인소장, Date unknown,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특별한 제목이 붙지 않지만, 이 작품도 부처, 나아가 미륵불을 의미할 것이다. 이 작품 속 인물이 미륵불이라면 논산 관촉사灌燭寺의 소위 은진미륵恩津彌을 모델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 거대한 암벽 같은 몸체에 커다란 머리가 보여주는 괴체감은 은진미륵의 조형성과 닮았다.
은진미륵의 파격적인 조형감이 일품이지만, 장욱진은 파격미에서 나아가 김명국金明國1600-1662?)의 '달마도풍'으로 그려 냈다. 파격에 파격이 더해져 이 시대의 '달마도'가 되었다.
심우도 Searching for the Ox
1979,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청년기 수덕사 견성암에서의 생활, 독실한 불교 신자인 부인과의 사찰 순례, 선사 장욱진은 달마상, 팔상도, 심우도 등 불교적 소재의 그림을 그렸다. '심우도는 선종의 궁극적인 목적인 참선을 통해 본성을 깨닫는 과정을 동자가 소를 찾아가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그림이다.
동자는 불도를 닦는 수행자이며, 소는 인간의 본성을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으로 이 장면은 동자가 소를 길들여 집으로 향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장욱진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검둥개도 등장한다. 대상의 형태를 간략하게 표현하면서, 순간의 깨달음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선종화의 미학적 요소를 갖춘 작품이다.
수하도인 Immortal under a Tree
1982,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수하(樹下, 나무 아래)는 '월하(月下, 달 아래)'와 함께 동아시아 회화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주제이다. 석가모니 석가모니뿐 아니라 많은 도인에게 나무 아래는 수행의 공간이자 깨달음의 공간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나무 아래 두 인물이 서 있는데, 마치 소나무에 부는 바람 소리도 반야의 설법'이라는 선사들의 시구가 연상된다. 마치 그림 속 인물은 그 소리를 듣고 지금 막 깨달음을 얻은 돈오(頓悟)의 순간을 포착한 것 같다.
무제-부처 Untitled-Buddha
연도 미상, 종이에 먹, 개인소장, Date unknown,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무제 Untitled
1979,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한산습득 Hansan and Seupdeuk
연도 미상, 종이에 벽,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Date unknown, ink on paper,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사슴 Deer
1979,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도석인물화에서 사슴은 신선들과 함께 등장하는 신성한 동물이다. 그림 속에는 신선이 함께 등장하지 않지만 사슴의 자태로에서 초월성이 느껴진다. 또한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은 뿔과 몸은 마치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四神)처럼 신성함을 품고 있다. 등 위에는 또 다른 작은 네 발 달린 동물이 거꾸로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자유분방한 표현은 선사시대에 조성된 반구대 암각화의 동물들을 보는 것처럼 원초적 생명력이 느껴진다.
무제- 농촌풍경 Untitled - Rural Landscape
1982,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무제-수안보 풍경 Untitled - Landscape of Suanbo
1982,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직설적인 가르침 ((직지인심直指 人心) Direct Teaching
1995, 종이에 목판, 양주시립장육진미술관, Woodcut on paper,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혜가가 9년째 절벽을 마주하여 명상에 잠긴 달마를 찾아갔으나 달마는 모른 척했다. 혜가는 심한 눈보라 속에서 밤새도록 서 있었다. 새벽 무렵 눈이 그의 무릎까지 쌓였다. 그러나 달마는 그를 보기를 꺼려했다. 혜가가 칼을 꺼내어 그의 왼쪽 팔을 잘라 달마의 앞에 놓았지만 달마는 깨달음의 길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경전을 통하지 않는 특별한 전교 사람의 마음에 주는 직설적인 가르침. 글과 말을 세우지 않음 우리 자신의 본성을 깨달음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
먹그림 병풍 Painting on Folding Screen
1981년경, 종이에 먹 8폭 병풍, 개인소장, c.1981, ink on paper; eight-panel folding screen, private collection
위 병풍도에서 여성스러움의 관심으로 하나 뺀 것이다.
무제 Untitled
1979, 종이에 벽,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우뚝 솟은 산을 양쪽에서 오르고 있는 인물들이 보이는데, 화면 우측으로 개가 뒤따르고 있다. 산 정상에 있는 암자 같은 곳을 오르고 있는 인물 중 하나는 아내를 묘사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아래 자화상처럼 보이는 인물이 산세의 험준함에 놀라면서도 서둘러 앞서간 이를 따라가고 있다.
개를 동반한 것으로 보아 평범한 등산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구도는 시시포스(Sisyphe)의 신화나 '마하바라타에서 유디스티라(법륜왕)의 승천을 연상케 한다.
호랑이 Tiger
1986,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무제-용 Untitled - Dragon
1988, 종이에 벽,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봉황 Phoenix
1979, 종이에 먹,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Ink on paper, MMCA Lee Kun-hee collection
무제 Untitled
1983, 종이에 덕,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전통적인 동아시아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월하(月下)' 주제의 구도를 따랐다. 무릎을 세우고 앉은 독특한 자세의 인물은 장욱진식 사유상(思惟)이라고 할 수 있다.
장욱진에게는 일상이 그대로 수행 [日常心是道]이기 때문에 그 만의 사유 자세가 필요했을 것이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은 항상 깨어 있는 정신을,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한 앉은 자세는 장소 불문하고 어디서나 참선할 수 있음을 뜻하는 듯하다.
무제 - 기원 Untitled - Prayer
1986, 종이에 먹, 개인소장,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무제 - 도인 Untitled - Immortal
연도 미상, 종이에 먹, 개인소장, Date unknown, ink on paper, private collection
기도하는 여인 Praying Woman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Date unknown, colo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무릎을 꿇고 손에 향을 들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담았다. 간략한 선으로 묘사한 인물의 표현은 에밀레종으로 널리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의 비천(飛天) 실루엣을 연상시키는데, 기도하는 인물이 마치 연화대좌(蓮花臺座)에 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 역시 연꽃 위에 앉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편, 1977년에 같은 도상을 철화로 그린 분청도자도 있는데, 기도하는 인물 반대편 면에는 법종각이나 범어각으로 보이는 건물을 그려 넣어 깊은 산사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는 모습을 암시하는 듯하다..
선면화 Painting on Fan
1981, 종이에 먹 부채, 개인소장, Ink on paper; folding fan, private collection
장욱진은 자신의 먹그림을 '붓장난'이라고 일컬었다. 장난은 규격과 모범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행위로, 화가는 먹그림을 통해 구애받지 않는 자유정신을 표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먹그림은 무계획적인 필선과 자유분방한 화면 구성이 돋보이며, 자유로운 발묵(墨)과 간략한 필치의 간필(筆)을 특징으로 한다.
화면의 노인과 동자, 나무와 개, 산과 새는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룬다. 자연을 벗 삼아 소요하는 노인의 모습을 통해 자연 속에서 이상적인 삶을 찾고자 한 화가의 사유를 확인할 수 있다.
'■ 박물관 > 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수궁국립현대미술관의 장욱진 회고전 C (20) | 2024.02.15 |
---|---|
덕수궁국립현대미술관의 장욱진 회고전 B (19) | 2024.02.15 |
덕수궁 현대미술관, 윤광조의 도예작품에 그림을 넣은 장욱진 (20) | 2024.02.13 |
덕수궁 현대미술관 장욱진의 까치와 나무 그림 (13) | 2024.02.12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장욱진 회고전 A (16) | 2024.02.11 |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관람은 사전예약 필수 (29) | 2024.02.09 |
국립현대박물관 청주 개방수장고와 전뢰진의 조각·드로잉 (36) | 2024.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