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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덕수궁 현대미술관 장욱진의 까치와 나무 그림

by 즐풍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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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2. 7. 수요일

 

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진행하는 장욱진 회고전 두 번째 포스팅이다.

이번에는 그의 작품 중 나무와, 새, 까치 등에 대한 집중 탐구시간이다.

그림들은 단순한 선과 조형물로 채워졌지만 동양적 수묵화를 연상시키므로 어려운 느낌은 없다.

그에 맞게 해설이 풍부하여 그림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 많은 그림 중에 이건희 컬렉션이 있는 걸 보면서 해당 컬렉션에서 수집한 작품은 무한히 많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박물관 등을 순회하면서 마주하는 이건희 컬렉션은 재력이 넘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분이 기업을 경영하면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국가에 기증한 여러 컬렉션을 이렇게 만난다는 것도 기쁜 일이다.

(안내문을 옮기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2층으로 올라서면 또 다른 전시관을 통해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發想)과 방법(方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임을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이런 점이 오늘날 작가들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 장욱진, 발상과 방법」, 『문학예술, 1955. 6.

 

 

까치

 

장욱진은 평생 730여 점의 유화를 남겼다. 그 가운데 약 440점, 즉 60% 이상에 달하는 작품에 까치가 등장한다. 10점 중 6점에 까치가 그려진 셈이다. 그가 까치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인 1925년경부터다. 당시 미술책에 그려진 까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온통 새까맣게 칠한 까치를 그린 적이 있다고 한다.

까치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한국의 텃새이다. 까치가 깍깍하고 우는 상쾌한 소리는 반가운 소식이나 손님이 오는 것을 알리는 소리였으며, 설날 아침 까치소리를 들으면 그 해 운세가 좋다고 했다. 까치집이 있는 나무 아래 집을 지으면 부자가 된다고 여겼고, 추위가 덜 가신 이른 봄 새집을 짓는 까치는 슬기롭고 부지런한 영물이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까치를 함부로 해치면 죄를 짓는다고 생각했고, 늦은 가을 까치밥을 남겨 두며 더불어 사는 인정을 베풀었다. 장욱진에게도 까치는 평소 생활에서 쉽게 마주하는 친근한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심상을 투영시키는 대상이었다.

 

 

까치 Magpie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Oil on canvas, MMCA

 

화면을 가득 채운 둥근 형상의 나무속에 정적인 자세로 서 있는 까치 한 마리와 나무 끝에 걸려 있는 그믐달을 단순화하여 그린 작품이다. 모든 대상은 원근법과 비례를 무시하고 평면적으로 그려졌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푸른 색조로 인해 설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한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다시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만들어낸 화면의 질감에서 자연스러운 밀도감을 느낄 수 있으며, 간결한 형태와 세련된 색채에서 치밀한 구성력을 볼 수 있다. 날카로운 필촉과 함께 화면의 물감층을 무수히 긁어낸 모습은 마치 긴 밤 끝나자 '깍깍' 소리를 지저귀며 새해를 알리는 까치의 청각적 요소를 시각화한 듯해 주목된다.

 

 

 

새와 나무 Bird and Tree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옆에 전시된 1958년작 <까치>와 이 작품은 장욱진에게 까치가 조형적 실험의 대상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단순화시킨 나무의 형태와 나무 끝에 걸린 그믐달은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조형적으로 마치 새의 상형문자를 그려 넣은 듯한 모습에서 같은 대상을 그렸어도 발상과 방법에 따라 수도 없이 다른 그림을 창작해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출신 화가들이 조직해 개최한 《29 동인전>(1961)에 출품한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근무 시절 직장 동료이기도 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원룡 교수가 전시회에 찾아와 당시 한 달 월급인 2만 환을 봉투째 놓고 구입해 간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은 별칭인 '야조도(鳥圖)'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김원룡 교수가 명명한 것으로 '밤에 나는 새'를 의미한다.

김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화면의 주조는 표현할 수 없이 밝고 깊은 독특한 푸른색이고, 그것이 새의 흑색과 잘 조화해서 사람을 고요한 환상의 세계로 끌어당기고 있었다."라고 평했다.

 

 

나무와 까치 / 까치 * Tree and Magpie / Magpie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제6회 앙가주망 전>(1968) 출품

 

당시 제목이 그림은 소재의 유기적 구성을 통한 하나의 세계를 보여준다기보다 기호화된 상형문자들이 병렬로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화 물감을 바르고 닦는 과정에서 번지고 스며드는 효과가 마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주며 작품의 시적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나무의 형태가 한자 木(나무 목)'을 닮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시기 작품들은 이전에 비해 형상의 압축성이 강화된 기호적 특성을 지닌다.

 

 

"덕소 화실을 떠나와 서울에 머무르게 된 지가 2년이 넘고 있다. 그래도 이제껏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은 덕소 생활이 그리워서라기보다는 서울의 소음에 적응하기를 아직 나 자신이 완강히 거부하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요즈음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아침나절에 분연히 떠오르는 어느 일정치 않은 곳으로 스케치 도구를 챙겨 집사람과 훌쩍 다녀오곤 한다. 그러한 나들이 중에서 얻은 그림이 <까치집>이다. 깨끗한 새벽녘 문밖의 키 큰 나무에 매달려 있던 까치집과 까치를 화폭에 옮겨보았다."

                                                  장욱진, 「나의 신작. 까치집」, 『화랑, 1977년 겨울호

 

 

까치집 Magpie Nest

197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까치가 앉아 있는 나무 위에 초가가 옹기종기 모인 시골 마을이 둥근 형태로 배치된 작품이다. 장욱진은 어느 날 새벽 화실 밖 키 큰 나무에 매달린 까치집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정겹게 느껴져 이 그림을 완성했다. 나무 위에 배치된 둥근 원이 까치집인 셈이다. 까치가 나무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까치집이 사람 사는 마을로 표현된 우의적인 그림이 되었다.

장욱진은 얼룩진 군청의 배경과 짙은 남색의 반달로 어스름한 새벽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그림의 안료는 외국 여행을 마친 제자로부터 선물 받은 일본산 '앤티크 물감'으로 알려져 있다. 제자가 처음 사다 준 물감의 색상이 세 가지뿐이라 장욱진은 더 많은 색상을 구입해 독특한 물성의 효과를 실험하려 했다. 

그는 앤티크 물감의 특징을 흰색이 없는 점과 캔버스에 잘 붙지도 닦이지도 않는 성질로 보았다. 일반 유화 물감처럼 여러 번 붓질을 더하거나 덧입히는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이 오히려 동양화 물감처럼 부드럽게 펼쳐지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나무 Tree

198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하는 놀이 친구로 그려진 까치는 초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 평생을 함께한 소재이자 친구, 가족이었다. 이 작품은 상하에 대상을 배치하고 중앙의 여백을 대담하게 활용하며, 한 붓에 그린 듯한 나무를 통해 마치 원숙한 서예가의 필체처럼 강한 힘과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회화적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다. 70년대 후반부터 추구하기 시작한 동양화적 기법이 더욱 완숙한 경지로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화상 Self-portrait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던 까치는 노년에 이르러 심산유곡에서 노니는 화가에게 소식을 전하는 전령으로 그려진 듯하다.

초가에서 쉬고 있는 화가와 조응하는 까치는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화가의 이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붓질이 사라지고 표현이 극히 절제되면서 철저히 관념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까치 Magpie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한반도에 서식하는 까치는 유럽이나 중앙아시아 등에 서식하는 까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날개가 길고 꽁지가 짧으며, 꽁지깃에 보라색 광택을 지닌다. 몸통은 검은색인데 반해, 어깨와 배, 날개 부분이 흰색으로 미적으로도 보기 좋을 뿐 아니라, 45cm 정도의 몸 크기가 위압적이지 않으면서도 너무 작지 않아 조형적으로도 그림의 모티프로서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나무의 색은 환한 연두색으로 빛나고, 나무한 가운데 그려진 까치의 모습은 영롱한 눈과 함께 까치의 강한 상징성을 드러내고 있다.

 

 

강변 풍경 Riverside Landscape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이나 지혜로운 영물로 민화 등에서 즐겨 다루어져 온 소재 중 하나이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까치 그림은 거의 그려지지 않는데, 그러한 면에서 까치를 집중적으로 그렸던 장욱진의 그림들은 예외적이며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안개 낀 강가를 배경으로 초막이 한 채 지어져 있고, 가부좌를 튼 화가가 홀로 앉아 있다. 물빛과 하늘빛은 하나가 되어 푸르른 선경을 이룬다. 강물 위에는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한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고고한 모습으로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학'과 함께 집안에 홀로 앉아 있는 인물을 그린 문인화적 요소가 다분히 반영된 그림이다.

이와 같은 문인화적 풍경에 장욱진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길조라고 여겨졌던 까치를 그려 넣음으로써 신문인화를 완성했다.

 

 

무제 Untitled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Oil on canvas,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나무가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구성은 보통 평면적인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 작품은 하늘이 넓게 강조되어 있는 공간 속에 배치되어 있다. 단순한 화면 속에 파랑과 빨강의 대비효과가 경쾌해 보인다. 나무 위 열을 맞추어 선 집들은 나무의 '뒤'편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다 점점 이 작품에서처럼 나무의 '뒤'가 아닌 '위쪽으로 자리 잡으며 마치 나무가 둥근 지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소 뚱뚱한 모습의 까치는 날렵한 형태의 까치와 대조를 이룬다.

 

 

세 사람 Three People

1915.  캔버스에 유화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광목천 위에 엷게 채색하여 물들인 것 같은 표현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나무 아래 세 사람이 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인물들을 둘러싼 타원형 공간은 시공을 초월한 안식의 자리처럼 보인다.

이 작품에서 나무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그늘을 내어주고 휴식을 취하는 물리적 원리로써의  나무이자, 여섯 마리의 새가 있는 자연을 담아내고 그 자신이 자연된 나무이다. 나무 아래 세 사람은 팔과 다리를 뻗고 자유로운 상태로 누워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정신적인 자유를 느끼게 해 준다.

 

 

아이 있는 풍경 / 마을* Landscape with Child / Village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한솔문화재단, Oil on canvas, Hansol Cultural Foundation

「나의 신작-마을, 조선일보, 1973.12.8. 수록 제목

 

 

나무와 까치 Tree and Magpie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Oil on canvas,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극히 제한된 소재와 단순한 구도임에도 불구하고 조형적으로 밀도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형태의 배치와 마티에르의 적절한 운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화면 중심에 자리 잡은 까치가 인물보다 훨씬 크게 표현되어 있는 것은 대상에 심리적인 비례를 적용했던 장욱진 그림의 전형을 보여준다. 둥근 나무에 상응하는 뚱뚱한 까치가 인상적이다.

 

 

까치 Magpie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농업박물관, Oil on canvas, National Agricultural Museum of Korea

 

장욱진의 까치 그림 가운데 이처럼 크게 그려진 까치는 없었다. 까치에 음영을 넣고, 눈을 그려 넣지 않아 하나의 기념비처럼 느껴지는 박제된 듯한 까치의 모습이다. 화면 네 귀퉁이에 각각 해와 달, 정자와 초당이 쌍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작은 개 한 마리만이 정확한 질서 속에 예외로 존재하는 듯 어슬렁 거리며 화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까치와 마을 Magpie and Village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화가의 마지막 유화작품이다. 나무를 비롯한 형태의 윤곽이 흐트러져 있고, 유화 물감의 번짐 효과가 화면 전체에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특히 색이 칠해지지 않은 여백처럼 표현된 나무는 단단히 문을 닫은 집들과 대비되어 하늘로 부유하는 듯하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까치는 땅에 떨어져 있는 해와 달의 모습과 대비되며 하늘로 향하는 화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 해 숙연해진다.

 

 

달밤 Moonlight

1988 캔버스에 유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Oil on canvas,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장욱진의 그림 가운데 가장 어둡고 유산한 분위기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높은 채도의 반달 혹은 초승달은 이지러진 털로 묘사되며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해 이 작품을 보고 가족들은 그의 건강을 무척 걱정했다고 한다. 같은 주제와 소재가 반복되지만 이처럼 심리적 느낌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욱진의 조형 능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무 Tree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음으로써 24시간 시간의 흐르지 않는 영원성을 보여주는 가운데 화면 밖으로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가 정체되어 있는 시간의 흐름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써 화면의 중심축을 이루는 나무 사이로 각각 사선으로 떠 있는 해와 달은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케 하며 장욱진 그림이 갖고 있는 풍부한 서술성을 암시하고 있다.

 

 

나무와 정자 Tree and Pavilions

 

 

해와 나무  sun and tree

 

 

해와 달

 

장욱진 작품에 해와 달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그러나 실제 해와 달이 동시에 그려지는 것은 1970년대 초까지 한두 점으로 매우 드문 편이었는데, 1979년에 이르면 그 해 그려진 작품 가운데 50%에 해당하는 그림들에 해와 달이 동시에 그려진다. 그로부터 10년 뒤, 1989년에는 57%, 1990년에는 74%의 작품들에 해와 달 도상이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해와 달에 대한 장욱진의 집중력은 이들의 공존성에 대한 그의 조형 의지가 분명함을 보여준다. 해와 달의 대비는 작은 화면과 단순화된 구도에 긴장감을 갖게 함으로써 조형적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또한 해와 달은 전통적으로 음과 양으로 표상되며 서로 다른 것의 조화로서 이해되어 왔다.

이 점에서 장욱진 그림의 해와 달은 <일월오봉도>의 현대적 변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가족도 Family

1989, 캔버스에 유화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ovate collection

 

 

나무 Tree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나무 위의 아이 / 나무에 올라간 아이* Child on a Tree 

195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제1회 한국미술가협회전람회>(1956) 출품 당시 제목

 

1956년 9월에 열린 <제1회 한국미술가협회 전람회>에 출품한 작품 2점 중 하나이다. 기하학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인물, 나무, 집의 형태가 돋보이는데, 이러한 표현은 1956년 경부터 등장해 1960년대 내내 변주되어 1970년대 초까지 이어진다. 특히 선, 원형, 사각형 만으로 그린 인물, 길 끝에 위치한 집, 검게 칠해진 반달, 나뭇가지가 사라지고 줄기와 잎사귀 영역이 하나로 표현되는 나무, 뿌리가 잘린 나무가 화면 끝에 위치한 구성 등 이후 장욱진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들이 종합적으로 처음 그려진 원형(原形) 같은 작품이다. 현존하는 작품 중 제목에 '아이'가 등장하는 가장 오랜 된 예이기도 하다.

 

 

월조月鳥 Moon and Bird

196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반달과 앙상한 형상의 새를 표현한 <월조>는 화면을 첨단으로 나누어 위쪽에는 달을, 가운데에는 산을 배경으로 한 채를 배치했고, 아래쪽에는 지면 혹은 강가를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했다. 장욱진은 이 작품을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뒤에야 새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캔버스에 두터운 물감을 붓으로 여러 번 거칠게 칠한 자국을 드러내며 요철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추상적인 표현으로 그려 낸 까치는 마치 기호화된 한국 민족의 상징처럼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나오는 삼족오(三足鳥)와도 흡사하여 흥미롭다.

 

 

나무 Tree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배경의 어두운 색과 나무의 연두색이 청명한 대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묘사를 극히 절제한 움직임이 없는 구도에 적막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 가운데 마치 나무는 지구가 되어, 지구 위에 얹혀 있는 집 안의 사람만이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를 가진 듯하다.

나무 아래에 동시에 떠 있는 해와 달은 실제 나무가 지구이자, 대지로 해석될 수 있음을 반증하며, 24시간 시간의 영속성을 보여준다.

 

 

나무

 

처음 장욱진 작품에서 나무는 풍경의 한 요소로 불특정적으로 부수적인 소재 중 하나로 다뤄졌다. 그러다 1954년 <하>를 기점으로 그림의 중심 소재이자, 화면을 구성하는 핵심 프레임으로 그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낸다.

장욱진의 나무는 시간성을 담아낸다. 새벽녘 나무는 햇볕이 쨍한 오후의 나무가 되기도 하고, 해진 줄 모르고 뛰어놀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을 품어주는 해 질 녘 나무가 되기도 한다.

나무가 지난 시간성은 인생의 여정으로도 그려진다. 가령 어린 시절 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튼튼한 청년의 나무로, 화가에게 허리를 숙이는 노년의 나무로도 표현된다. 한편 장욱진에게 나무는 화가로서의 삶과 미학적 여정을 오롯이 표상하는 사의체(寫意體)이다.

수묵화적 분위기와 함께 심산유곡의 버드나무가 자연에서 유유자적하는 탈속적 풍경을 이루기도 하며, 풍성한 잎의 나뭇가지가 힘찬 붓질과 함께 한쪽으로 쏠리는 형태의 나무도 그려진다. 그의 나무는 사실적인 구상적 표현에서 점차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새로운 나무로 발전해 간다.

 

 

마을 / 시골* Village / Countryside

1955,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 『계간미술』 1980년 겨울호 수록 제목

 

나무 세 그루가 서로 알맞은 비례로 그려졌다. 나무의 둥근형태는 앞쪽 네모난 집들과 좋은 대조를 이루어 단조로운 화면에 변화를 주고 있다. 화면 상단에서 하단까지 모두 하나의 평면으로 처리되었으면서도 나무의 줄기와 집 벽돌에는 두꺼운 마띠에르를 사용하여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한 점도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자유롭고 활기차게 늘어놓던 화가의 조형방식이 좀 더 정제되고 세련되어가는 느낌을 주며, 단순해져 가는 화면을 보여준다. 파랗게 칠한 해 역시 작품에 운치를 더해준다.

 

 

수하樹下 Under the Tree 

1954,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화면 중심에 가득 찬 둥근 나무가 등장하는 첫 사례이다. 1955년 11월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백우회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심사를 통해 독지가의 이름을 딴 '이범래상'을 받았다. 근경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 상반신을 탈의하고 양팔을 베고 누운 인물을 화면 중앙에 배치했는데, 인물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무나 하늘, 혹은 그 너머를 응시하는 눈빛과 표정이 다소 심각하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인물은 구도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양팔을 베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도상은 다양하게 변주되어 여러 작품에서 그렸고, 신문, 삽화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언덕 위의 가족 Family on a Hill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경사진 비탈길 위에 나무 한그루와 세 가족을 그려 넣은 풍경화이다. 비탈길에 서 있는 가족이 한쪽으로 쏠려 불안한 자세로 서 있지만, 우람한 나무가 이들을 든든하게 감싸면서 화면에 안정감을 준다.

각도를 달리하며 화면을 가로지르는 비탈길과 나무는 중국 남송대의 산수화에서 사용된 변각(角) 구도를 연상시킨다. 장욱진은 캔버스 천의 직조가 드러나도록 색을 얇게 칠하거나 색상 없이 바탕의 질감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동산 Hill

1978, 캔버스에 유화 물감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앞뜰* / 마당 ** Front Yard

1969,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제7회 앙가주망 전>(1969) 출품 당시 제목

결정 (한국근대미술 60년 전)(1972) 출품 당시 제목

 

 

마을 Village

1984,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대칭 구도를 기본으로 하는 조형적 치밀함이다. 세로축을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언덕, 집, 소, 개, 사람이 아래로 이어지고, 좌우로 해와 달, 나무와 화분이 쌍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대칭 구도는 안정적 균형미를 주지만 단조로울 수 있다.

화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로축에 있는 소와 개, 사람의 방향을 교차로 배치했으며, 달의 형태와 색, 나무 위 가치, 화분의 형태와 색을 서로 다르게 표현했다. 화면에 대한 화가의 조형어법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나무 Tree

1985,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단순화된 원형의 공간으로 표현된 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나무 위로 난 길은 집으로 연결되며, 기둥 아래는 마을의 길로 연결된다. 나무의 위치와 존재는 기존의 나무를 넘어서는 '대지'이자 '하늘'이라는 공간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나무가 인간과 자연, 도시와 농촌, 현실과 이상 세계를 연결하는 오작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꿈속엔 나만의 동산이 있다. 나무가 서 있고, 나무 위에 집이 있고, 송아지와 개가 있고, 하늘엔 해와 달이 있다

새해에는 나는 나의 동산에 살며 마냥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욱진, 동산-표지의 말」, 「샘터」, 1978.

 

동산 Hill

197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바람에 흔들리는 짙은 녹색의 포플러 나무를 통해 화면에 생기가 느껴진다. 장욱진은 아이나 소, 땅 등의 대상들은 모두 담채로 그렸으면서도 유독 중앙의 나무만큼은 거친 마티에르와 함께 짙은 초록으로 채색하여 나무에서 강하게 발산되는 생명력과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느끼게 한다.

나무 아래로 손을 잡은 형제와 그들을 따르는 소와 개는 서정성이 물씬 풍기며, 나무 위로 날아오르는 새의 무리가 흔들리는 나무와 함께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한다. 화면 상단의 푸른색 바탕 위로 거꾸로 늘어서 있는 집들은 화면의 공간을 더욱 입체적이고, 동적으로 보이게 한다.

 

 

까치 Magpie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1978년작 <동산>에서 강하게 생명력을 발하는 나무를 통해 계절성을 발견했다면, 수직의 화면에 길게 서 있는 이 작품의 나무는 마치 바위처럼 기념비적이다. 까치는 제단 위에 올라앉은 것 같으며, 양쪽의 해와 달이 그러한 종교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시간 속에 강아지 한 마리만 나무 아래로 걸어가고 있어 절대적 시간과 상대적 시간을 함께 보여준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처럼 절대적이고도 신성한 의미를 나무에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 Tree

1989, 캔버스에 유화 물감, 서울시립미술관, Oil on canvas, Seoul Museum of Art

 

인물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까치와 나무, 집이 양분되어 있는 모습이다. 두 나무는 마치 집에서 불을 땐 후 굴뚝에서 피어 나오는 연기처럼 수묵의 발묵 효과를 이용해 그렸는데, 이는 화면 중앙에 위치한 인물의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나무 위 마주하고 있는 까치 두 마리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솟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무 Tree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초현실적인 이중공간을 나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나무이면서 동시에 다른 공간을 의미하는 듯한 표현은 장욱진이 즐겨 사용하는 공간구성 방식이다. 밤을 상징하는 짙은 어둠의 공간 위에 마치 낮처럼 그려진 나무속 공간은 마치 꿈속에서 있었던 일을 묘사하는 말풍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장욱진의 나무는 초기의 현실적 나무에서 점차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게 된다.

 

 

감나무 Persimmon Tree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이 작품은 화가의 용인집에 있던 감나무를 보고 그린 것이다. 혹한의 겨울 날씨에 나무가 죽은 줄 알았으나 이듬해 봄에 다시 새순이 돋는 것을 보고 장욱진은 마치 나무가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감나무의 색은 푸른빛이 감도는 먹색을 사용했는데, 밝고 따뜻한 배경 색감과 대비되어 완연한 봄이 오기 전 아직 쌀쌀한 초봄의 계절감마저 느끼게 한다.

나무는 열매가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가을의 계절성을 담고 있다.

 

 

나무와 노인 Tree and Old Man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유화 물감을 쓰면서도 동양화 붓의 먹선을 방불케 하는 질박한 선과 번짐, 스며들과 같은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와 같이 묽고 희미해지는 색채의 질감과 형태의 요약은 덜어내고 비워냄을 시도한 화가의 작법 중 하나로 화면이 꽉 차 있으면서도 여유롭고 은은한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

나무는 추상적 형태와 수묵적 표현으로 현대적 산수화의 특징을 지니며, 인물 묘사는 간략하게 윤곽선으로 표현하는 선묘(線描)를 사용하여 대상의 외면적 형태보다 정신과 풍류가 두드러진다. 푸른 달이 떠 있는 청명하고 고요한 밤에 나무를 보고 있는 도인의 마음도 고요하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합일하는 미적 경지를 보여주며,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인 Old Man

1989,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수염과 머리를 기른 화가 자신으로 보이는 인물이 나무 앞에 서서 하늘에 뜬 하얀 달을 바라보고 있다. 턱수염을 들고 배를 내밀며 시선을 위로 향한 장면은 문인화에서 자연을 완상 하는 장면들과 유사하다. 배경의 색조와 얼룩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고, 여기에 배경과 대조를 이루는 완전한 평면으로 추상화시킨 나무가 마치 흘러가는 강물로도 보여 작품에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장욱진의 두 번째 고백 

 

여기서는 그가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소재들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화가로서 어떠한 '발상'을 했고, 이를 무슨 '방법'으로 구성했는지 살펴본다. 그냥 보고 있는 것과 관찰해서 보는 것은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그가 그림 한 점을 그릴 때마다 선 하나에도 지나칠 만큼 엄격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장욱진의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가 조금은 더 진지해져도 되지 않을까?

이 전시실에서는 장욱진 회화의 대표적 모티프 가운데 '까치', '나무', '해와 달'을 선정해 각각의 소재들이 지니는 상징성과 의미가 무엇인지, 도상적 특징은 어떻게 변모되어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전시장에 가득한 '까치'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고, '나무'는 그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였으며, 해와 달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로서 결국 모든 것이 하나임을 보여주려 한 장욱진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한편, 그림의 구성과 의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소재를 통해 그림의 의미를 분석해 보았다면, 각각의 소재들을 활용한 구성 방식 또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 각각의 소재들은 작은 그림들 속에서 자유롭게 변주되어 조형적 완결성을 매듭짓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들 소재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단 한 점도 똑같은 그림이 전해지지 않을 수 있는지, '콤포지션'이란 코너를 따로 마련하여 그가 고민했던 작품의 발상과 방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장욱진의 그림 읽기 법 혹은 감상법'을 통해 장욱진 그림의 내용을 더 많이 이해하고 그의 고백을 진지하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