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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장욱진 회고전 A

by 즐풍 2024. 2. 11.

2024_29

 

 

 

2024. 2. 7. 수요일

 

 

10시부터 진행하는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을 해설사님과 함께 돌며 관람했다.

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석조전 서관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으로 들어선다.

덕수궁을 끝으로 국립현대박물관 서울, 과천, 청주 등 모든 국립현대미술관 관람을 마치게 된다.

비록 오늘 덕수궁관을 관람으로 모든 미술관을 끝낸다고 해도 주기적으로 작품을 교체하여 전시하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검색하여 다른 작품이 올라오면 다시 다녀올 생각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현대미술관은 근현대기 이후의 작품을 전시함으로 여러 사조를 볼 수 있다.

이번 덕수궁 현대미술관은 전체를 장욱진 회고전으로 꾸몄다.

워낙 다작을 한 작가의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여러 편으로 올리게 된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상세한 안내문을 그대로 수록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은 대한제국 시절에 만든 석조 건물로 앞서 본 덕수궁 동관과 마찬가지로 좌우 대칭인 건물이다.

장욱진 회고전은 전층 모두에 전시할 만큼 규오가 크다.

 

 

가장 진지 한 고백

장욱진(張旭鎭,1917~1990) 회고전

The Most Honest Confession: Chang Ucchin Retrospective

 

"그림처럼 정확한 나의 분신(分身)은 없다. 난 나의 그림에 나를 고백(告)하고 나를 녹여서 넣는다. 나를 다 드러내고, 발산하는 그림처럼 정확한 놈도 없다."

                                                        - 장욱진, 『조선일보』(1973. 12. 8.)

 

장욱진(張旭, 1917-1990)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스트이다. 현재 알려진 작품들만 헤아려도 730여 점의 유화와 300여 점의 먹그림 등 그 수가 많으며, 실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나무와 까치, 해와 달, 집, 가족 등 몇 가지 제한된 모티프만을 평생에 걸쳐 그렸다. 장욱진 그림에서 '지속성'과 '일관성'은 주요한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해 이 둘이 무리 없이 일체(一體)를 이루는 경우는 장욱진 외에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전시는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약 60여 년간 꾸준하게 펼쳐 온 장욱진의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을 한 자리에서 조망한다. 장욱진은 그의 화문집(畵文集) 『강가의 아틀리에』 서문에서 밝혔듯이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창작에 전념했으며, 그림 그리는 시간 대부분을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수공업 장인(artisan)처럼 그렸다.

“나는 정직하게 살아왔노라.”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누구보다 자유로운 발상과 방법으로 화가로서의 본분에 자신을 충실히 소모시킨 그였다. 그가 떠난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향해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자화상 Self-portrait

1951, 종이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paper, private collection

 

한국전쟁 이후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장욱진이 종군화가로 복무 중에 잠시 고향인 충남 연기군(지금의 세종시)에서 머물던 시기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시기 방황에서 잠시 안정을 찾으니 작품 의욕이 솟아 "미친 듯이 그리고 또 그렸다"고 전한다. 한 뼘 크기의 작은 종이 위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이 작품은 황금물결을 이룬 누런 들판 사이로 붉은 황톳길에 콧수염을 기른 모던한 모습의 장욱진이 걸어오고 있는 장면을 담아냈다. 결혼식 때 입은 하이칼라 프록코트 차림으로 귀향 중인 그를 따라 동네를 서성이던 검둥개와 새들이 뒤따른다. 노년기에 등장하는 서너 마리가 일렬로 줄지어 나는 새들의 비행 도상도 이 작품에 처음 등장한다.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엔 오색 구름이 찬연하고 좌우로는 풍성한 황금의 물결이 일고 있다.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장욱진, 「자화상의 변辯」, 『화랑』, 1979. 여름

 

 

풍경 Landscape

1937, 판지에 유화 물감, 리움미술관, Oil on cardboard, Leeum Museum of Art

 

<풍경>은 장욱진이 당시 살고 있던 내수동, 지금의 서울역사박물관과 경찰청 사이 부근에서 서쪽 인왕산을 바라본 거리 풍경이다. 속도감 넘치는 필치로 단순화한 가로수를 인왕산과 신식 건물 앞에 배치해 갈색톤의 도시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장욱진의 청년기 작품은 인상파의 지류인 외광파 이후, 야수파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화풍에 도전하는 조형 의식을 잘 보여준다.

 

 

 

공기놀이 Playing Jacks

193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공기놀이>는 양정고보 5학년 시절 1938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 출품해 특선을 하고, 조선일보 사장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서울 내수동 집을 배경으로 네 명의 소녀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물들의 뒤편 기둥 부분에 '우중화(雨中花)'라고 쓰여있다.

인물들의 동세와 옷의 명암처리를 이용해 인체 구조와 양감을 어색하지 않게 표현했고, 소녀들의 머리카락과 댕기, 아기의 얼굴 부분까지 빛의 흐름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마을 Village

1951, 종이에 수채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Watercolor on paper, MMCA Lee Kun-hee collection

 

<자화상>(1951)과 마찬가지로 고향으로 귀향한 시기 그려진 작품이다. 캔버스를 구할 수 없어 종이에 수채 물감으로 그렸다. 당시 고향에는 장욱진과 두 자녀가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부산에 있는 부인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화면 좌우측에 배치한 나무 사이로 단순화시킨 초가집을 배치하고, 원근법과 평면 공간법을 절충하여 화면을 구성했다. 전체적으로 좌우대칭의 균형 잡힌 배치가 작품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무엇보다 장욱진의 현존하는 작품 가운데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그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나룻배 Ferry Boat

1951, 패널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panel, MMCA Lee Kun-hee collection

 

 

자갈치 시장 Jagalchi Market in Busan

1951, 종이에 유화 물감, 부산 공간화랑, Oil on paper, Kongkan Gallery

 

부산 피란 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캔버스가 부족하여 종이에 여러 점의 작품을 그렸는데, 그 시절 현존하는 드문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활기찬 어촌 풍경과 자갈치시장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였다.

 

  
붉은 소 Red Bull
1950,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1951년 부산으로 피란 갈 때에도 <소녀>와 함께 가지고 간 작품이다. 1953년 부산에서 열린 《제3회 신사실파 동인전》에 출품되기도 했다. 붉은 소와 밀짚모자, 삼베 반바지를 입고 햇볕에 그을린 두 농부를 그리고, 농촌의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을 담았다.
삼베 바지의 밝은 색과 소의 선명한 붉은 색, 짙은 녹색의 나무와 원형 공간을 보색으로 처리함으로써 강한 시각적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자동차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a Car

195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화가가 전쟁의 참화를 피해 부산에 머물던 시기의 광복동 풍경을 그린 것이다. 붉은 양옥집은 그리스식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창문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가운데 자동차는 피란지였던 부산 거리에서 자주 보던 지프 계열의 군용차를 그렸다.

위쪽 노란색 집과 열 지어 서 있는 집들은 광복동 언덕에 빼곡히 들어선 집들과 닮아 있다. 전쟁을 피해 부산에 거주하면서 경험한 가족의 이산과 궁벽한 피란지의 현실을 담은 이 작품에는 평범한 일상의 회복을 바라는 화가의 염원이 표현되어 있다.

 

 

가족 / 마을 Family | Village

1954,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윤상 수집 제1회 현대화가 작품전>(1956) 출품 당시 제목

 

 

거목巨木 / 고목古木 Big Tree | Old Tree

1954, 캔버스에 유화 물감, 한솔홀딩스, Oil on canvas, Hansol Holdings

 

<제3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4) 출품 당시 제목 장욱진의 나무 그림 중에서 가장 많은 나뭇가지가 그려진 작품이다. 여러 갈래로 뻗은 나뭇가지와 주변의 새들, 그리고 나무 밑동에 그려진 작가의 서명 등 모든 소재들이 가운데에 위치한 나무줄기로 향해 있어 시선이 집중되며 작품 전체에서 통일성이 느껴진다.

표면을 스크래치 기법으로 긁어내어 거친 질감을 표현했으며, 해가 넘어가기 직전 둥지로 모여드는 새들과 하단의 집들을 상하에 병치시켜서 내용적인 면에서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나무와 새 Tree and Bird

195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장욱진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해와 달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나무속 아이의 올려다보는 시선은 자연스럽게 나무 위의 마을로 향하는데, 이때 아이는 나무에 올라와 있는 동시에 마을의 공간에도 놓이게 된다.

이러한 공간의 전환으로 다른 두 개의 공간이 하나로 중첩되면서 환상적인 느낌을 더한다. 1958년 2월 한국정부, 월드하우스갤러리, 한국재단의 공동 주최로 열린 <한국현대회화 전 Contemporary Korean Paintings>에 선정되어 전시됐다.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당시 조지아 대학의 동양미술을 강의하던 엘렌 세티 코넌트(Ellen PSATY Conant, 1921)가 선정했다. 당시 선정된 장욱진의 작품 수는 2점으로 신문기사에 소개됐지만, 실제 전시 브로슈어에서 확인되는 것은 이 작품뿐이다..

 

 

물고기 魚 Fish

1959,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Oil on canvas, MMCA

<제5회 백우회>(1959) 출품작

 

1959년 9월 열린 <제5회 백우회전》에 '고기'란 이름으로 출품된 작품이다. 백우회는 일본제국미술학교 출신 미술가들이 결성한 동창전 성격의 전람회이다. 그동안 장욱진의 백우회 활동은 《제1회 백우회전>(1955)에 출품한 <수학>만 알려져 왔으나, 그 외에도 <집>, <길>을 출품했고 이후 1959년까지 매년 참가했음이 이번 전시를 통해 밝혀졌다.

<물고기>는 이전까지 장욱진이 그려온 작품들과는 다른 구도와 조형방식을 보여준다. 물고기의 형태를 간략한 선으로 묘사하고, 바둑판처럼 분할된 각 면은 푸른 색조의 채도 차이를 두어 표현했다. 같은 해 그려진 <제8회 국전》에 출품작 <얼굴>(1959)과 조형적으로 유사하나 화면을 긁어내어 물고기의 비늘을 표현한 점이 독특하다. 두껍게 올린 물감을 긁어내는 방법으로 화면의 촉각적인 질감 효과를 극대화했다.

 

 

나무 아래 아이 / 들* Child under the Tree / Field

1960, 캔버스에 유화 물감, 리움미술관, Oil on canvas, Leeum Museum of Art

 조선일보』, 1960.10.11. 수록 작품 제목

 

인물과 소의 형태를 선으로 긁어내어 바탕의 검은색이 드러나도록 한 작품이다. 두터운 화면의 질감과 간략화된 선묘를 특징으로 하는 장욱진의 양식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장욱진이 개인적으로 아꼈던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 더욱 주목된다.

 

 

무제-연못 Untitled-Pond

1975, 종이에 마커펜, 개인소장, Marke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누구나 그러하듯이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저항抵抗 속에 사는 것 같다. 그러니까 사업가事業家는 경영과 인사관리를 어느 만큼 참을성 있게 잘하느냐에 따라 그 업체의 유지발전이 가능할 것이고 학자는 서적書籍에서, 문필가는 문자가 저항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장욱진, 「저항」, 「동아일보』, 1969. 6. 7.

 

 

새와 아이 Bird and Child

196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강한 마티에르에 속도감 있는 붓 터치로 빨강과 파랑, 노랑과 녹색 계열의 원색들을 사용하여 강한 동세와 경쾌함을 표현해 낸 작품이다.

 

 

중장년기 (40~50H)

 

여인 좌상 Woman

1963, 회벽에 유화 물감, 리움미술관, Oil on plastered board, Leeum Museum of Art

 

 

덕소 풍경 / 일출日出 Landscape of Deokso / Sunrise *

196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장욱진 개인전》(1964) 출품 당시 제목

 

장욱진이 생활하던 덕소의 화실은 한강가 높은 언덕 위에 있었으며,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완만히 굽이도는 안개 낀 한강 물과 강가의 모래밭이 보이고, 건너편으로는 강마을이 보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덕소의 풍경을 좀 더 추상화시킨 것이다.

희뿌연 푸른 하늘과 중천에 뜬 둥근 해, 아스라이 안개 낀 강가의 풍경을 두꺼운 마띠에르와 함께 표현하고 있어 그가 당시 추구했던 추상회화의 실험을 잘 보여준다.

 

 

'새벽 두 시건 세 시건 눈만 뜨면 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어떤 때는 샛별이 보일 때까지도 혼자서 쏘다닌다. 그건 서성이는 것도 아니며 더욱 무얼 찾는 것도 아니다. 새벽을 사랑하고 새벽을 느끼고 새벽이 곧 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새벽 산책으로부터 돌아와 화폭과 마주하면 거기 또 하나의 세계가 형성된다. 나는 그것을 추구하며 이룩해 가는 것이다.

                                                                - 장욱진, 「새벽의 세계」, 『샘터』, 1974

 

 

월목 / 반월·목 半月•木* Moon and Tree / Halfmoon and Tree

196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장욱진 개인전》(1964) 출품 당시 제목

 

1963년 덕소로 화실을 옮긴 장욱진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몰두한다. 이 작품은 다음 해인 1964년 반도화랑에서 개최된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가장 문자추상화에 가까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화면 상단을 차지한 반달은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추는 시각적 존재감을 보여주는 반면, 하단의 나무는 문자 형태의 상형성을 띠고 있다.

이는 의도했다기보다 나무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점점 회화성의 결과로 이어져 문자의 형태로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달의 재현적 모습은 구상적인 면모를 보이면서도, 문자로 압축된 나무는 기호화된 상징을 추상적 세계로 이끄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무렵부터 장욱진의 서명도 'ucchin, chang'에서 'ucchin, c'를 주로 사용한다.

 

 

첫 번째 고백,

"나의 경우도 어김없이 저항의 연속이다. 행위(제작과정)에 있어서 유쾌할 수만도 없고 결과(표현)가 비참할 때가 많다. 이러다 보니 나의 일에 있어서는 저항의 연속이 아닐 수가 없다... 일상 나는 나 자신의 저항 속에서 살며 이 저항이야말로 자기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욱진, 「저항」, 『동아일보』, 1969.6. 7.

 

우산 Umbrella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어린아이를 제재로 하여 동심 어린 자신만의 조형성을 이룩한 장욱진의 창작은 1960년대가 되면 더욱 개성적인 특색으로 자리 잡는다. <우산>에서 비에 젖은 풍경과 대비되듯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묘사된 아이는 빨간색 우산을 들고 동화적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이러한 장욱진의 조형미에서 아이의 둥근 얼굴과 반원으로 펴진 우산살의 형태가 매우 조화롭다. 화면 오른쪽 해를 푸른색으로 표현했는데, 비로 인해 모든 세계가 하나로 젖어 버린 푸른 세계를 묘사한 듯하고, 장난기 많은 아이의 심리로 바라본 세계를 조형화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기를 한 곳에 몰아세워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욕망과 불신과 배타적 감정 등을 대수롭지 않게 하며 괴로움의 눈물을 달콤하게 해 주는 마력을 간직한 것이다. 회색빛 저녁이 강가에 번진다."

- 장욱진, 「새벽의 세계」 「샘터, 1974. 9.

 

 

새와 아이 Bird and Child

1960, 캔버스에유화물감,국립현대미술관캔버스에 유화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커다란 새를 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초기의 작품보다 화면 속 아이와 새의 형상을 더욱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였으며, 아이의 표정 또한 매우 간소화된 모습이다. 단순히 선의 사용뿐 아니라 코발트블루, 울트라마린 등의 푸른 색감과 바탕색의 대비를 이용해 거친 마티에르 속에서도 분명한 형체를 드러나게 했다.

 

 

물고기 Fishes  

1964, 캔버스에 유화 물갑, 개인소장, Oil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물고기의 내면과 외면이 대칭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순수 추상 작품을 실험한 이후, 화면에 다시 구체적 대상이

등장한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대상은 다시 재현되었지만 앵포르멜 식 화면 처리방식은 여전히 유효하여 두꺼운 표면의 질감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집과 아이 House and Child

1959, 캔버스에 유화 물감,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Oil on canvas,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바탕에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가는 도구를 이용하여 바탕을 긁어내며 대상을 묘사했다. 장욱진은 생전에 집을 네 번 직접 설계하고 지었을 정도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때문에 장욱진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집에는 삶의 터전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집의 밑면에 다리를 그리고, 내부에는 활기찬 아이의 모습을 그려 넣어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바위岩* Rock

1960, 캔버스에 유화 물감과 연필, 개인소장, Oil and penc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제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0) 출품작 (초대작가)

 

1961년 10월에 열린 《제9회 국전》에 초대작가 자격으로 출품한 작품이다. 화면 상단에는 햇무리 진 하늘을, 하단에는 가운데가 오목한 둥글고 검은 바위 산을 배치했다. 면분할 된 산 아래에는 꼬리를 추켜올린 새가 당당하게 서 있다.

이 작품은 물감을 두껍게 바르거나 긁어내지 않고, 물감을 칠한 화면 위를 테레빈유로 닦아내는 방식을 시도했다. 이미 칠한 물감을 다시 닦아내면서 농담과 형태를 조절하여 독특한 얼룩을 만들어 내는데, 이렇게 캔버스올이 보일 정도로 얇게 만드는 마티에르 표현은 노년기까지 이어진다.

 

 

부엌과 방 Kitchen and Room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덕소에서 소박하게 생활하며 이웃한 동네의 다양한 삶에도 관심을 가졌던 장욱진은 가옥의 건축 구조를 특유의 방식으로 묘사했다. 단층적 분할 면으로 드러나는 가옥에 철선묘로 묘사한 인물의 쭈그리고 앉은 모습은 특정 인간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실존적 형상을 선으로 압축하여 조형화한 것이다. 특히 부엌의 오행감을 정면으로 투시하면서도 화면 왼편에는 부뚜막의 가마솥과 큰 주걱을 그려 넣고, 측면 좌상의 인물 배치를 통해 공간의 깊이감을 나타냈다. 캔버스천을 그대로 바탕으로 사용하고 짙은 농묵과도 같은 굵은 선과 면으로 표현해 마치 목탄으로 그린 평판화와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작품은 생각과 표현을 덜어내면서 얻어 낸 화면을 통해서 탈아(脫我)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해 주목된다.

 

 

춤 Dance

1964,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돌 위에 그림을 그린듯한 이 작품은 거친 질감과 액자식 화면구성이 인상적이다. 두텁게 쌓아 올린 물감층 위에 수많은 스크래치를 내었고, 그로 인해 미묘하게 달라지는 색감들이 푸른 삭면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꾸며주고 있다. 화면 위에는 간결한 선으로 춤추는 인물들을 묘사하고 인물들의 형태는 반구대 암각화, 동굴벽화 또는 고대 그리스 디필론 도기의 문양 등을 연상케 한다..

인물 주변의 목이 긴 새, 해와 달 등의 소재들은 전통적으로 음과 양을 상징하는 모티프이기도 하다. 이 시기 작품들의 특징인 실험적인 제작 방식과 다양한 추상적 표현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천막/막사舍* Tent/ Shelter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과 목탄, 개인소장 Oil and charcoa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제11회 앙가주망 전>(1973)>(1973) 출품 당시 제목

 

 

자화상 Self-portrait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등장인물의 자세가 화가의 평소 모습을 꼭 빼닮았다는 유족의 증언에 따라 작품의 제목이 <자화상>이 된 작품이다. 1951년 작 <자화상>이 파란 하늘과 노란 들판이 대조를 이루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 끝에 장욱진이 서 있는 풍경이라면, 이 작품은 모든 배경을 생략하고 오로지 사람의 형상 즉 얼굴, 몸, 팔다리를 중봉(中鋒)의 필선으로 마감한 인물화이다.

최소한의 붓질을 구사하되 신체를 동그라미와 직선의 도형으로 간략하게 그렸다. 그림 속 장욱진은 직립 상태가 아니라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둔 채 삐딱하게 서 있는데, 이러한 자세는 불상에 표현된 트리방가(tribhanga) 자세를 연상케 한다.

 

 

잔디* Grass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Oil on canvas, MMCA

* 《제11회 앙가주망 전>(1973)>(1973) 출품 당시 제목

 

검은색의 간결한 선과 연한 갈색으로 이루어진 바탕 표현은 절제와 함축이라는 화가의 조형의식을 잘 보여준다. 단순화된 먹선을 이용한 인물 표현 방식은 1970년도에 등장하기 시작해 1973년에 중점적으로 그려졌다. 절제된 선을 이용한 본질의 표현 방식은 서울화랑 대표이자 미술사학자인 김철순(1931-2004)의 권유로 Zen: Wisdom of Asia라는 선불교 화집의 밑그림을 위해 시작한 마커펜 그림이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분만될 시기를 꿋꿋이 기다리는 일, 이것 만이 예술가의 삶'이라고 말하는 라이나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처럼, 꾸준하게 추구하며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날마다 그것을 배우고 괴로워하면서, 배우고 그 괴로움에 지침이 없이 그 괴로움을 감사하는 데 예술가의 생활은 충만하리라 믿는다."

                        - 장욱진, 예술과 생활」, 「신동아, 동아일보사, 1967. 6.

 

 

새와 나무 Bird and Tree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산과 나무, 새와 달을 본질만 간추려 핵심만 담아냈다. 이와 같은 추상화된 형태에 강한 질감을 더해 현대적 산수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캔버스에 안에 그려 넣은 또 하나의 프레임은 작은 그림이지만 화면을 더욱 커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으며, 동양화적 유화로 가는 과도기적 현상을 잘 보여준다.

 

 

가족

1975,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Family, 1975,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인물

1974,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People, 1974,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새벽 두 시건 세 시건 눈만 뜨면 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어떤 때는 샛별이 보일 때까지도 혼자서 쏘다닌다. 그건 서성이는 것도 아니며 더욱 무얼 찾는 것도 아니다. 새벽을 사랑하고 새벽을 느끼고 새벽이 곧 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새벽 산책으로부터 돌아와 화폭과 마주하면 거기 또 하나의 세계가 형성된다. 나는 그것을 추구하며 이룩해 가는 것이다.

                       - 장욱진, 「새벽의 세계」, 『샘터』, 1974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 자기를 한 곳에 몰아세워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욕망과 불신과 배타적 감정 등을 대수롭지 않게 하며 괴로움의 눈물을 달콤하게 해 주는 마력을 간직한 것이다. 회색빛 저녁이 강가에 번진다."

-장욱진, 「새벽의 세계」 『샘터』, 197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