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10
2024. 1. 16. 화요일 오전
전철을 이용해 가까운 삼성산, 관악산, 호암산 등 서울에 있는 산만 다니다 보니 식상한 느낌이다.
하여 어제는 기차를 이용해 대전의 계족산성을 다녀왔다.
산성에 관심을 갖다 보니 전에 생각해 둔 아산의 영인산성을 기억하고 이동경로를 찾아 실행에 옮긴다.
영인농협 앞에서 하차하면 영인산으로 가는 길목에 여민루란 누각이 나온다.
여민루는 조선시대에 아산현 관아 자리 입구에 세운 누각인데 이제는 한적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장항선이 아산을 거쳐 예산, 홍성 등으로 철길이 생기며 변두리로 물러났다.
아산현 관아는 영인초등학교에 자리를 내주고 여민루만 덩그러니 남았다.
여민루 慮民樓
지정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호, 지정 연월일 : 1973. 12. 24
위치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20, 시대 : 조선 시대
'여민루'는 조선 시대 아산현 관아 입구에 세워져 있던 문 위의 누각 이름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네모난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세워 다락마루를 만들었다. 아래층 3칸에는 각각 문을 달아 통로로 사용하였으며, 오른쪽과 왼쪽 방문 위에 가로로 댄 나무 위로 홍살을 설치하였고, 옆면의 2칸은 널빤지 벽으로 막았다.
1415년(태종 15) 대제학을 지낸 정이오의 누각 기록에 따르면 아산 현감 최안정이 부임한 지 3년이 되던 해에 세웠다고 하는데, 여민루 현판의 기록에 따르면 1834년에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여민루라는 이름은 당시 영의정이던 호정공 하륜이 “백성을 위하는 뜻을 취하다"라는 뜻으로 '취위민지의(取爲民之意)'라고 한 말에서 온 것이다.
(안내문)
여민루 편액
여민루 측면
누각이란 게 원래 벽이 없는 건물이다.
아산현 관아 앞에 세운 여민루는 앞쪽에 대문이 있는 걸로 보아 대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관아를 감싸며
담장이 지나갔을 것이다.
어느 순간 조그맣던 관아는 사라지고 1911년에 아산공립보통학교가 들어선 이후 언젠가 영인초등학교로 개명되었다.
영인초등학교 운동장엔 제법 멋지게 가지가 우거진 소나무는 학생들에게 그늘을 내어준다.
단출한 여민루를 지나 연인산 방면으로 이동하다 보면 아산 향교를 만나게 된다.
아산 향교 牙山 鄕校
지정별 : 충청남도 기념물 제114호, 지정 연월일 : 1979, 12. 23
위치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82, 시대 : 조선 시대
'아산 향교'는 국가가 세운 조선 시대 교육 기관으로 아산의 교육과 교화를 맡은 곳이다. 처음 지어진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 초에 아산리 동쪽 향교골에 있던 것을 1575년(선조 8)에 아산 현감 이지함이 현재의 장소로 옮겨지었다고 전한다.
아산 향교는 앞쪽에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를 지내던 대성전이 있다. ㄱ자 모양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유생들이 생활하던 동재(東齋)가 있는데, 특이한 점은 동재가 명륜당과 일직선으로 있다는 점이다.
명륜당과 동재 뒤에는 내삼문과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중국의 5성 4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명륜당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고, 동재는 앞면 4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안내문)
요즘 어딜 가나 향교의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아산향교도 문이 잠겨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보이는 대로 사진 몇 장 찍고 영인산 방면으로 이동한다.
향교를 옆으로 끼고 계곡으로 오르다 보니 영인 석불을 만나게 된다.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석불의 발은 보이지 않고 최근 깎은 돌 기단에 모셔져 있다.
영인 석불 靈仁 石佛
지정별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0호, 지정 연월일 : 1984. 5. 17, 위치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615
수량 : 1구, 규모: 높이 265cm, 너비 87cm, 재료 : 화강암, 시대 : 고려 시대
'영인 석불'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 입상이다. 머리에는 보석으로 꾸민 관을 쓰고 있고 두 볼은 통통하며 귀는 목까지 내려온다. 양어깨는 당당하게 벌어져 있으며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왼쪽에 걸쳐져 있다. 옷의 주름은 닳아서 확인되지 않지만, 옷자락은 배 아래까지 늘어 뜨린 것으로 보인다. 왼손 손바닥 위에는 동그란 보주가 올려져 있으며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로 오른쪽 가슴 앞에 놓여 있다. 불상의 목 부분에 남아 있는 시멘트 흔적은 청일전쟁 때 목이 분리된 채 버려져 있던 것을 1945년 해방 후 동네 주민들이 다시 얹으면서 생긴 것이다.
(안내문)
석불과 석탑 사이는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지 흙이 파헤쳐졌고, 흰색 페인트까지 칠했다.
한쪽 천막에는 공사 관계자 몇 명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공사 관계자들이 지내는 장소
영인 석불이나 석탑은 산 그림자에 가려 검게 보인다.
겨울 해가 낮게 뜨니 정오는 돼야 햇빛이 들어오려나...
영인 오층 석탑 靈仁 五層石塔
지정별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9호, 지정 연월일 : 1984, 5. 17, • 위치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615
수량 : 1기, 규모 : 높이 398cm, 시대 : 고려 시대
‘영인 오층 석탑’은 관음사 근처 영인 몸돌, 지붕돌로 되어 있는데, 받침돌은 높이 110cm로 위층 받침돌에는 연꽃을 엎어놓은 듯한 연꽃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면 야산에서 발견되었는데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탑이 석가모니의 사리나 유품을 보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건조물이라는 점에서 인근 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탑은 중층 구조의 받침돌과 5층의 몸돌에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기 다른 받침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1·2층은 3단, 3·4·5층은 2단이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전한 기울기를 이루다가 모서리 끝부분은 고려 시대에 흔히 보이는, 위로 치켜 올라간 모습이다. 지붕돌은 노반과 복발만이 보인다. 하대갑석 및 상대갑석이 일부 파손되고 하대석이 없어졌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2017년 실시한 석탑 기초부 발굴조사 결과 중앙에서 서쪽으로 이격 되어 복원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2018년 공사 시 석탑 기초부 중앙으로 위치를 재조정하여 복원하였다.
(안내문)
영인 석불과 오층 석탑을 보고 개울을 건너 영인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접어든다.
산행에 앞서 여민루와 아산향교, 영인 석불과 석탑을 덤으로 보는 행운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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