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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근현대 작품이 전시된 서울공예박물관 2부

by 즐풍 2024. 1. 7.

2023_226 B

 

 

 

2023. 12. 23. 토요일 오후

 

전시된 유물의 양이 많아 두 파트로 나누어 올린다.

제목에 있듯이 일제강점기인 근현대 시기에 만든 도자기를 비롯해 많은 유물이 전시되었다.

조선시대의 다소 투박하고 거칠었던 도자기 문양은 보다 정교하고 반짝 거린다.

이천에 있는 해강과 해림도자기에서 재현한 청자상감을 볼만하다.

지금은 기계로 다지고 가스불이나 전기로 구어 작품은 더 정교하다.

현재의 작품은 또 언젠가 유물로 박물관에 전시될 날이 있을 것이다.

 

 

 

 

김정섭 1899~1988

 

김정섭은 이왕직 미술품제작소에서 금속 조각을 배웠다. 1930년부터는 종로 1가에서 금은방 '삼광상회'를 경영하고,

해방 이후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은제 표주박모양 주전자  銀製瓢形注子

김정섭, 은, H 22.5cm, W 1.5cm, 20세기 초반

 

 

은제 봉황무늬 화병 銀製烏銅入象嵌鳳凰文花瓶

김철주, 은에 오동상감, H 23.5cm, W 6.2cm, 2010년, 국립무형유산원 소장

 

 

김진갑 1900~1972

 

김진갑은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칠 공부에서 나전칠기를 익혔고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에 여러 차례 특선하는 등 큰 명성을 얻었다.

일제강점기에 나전칠기공예제작소를 운영하다가, 해방 후 신성공예사로 이름을 바꿔 제작 기술을 전수하였다. 나전칠기의

산업화에 기여하였으며 동시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동태 나전칠 구름 용무늬 화병 銅胎螺鈿漆雲龍文花瓶

김진갑, 황동에 옻칠, 나전, (화병) 18.2cm, W 5.98cm, (받침) 2.8cm, W 12.2cm, 20세기 초반

 

 

도태 나전칠 공작무늬 화병 陶胎螺钿漆孔 雀文花瓶

김진갑, 청자에 옻칠, 나전과 금분으로 장식, H 30. 1cm, W 9.2cm, 1930년대

 

청자 위에 흑칠을 하고 나전과 금채로 장식한 화병이다. 몸체에는 암석에 앉아있는 공작새와 모란꽃 그리고 나비 

한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화병의 아래쪽의 '김진갑 제작 (金鎭甲 製作)’이라는 붉은 인장[朱印]을 통해 작가를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나전기법에 일본 칠기 기법을 수용한 기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컴퓨터 단층 촬영(CT) 결과에

의하면 원래 분리되었던 굽다리와 굽바닥면을 옻칠로 부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도소리

정창호, 옻칠, 나전, H22.5cm, W 27cm, 20세기

 

 

김봉룡 1902-1994

 

김봉룡은 박정수와 전성규에게 나전칠기 제작 기술을 배웠다. 전성규가 일본 조선나전사[朝鮮之螺社]에 초빙되었을 때 동행하였고, 1922년 귀국 후 삼청동 전성규의 공방에서 근무하였다. 1925년 파리 만국장식미술공예 박람회 등 외국의 박람회에서도 수상하였다. 1930년 고대미술나전칠기 공예소를 설립·운영하였다.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으로 지정되었다.

 

나전칠보살무늬 향합 螺鈿漆菩薩文香盒

김봉룡, 나무에 옻칠, 나전, H 3cm, W 7cm 20세기 (왼쪽 사진)

 

나전칠쌍룡무궁화넝쿨무늬 함 螺鈿漆雙龍無窮花唐草文函

김봉룡, 나무에 옻칠, 나전, H7.5cm, W 21.7cm, D 27.8cm, 1970년대 후반 (오른쪽 사진)

 

 

전성규 1880-1940

 

전성규는 통영 출신 엄항주로부터 나전칠기 제작 기법을 배웠다. 1920년 일본의 나전칠기 회사인 조선나전사[朝鮮之螺鈿社]에 초빙되었던 그는 귀국하면서 금속 세공용 실톱 사용법을 익혀와 나전 제작에 활용하였고 이는 주름질 기법의 혁신을

가져왔다.

1925년 제자 김봉룡과 파리 박람회에 나전칠기를 출품하여 수상하였고 1934년, 1937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927년 서울에 나전실업소를 설립하여 제자들을 기르다가, 1937년 평안북도 태천칠공예소 교장으로 부임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의 제자로는 김봉룡, 심부길, 송주안, 민종태 등이 있다.

 

나전칠 낚시하는 어부그림 사각상 螺鈿漆釣魚山水圖四角床

전성규, 나무에 옻칠, 나전, H 9.5cm, W35.5cm, D22cm, 20세기 초반

 

 

나전칠 매화그림 서류함 螺鈿漆梅花圖函

송방웅, 나무에 옻칠, 나전, H 9.7cm, W 32cm, D 24.2cm, 2000년, 국립무형유산원 소장

 

 

분청사기 연꽃무늬 접시 粉青沙器蓮葉文楪匙

황종례, 분청사기에 음각, H 4.7cm, W 28.3cm, 20세기말~21세기 초

 

 

황인춘 1894-1950

 

황인춘은 한양고려소에서 청자 제작에 입문하였다. 1929년 영등포에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재현 청자 공방을 설립하여

운영하던 중 경기도 공업시험소의 촉탁 기술자로 위촉되었다. 이후 개성에 고려청자연구소를 열었고, 개성제도업조합의 책임을 맡았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청자 다기세트 靑磁茶器一襲

한양고려소, 청자에 상감

(잔) H 4cm, W 6.2cm, (수구) H 3.6cm, W9.5cm, (주자) H7.5cm, W8cm, 20세기 초반

 

 

절정기의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청자상감운학무늬 매병>을 재현한 작품이다. 상감기법으로 흑백의 원 테두리 안에 운학

무늬로 장식하고, 바탕에도 운학 무늬로 가득 채웠다. 굽바닥에 ‘海剛(해강)’이라는 서명이 있다. 해강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재현 청자 제작소인 한양고려소(漢陽高麗燒)에서 근무한 유근형(柳根瀅, 1894~1993)의 호이다. 유근형은 전국의 청자

가마터를 조사하고 고려청자의 재현에 전념하여 우리나라 근현대를 대표하는 청자장(靑磁匠)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천에 근무할 때 해강도자기는 유명했다.

1994년 당시만 해도 해강도자기는 4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번 공장을 방문한 기억이 있다.

 

청자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 青磁象嵌雲鶴文梅瓶

유근형, 청자상감, H 48cm, W 7cm, 20세기

 

 

청자상감 국화무늬 표주박모양 주전자 靑磁象嵌菊花文無形注子

한양고려소, 청자에 상감, H21.7cm, W 9cm, 20세기 초반

 

 

유근형 1894-1994

 

유근형은 청자재현으로 유명한 한양고려소에서 근무하면서 공예에 입문하였다. 옛 가마터를 조사하면서

고려청자를 연구하였고, 1967년 해강고려청자연구소를 세워 본격적으로 청자를 재현하였다. 

그는 고려청자의 명맥을 후대로 전수하는 데 기여하였다.

 

분청사기 물고기무늬 항아리 粉青沙器魚文小壺

H16cm, W 4.5cm

 

 

분청사기 구름학 모란무늬 항아리 粉青沙器雲鶴牧丹文小壺

H10.4cm, W 9cm

 

 

나전칠 인물무늬 경상  螺鈿漆人物文經床

나무에 옻칠, 나전, H 26cm, W 67cm, 1920년대

 

 

재현한 달항아리

 

 

일제강점기 때 한양고려소에서 재현한 청자

 

 

삼화고려소의 잔 세트

 

 

한양고려소, 향로

 

 

한양고려소의 화병

 

 

삼화고려소의 항아리

 

 

화염을 견딘 금속, 권력과 권위를 만들다

 

청동기시대부터 제작된 금속기들은 그것을 가진 자에게는 권력과 풍요를 못 가진 자들에게는 복종과 죽음을 안겨주었다. 특히 고대 국가 성립 이후 장인들이 제작한 동검(銅劍)과 동경(銅鏡), 금관과 귀걸이 등의 금속공예품들은 계급과 신분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고 드러내주었다. 한편 향로, 금강령, 동종 등은 고려 사회에서 불교가 차지하고 있던 정신적 권위를 보여준다. 

 

 

 

 

 

금강령 (복제품)

불교사찰에서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작은 종이다.

흔들면 맑은 소리가 난다.

밀랍 거푸집을 이용해 제작되었는데, 표면에는 모두 한 분의 불교 수호신들이 표현되어 있다.

 

 

청자상감 구름과 학 무늬 매병 靑磁象嵌雲鶴文梅瓶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청자에 구름과 학 무늬 감입, H 31.7cm × W5.2cm, 고려, 12세기 후반~13세기 초반

 

매병이라 불리는 이 기형을 고려 때는 '준(樽)'이라고 불렀다. 매병은 감상용 혹은 꿀, 기름 등을 담는 실용 용기로 사용되었다. 몸 전체에 검은색 흙 (赤土)과 흰 흙(土)을 태토(胎土)에 박아서 학과 구름무늬를 표현하고, 입구는 음각으로, 아래 부분은 상감으로 번개무늬 띠를 둘렀다.

1213년 이전 난파된 마도 2호선의 유물 중 <청자상감 국화 모란 유로 죽문 매병(靑磁象嵌菊花牡丹柳蘆竹文梅甁)>과 기형, 흑백 상감 장식이 비슷하고, 몸체에 상감된 구름학 무늬가 부안 유천리에서 출토되는 것들과 유사하므로 이 매병은 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 부안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와 같은 청자로 구름 문양을 위주로 찍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자연적 혹은 인공적으로 유약이 발라져 표면이 매끄럽고, 도구로 동일 문양을 연속적으로 찍은 도기가 장인들에 의해 제작된다.

전시된 <인화 무늬 합>은 물레로 그릇의 형태를 만든 후 뚜껑과 몸체에 열쇠 구멍과 반원 모양의 무늬를 반복적으로 찍어 장식하였으며, 시유(施釉)의 흔적도 남아 있다.

 

 

1층 로비에 전시된 문갑

 

 

오후 4시 20분경에 공예박물관에 들어섰으니 마감시간 40분 전이라 시간이 촉박했다.

개인 전시의 하나인 '만년사물'은 볼 시간이 없었다.

언제든 방문하면 되니 그때 보기로 하고 직원들이 정리할 수 있도록 서둘러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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