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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주환 컬렉션 동녘에서 거닐다 관람

by 즐풍 2023. 12. 12.

2023_206

 

 

 

2023. 10. 17. 화요일 오후에 관람

 

 

모처럼 청계산을 올랐다.

산행할 때는 '23년 항공우주방위산업전람회 축하를 위한 에어쇼를 보기도 했다.

우연찮게 서울랜드로 하산하며 과천립현대미술관 전시 중인 동산 박주환 컬렉션을 관람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1990년대까지의 한국화가 전시된 것이다.

이는 동산방화랑 설립자인 박주환이 수집한 작품의 그분의 아드님이 기증한 작품들이다.

시대별로 전시하여 작품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배치했다.

작품의 대부분 표구하여 전시했는데, 유리에 조명이 반사된 불빛이 찍힌 건 안타깝게도 폐기했다.

(안내문이 비교적 상세하여 그대로 올린다)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동산 박주환 컬렉션’은 동산방화랑의 설립자 동산(東山) 박주환(1929–2020)이 수집하고 그의 아들 박우홍이 기증한 작품 209점이다. 1961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표구사로 시작한 동산방화랑은 197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진 작가 발굴과 실험적인 전시 기획을 바탕으로 근현대 한국화단의 기틀을 마련해 오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수집된 ‘동산 박주환 컬렉션'은 한국화 154점, 회화 44점, 조각 6점, 판화 4점, 서예 1점의 작품 총 209점으로 구성되었다.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 은 이 중 90여 점을 선별하여 한국화 전문 화랑으로서 기증한 대표작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명한다. 이 전시는 1920년대에서 2000년대의 한국 회화에 드리워진 고민과 실험의 단층들을 포괄한다. 사진사이자 사군자 화가로서 한국 근대미술의 미적 가치를 탐구한 김규진(1868-1933)부터 현대인의 삶을 수묵으로 표출하는 유근택(1965- )에 이르기까지 작가 57인의 예술적 실천을 통해 한국미술의 시대적 변천과 그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군자화, 산수화, 문인화, 영모화를 비롯하여 지·필·묵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다채로운 작품을 관련 아카이브와 함께 살펴본다.

 

 

김진우(1883-1950), <묵죽(墨竹)

 

1933, 종이에 먹, 8폭 병풍, 146x43cm(6), 146x41cm(2), 병풍: 210×363cm

滌穢引清 癸酉流頭節 金剛山人 振宇

더러움을 씻고 맑음을 끌어들이네

계유년(1933) 유두절에 금강산인 진우

 

 

김은호(1892-1979), <매화(梅花)>

1939, 비단에 먹, 색, 8폭 병풍, 129×44.5cm(6), 129×42.5cm(2), 병풍: 201.5×374.4cm

 

<매화>는 두 그루의 매화가 커다란 화면 전체에 펼쳐져 있는 8폭 전수식(全樹式) 병풍 그림이다. 전수식 매화도는 화폭

전체를 매화 한두 그루로 채워 표현한 양식을 일컬으며, 장육매화(丈六梅花)라고도 부른다.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는 병풍 전면에 걸쳐 백매와 홍매의 장대한 가지를 꽉 채워 묘사하고, 나무의 상단 및 하단은

과감히 생략했다. 또한 작은 참새들을 그려 넣어 화면에 생동감을 주었다.

화면 왼편 하단의 기묘(己卯)년 봄에 제작했다는 낙관에 의거하여, 1939년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노수현(1899-1978), 설경

1950년대, 종이에 먹, 색, 68.5×140cm

 

노수현(1899-1978), 추경

1974, 종이에 먹, 색, 68.5×181cm

 

 

서화미술회(書畫美術會)

 

1911년 옥경(玉磬) 윤영기(1833-1927년경)가 후진양성을 위해 마련한 경성서화미술원(京城書畵美術院)에서 시작되어

근대적 미술교육 기관으로 역할하였다. 서화미술회는 서과(書科)와 화과(畵科)로 나누어 학생을 모집했으며 전공별 3년

이수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 소림(小琳) 조석진(1853-1920)을 사사한 졸업생들은

한국근대동양화단의 대표적 화가로 활동하였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에서 선보이는 서화미술회 출신 작가들은 이당(以堂) 김은호, 심향(深香) 박승무, 청전(靑田) 이상범,

심산(心汕) 노수현, 소정(小亭) 변관식, 정재(鼎齋) 최우석, 묵로(墨鷺) 이용우 등이 있다.

 

 

동연사(同硏社)

 

1923년 서화미술회 출신인 청전(靑田) 이상범, 심산(心汕) 노수현, 소정(小亭) 변관식, 묵로(墨鷺) 이용우가 함께 조직한

동인회이다. 이 단체는 ‘신구화도(新舊畵道)의 충진(忠進), 즉 '옛 그림을 연구하여 새로운 그림을 그리자'를 목표로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과 근대화를 모색했다. 주변 상황과 여건에 의해 지속적인 단체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1924년 해체되었지만, 동연사 결성 이후 이들은 각자 근대 화가로서의 예술적 양식을 구축하여 화단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용우(1902-1952), <기명절지(器皿折枝)>

1950, 종이에 먹, 색, 38.4×122.5cm

庚寅之小春 墨鷺  경인지소춘 묵로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는 구리로 만든 그릇이나 도자기에 꽃과 과일, 채소 등을 배치하여 그린 일종의 정물화로 20세기 초 근대 화단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묵로(墨鷺) 이용우(李用雨)의 <기명절지>에는 고동기(古銅器), 풍로(風爐), 탕관(湯罐) 등 여러 기물과 국화, 밤, 게 등의 다양한 소재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많은 소재를 한꺼번에 다루고 있음에도 포치가 조화롭다. 또한 묵로 고유의 맑으면서 감각적인 색감이 특징적인 그림이다. 화면 오른편에 ‘경인지소춘(庚寅之小春)'이라고 기재되어 있어 그 제작 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동양화(東洋畵)

 

'동양화'는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 에서 작품 공모 부문을 제1부 동양화, 제2부 서양화 및 조각, 제3부 서(書, 지금의 서예)로 구분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이다.

‘글과 그림은 하나다’라는 서화일치(書畫一致)의 개념이 변화하여 글씨와 그림이 분리되었으며, 서양화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동양화'가 사용되었다. 이후 동양화는 지·필·묵을 사용한 전통 양식에서 비롯된 그림을 지칭하게 되었다.

 

 

한국화(韓國畵)

 

‘한국화’는 198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주관의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 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1983년에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동양화’를 대신하여, 중국화(中國畵), 일본화(日本畵)에 대응할 수 있는 명칭으로 ‘한국화’를 사용하자는 주장은 1950년대부터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화’를 지칭하는 회화의 범위를 규정하는데 어려움이 뒤따라 ‘동양화’와 ‘한국화’가 혼용되기도 한다.

 

 

한국의 그림, 실경(實景)

 

2부에서는 1945년도에 광복을 맞이한 이래 한국전쟁(1950–1953)을 거치는 시대적 격동 속에서 전통 화단의 계보를 잇고 한국 회화의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노력했던 작가들을 조명한다. 이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단구미술원을 조직하거나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또는 백양회에 참여하며 국내외 서양 화단의 활동과는 또 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또한 미술대학이 설립된 이후에는 동양화과 교수진으로 활동하며 현대 한국화의 교육적 기반을 마련하는 등 교육자로서의 역할에도 이바지하였다.

동산방화랑은 인사동 화랑가를 거점으로 하는 한국화 전문 화랑으로서,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당대 한국 화가들과의 지속적인 교류 및 전시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수집·유통하였다. 특히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한국 동양화가 30인 초대전»(1977), ≪제3전»(1989) 등 괄목할 만한 그룹전의 기획·전시는 당대 화가들의 예술적 발전과 성취를 도모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역할하였다.

 

  손재형(1902-1981), <석죽(石竹)>

  1961, 종이에 먹, 137.5×32.3cm

  一石數竿  未了似了  

  以篆隸行草法爲之  

  世人那得知  

  那得好之耶  


  바위 하나에 몇 줄기 대나무

  아닌 듯 비슷한 듯!

  전서(篆書)와 예서(隸書),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쓰는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으며, 

  어찌 좋아할 수 있으랴.



  辛丑新春 荃道人

  신축년(1961) 새봄에 소전 도인(荃道人)

  此幅敢不自謂能到  

  第俟知者品定  

  馨又題


  이 폭은 감히 스스로 능히 도달했다고 하지 못하지만, 

  다만 아는 사람이 품평(品評)에 주기를 기다리노라.

  형(馨)이 또 적음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화제를 인용한 화제이다. 

  손재형이 김정희의 삶과 작품을 추존했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장우성 (1912-2005), <야매(夜梅)>

1970년대 후반, 종이에 먹, 색, 68×133.5cm

 

 

장우성 (1912-2005), <기러기>

1977, 종이에 먹, 색, 83×330cm

 

隨陽一點落平洲 長對蘆花別有秋 羅網稻粱散不顧 上林傳札夢中謀

볕 따라 한 점 평평한 모래밭에 내려

길이 갈대꽃 마주하니 다른 가을을 누리네.

그물과 곡식이 흩어져 있어도 돌아보지 않고

상림원에 전할 서찰 꿈속에 도모하네.

 

丁巳春分節 石舟室主人 月田

정사년(1977) 춘분절에 석주실 주인 월전

 

<기러기>는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를 그린 작품이다. 갈대와 기러기를 칭하는 노안(蘆雁)은 '노후의 안락함'을 의미하는 노안(老安)과 발음이 같아 예로부터 대표적으로 복을 기원하는 축수화(祝壽畵)로 여겨져 왔다.

기러기는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기러기가 날아오르는 것은 상서로움을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은 이 작품에서 먹과 담채의 섬세한 운용을 활용해 일곱 마리의 기러기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렸다. 일반적으로 노안도는 가을 화제로 누런 갈대가 묘사되지만, 장우성은 푸른 갈대밭과 밤하늘을 밝은 색채로 표현했다.

 

김기창(1914–2001), <매>

1979, 비단에 먹, 색, 104×194.5cm

 

정은영(1930–1990), <하일(夏日)>

1983, 종이에 색, 126×69.5cm

 

 

정은영(1930–1990), <모란과 나비>

1980년대 전반, 종이에 색, 66×62.3cm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린 그림은 부유하고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여 조선시대부터 선물용이나 집안을 

장식하는 용도로 애호되었다.

석운(石雲) 정은영(鄭恩泳)은 부친인 석하(石下) 정진철(1908~1967)의 영향으로 나비를 소재로 삼은

여러 작품을 제작했다. 나비 한 마리를 그리는 데도 치밀하게 관찰하고 5~6시간을 소요하여 털 하나까지 

세밀하게 표현한다는 작가의 언급처럼 섬세하고 꼼꼼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동산방화랑은 다수의 정은영 개인전을 개최하고, 일지(一池) 유지원, 운정(云汀) 김홍종과 함께 한국

채색화의 전통을 잇고 발전시킨 3인의 작품을 조명하는 <제3전> (1989)을 기획하여 현대 한국

채색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유지원(1935), <귀가(歸家)>

1978, 장지에 색, 4폭 병풍, 164×65.5cm(2), 164×65cm(2), 병풍: 219×299 cm

 

 

정은영(1930-1990), <훈풍(薰風)>

1983, 종이에 색, 119 × 193 cm

 

 

이응노(1904-1989), <공주 풍경>

1941, 종이에 먹, 색, 50×131cm

 

<공주 풍경>은 한적한 향토 풍경을 파노라마식 구도에 가늘고 경쾌한 필선과 미세한 먹점, 얇은 채색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는 일본 유학 중에도 수시로 홍성과 대전, 공주 등을 여행하며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사생을 기초로 하고 있으나 경물의 세부적인 묘사보다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평원시(平遠視)의 구성과 가볍고 소묘적인 필묵법으로 청신하게 대상을 표현하여 1940년대 이응노의 남화적 산수풍경의 일면을 보여준다.

 

성재휴(1915–1996), <강촌>

1956, 종이에 먹, 색, 32×126cm

 

김옥진(1927-2017), <고사방우(高士訪友)>

1976, 종이에 먹, 색, 43.5×130cm

 

 

허건(1907–1987), <추경산수(秋景山水)>

1974, 종이에 먹, 색, 66×181.5cm

 

 

이상범(1897–1972), 김기창(1914–2001), 정종여(1914-1984), <송하인물(松下人物)>

1949, 종이에 먹, 색, 46×156.5cm

 

煙耶 雨耶 如松  안개인가비인가소나무 같은데

奇於松 非松  소나무보다 기이하니 소나무는 아니로다.

其下有數層石塔倒立  그 아래 몇 층 돌탑이 거꾸로 서 있으니,

此間疑有孤庵  이 사이에 외로운 암자가 있는 듯한데,

日暮不見 月明聞鍾聲有也無  날이 저물어 보이지 않네달이 밝으면 종소리가 들리려나들리지 않으려나.

 

己丑暮春書 靑田 기축년(1949) 저문 봄에 적음청전

 

<송하인물>은 소나무 아래에서 바위에 기대어 달을 감상하는 인물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청계(靑谿) 정종여(鄭鐘汝)가 월북하기 1년 전인 1949년,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과 합작한 것이다.

합작(合作)은 근대기에 이르러 서화가들의 창작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는데, 정종여는 소나무, 김기창은 인물, 이상범은

마지막에 그림과 부합하는 화제를 써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정종여는 이상범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김기창과는 막역한 사이로 특별한 친분을 유지했으므로 함께 작품을 제작하게 된 계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인습적이고 타성적인 중국회화의 변함없는 추종과 당시 새로운 영향을 발휘하던 일본화풍의 틈바구니에서 나의 고민은 수년 계속되었다.

우리의 독특한 증화(繪畵)가 있지 않겠는가? 누가 봐도 한국화가의 그림이라고 손짚을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것이 나의 욕망이었다.

이상범 인터뷰 중에서, 「독창적 남종화 반세기 故 이상범 화백」, 『경향신문』, 1972. 5. 16.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예술가는 늙으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창조주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 날더러 마지막 소원을 말하라면 도인이 되어 선(禪)의 삼매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 김기창 인터뷰 중에서

 

 

앞으로의 그림은 동양화 서양화를 구별할 필요 없이 회화 작가라는 입장에서 여하한 재료를 사용하는 작가 자신의 주관을 회화화하자는 자유성을 의미한 것이라 하겠다.

- 정종여, 「김영기씨개전평(金永氏個展評)」, 『경향신문, 1949. 3. 16.

 

 

  김기창(1914-2001)
  <죽림칠현(竹林七賢)>

  1957, 종이에 먹, 색, 116×41.5cm

  정유년(1957) 여름 운보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중국 위(魏)·진(晉) 왕조 시절

  완적(阮籍), 혜강(嵆康), 산도(山濤),

  상수(尙秀), 유령(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을 가리킨다.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竹林)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을 주고받고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들이다.

 

 

박승무(1893-1980), <연해풍경(連海風景)>

1953, 종이에 먹, 색, 40×61cm

 

 

<추경산수>는 동연사가 결성된 1923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가을날의 암산과 물가의 쓸쓸한 풍경을 묘사한 산수화이다.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은 남종화풍을 따라 짧고 거친 필치로 대상을 표현하고, 왼쪽 상단에 시문을 적었다.

이는 활동 초기 작품의 관념산수화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채색은 아주 옅게 이루어졌으며 근경의

나뭇잎들은 부분적으로 붉은 갈색 빛을 보여 가을날의 정취를 나타낸다.

  변관식(1899–1976), 
  <추경산수(秋景山水)>

  1923, 종이에 먹, 색, 142.5×48.5cm



  層巖疊疊繞江干

  층암이 겹겹으로 강가를 눌러 쌌는데


  紅葉聲中秋色闌

  붉은 잎새 소리 가운데 가을 빛이 무르익네.


  別有個中無限景

  그 가운데 따로 한없는 경치 있으니


  蘆花如雲滿空灘
 
  갈대꽃이 구름처럼 빈 여울에 가득하네.



  時癸亥八月初

  寫爲劉錦士仁兄雅正

  以表同窓舊誼

  때는 계해년(1923) 8월 초에 유금사(劉錦士)

  인형(仁兄)께서 보고 고쳐주기를 바라며

  그려서 동창의 옛 정의(情誼)를 표함.



  小亭 卞寬植 作


  소정 변관식 작

 

 

변관식(1899–1976), <연하강산(煙霞江山)›

1940, 비단에 먹, 36×129cm 

안개와 노을 진 강과 산,  경진년(1940) 봄에 소정 그림

 

 

송영방(1936–2021), <탈춤>

1987, 종이에 먹, 색, 68 × 69 cm

 

 

송영방(1936–2021), <닭과 진달래>

1980년대, 종이에 먹, 색, 65.5×74.5cm

拾春 봄을 따다  牛玄 우현

 

 

전통적 소재와 새로운 표현

 

3부는 한국의 미술대학 '동양화과'에서 수학하고 전통 소재의 현대적 표현을 모색하면서도 서양화의 조형 어법으로부터 구별함으로써 1960년대 이후 현대 한국화의 향방을 모색했던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이 시기 작가들은 청토회, 한국화회, 신수회 등 미술 단체 활동을 통해 현대 한국화단의 예술적 전망과 실천 방향을 도모하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묵림회(1960-1964)의 활동과 수묵화 운동(1980년대)은 동양 전통 수묵화의 정신성과 질료적 표현의 가능성을 연구함으로써

현대 한국화의 추상적 실험을 이끌었다.

한편, 동산방화랑은 현대 한국화단을 이끌 중장년층의 실험적 활동을 지원하고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등의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개관전인 "동양화 중견작가 21인 초대전"(1976)을 시작으로 수묵화 운동의 출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수묵화 4인전"(1981)과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시도한 "전통적 소재와 새로운 표현"(1981) 등 다양한 기획전과 개인전은 이러한 화가들의 작품 활동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장운상(1926–1982), <한일(閑日)>

1972, 종이에 색, 178.5×268.5cm

 

 

이인실(1934- ), <정적(靜寂)>

1994, 종이에 먹, 색, 57×89cm

 

 

정하경 (1943-), <아침>

1988, 종이에 먹, 126×169cm

 

임송희(1938- ), <이른 봄>

1990년대, 종이에 먹, 색, 65.5×68.5cm

 

 

하태진(1938- ), <하경(夏景)>

1970년대, 종이에 먹, 색, 47×66cm

 

<하경>은 대담한 필묵의 구사와 우연성의 추구, 번짐의 효과와 같은 석운(石暈) 하태진(河泰瑨) 특유의 화풍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1967년경부터 작가가 고안한 '침출법(浸出法)'의 독특한 조형적 효과가 한몫을 한다.

침출법은 먹을 듬뿍 묻힌 화선지를 화면 위에 눌러 생긴 먹물 자국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으로, 화선지의 주름과 요철이

만들어낸 우연적인 효과는 실제 경치를 세밀하게 묘사한 실경산수화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며 고즈넉한 섬마을

풍경과 어울린다.

 

 

이영찬(1935- ), <하경산수(夏景山水)>

1983, 종이에 먹, 색, 100×151.5cm

 

송수남(1938–2013), <산수(山水)>

1978, 종이에 먹, 색, 95×144cm

 

 

이종상(1938–), <남해즉흥(南海郎興)>

1977, 종이에 먹, 색, 57x240.5cm

 

 

 

중도의 세계, 오늘의 표정

 

1990년대를 지나며 불어온 국제화의 바람과 새로운 문화 인식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미술 현장은 다채로운 주제와 현상들에 반응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예술의 형식과 내용 또한 보다 혁신적이고 실험적 경향으로 귀결되었다. 4부에서는 전통 수묵화의 매체적 근간인 '지필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작업 세계를 펼친 작가들을 소개하고, 한국화의 영역에서 다루어졌던 화법적 질서 또는 전통 소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양적 미감을 추구하는 서양화와 판화 작품을 선보인다.

 

1980년대 이후 동산방화랑은 한국화 이외의 장르까지 활동 범위를 확장하였다. 이는 화랑계를 비롯한 예술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어서는 시대의 요구를 담아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에 대한 방증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동산 박주환 컬렉션'은 서양화, 판화, 조각 등 확장된 작품군을 포함하여, 경계를 넘나드는 한국화 작품들을

새로이 구성하며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또 다른 통로를 제시할 수 있었다.

 

 

김호득(1950- ), <산길>

 1995, 종이에 먹, 색, 130.5×191cm

 

 

강경구(1952- ), <북한산>

1998, 종이에 먹, 색, 72×141.5cm

 

 

임효(1955- ), <무위자연-반야심>

1995, 종이에 먹, 색, 83×99.7cm

 

 

류민자(1942-), <상(像) 1>

1979, 종이에 색, 144.5×112cm

 

 

김기창(1914–2001), <화조(花鳥)>

1970년대, 비단에 먹, 색, 49.5×56cm

 

艶多烟重欲開難  紅蕊當心一抹檀

아주 예쁘지만 연기 두텁게 감싸면 피기 어렵더니

꽃봉오리 한가운데가 연분홍빛을 띠었네.   雲甫 운보

 

 

변관식(1899–1976), <춘경> 

1955, 종이에 먹, 색, 40×81cm

 

桃花灼灼水潺潺 隔斷千山與萬山

生怕漁郎漏消息 不流一片到人間

 

복숭아꽃 울긋불긋 물소리 졸졸 흐르는데

서로 떨어진 수천수만의 산들.

어부가 소식을 빠뜨릴까 겁이 나서

한 조각도 인간세계로 흐르지 않게 하네.

 

乙未初 爲惟農仁兄雅正 小亭

을미년(1955) 초에 유농(惟農) 인형이 단아하게 감정해 주기를 바라며, 소정

 

 

김충현(1921–2006), <벽계(碧溪)>

1979. 종이에 먹, 68×135cm

避暑仍避喧  檗溪惟小園  風來常滿榻  日永每關門  洒落靑松友  慇懃黃鳥言  將迎難捴廢  午枕謁羲軒

 

시끄러움을 피하고 이어 더위도 피하니 / 벽계는 오직 작은 동산이라네.

바람은 언제나 평상에 가득하지만 / 긴 해에도 매양 사립문은 닫혀있네.

시원한 푸른 소나무와 벗을 삼고 / 은근한 꾀꼬리와 말을 하네.

영접하고 전송함을 다 폐하기는 어렵지만 / 낮잠 자며 복희(伏羲)와 헌원(軒轅)을 만나려네.

 

己未之秋 書于漢風硏齋 一中 金忠顯  기미년(1979) 가을에 한풍연재(漢風硏齋)에서 씀.  일중 김충현

 

 

장선백(1934–2009), <밝아오는 설악>

1990년대, 종이에 먹, 색, 49×64cm

 

 

허백련(1891-1977), <불로장춘(不老長春)>

1959, 종이에 먹, 색, 34×138 cm

 

 

홍석창(1940- ), <홍매(紅梅)> 

1982, 종이에 먹, 색, 8폭 병풍, 66.5×38.5cm(6),66.5×32cm(2), 병풍: 142.3×316cm

 

有梅花處惜無酒  三嗅淸香當一杯  壬戌歲首  心安氣和時 

 

매화가 있는 곳에 술 없는 것이 안타까워 / 맑은 향기 세 번 맡으니 한 잔에 맞먹네.

임술년(1982) 세수(歲首) / 마음이 평안하고 기운이 조화로울 때

 

寫於抱月軒 石蒼  포월헌에서 그림 석창

 

 

석창(蒼) 홍석창(洪石蒼)은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에서 일중(一中) 김충현(1921-2006)과 여초(如初)

김응현(1927-2007)에게 서예를, 심산(心油) 노수현(1899-1978)에게 산수화를,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배웠으며,

대만 중국문화대학 예술대학원에서 중국미술을 두루 섭렵했다.

귀국 후에는 수묵화운동과 한중 국제교류에 힘쓰며, 전통 문인화의 기초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감각이 가미된 실험적인

수묵 추상을 전개하였다.

<홍매>는 8폭 연폭 병풍으로 매화 두 그루가 좌우로 힘 있게 뻗어있다. 앞의 줄기는 갈필로 나무의 거친 표면을 담아내고 후면은 습윤한 필치로 과감하게 처리하여 대비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