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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등등/사찰 탐방

안양 비봉산자락의 망해암은 낙조가 유명해

by 즐풍 2023. 12. 6.

 

 

 

2023. 12. 1. (금)  비봉산 산행 때 잠시 들림

 

 

비봉산을 오를 때 작은 지능선 정상에 있는 바위에서 조망하니 망해암이 보인다.

방향을 가늠해 암자에 도착하니 이곳까지 차량이 다닐 수 있다.

더 왼쪽에 있는 항공무선표지소로 연결되는 도로가 망해암 앞으로 연결되어 있다.

암자는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용화전에 석조여래입상이 모셔져 있으나 스님이 불경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간단하게 둘러보고 자리를 이동한다.

 

 

 

망해암 望海庵 Manghaeam Hermitage
전통사찰 제78호 


망해암은 1940년대에 편찬된 「봉은사지」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원효대사가 처음 세웠다고 한다.

이후 망해암에 관한 기록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난다. 용화전의 석불입상에 '성화 십오 년 사 월 일 조성(四月

日造成)'이라고 새겨져 있어서 이 불상이 성종 10년(1479)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조 때에 펴낸 「여지도서」, 18세기에 신경준이 쓴 「가람고」, 그리고 승정원일기, 헌종 9년(1843) 기록에도 

'관악산망해암望海庵) 등의 내용이 있다. 망해암은 순조 3년(1803), 철종 14년(1863)에 중창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하였으나, 1922년 화재로 모두 불타 다시 건립하였다. 현재의 망해암은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버린 것을 천불전과 지장전 등을 추가하여 중창한 것이다.


망해암에는 세종대왕(1418~1450 재위)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세곡 나라에 조세로 바치는 곡식을 실은

배가 인천 앞바다 팔미도 근처를 지나는데, 풍랑이 심하게 일어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었다. 뱃사람들이 당황해

할 때 한 스님이 나타나 그들을 안심시키고 배를 무사히 인도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풍랑이 가라앉은 뒤 한 선원이 그 스님에게 어느 절에 사는지 묻자 그는 관악산 망해암에 있다고 대답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선원들은 한양에 도착한 뒤 이 일을 고맙게 여겨 은혜를 갚고자 망해암을 찾았으나 그 스님은 

없고 그와 닮은 불상만 법당에 모셔져 있었다. 

선원들은 부처님의 법력(法力)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음을 깨닫고 이 일을 세종대왕께 아뢰었다. 세종대왕은 이를 

가상히 여겨 망해암 불전에 해마다 공양미를 한 섬씩 올리게 했다.
한편 망해암은 산 정상부에 자리 잡아서 안양시가지와 함께 서쪽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등 경관이 빼어나다. 

특히 여기서 보는 해넘이는 안양 9경 중 제4경으로 꼽힐 만큼 장관이다.
                                                                                                           (안내문)

 

등산로를 통해 들어가는 입구

 

 

 

종무소

 

천불전과 지장암

 

 

 

 

 

장독대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보살님 성격을 닮았겠단 생각이 든다.

 

망해암의 용화전이 대웅전인 모양이다. 스님께서 계속 불경을 외우고 계신다.

 

 

안양 망해암 석조여래입상 安養 望海庵 石造如來立像
경기도 유형문화재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여래는 부처와 같은 의미)은 용화전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3.4m에 

이른다. 머리에는 보개寶蓋, 불상의 머리 장식를 쓰고 있고, 보개를 제외한 몸 전체와 발밑에서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둥글고 양감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왼손은 가슴께까지 들어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내려서 옷자락을 쥔 듯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다. 얼굴과 옷 주름, 손 모양에서 보이는 이러한 

특성은 안성 죽산리 석조여래입상과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해주 영파리 석조보살입상 등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머리 위에 올린 보개의 아랫면에 "성화 15년 4월에 조성하였다. 成化十五年四月日造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이 보개가 조선 성종 10년 1479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보개를 쓰고 있는 서울 약사사 

석조여래입상과 양평 불곡리 석조여래입상 등 조선시대 석불은 얼굴과 옷주름이 투박하고 간소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이 불상과는 크게 다르다. 

따라서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후 조선 성종 대에 새로 보개를 만들어 씌웠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용화전'은 석가모니부처를 이어 미래에 이 세상에 내려올 미륵부처를 모시는 전각 이름이며, 고려 전기에 

미륵석불이 많이 조성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석조여래입상은 미륵불상일 가능성이 크다.

 

 

삼성각

 

 

 

아래 두 사진은 안양시청 문화관광에서 가져온 일몰 풍경이다.

 

망해암(望海庵)이란 ‘바다를 볼 수 있는 암자’라는 뜻으로,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순조 3년 정조대왕의 

모친인 혜경궁홍씨가 중건했다고 알려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아름다운 서해바다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각박한 도시 일상을 벗어나 나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안양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