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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국립중앙박물관 조선관 관람

by 즐풍 2023. 12. 4.

 

 

 

2023. 10. 8. 일요일에 관람

 

 

현재와 제일 가까운 조선시대 전시관으로 들어오면 가장 많은 유물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많기는 하지만 신라시대만큼 화려함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서나 교지 등 일상적인 건 사진에 담지 않으니 사실 보여줄 게 별로 많지 않다.

조선은 사농공상 순으로 중요시해 상업이 발달하지 않아 국내는 물론 외국과도 교역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백성은 자급자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보니 먹고사는 데 급급했다.

문화 발전은 별로 없고 성리학에만 빠져 상놈과 양반만 가리던 시절이라 특별한 유물은 별로 없다.

 (이번에도 모두 박물관의 안내문을 옮긴 것으로 별도 표시는 생략한다) 

 

 

 

조선관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게 임금의 자리인 용상이다.

 

달항아리 Moon Jar
조선 18세기, 백자, Joseon Dynasty, 18th century, White porcelain


조선의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
'달항아리'라는 명칭은 둥근달을 연상시킨다 하여 높이 40cm가 넘는 백자항아리에 붙이는 이름이다. 커다란 대접 두 개를 잇대어 만들기 때문에 달항아리의 선은 정형화된 원이 아니라 살짝 이지러져 실제의 달과 같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This jar displays the representative shape of white porcelain jars produced during the Joseon dynasty,

which are more widely known as the "moon jar".

 

 

수표 水標 Water Gauge

보물, 복제품

 

 

대동여지도와 목판 Woodblocks and Daedongnyeojido


대동여지도는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하고 목판으로 인출하여 간행한 전국 지도로 우리나라를 남북 120리 간격으로 구분해
22층으로 나누었습니다. 모두 펼쳐 연결하면 세로 약 6.7m, 가로 약 3.8m의 초대형 지도가 됩니다.
산줄기와 물줄기 표현이 상세하고 정확하며 오늘날의 지도처럼 정보를 가로로 표기한 점이 특징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새긴 목판 12매에는 제작 이후에 수정한 흔적도 남아 있는데, 오류를 고쳐 보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김정호의 열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우리 민족의 지도 제작 전통이 집대성된 최고의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박과 단속 Rise of Gambling

 

담배와 술, 바둑과 투전이라면, 보통 사람들 중에 못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유만주兪晚柱(1755-1788)의 『흠영欽英 』

 

재물로 도박하는 자는 장 80에 처하고 판 위에 흩어진 재물은 관청에 들이며, 도박판을 열어 장소를 제공한

사람도 같은 죄로 하되 현장에서 발각된 자만 검거하고 관직이 있는 자는 한 등급을 더하여 처벌한다. 『대명률』


도박은 오랜 역사를 지니며 생산력이 높고 불확실한 사회에서 더욱 성행합니다. 조선 후기에도 도박이 

성행했습니다. 사기도박도 늘었고 도박장을 개설하여 고리로 이자를 놓거나 자릿세를 뜯는 자들도

나타났습니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자가 많아지면서 도박을 금지했으나, 거리의 점포에서 도박

도구가 일상용품으로 팔렸습니다.

 

 

풍요로운 삶 Life of Affluence


어른어른 빛나는 물건들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구나.
깔개는 몽고 것이요, 안석은 일본에서 왔네.
은주시대 청동기 골동품에 보배로 장식한 쟁반이며
서늘한 자리 상아로 엮었고 따뜻한 전방석 봉황을 수놓았네.   

                                                                                이조원李祖源(1735-1806)의   대고大賈』


부유층은 여가 시간에 바둑, 장기, 투호, 활쏘기를 하며 심신을 단련했고,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며 서화를 즐기거나

문방구, 골동품, 서책, 분재, 수석을 수집하고 감상했습니다. 특히 청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화려한 문방구를 

선호했습니다.

 

 

빈곤한 삶 Life of Poverty


젖먹이 아이마저도 군적에 올려졌더라오
집에 무엇이 남았나, 외양간의 누런 송아지 한 마리뿐이었소.
그놈 팔아 관가에 돈 바치고 나니 또 포흠이 남아 있더라오  
베틀로 베 몇 필 만들어 모두 겨울 군복 만들라고 주었더니,
어이 한 자 한 치 베인들 남겨, 내 아랫도린들 가릴 수 있었겠소.
입고 먹을 것도 없으니 어떻게 이 한 해 보낼는지.           

                                                                          홍양호 洪良浩(1724-1802)의  유민원流民怨』


어느 시대나 가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조선시대에도 가혹한 세금과 군역을 피하기 위해 

노비가 되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양반층이 토지를 계속 늘려가면서 토지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한 하층 농민이 증가했습니다. 

터전을 상실한 사람은 한양으로 몰려들어 *임노동자가 되었습니다.

 

* 임노동자: 노 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조선후기 농민층의 분화 과정에서 등장함

 

구름무늬 병·접시·합 白磁靑畵雲文甁·接匙·盒
조선, 19세기 후반, 청화백자 


19세기에는 청화안료가 18세기에 비해 값싸고 풍부하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그릇 장식에 

청화안료를 넉넉하게 사용하였다.
구름무늬 백자의 문양은 이전과 다르게 바탕 면을 청화 안료로 파랗게 칠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여 화려함과 장식성을 더했다. 새로운 형태와 문양, 표현 방식이 등장한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청화백자이다.

 

 

 

소나무 호랑이 까치무늬 항아리 白磁靑畫松下虎鵲文壺

 조선 18-19세기, 청화백자,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18세기 후반 동물무늬 청화백자
정조正祖(재위 1776-1800) 때에는 새와 동물 문양의 청화백자가 제작되었다. 이 청화백자의 까치와

호랑이 그림은 조선시대 회화에서도 볼 수 있다.

호랑이는 탐관오리를 까치는 민초를 상징하는 풍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호랑이는 힘이 있는

동물로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난초무늬 항아리 白磁靑畫蘭草文壺
조선 18세기, 청화백자, 1981년 이홍근 기증


18세기 사군자 문양 청화백자 
청화백자靑畵白磁는 청화 안료로 백자 위에 문양을 표현하는 백자이다.

전란 이후 국가 경제가 회복되자, 질 좋은 자기를 생산하는 분원이 정비되면서 백자 생산의

재도약의 시기를 맞이했다. 18세기에는 문인 취향의 문양으로 장식한 청화백자가 제작되었다.

난초 문양은 18세기 청화백자에 처음 사용되는 문양이다. 

 

용무늬 항아리 白磁青畫雲龍文壺
조선 18세기, 청화백자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무늬 항아리
용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힘을 지닌 동물로 여겨져서 제왕의 권력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용무늬 백자항아리를 꾸준히 제작했다.

이는 용무늬 항아리가 임금의 절대적인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세자시강원 전교현판 世子侍講院 傳敎懸板
조선 1745년(영조 21) 10월 26일, 나무

 

쉬지 말고 공부하라는 영조의 훈계
세자시강원에 걸렸던 현판 중 하나로, 영조英祖(재위 1724-1776)가 강의를 자주 건너뛰는 세자를 훈계하는 내용
이다. 조선시대 세자에 대한 교육을 서연이라 하
며,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담당했다. 영조는 어린 시절 총명했던 사도세자思悼世子(1735-1762)에게 많은 기
대를 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그 기대를 저버려 훗날의 비극을 초래했다.


어릴 때 하는 공부는 하루만 건너뛰어도 안타까운데, 이를 빠트리는 이유가 너무 많다. 예전 선비들이 말한 것처럼,

나는 부모님의 상을 당했을 때 장례 전에도 강학을 하였다. 하찮은 일들을 핑계대어서야 되겠는가?
이후로는 기일에도 수업은 예에 따라 할 것이며, 궁 밖으로 나가는 날 외에는 모두 수업하도록 하라.

속대전續大典에도 기록해 두어라. 

 

 

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
조선 1801년(순조 1), 종이에 활자 목판 인쇄, 보물 제1901-7호

 

화성 건축 종합보고서
『화성성역의궤』는 공사 일지, 동원된 장인의 명단, 사용된 물품의 종류와 수량 등 화성 건축과 관련된 자료를 수록한 책이다. 수원 화성은 주거와 군사 기능을 모두 갖춘 계획도시이다. 전통적 축성 기법에 실학자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서 개발한 거중기擧重機 등을 활용하여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공사비를 줄였다.

 

 

화성성역에 실제로 사용된 금액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수록


실제로 들어간 돈을 모두 더한 55,734냥 1전 1푼 가운데
돌 떠낸 값 3,941냥 1전                화공 공임 236냥 4푼                            가칠장이 공임 165냥 6푼
벼린 쇠 값 486냥 5 전 9푼           숯값 110냥 7전                                     담장석 값 876냥 2푼
부계장이 공임 354냥 8전            조각장이 공임 223 냥 전 6푼                나막신장이 공임 651냥 8푼
큰톱질장이 공임 592냥 8전         산자목 등 물건 값 1017냥 1전 9푼       수리, 장치한 철물값 2,785냥 2푼
기와 값 3,592냥 5푼                    벽돌값 955냥 7전 2푼                           석회 값 254냥 6전 9푼
단청 값 849냥 8푼                       작은 톱장이 공임 1,080냥 6전              걸톱장이 공임 392냥 4 전
기톱장이 공임 611냥 6전             선장 공임 358 냥 전                              도배에 들어간 돈 119냥 1푼
포장 값 10냥 3푼                         안자장이 공임 34냥 2푼                        박배장이 공임 33 냥 전 8푼
향교 제기 값 137냥                     향교 제기 값 137냥 4푼                         깔개장이 공임 1냥 6전 8푼 
석수 공임 1,534냥 6전 8푼         모군 품삯 10,547냥 2전 5푼                  대장장이 공임 209냥 1전 5푼 

짐군 품삯 1,107냥 2전                목수 공임 9,802냥 5전                          수레 운임 4,929냥 6전 
미장이 공임 2181냥 6푼             마소 운임 5,001냥                                 기와장이 공임 369냥 1전 2푼 

모래와 흙 구매 805냥 6전 9푼 


이상 총합 
실입 
돈 860,698냥 2푼 
급료 쌀 1,495석 11두 4홉 
각 도에서 마련한 각종 곡물 13,170석 6두 8승 1홉 8사 

 

유재(재고) 
각종 물건 환산 값 12,926냥 2전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우리들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戒我萬年子孫 丙寅 辛
우리들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관인 대한제국기 관부에서 사용한 도장 官印

 

갑오개혁 때 국가 행정과 왕실 행정을 분리하여 의정부와 궁내부로 나누고 1895년 의정부를 내각으로, 각 아문을 개칭하여 외부 · 내부 · 탁지부 · 군부 · 법부 · 학부 · 농상공부의 7부를 두었다. 아관파천으로 의정부가 한때 부활되기도 하였으나

갑오개혁 이후의 관제 개편이 대한제국기에도 기본골격을 이루었다. 관인은 이러한 근대 관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근대 관인은 공문서 양식의 변화에 따라 조선시대에 비해 크기가 더 작아졌다.

1 탁지부인            2 탁지부대신장    3 종정원인            4 학부지인                   5 중추원인   

6 광산사무국인     7 경선궁               8 경남독쇄관인     9 대한제국표훈원인    10 육상궁

 

칙명지보 勅命之寶
황제의 조칙에 사용한 도장


소자小字를 새긴 칙명지보이다. 칙명지보 글자를 크게 새긴 대자大字(사방약 11cm)와 작게 새긴 소자小字(사방 약 9cm) 두 점이 제작되었다. 대자 칙명지보는 3~6품의 주임관奏任官 임명장에 사용하였고 소자 칙명지보는 조직 등에 사용하였다. 

 

 

고종황제 옥보 高宗皇帝玉寶
고종황제의 존호를 올리며 만든 도장


고종황제의 51세 생일과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며 '건행곤정영의홍휴 乾行坤定英毅弘休'라는 존호를 더 올리면서 제작한 옥보이다. 옥보는 옥을 깎아 사각형으로 만들고 손잡이를 용모양으로 장식하였다. 글자를 새긴 인면에는 총 52 자를 새겼는데, 고종의 덕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사유의 방’에는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둡고 고요한 사유의 방을 걸어 들어가면 끝없는 물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시공을 초월한 초현실의 감각을 일깨우며 반짝임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1,40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 앞에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됩니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듯, 고뇌하는 듯,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고, 

치유와 평안이 다가옵니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사유의 방’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여정은 우리 시대의 특권입니다.

반가사유상을 만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나의 경험, 나의 여정,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 QR코드 안내문 )

 

 

시대별 전시관은 다 돌았다.

이제 남은 건 도자공예, 불교회화, 금속공예, 기증관 등이 더 남았다.

아직도 절반 정도가 남았으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너무 많이 우려먹는 느낌이다.

나머지는 언제 다 끝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