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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국립중앙박물관 고려관 관람

by 즐풍 2023. 12. 3.

 

 

 

2023. 10. 8. 일요일에 관람

 

 

돌을 깨트려 쓰던 구석기대부터 좀 더 세련된 마제석기와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던 신석기까지 

그들 중 어느 한 쌍의 부부가 낳은 자식은 우리 사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후손을 퍼트렸을까?

5천 년 전을 기준으로 보면 족히 몇 만 명을 넘어서지 않을까?

태어난 조상 전부가 살지는 못했을 것이고, 중간에 역병이 나 불량한 위생상태,  전쟁 등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불운을 물리치고 오늘 이 자리에 있으니 이런 행운도 없다.

1950년대 이전 세대는 기아와 전쟁을 함께 겪은 사람들로 생애 마지막 구간에서 AI까지 경험하게 되니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큰 격동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

우리 자식이나 손자들은 어쩌면 AI나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기며 수입이 없어 굶어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우리 세대가 사는 동안은 제 명대로 살아갈 것으로 믿는다.

우리의 세대를 후세 역사에선 어떻게 평가할까?

 

고려는 918년에 개국하면서 처음으로 첫 천 년의 역사를 펼친 새로운 왕조다.

고려는 이전의 통일신라보다 기술적으로 조금 앞서도 백성의 삶은 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보다 좋은 점은 성리학이 발달하지 않을 때라 여성의 권리가 좀 더 좋았겠단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도 백성의 삶은 곤궁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청자 등에서 예술과 생활 자기의 비약적인 발달로 음식문화가 좋아졌을까?

언젠가 시간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오면 역사는 송두리째 새로 쓰는 날도 있겠다.

 (이번에도 모두 박물관의 안내문을 옮긴 것으로 별도 표시는 생략한다)

 

 

 

청자 오리모양 주전자 靑磁鴨形注子
고려, 13세기. 1911년 구입 


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의 모습을 표현한 청자 주전자이다. 머리 위에 있는 구멍으로 음료를 부어 넣고, 툭 튀어나온 부리 끝으로 따른다. 오리의 꼬리를 과장되게 휘어서 손잡이를 만들었다. 머리 뒷부분에 작은 고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구멍을 막는 뚜껑도 있었을 것이다. 가지런히 접은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도드라지게 표현하여 입체감을 더하였고, 몸통 전체를 덮은 반점무늬 깃털은 색이 다른 흙을 메워서 구워내는 상감기법으로 만들었다.

 

 

'청자철화 모란무늬 매병 青磁鐵畵 牡丹文 梅瓶 (오른쪽)
고려, 12세기, 1916년 입수 


산화철을 안료로 청자의 표면에 그림을 그려 만드는 철화청자는 문양을 새겨 만드는 다른 청자와는 달리 붓의 율동감이 느껴지고 색채의 대비가 또렷하다. 이 매병은 철화청자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황갈색의 표면 위에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모란무늬를 그려 넣었다. 가지에서 뻗어 올라가는 듯한 모란은 고려 회화의 한 경지를 가늠하게 한다.

 

청자철화 국화넝쿨무늬 매병 青磁 鐵畵 菊唐草文 梅瓶 (왼쪽)
고려, 12세기, 1911년 구입 


어깨에는 국화꽃의 잎과 같은 무늬를, 몸통의 전면에는 철화로 국화넝쿨무늬를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청자 매병이다. 밑에는 띠를 두른 듯 검게 철화를 발랐고, 바닥에는 모래를 받쳐 구운 흔적이 있다. 철화청자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문양을 새겨 만드는 자기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12세기 철화청자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청자로 만든 참외모양 정병
개성 출토, 고려 12세기, 1915년 구입 

길고 가느다란 목에 참외처럼 생긴 몸체를 한 고려시대의 정병이다. 정병은 원래 깨끗한 물을 담아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기 위해 사용했던 불교 용구이다. 고려 사람들은 주전자(주자), 화병 등을 만들 때 참외나 박 같은 과일의 모양을 많이 응용했으나 정병의 사례는 드문 편이다. 골과 골 사이의 면에 연꽃과 모란을 번갈아가며 섬세하게 새겼다.

 

모란과 국화를 새긴 청자 정병 青磁 白象嵌 牡丹菊花文淨瓶 
개성 출토, 고려, 12~13세기, 1908년 구입 


표면에 국화꽃과 모란꽃, 구름무늬를 파고 백토를 채워 넣은 상감기법으로 장식한 고려시대의 정병이다. 

정병은 깨끗한 물을 담아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기 위해 사용했던 불교 용구이다. 

고려의 상감 기법은 정교한 기술뿐만 아니라 높은 온도에서 원하는 무늬의 발색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청자 넝쿨무늬 주전자  
고려, 12세기, 1981년 이홍근 기증 


둥근 몸통에 물을 따르는 주구와 손잡이가 달린 청자주전자이다. 몸통 전체에 박 혹은 수세미로 보이는 넝쿨식물을 넣었는데, 잎과 열매는 얕은 돋을새김으로, 잎맥과 넝쿨 줄기는 가는 오목새김으로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고르게 유약을 입힌 후 구워서 표면이 매끈하고, 맑은 비색이 큼직한 잎과 어우러져 싱그러움을 더한다. 전라남도 강진 사당리 가마와 같이 고려 때 명품 청자를 생산하던 곳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합 속에 또 합, 모자합  菊花形母子盒                화장품을 담는 청자 합 

개성 출토, 고려, 13세기, 1913년 구입              고려, 12~13세기, 1908·1916년 입수

 

받침 딸린 기름병                                        청자 기름병      
개성 출토, 고려, 1914년 구입                            고려, 12~13세기     

 

꽃·나무무늬 거울 花樹文 銅鏡
고려, 1953년 이관 

 

은에 금을 입혀 만든 합 銀製鍍金盒         작은 청자 병 小瓶                          작은 청자 주전자 
개성 출토, 고려, 1911-1915년 구입        개성 출토, 고려, 1911년 구입         고려, 1916~2005년 입수

 

꽃무늬 전돌 花文塼

 개성 만월대 출토, 고려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꽃무늬 벽돌로, 전돌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의 전돌은 통일신라의 전돌에 비해 무늬가 단순한데, 그중에서도 불교적 의미가 담긴 연꽃 또는 상 상징하는 모란무늬 전돌이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무늬가 없는 전돌은 바닥에 깔고, 이처럼 측면에 무늬가 있는 전돌은 벽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추정된다.

 

금동널 꾸미개 金銅 四神文棺 金具 


고려 관료계층 이상의 인물이 사용했던 목관에 부착한 것으로 보이는 금동장식이다. 관의 네 면 중앙에는 각각 타출打出로 만든 청룡 · 백호 · 주작·현무를, 뚜껑에는 봉황을 배치하고, 모서리에는 투조透彫로 만든 넝쿨무늬 장식과 비천상을 붙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린을 본떠 만든 청자향로 青磁 陽刻 麒麟形 香爐 

고려, 12세기, 1911년 구입

 

 

 

청자로 만든 제기 희준 青磁 黑白象嵌 犧尊 
개성 출토, 고려, 13세기, 1908년 구입 

 

제사 때 술을 담는 그릇, 희준 犧尊  


왕실에서 제사를 지낼 때 술을 담기 위해 사용한 바리 형태의 그릇을 '준'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몸통에 소를 그려 넣은 것을 '희준'이라고 불렀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인 희생 중 소를

최고로 쳤기 때문에 소를 그린 준을 '희준'이라고 한 것이다. 고려 때 희준은 깊은 바리 형태의

그릇에 소를 그려 넣은 모습이다. 조선 초『세종실록』에도 같은 모습의 희준 그림이 있다.

이후 희준은 소 모양으로 만든 그릇 형태로 바뀌었고,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고려사』에는

희준 사용 방법이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왕이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희준을 2개 쓰는데,

1개에는 맑은 물을, 다른 1개에는 제사용 술을 담는다고 하였다. 제사가 시작되면 집사관이

희준에 담긴 술을 국자로 떠서 왕 앞의 술잔에 부었고, 왕이 이 술잔을 천신에게 바쳤다.

 

즐풍은 안내문 없이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이중섭의 '소'가 생각났다.

간결한 선으로 처리한 게 이중섭이나 피카소의 선 굵은 터치를 보는 느낌이었다.

8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의 화풍은 비슷하게 통한다.

 

이중섭의 '소'

 

고대 중국 청동기를 본뜬 향로 青磁 陽刻 方鼎形 香爐 
고려, 12세기, 1927년 구입

 

청자잔과 잔받침 青磁 黑白象嵌 菊花文 盞托        청자 참외모양 주전자 靑磁 黑白象嵌菊花文 瓜形 注子

고려, 13세기, 2009년 서상호 기증                        고려, 12세기, 1951년 입수 

 

검은 유약을 입힌 주전자  黑褐釉 注子  

송, 1929년 입수

 

구리에 금을 입혀 만든 머리꽂이 金銅製 頭髮裝飾 

고려, 1995년 하치우마 타다스 기증

 

옥 꾸미개 五製裝身具                       금속 꾸미개 金屬製 裝身具 

고려                                                  고려

 

은으로 만든 약합 銀製藥盒  
1 고려, 12세기, 1908년 구입     2 고려, 1923년 구입       고려, 개성 출토, 1909년 구입 

 

휴대용 칼집 銀製粧刀匣 
고려
품에 넣고 다닐 수 있도록 작게 만든 칼인 장도를 넣던 칼집이다. 은으로 만들고 표면을 타출 하여 문양을 넣었다. 

고려시대의 장도는 조선시대의 것과는 달리 배 부분이 불룩하며, 윗부분에 끈 따위를 매달 수 있는 작은 고리를 

달아놓았다.

 

청자 참외모양 주전자
개성 출토, 고려, 1908년 구입

 

지방 백성들이 뜻을 모아 만든 쇠북 “靑雲寺”銘 靑銅 金鼓
1984년 입수, 1301년(충렬왕 27), 경기 김포 월곶면 고양 1리 출토


 쇠북은 구리로 만든 북으로, 사찰에서 공양이나 예불 등에 사람들을 모을 때 가운데 면을 쳐서 소리를 내는 불교 의식 도구이다. 이 쇠북의 중앙에는 연꽃이, 주변에는 넝쿨무늬가 묘사되어 있다. 옆면에 새겨진 글씨에 따르면 이 쇠북은 고려 후기 충렬왕 27년인 1301년에 문씨 부인을 비롯한 향도香徙 들이 만들어 청운사에 바친 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주전자 靑銅製注子
고려

 

납석으로 만든 주전자 蠟石製 注子 
개성 출토, 고려, 1910년 구입

 

청동으로 만든 가위 靑銅

1 고려, 1914년 구입     2 고려, 1908년 구입     3 고려, 1981년 이홍근 기증    4 고려, 2001년 구입

 

청동 거울 雙魚文 銅鏡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 출토, 고려,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청동 병 靑銅 甁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출토, 고려, 2013년 입수

 

나무와 집이 새겨진 거울 樹木殿閣文 銅鏡 
개성 출토, 고려, 1908-1914년 구입


나무와 전각이 돋을새김 된 청동거울이다. 전각은 주심포 양식의 팔작지붕집에 용이 있다.

중국에서 만든 거울을 고려에서 본떠 만들면서 고려 사람들에게 익숙한 무늬로 바꾸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호주"가 새겨진 거울 “湖州”銘 銅鏡
 송

 

무신 정권 때의 문신, 양택춘의 묘지명 梁宅樁 墓誌銘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신리 발견, 1254년(고종 41), 1974년 입수 


고려 무신 정권 때 살았던 문신 양택춘 梁宅椿(1172~1254)의 삶을 기록한 묘지명이다. 양택춘은 60세가 다 되어 온수군溫水郡 (현재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 일대)의 감무監務로 처음 벼슬길에 올랐으며,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예빈경禮賓卿 등의 벼슬을 지냈다. 아들 5명 중 3명이 승려가 되었는데, 큰아들 안기安其가 송광사松廣寺 16국사 중 5세世인 원오국사圓悟國師 천영天英(1215~1286)이다. 뒷면에는 고대 인도의 문자로 4줄의 진언 眞言이 새겨져 있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현실에서의 행복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작은 호신불 · 경상鏡像 · 불감佛 등을 만들어 지니고 다녔다. 

여기에는 당시 유행했던 관음보살이나 비사문천, 마리지천摩利 등이 새겨지곤 했다. 비사문천은 한 손에 보탑寶塔을, 

다른 손에 창을 든 모습으로 재물과 복 부귀를 상징하며, 마리지천은 6개 혹은 8개의 팔에 보탑 금강저 같은 여러 가지 

물건을 잡은 모습으로 이익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이들이 새겨진 물건은 고려 사람들에게 예배의 대상이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내세의 복을 구하는 도구였다.

 

 

금강령과 금강저 靑銅 金剛鈴·金 剛杵  
청동 금강, 고려

 

승려들이 지니고 다니던 물건  


승려들이 지니는 지팡이를 석장장 달고 여섯 개의 고리를 깬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지팡이는 고려불화에도 등장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 나무 부분은 삭아 없어졌지만 윗부분의 장식은 남아 고려시대 석장의 모습을 알려준다. 

원 간섭기에 유행한 밀교 의식용 도구인 금강령金剛鈴과 금강저金剛杵는 고대 인도의 무기를 본떠 만든 것으로, 

마음속의 번뇌를 없애 준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만'자가 새겨진 청자 향로  
개성 출토, 고려, 13세기, 1910년 구입


'만' 자는 예로부터 우주의 기운이 활발하게 생성되고 변화됨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부처님 가슴에 나타나는 길하고 상서로운 모습이 卍 모양과 같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해 이 기호는 오늘날까지 대승불교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이로 보아 뚜껑에 '만卍' 자를 새긴 이 항로는 사찰의 승리나 독실한 불교신자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녕 4년"이 새겨진 종  靑銅 “淸寧 四年”銘鐘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 1058년(고려 문종 12), 1969년 입수 

 

경기도 여주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종이다. '청녕'은 요遼 도종道宗, 재위 1055-1101이 사용했던 연호로, 청녕 4년은 고려 문종文宗, (재위 1046-1083) 12년인 1058년이다. 고려의 무종은 11세기 무렵부터 위패 모양의 명문 틀이 나타나고, 종의 윗부분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꽃잎 모양의 대가 표현되며,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의 개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종은 신라의 종에서 고려의 종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종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이 종은 당시 고려의 국왕인 문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별히 임금님의 수명이 하늘처럼 길기를 바라오며 쇠로 종 1구ㅁ를 주조하였으니, 무게는 150근이다.

청녕 4년(1058) 무술년 5월 어느 날 적는다.
特爲聖壽天長之願 鑄成金鐘一口 重一百五十斤 清寧四年戊戌五月日記

 

청녕 동종에 새겨진 비천상은 신라 에밀레종의 비천상과 전혀 다른 모양이다.

 

청동으로 만든 범종 青銅製 梵鍾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원당리 발견, 고려, 13세기, 1968년 입수 

 

청동으로 만든 북  
고려, 2000년 구입


사찰에서 공양供養 시간을 알리거나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부처님께 재를 지낼 때 사용하는 북 모양의 악기로, 

반자盤子나 금구禁ㅁ라고도 부른다. 뒷면이 트인 것과 측면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구분된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지름 40cm 안팎의 금고가 쓰였는데, 때려서 울리는 부분인 고면鼓面에는 구름이나 연꽃 따위의 무늬가 장식되곤 한다.

 

은으로 무늬를 넣은 향완 青銅 銀入絲 香境 
고려, 13~14세기, 2003년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