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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제관 관람

by 즐풍 2023. 12. 2.

 

 

 

 

2023. 10. 8. 일요일

 

 

고구려, 백제, 신라는 오래전에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현재는 남북이 대치하고, 동·서 진영이 계속 으르렁 되는 걸 보면 

여전히 신삼국시대가 계속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남쪽조차 화합하지 못하는 걸 보면 남북의 통일은 영원히 오지 않겠단 느낌이 든다.

요즘처럼 남북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며 자기 진영의 표심을 얻으려는 수작도 눈꼴시게 보인다.

그래도 역사의 유물은 한 공간 안에서 전시되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이번에도 모두 박물관의 안내문을 옮긴 것으로 별도 표시는 생략한다)

 

 

 

 

공주무령왕릉 公州 武寧王陵


6세기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재위 501~523년)과 왕비의 무덤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원에 있다. 이 무덤은 벽돌을 쌓아    만든 무덤으로 내부에서는 묘지석을 비롯하여 5,200여 점에 이르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신라 · 중국 남조 · 일본 왜와      교류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무늬벽돌과 도자기, 청동거울, 귀걸이, 나무널 등이 발견되어 백제 문화의 개방성과 국제    성을 잘 보여준다.



 

 

관꾸미개(왕비) 金製冠飾(王妃) 

국보, 6세기, 충남 공주 무령왕릉


왕비의 머리 부분에서 2점이 발견되었다. 약 2mm 내외의 얇은 금판을 오려서 만들었으며, 꽃이 부분은 청동으로 따로 

만들었다.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의 받침과 그 위에 활짝 핀 연꽃을 꽂은 꽃이 있고 주위는 인동초무늬로 장식하였다. 

길이 27.0cm, 너비 13.8cm, 무게 103.6g(좌), 101.2g(우)

 

금동신발이 출토될 당시의 모형

 

각종 수막새

 

산수 짐승얼굴무늬 벽돌 

 

산수 봉황무늬 벽돌

 

벽돌 봉황무늬 벽돌

 

연꽃무늬 벽돌

 

연꽃 짐승얼굴무늬 벽돌

 

 

종교와 사상 

 

백제는 고대 국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국가를 통합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이 필요했다. 건국 기에는 시조가 되는 조상신과 하늘에 있는 천신, 땅에 있는 지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나 점차 유교와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을 강화하는 기반으로 삼았다. 불교는 사비로 도읍을 옮긴 이후 크게 유행했다. 국가 주도로 많은 사찰과 의식용구들이 만들어졌다. 한편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도교는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신선 사상과 결합하여 귀족 사회에서 환영받았다. 금동대향로·산수무늬 벽돌 등에서 도교가 성행했음을 엿볼 수 있다.

 

 

 

 

 

벼루 土製硯

 

벼루는 글씨를 쓰기 위해 먹을 가는 도구이다.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원형의 벼루는 사비 시기의 유적에서 주로 많이 발견된다. 벼루의 다리는 짐승 발굽 모양을 하고 있어 장식성을 보여준다.

 

항아리 壺

4세기, 전남 영암 만수리
독널무덤에서 발굴되었으며, 새발자국 무늬가 항아리 전체에 새겨져 있다.

 

 
전생에 맺은 인연으로 이 세상에 함께 났으니 시비를 가릴 양이면                                                                                        서로에게 물어서 공경하고 절한 후에 사뢰러 오십시오
宿世結業同生一處 是非相問上拜白來 宿世歌


 

뼈단지 骨壺

 

화장火葬은 불교식 장례 방법으로 시신을 불에 태운 후 남은 뼈를 그릇에 담아 묻는 것을 말한다. 불교의 수용과 함께 삼국시대 장례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백제 화장묘는 정치적• 문화적으로 안정기인 사비 천도 이후 승려와 귀족 사회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화장묘에 사용된 뼈단지는 모두 뚜껑이 있으며, 납작한 바닥에 회색빛이 도는 토기이다. 

 

 

치미   
6세기, 충남 부여 왕흥사 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치미는 기와 건물 지붕의 용마루 양 끝에 자리한 큰 장식 기와를 말한다.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지닌 신성한 새 또는 물고기의 형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왕홍사 치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치미로, 사찰에서 승려들이 묵었던 방으로 추정되는 건물에서 각각 1점씩 출토되었다. 전체를 한 몸으로 제작해 위·아래로 잘라낸 후 가마에서 구워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의 치미는 상부, 북쪽의 치미는 하부만 남아있어서 각각 3D 기술을 통해 복원하였다. 
지붕 끝에 얹혀 날아갈 듯 한 생동감 있는 모양에 연꽃무늬, 구름무늬, 풀과 가지무늬 등을 새겨 넣었다. 지붕의 장식을 위엄을 갖춘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백제 기와 장인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청자 호자 靑磁虎子
3~4세기,   전 개성  

 

호자는 중국 육조시대에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였으며,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호자 역시 서진(265~316년) 말에서 동진(317~419년) 초기에 제작되어 수입된 것이다. 개성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이 호자는 주구에 호랑이 얼굴이 표현되고, 몸체에 4개의 발과 함께 손잡이가 부착되어 이동에 용이하다. 백제 귀족 층이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양모양 그릇 羊形靑磁

4세기, 강원 원주 법천리  

 

청자 양모양 그릇은 중국 동진에서 제작해 수입되었다. 난징南京 주변의 동진 시대 묘에서는 이러한 그릇들이 많이 출토된다. 한성 시기 백제는 지방 세력가에게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물품을 위세품으로 하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넓은입 항아리    


천안 화성리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중국 동진東晉 월주요越州窯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옛 월국의 땅이었던 중국 위야오, 상위, 사오싱 일대의 가마들은 대표적인 청자 생산지로 월주요 또는 월요라고 불렀다. 4세기 백제가 중국과 교류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청동 자루솥 靑銅鐎斗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有蓋高杯
4-5세기, 경남 김해 대성동  


굽다리에 가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상하 일렬의 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는 굽다리 접시이다. 단추 모양의 꼭지가 달린 뚜껑이 얹혀 있어 한 세트를 이룬다. 김해 지역 금관가야의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성동 1호 무덤에서 출토된 토기로, 5세기대 가야 지배층의 세련된 토기 문화를 보여 준다.  

 

 

사슴장식 구멍 단지  
김해 대성동 91호 무덤  
단지의 아가리 아래쪽에 사슴 두 마리가 나란히 장식되어 있다. 몸체는 밑이 둥근 공 모양이며 중앙 한쪽에 구멍이 뚫려 있다. 몸체 위에는 넓게 벌어진 깔때기 모양의 아가리가 붙어 있다. 사슴의 뿔은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사슴은 고대 북방 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신성시한 동물로, 이를 숭배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가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말띠 드리개와 관련 유물

 

판갑옷, 어깨가리개 투구  
5세기, 경북 고령 지산동 

 

판갑옷, 투구 
4세기, 경남 김해 양동리 

 

 

 

 

 

 

 

 

 

 

 

 

 

 

 

 

 

 

△▽ 금관, 5세기, 경남 창녕, 복제품

 

 

금 귀걸이

5~6세기, 경남 합천 옥전

 

 

 

 

 

13 스에키계 토기                                              14 스에키계 토기 
     5-6세기, 경남 산청 명동                                   6세기, 경남 고성 내산리    

 

청동 거울 
4세기, 경남 김해 대성동  
중국 중원지역과 관련된 청동 거울이다. 가운데에 위치한 네모꼴 무늬를 중심으로 주위에 'T•L•V' 무늬가 있으며 동서남북으로 사신과 신수 무늬를 세밀하게 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