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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박물관·전시관·성지·국보 등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관 관람

by 즐풍 2023. 12. 3.

 

 

 

2023. 10. 8. 일요일에 관람

 

 

통일신라관은 신라관보다 전시된 유물이 적다.

통일된 이후 불교가 융성하면서 석굴암이나 다보탑, 석가탑 등 불교문화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신라시대의 화려한 금관이나 금목걸이, 금반지, 금팔찌 등은 유행이 지난 듯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불교가 융성하면서 경주 남산에는 불상이나 석탑이 도처에 즐비한 야외 박물관이다.

남산뿐만 아니라 경주 어디든 사찰이 있거나 절 터가 있다.

그렇게 도처에 남아 있는 불교 유물은 박물관 안으로 들여올 수는 없다.

통일신라관에서는 대부분 불교유적적 토속신앙과 관련된 유물이 주류를 이룬다.

즐풍의 입맛대로 찍은 사진을 몇 점 올리는 것으로 통일신라는 간단하게 끝낸다.

 (이번에도 모두 박물관의 안내문을 옮긴 것으로 별도 표시는 생략한다)

 

 

 

 

짐승 얼굴 무늬 기와 怪獸面瓦
경북 경주 월지, 1975년 발굴,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정병 淨瓶
충남 부여 1945년 입수, 남북국시대(통일신라) 9-10세기

 

용머리꾸미개 龍頭裝飾
경북 경주 월지, 1975년 발굴,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발걸이
황해도평산, 1936년 입수, 남북국시대(통일신라) 9- 10세기

 

 

통일신라 불상

 

통일신라 불상은 통일 이전 토착적인 신라의 불상 양식을 기반으로 백제와 고구려의 조각 양식을 흡수하는 한편, 당나라 양식을 받아들이면서 통일신라만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성립했다. 통일신라 불상 중 가장 완성된 예가 바로 8세기 중엽 경 석굴암 본존불이며, 이 시기를 정점으로 통일신라의 불상 조각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이후 신라 사회의 모순과 선종의 유행으로 약사불과 비로자나불이 등장하며, 금동불이 줄어들고 철불이라는 새로운 불상이 유행했다.

 

 

철불 鐵佛
1918년 입수,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팔부신중 八部神衆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신으로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고도 하며,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達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머플러가摩睺羅伽가 있다. 여기에 전시된 팔부중은 아수라와 건달바인데, 원래 석탑의 상층 기단부 면석에 새겨진 것이다. 아수라는 원래 싸움의 신이었으나 부처님에게 감화되어 불법을 지키는 신이 되었으며, 얼굴은 셋, 손과 팔은 여덟 개 혹은 여섯 개로 표현된다. 건달바는 모두 사자의 머리가죽과 같은 것을 쓰고 있다.

 

건달바

 

아수라

 

 

십이지상 十二支像 

경북 경주충효동 전 김유신묘, 1934년 구입,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끼

 

경북 경주 내남면 전 민애왕 1915년 구입,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말

 

 

십이지상 중 뱀과 쥐(원숭이?)

 

보상화 무늬 전돌 寶相華文塼
7 경북 경주 인왕동 월지, 1975년 발굴, 안압지,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보살 무늬 수막새 菩薩文圓瓦當

출토지 모름, 2002년 유창종 기증,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세발 뼈 항아리 三足骨壺

출토지 모름 (出土地未詳), 1914년 구입,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세기  

 

뼈 항아리 骨壺

출토지 모름 (出土地未詳), 1945년,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세기  

 

 

왕조의 정통성 

 

발해는 고구려인과 말갈인으로 구성된 나라였지만 말갈인의 나라가 아니라 고구려의 계승국이며, 당의 지방 세력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황제국을 지향한 엄연한 독립 왕조였다. 발해인들은 스스로 고구려 땅에 건국했다는 것을 표명하였으며,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부여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임을 천명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758년 '견고려사' 목간과 「속일본기」의 “발해는 옛 고구려국이다."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당시 일본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당시 주변국들 역시 발해의 건국을 고구려의 멸망과 직결되는 것으로 보고 고구려 후계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평양 원오리 절터에서 출토된 고구려 불상과 발해 수도에서 출토된 불상을 비교하면 발해 문화는 고구려 문화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발해 수도에서 출토된 와당 역시 발해와 고구려의 문화적 유사성을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