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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전라도·광주

언제든 잠시 쉬기 좋은 고창 선운사

by 즐풍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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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2. (수)  오후에 탐방

 

 

고창여행을 한다면 고창읍성과, 고창 고인돌 유적지, 무장현 관아와 무장읍성, 선운사는 필수 코스이다.

주차장에 에서 선운사까지 올라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선운산이란 명산 아래 터를 잡은 선운사를 계곡을 따라 생긴 녹음 짙은 가로수길을 따라 오른다.

 수많은 고승이 세상을 계도했을 명찰답게 지금도 이 지역 사찰의 본사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兜率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ㆍ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이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전쟁 난민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ㆍ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선운사가 위치한 곳이 해안과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염전을 일구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아, 염전을 일구어 인근의 재력이 확보되었던 배경 등으로 미루어 검단스님이 사찰을 창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_선운사 홈페이지)

 

 

산사에서 받던 입장료가 없어져 한결 편한 마음으로 입장하게 된다.

작년부터 시작한 대웅전 복원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선운사 방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태풍 '카눈'이 지나갔는데, 별일 없었기를 바란다.

 

 

 

선운사 육층석탑

 

선운사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기단(基壇)을 1층으로 마련하여 전체의 무게를 버티게 하고 그 위로 6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았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얇아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양끝에서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한 멋이 흐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대체로 잘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2층 몸돌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3층 지붕돌 역시 2층에 비해 폭이 좁아져 비례감이 조금 떨어진다. 

옛 백제지역의 탑으로서, 지붕돌 등에서 백제탑 양식이 보이고 있어 지방적인 특색이 잘 담긴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출처_문화재청)

 

 

 

 

배롱나무 꽃이 절정이다.

선운사에는 붉은 꽃 세 종류가 핀다.

먼저, 3월 중순에서 4월 초까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운사 동백꽃이 화려하게 물들인다,

봄에 핀다고 하여 '춘백'이라 불리는 선운사 동백은 전국에서도 알아준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출처_김훈 <자전거 여행> 중에서)

 

두 번째는 7월 말에서 8월까지 피고 지는 이 배롱나무 꽃이다.

마지막으로 석산으로도 알려진 붉은 꽃무릇은 선운사의 다른 이름이다.

일주문에서 선운사 주변까지 3km에 걸친 꽃무릇은 선운사를 붉게 달군다.

 

이번 사찰 여행은 잠시 쉬러 온 것이다.

사찰 구경은 제쳐두고 만세루에 들어와 선풍기 앞에 앉았다.

에어컨이 없어도 통풍이 잘 돼 시원하다.

안에는 대웅전을 축소한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대웅전 모형 옆에는 소 여물통이 한껏 크기를 뽐낸다.

여물통 끝을 잘랐으니 전체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전시된 여물통만 해도 소 서너 마리가 여물을 먹기에 충분한 크기다.

 

영산전 뒤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가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얻은 고요를 간직한 채 산문을 나선다.

 

 

 

 

 

아직 꽃무릇이 피기엔 이르나 경내에 있는 꽃무릇 찻집에서 쌍화차 한 잔 마시며 한 번 더 고요를 만끽한다.

 

 

 

 

 

꽃무릇은 찻집이면서 불교 소품도 판매하는 작은 상점이다.

 

 

 

 

 

 

잠시 쉬러 간 선운사는 온통 초록의 세상이다.

초록 가운데 배롱나무 꽃이 한 점 크게 붉은 점을 박아 놓은 듯 선명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여전히 고요로 가득한 경내에 가끔 새소리와 불경이 들릴 뿐이다.

붉은 꽃무릇 찻집에서 고요를 한 번 더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