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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전라도·광주

고창 전좌바위의 두암초당과 병바위

by 즐풍 2023. 8. 11.

2023_125

 

 

 

2023. 8. 2. (수) 오후에 탐방

 

 

사실상 고창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전좌바위 아래 살짝 숨은 두암초당에서 끝낸다.

두암초당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이다.

두암초당을 품고 있는 전좌바위와 인근의 병바위가 더 많이 알려졌다.

병바위는 생김새의 특수성으로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으나, 전좌바위는 아니다.

그러니 누가 전좌바위에 혹해 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두암초당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두암초당이 전좌바위를 파고드는 효심으로 그 가치는 전좌바위를 압도한다.

그러나 이젠 울타리로 막아 놓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으니 앙꼬 없는 찐빵이 되었다. 

오호통재라..., 보기는 하되 들어갈 수 없다니.

 

 

찾아가는 길: 전북 고창군 아산면 영모정길 88-7(아산면 반암리 산 126)

 

 

 

두암초당(斗巖草堂)

 

두암초당은 부모가 돌아가시자 시묘살이를 했던 호암 변성온(壺巖 卞成溫 1530~1614)과 인천 변성진(仁川

卞成振 1549~1623) 형제의 지극한 효성을 기억하려고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초당 가까이에 부모 묘소가 있다.
초당은 전좌바위 또는 두락암(곡물을 되는 데 쓰는 기구를 덮어씌운 바위)이라 불리는 바위 밑을 조금 파고

그 안에 구조물을 끼워서 지은 누정이다.

요즘은 보기 드문 바위 굴 누정이다.

창건 이후 훼손되었으나 5대손인 변동빈이 1815년에 중건한 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초당에는 이재 황윤석, 노사 기정진 등 이름난 인물들의 시와 현판, 중건기 보수하거나 고치 지은기록

등이 남아 있다.
건물 지붕은 옆에서 볼 때 팔자八字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평면은 앞면이 3칸, 옆면이 1칸이다. 

가운데 작은 온돌방을 들이고 3면에 마루를 깔아 주변의 수려한 풍광을 즐기도록 하였다.
이곳은 김소희 명창이 득음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문)

 

 

오후 세 시 40분을 지나서 왔어도 아직 햇볕이 바위를 덮지 못해 응달이라 두암초당이 선명하지 않다.

전좌바위가 워낙 높고 위쪽이 경사지며 지붕을 살짝 덮어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안내문을 보면 시묘살이를 했던 변성온의 호는 호암壺巖으로 이를 한글로 풀면 병바위다.

호암은 두암초당 탐방을 끝내고 나갈 때 보게 될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병바위를 말한다.

이 병바위의 이름이 호암선생으로 인해 생긴 것인지 아니면 병바위에서 호암의 호를 가져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호암선생은 병바위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던 거 같다.

 

목우에게 두암초당을 보여주려고 왔으나 작년과 달리 울타리를 설치해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하여 목우는 아래에서 기다리고 즐풍만 혼자 사진을 찍는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모기에게 듣긴 목우의 발목엔 무참한 상처만 남아 즐풍의 가슴이 미어진다.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 이황과 교류한 호암의 인품이 곡식을 되는 말[斗]이나, 

저울추같이 평평하여 치우치지 않았다고 하여 ‘두암’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호암 변성온과 아우 인천 변성진이 학문을 닦던 것을 기려 고을 사림들이 창건하였는데 훼손되어 

5대손인 변동빈이 초당을 중건하였다. 

현재 변성진의 후손인 변태섭이 관리하고 있다. 

1815년 10월 영모정에 호암의 5대손 변동빈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나 오랜 세월에 유실되었다. 

1954년 현 위치에 재건립하였다. 같은 시기에 영모당 재실도 건립되었다고 한다.

                                                                (출처_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좌측엔 두암초당, 우측엔 산고수장이란 편액이 걸렸다.

 

후학 유영만과 류제철이 스승을 기리며 쓴 작품이다.

 

 

 

6.62㎡ 남짓한 공간에 지어진 조그마한 정자이다.

 

응회암 계열의 암반에서 보이는 타포니이다.

 

한 칸짜리 조그만 방에 군불을 지필 아궁이도 만들었다.

불을 필 때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게 툇마루 쪽엔 흙담을 쌓기도 했다.

 

 

 

 

 

 

 

몇 번을 찍어도 같은 모습이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마을로 나가 다시 보는 전좌바위 아래 두암초당이다. 

 

전좌바위는 멀리서 보면 역암인 듯 군데군데 작은 돌이 박힌 게 보인다.

 

큰길로 나와 다시 보는 오른쪽 전좌바위와 맨 왼쪽 병바위 

 

병바위는 전좌바위와 걸어서 470여 m에 불과하나

차량으로 이동하려면 큰길로 나가 호암교를 건너는 3.5km를 이동하는 불편이 따른다.

그러니 잠깐 걸어서 병바위까지 왕복하는 게 좋다.

 

왼쪽 병바위는 병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 한 모습인데, 멀리서 보면 사람 얼굴을 닮았다.

 

 

병바위

 

마치 병을 뒤집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병바위는 신선이 술에 취해 

술상을 발로 찼는데 술병이 거꾸로 꽂혀 병바위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병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병바위는 유문암이라는 암석이 풍화·침식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병바위의 암벽 노출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울퉁불퉁 벌집 모양으로 파인 구멍을 볼 수 있다. 

이는 병바위가 오랫동안 비바람 등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인해 풍화에 약한 부분이 차별침식을 받아 암석 

표면이 파인 타포니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타포니는 암석이 물리적, 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암석의 표면에 형성되는 풍화혈 형태의 지형을 말하며, 

특히 암석의 측면에 벌집 모양처럼 집중적으로 파인 구멍을 말한다. 

타포니 구조를 관찰할 수 있어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다. 

아울러 암상의 차별적 물리적 특성이 지형적 경관을 연출할 수 있는 중요한 지질학적 요소임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_전북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병바위는 전북서해안권에 있는 국가지질공원이다.

이 병바위를 한자로 호암(壺巖)이라고 하는 데, 이 포스팅을 작성하며 두암초당관 관련된

호암 변성온 선생이 병바위의 풍경에 매료되어 호를 호암이라 지은 걸로 생각했다.

두암초당을 보면 전좌바위는 물론 병바위까지 덤으로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