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118
2023.7.17. (금) 오후에 잠시 탐방
서울 중구 새문안로에 있는 농협중앙회에는 두 개의 박물관이 있다.
앞서 게재한 「쌀박물관」과 이번에 보게 될 「농업박물관」이다.
농업박물관은 본관과 떨어진 별관으로 별도의 공간으로 구성된 곳이다.
지하 1층: 농업 홍보관, 1층: 농업 역사관, 2층: 농업생활관을 전시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관심을 갖고 잠시 살펴본다.
안내문을 올리는 것으로 간단하게 작성하고 끝낸다.
입구에 들어서면 현관과 중문 사이에 거대한 여물통이 전시되었다.
소 세 마리를 하나의 외양간에 집어넣고 먹일 수 있는 커다란 여물통이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신석기부터 계속된 조·수수·팥 같은 잡곡 농사는 더욱 발달하였다.
벼농사가 점차 본격화되면서 논의 개간과 유지, 물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수리시설의 축조 등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가 시행되었다.
이는 당시 사회가 이미 지배자를 중심으로 상당한 수준의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농기구는 여전히 간석기와 나무로 만들었으며 청동기는 무기나 의례용 도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농업이 본격화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크게 증가하고 사유재산이 생기면서 사회 분화를 더욱 촉진시켰다.
생산체계를 유지하고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 망루와 같은 방어시설을 갖춘 마을이 형성되었다.
고조선은 이러한 청동기 시대 문화를 바탕으로 등장하였다. (안내문)
간단한 농기구와 토기, 간석기
청동기시대 농경마을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그중 특히 충청남도 논산시 마전리에서 발굴된 마을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농사모습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마전리 마을유적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살던 집터부터 무덤, 논, 수로, 우물, 곡물저장구덩이 등
다양한 생활공간이 확인되었다.
특히 마을 주변에 만들어진 논밭은 당시로서는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매우 발달된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을 내에도 거주 공간, 무덤공간, 곡물저장공간, 토기생산공간 등을 모두 분리해 두어,
당시 사람들이 매우 계획적으로 마을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청동기시대의 논농사
청동기시대의 논농사는 경상남도 밀양시 금천리에서 발굴된 논유적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금천리 유적의 논은 폭 15~20cm의 둑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단위 면적이 16㎡ 내외이다.
이처럼 초기의 논은 평면 형태가 사각형이며 규모가 매우 작았기 때문에
'소구획 수전(小區劃 水田)'이라고도 한다.
농사에 필요한 물은 논 주변에 흐르는 작은 하천으로부터 끌어 왔는데, 하천을 막아 보(洑)를 설치하여
관개시설을 만들고, 보를 통해 수로로 흘러 들어온 물은 다시 물꼬를 통해 논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논에 들어온 물은 다시 논둑을 통하여 그보다 낮은 논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논은 초기부터 매우 과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면적만 다를 뿐 지금의 논과 매우 비슷하였다. (안내문)
청동기시대의 밭농사
청동기시대의 밭농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경상남도 진주시의 대평리유적을 들 수 있다.
청동기시대에 대평리에는 강변을 따라 넓은 밭이 만들어졌는데 당시의 받은 둘레를 나누는 밭둑 시설이
없어 한 단위의 밭이 13,000㎡가 넘는 경우도 있다.
밭은 논에 비해 구조가 단순해서 일찍부터 많이 경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재배되는 작물의 종류에 따라서도
여러 형태의 밭이 만들어졌다.
청동기시대 대평리 사람들은 이 밭에서 주로 조를 재배하였고 그 외에도 보리, 밀, 수수, 피, 콩 등 다양한
곡물들을 심었다. (안내문)
철기시대 야철지
철기시대에는 대장간에서 철을 가공하여 다양한 모양의 농기구와 각종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제철유적인 경북 경주시 황성동유적에서는 당시 철기 제작 과정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녹인 쇠를 들에 부어 만드는 주조 작업에 필요한 '용해로 '와 달군 쇠를 두드려 만드는 단조 작업에 필요한
'단야로' 등 발달된 제철 도구들이 발견되어 철기 생산이 매우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장간 주변에서는 철기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와 무덤도 발굴되어 당시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철기를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벽골제 수문 축조 과정
돌기둥을 세우고 좌우로 돌담을 쌓는다.
• 돌기둥의 안쪽 면에 나무판을 끼울 수 있도록 흠을 내고 간격을 맞추어 양쪽에 세운다.
• 양쪽 돌기둥의 홈에 나무만을 끼우고 쇠줄로 연결하여 수문을 위·아래로 조정한다.
• 제방 보호를 위해 돌기둥 좌우에 바위로 두세 단 정도의 석축을 쌓는다. (안내문)
벽골제
삼국시대에는 농사에 사용할 물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관개 시설을 만들었다.
특히 백제는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에 '벽골제'라는 대규모의 저수지를 축조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하였다.
벽골제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비류왕 27년(330년)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 증동국여지승람」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대규모 저수지로 금만평야 일대 약 100㎢를 관개할 수
있었다고 적혀 있다.
그 규모는 전체 둘레 길이가 약 3k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였으며,
5곳에 수문을 설치하여 필요시마다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내문)
조선시대 선농단
조선시대에는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 국가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선농단(先農檀)에서 제사를 드리는 '선농제(先農祭)였다.
선농제는 농사와 종자를 관장하는 농업의 신,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올려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던 중요한 국가 의례였다.
국왕은 한양의 동쪽 교외에 있던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친히 밭을 가는 '친경(親耕)'을 실행하면서
농사를 권장하는 의례를 몸소 행하였다.
또한 왕비는 선잠단(先蠶檀)에서 제사를 올리고 직접 누에를 치는 '친잠례(親蠶禮)'를 행하였다. (안내문)
어릴 때 광에는 이런 디딜방아와 맷돌이 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께서 디딜방아를 딛고 뭔가 농산물을 빻던 게 기억난다.
동네에 흔치 않던 맷돌도 이 집 저 집에서 빌려가 서로 닿는 면이 반들반들하게 닳았다.
이 맷돌은 이효석의 생가가 있던 강원도 봉평면에 할아버지가 사실 때 대화장에서 구매해
집까지 약 50여 리 길을 지고 오셨다니 엄청 고생하신 애장품이다.
즐풍이 태어나던 1960년도만 해도 흔히 보던 시골 풍경이다.
지금 동남아도 이 정도보다 잘 사니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폭발적 성장을 하며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러던 게 요즘 젊은이들은 고된 일은 하려하지 않아 외노자가 채우고 있다.
쌀 수입개방 반대 서명운동
[기간 : 1991. 11. 11~ 12. 24 총 서명인 수 : 12,928,370명]
농협은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에 따른 쌀 수입개방을 저지하기 위해 1991년 11월 11일부터
범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초 1백만 명을 1백만 명을 목표로 하였으나 4일 만에 1백만 명을 돌파하여 목표를 1천만 명으로 늘렸다.
이 운동은 44일 만에 12,928,370명이 서명하는 대기록을 달성하고, 12월 24일 종료되었다.
이로써 '쌀'만은 절대 개방할 수 없다는 농민과 전 국민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였다. (안내문)
쌀 수입개방 반대서명운동을 할 때 전국이 떠들썩했다.
그때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과 노래가 생겨나며 '우리 몸엔 우리 농산물이 최고'란 말이 생겨났다.
신토불이란 노래를 부른 가수가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가수가 뜨는 것도 한 순간의 시류에 흐르는 물결을 올라타기만 해도 된다는 예를 보여준 경우다.
미래농장 컨트롤타워
미래농업관은 20~30년 후 농업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지 그 변화된 모습과 미래농업을
이끄는 주요 키워드를 살펴보는 전시실로, 국민들에게는 농업의 중요성을 농업인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을
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전시실에는 '종자자원'과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농장과 농사로봇을 제어하는 미래농장 컨트롤타워의
내부가 설치되어 있다.
종자보관소는 씨앗을 저장하는 시설로, 이를 통해 농사의 기본재료이자 미래 인류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종자자원의 잠재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농부가 대대로부터 물려받았거나 직접 채종한 씨앗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터치스크린을 통해 종자들의 정보를 살펴보고 종자를 선택할 수 있다.
미래의 농사과정에서는 생산제어시스템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생산 및 수확이 이루어지는
미래의 농사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종자 및 토양을 분석하여 농사시기와 생산량이 결정되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며,
미래의 농부가 되어 터치스크린의 농사 실행 버튼을 눌러 농사로봇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안내문)
종자보관소
한반도 고유의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면서 농부들의 손에 의해 인위적 또는 자연적 선발과 퇴화로 정착한
토종 종자자원은 현재 우리 농촌에서 재배되고 있는 품종 그 자체이며 미래에 품종 육성의 기본재료로 쓰일
소중한 자원입니다.
과거에는 자연재해에 강하고 생산성이 높은 종자들이 보급되어 인류를 기아문제에서 구출하였습니다.
앞으로도 토종 종자는 다양하게 육성되어 인류의 식량을 풍요롭게 해주는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우수한 종자를 보전하는 일은 개인을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이며 우리 땅에서 자라난 것이
우리 체질에 잘 맞는다는 신토불이 정신을 이어나가는 일입니다.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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