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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탐방/경주권

경주 남산 배동 삼릉계곡의 문화재 탐방

by 즐풍 2023. 4. 26.

2023_44

 

 

2023.4.1. (토)  오전에 잠시 탐방

 

 

형님과 배동 삼릉탐방지원센터로 남산을 오른 뒤 금오봉을 찍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원주에서 세 시간 걸려 경주에 도착한 후 계속 걸어 다니며 관광한 게 힘들었는지 주무실 때 신음소리가 난다.

올해 77세로 제법 고령인 데다 7~8년 전 무릎 관절수술까지 했으니 힘드실 나이다.

작년 가을에 이틀을 동해안 여행할 때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셨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젊어서 남산을 한 번 다녀가셨다고 하니 이번엔 간단하게 배동 삼릉계곡만 오른 뒤 바로 하산한다.

이 구간에 본 문화재 몇 점을 올린다.

 

 

ㅁ 경주국립공원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사적형 공원인 경주국립공원은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불교문화의 백미인 불국사, 석굴암을 품에 안은 토함산과‘불교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을 비롯해 

8개 지구의 면적이 136.55㎢에 달한다. 

잘 보존된 신라 문화 유적과 조화로운 자연경관 때문에 역사 교육의 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197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10대 유적지 중 하나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출처_경주국립공원)

 

 

경주 남산 자락의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삼릉과

개울 건너 55대 경애왕릉을 에워싸고 있는 송림을 삼릉숲이라고 부른다.

일교차가 큰 봄과 가을 새벽에 안개가 피어오를 때 안개 사이를 비집고 아른거리는

삼릉숲의 소나무는 경주인의 영혼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안개가 없어도 이 소나무 숲은 많은 인기를 받고 있다.

 

 

 

 

 

 

ㅁ 경주 배동 삼릉 (慶州 拜洞 三陵)


경주 배동 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임을 확인하였다. 

무덤에는 돌방 벽면에 병풍을 돌려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감청색으로 되어있고, 12폭으로 되어있다.

경주 배동 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 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배리삼릉 → 경주 배동 삼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출처_문화재청)

 

 

 

 

 

ㅁ 경주 남산 일원 (慶州 南山 一圓)


경주 남산은 금오산이라고도 하며, 신라 천년의 역사를 통해 가장 신성시되어 왔던 곳이다. 

수많은 전설과 역사 유적들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불교 관련 유적뿐만 아니라 왕릉, 무덤, 

궁궐터들이 남아있어 신라 문화의 집결체라고도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남산에서 나라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런 까닭에 남산에 얽힌 전설이 많은 편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남산 기슭의 나정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남산의 산신이 나타나 헌강왕에게 신라의 멸망을 경고하였지만, 

깨닫지 못하여 결국은 멸망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보물), 경주 포석정지(사적), 경주 남산신성(사적) 등이 있는데, 

다양한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신라문화가 이곳에 집결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출처_문화재청)

 

 

ㅁ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 (三陵溪谷磨崖觀音菩薩像)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 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이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머리 없는 불상은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의 소나무 숲 속에서 출토되어 

이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출처_문화재청)

 

남산 북쪽의 산기슭은 신라 왕궁인 월성과 가장 근접한 지역이다.

불교문화 융성기에 신라 왕궁에 불상이나 석탑을 만들 공간이 없으니 경주 전역에 사찰이 많이 생겼다.

지금까지 발견된 경주 지역의 사찰은 200여 개라고 한다.

남산에는 약 150여 개소의 불교유적이 분포한다고 하니 지붕 없는 박물관인 셈이다.

 

삼릉곡석조여래좌상_ 높이 160.0cm, 신라(8~9세기)

1964년 삼릉계곡 하류에서 발견되어 계곡 능선에 있는 자연암반 위로 옮겨졌다.

불상의 원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크기로 보아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발견지점과 멀지 않은 곳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두부와 양손은 모두 결실되었지만, 옷 주름이나 가사의 세부 표현 등은 매우 정교 하게 조각했다.

특히 왼쪽 어깨에 나타나는 매듭장식은 통일신라 불상에서는 상당히 드문 예인데,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에도 비슷한 매듭장식이 확인된다.

이 불상은 현존 상태를 볼 때 다른 남산의 불상과는 달리 대좌와 불신이 한 돌로 제작되었을 가능성 이 높다.

                                                                          (출처_「경주 남산의 불적, 어제와 오늘」에서 발췌)

 

ㅁ 삼릉계곡선각육존불 (三陵溪谷線刻六尊佛)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이 2구의 마애삼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나 조각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출처_문화재청)

 

 

 

위 삼릉계곡선각육존불이 시간이 지나며 표면이 검게 변해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문화재청의 자료에서 예전의 비교적 선명한 사진을 찾아내 올린다.

왼쪽 바위에 있는 선각육존불이다.

 

이것은 오른쪽에 있는 선각육존불이다.

 

 

ㅁ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조여래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옷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 대석으로 되어 있다.
8각의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_문화재청)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은 대좌를 제외하고 불상과 광배가 수차례 훼손되었으며,

조선총독부와 일반인에 의해 보수가 되었다.

이후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주관으로 깨진 불두의 코와 입,

그리고 광배를 복원한 뒤 보존 처리가 이루어졌다.

석조여래좌상의 광배와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90㎝이다.

두부는 별조이며, 목부분 원형 단에 결구시킨 방식이다.

머리에는 나발이 있고, 육계가 높게 솟아 있다.

얼굴은 방형이고, 가늘게 눈을 뜨고 있으며, 이마에는 백호공이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착의법은 편단우견이며, 옷주름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며, 다리는 결가부좌하고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석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하대석은 팔각이며, 상면에 2단의 괴임이 있다.

중대석은 팔각이고, 각 면에 안상을 새겼다. 상대석은 원형이며, 이중의 앙련이다.

각 연판문 중앙에는 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상대석의 상면에는 부채꼴형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광배는 연판형의 거신광이며, 2중의 두광과 신광이 있고 당초문과 화염문이 새겨져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 대전성기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으며, 신체의 양감, 볼륨감 있는 표현,

옷주름 및 광배, 대좌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_「2015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 上」에서 발췌

 

 

 

 

 

 

ㅁ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 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오른쪽의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조각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출처_문화재청)

 

보호각 안에는 보물로 지정된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삼존불은 삼국시대 불상을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요한 불상이다.

삼존불은 장신구와 얼굴, 손 표현 등의 차이로 인해 하나의 세트가 아니라는 의견과,

거의 인접 한 위치에 함께 발견되었으며 자세와 얼굴표현 등이 유사해 한 세트로 추정하기도 한다.

 

경주 남산 배동 선방곡 기슭에 파손된 채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과 같이 복원하였다.

세 구 모두 가까운 곳에 흩어져 있었고, 기본양식이 모두 같아 처음부터 삼존불로 조성했을 것이다.

1926년 유적 주변에서 「乾符六年禪房寺塔鍊治內記」라 음각한 탑지석 이 발견되어,

선방사禪房寺 삼존여래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삼존불은 전체적으로 굴곡이 없는 원통형의 체구, 4등신의 신체표현, 미소 짓는 상호 등

삼국시대 신라 특유의 불상 양식을 보인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과 함께 고신라 양식을 대표하는 남산의 불상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 불상 보존을 위해 전각 지붕을 씌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처_「경주 남산의 불적, 어제와 오늘」에서 발췌)

 

 

위 사진을 하나씩 세분하여 좀 더 자세히 찍은 사진이다.

석조여래입상(본존상) _ 높이 275.0cm

 

본존의 크기는 높이 270㎝이며, 좌우 협시불은 높이 240㎝ 내외로 본존불보다 약간 작다.

본존은 장방형의 대좌 위에 서 있다. 머리는 나발이며, 2단으로 된 육계가 있다.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는 마모가 심하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눈두덩이가 돌출되어 있으며,

입은 양끝을 살짝 올려 미소를 머금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없다. 법의는 통견이고, 두꺼운 대의 를 입고 있다.

가슴 앞부분에는 대의가 ‘U’ 자형으로 벌어져 있는데,

대의 앞이 깊게 벌어지고 끝자락이 왼쪽 어깨 뒤로 넘어가는 착의법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과 같은 삼국시대 여래입상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존의 옷주름이 두꺼운 띠모양의 돋을새김 표현은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의 본존과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등

당조각의 영향이 농후한 통일신라시대에도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표현은 본존을 비롯하여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7세기 고신라의 불상에서부터 등장했다고 보기도 한다.

                                              (출처_2015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 上」에서 발췌)  

 

우협시보살입상 _ 높이 220.0cm

 

우협시보살상은 대좌와 두광을 갖추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미소를 짓고 있다.

눈은 아래로 살짝 내려 감고 있으며, 눈두덩이가 부어 있다.

보관은 삼면보관이고, 관대는 늘어뜨리며 어깨에 걸쳐져 있는데 좌측 팔꿈치까지 내려와 있다.

하반신에는 요포를 착용하였으며 천의는 이중 ‘U’ 자형으로 걸쳤다.

가슴에는 사선으로 내려오는 내의가 보인다.

목에는 원형장식이 있는 반상형의 흉식과 장괘, 손목에는 2줄의 고리로 된 팔찌를 걸치고 있다.

오른손을 가슴에 붙여 연꽃봉오리를 아래로 향하게 쥐고 있고, 왼손은 허리 부근에 두어 잡고 있다.

광배는 원형두광이고, 안에는 5구의 화불이 있다.

그 사이사이에 동심원을 두고 두 줄의 선을 연결하였다.

대좌는 앙련과 복련이 엇갈리게 배치된 연화좌이다.

                                              (출처_2015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 上」에서 발췌) 

 

좌협시보살입상 _ 높이 228.0cm

 

좌협시보살상은 상체를 뒤로 젖히고 배를 앞으로 내민 자세이다.

얼굴은 둥글고, 미소를 짓고 있다. 눈은 본존과 마찬가지로 눈두덩이가 부어 있다.

보관은 삼면보관이며, 관대를 어깨에 걸치고 있다.

보관 중앙에는 2개의 원으로 된 장식이 있고, 이마 양 옆에는 관대 고정을 위한 원형의 장식이 달려 있다.

오른쪽 손목에는 한 줄의 팔찌를 찼다.

하반신에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요포를 입고 그 위에 이중 ‘U’ 자형의 천의를 걸치고 있다.

허리는 잘록하다. 목에는 盤狀形胸飾과 ‘X’ 자형 영락, 팔찌를 착용하고 있다.

이러한 어깨 장식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전기까지의 보살상에서 많이 관찰된다.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두광은 원형으로 아무런 문양이 없다.

삼존불의 제작시기는 7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출처_「2015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 上」에서 발췌)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봉안된 뒤쪽 공터에 산재한 주춧돌

 

 

문화재는 전문가의 의견을 빌릴 수밖에 없다.

사진만 게시하면 쉬운 걸 자료를 찾는다고 시간 다 보냈다.

많은 시간 들여 이렇게라도 내용을 더할 수 있어 다행이다.

삼릉계곡에 산재한 문화재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