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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지질공원 탐방/그외 국가지질공원

강원도 고성 화진포 주변의 김일성 이승만 별장

by 즐풍 2023. 1. 6.

2022_231

 

 

2022.10.30. (일)  오전에 잠시 탐방

 

 

고성 서낭바위를 본 후 바로 화진포로 넘어왔다.

화진포에서 이승만 별장을 시작으로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으로 이동할 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야외서 보내는 시간을 줄고 이동하기 바쁘다.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기념관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기념관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등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친필 휘호, 의복과 소품, 관련 도서 등이 현대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승만 별장은 이와는 좀 다르게 정겹게 꾸며져 있다.

침실과 거실, 집무실, 평소에 끼던 안경과 여권, 편지 등 유품이 흥미롭게 진열되어 있다.  (안내문)

 

 

 

 

 

 

□ 화진포석호

 

화진포석호는 후빙기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이 침수되어 만이 형성되고,

그 입구가 사주나 사취로 가로막혀서 발달하게 된 지형이다.

이는 신생대 제4기를 대표하는 지형이다.

화진포 일대의 주요 암석은 화강암(각섬석-흑운모 화강섬록암)이다.

화진포 석호의 지형발달을 3단계로 구분하면, 골짜기형성-헤수면상승-모래언덕 발달 순으로 구분된다.

빙기가 극에 달했던 약 1만 8,000년 전의 동해안은 현재보다 약 130m가량 낮은 해수면을 형성하였다.

마지막 빙하가 물러가면서(간빙기) 해수면이 급 상승하여 약 6,000년 전에 침수 범위가 최대에 이르렀다.

그 후 해수면 변동은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어 약 3,000년 전에 이르러 현재와 유사한 해안선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만의 입구는 수심이 얕은 상태로 유지되면서 바다로 돌출해 있는 구릉지로부터

모래 언덕이 첨차 발달하게 되고 만의 입구를 가로막아 지금과 같은 화진포석호를 이루게 되었다.

                                                                                                                        (출처_국가지질공원)

 

□ 화진포

 

화진포(옛 지명:가평(加平)) 마을은 동해와 연접한 면적 72만 평, 둘레 6Km의 광활한 호수이다.

주위에는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려 싸여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고성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포구에는 기암괴석의 신비가 극치를 이루며 수심이 얕고 해저가 청아하여

주옥같은 백사장이 명사십리(明沙十里)를 이룬다.

일제 말까지는 외국인 별장지였고 6.25 동란 전 적 치하 때에는 김일성(金日成)이 쓰던 별장이

아직도 남아 있어 지금은 안보공원으로 조성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을과 겨울이면 철새들이 떼 지어 찾아와 넓은 호수에서 유유히 노닐기도 한다.

또 호수 주위의 경치가 좋아 죽정(竹亭), 모연(暮煙), 풍암(楓岩), 귀범(歸帆), 장평(長坪),

낙안(落雁), 가평(加平), 야종(夜種)을 화진 팔경이라고 한다.

인기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전국 관광지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출처_화진포마을 홈피)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1954년 단층건물로 신축되어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했다.
이후 건물을 방치하여 폐허로 철거된 것을 새로 지어 육군관사로 하용해 왔다.

그 후 1999년 7월 육군에서는 현재 위치에 본래 모습으로 복원하여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해 오다가
2007년 8월,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안내문)

 

 

 

 

김일성 별장 화진포의 성

 

1935년경 선교사 셔우드홀에 의해 화진포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원통형 2층 석조건물로 지어졌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지역으로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공산당 간부 휴양지였다.
1948년부터 50년까지 김일성이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하계 휴양지였다.

48년 8월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별장 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조국이 해방되면서 강대국에 의해 38선이 생겼다.

이때 강원도는 양양부터, 속초, 간성, 고성지역은 북한의 소유로 넘어갔다.

그러니 간성 화진포에 김일성 별장이 들어선 것이다.

이후 625 전쟁이 터지며 우리는 동해안을 적극적으로 밀고 올라가 금강산을 눈앞에 두고 전쟁이 끝났다.

우리가 이 지역을 수복하자 이승만과 이기붕도 이곳 화진포에 별장을 두게 된 것이다.

금강산을 찾지 못한 것은 아쉬워도 설악산을 우리 땅에 둔 것은 무척이나 잘 된 일이다.

지금까지 설악산을 45차례 정도 다녀왔으나 갈 때마다 멋진단 생각이 든다.

 

우리네 국군이 지킨 동해안은 고성까지 밀고 올라간 반면 UN군이 지키던 서부지역은 

파주 임진강에서 김포와 강화도로 빠지는 한강을 경계로 북쪽에 내주고 말았다.

북한은 강화도 건너편의 연백평야를 손에 넣음으로써 곡물을 다량으로 손에 넣는 기회를 잡았다.

물론 우리가 철원평야를 찾아왔으니 얼마 정도는 상쇄할 것이다.

서부지역 경계선이 남쪽으로 내려오며 서울이 북한과 너무 가깝다는 물리적 한계가 아쉽다.

 

 

 

□ 화진포해수욕장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화진포해변은 길이 1.7km, 넓이 약 70m, 수심 1~1.5m이다.
오랜 세월 동안 조개껍데기와 바위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모나자이트 성분의 완만한 백사장과 맑은 바닷물,
얕은 수심으로 인해 해마다 관광객이 늘고 있다.
고성군의 시범 해수욕장으로 샤워·급수·주차 시설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주위에 소나무숲과 기암괴석, 철새와 해당화가 장관을 이루는 화진포가 있고,
김일성 별장(유료관람)과 수복 후 건립된 화진포 이승만 별장이 있다.
김일성 별장은 일제강점기에 외국인들이 이용한 휴양소인데,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이 다녀간 후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매년 여름이면 해변에서 맥주 시음대회, 해변 노래자랑과 페이스 페인팅, 윈드서핑 등이 열린다.
주변에 화진포(강원 기념물 10)를 비롯하여 건봉사지(강원 기념물 51), 어명기 가옥(중요 민속자료 131),
청간정(강원 유형문화재 32) 등의 문화재와 통일전망대·송지호 해변·설악산국립공원·해양박물관·

역사안보전시관 등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출처_화진포해수욕장 홈피)

 

이기붕 부통령 별장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된 건물로써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었다.
휴전 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하다가 폐쇄되었다.
1999년 7월 역사 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전시하고 있다.  (안내문)

 

 

 

 

 

 

 

 

화진포를 끝내고 고성군 통일전망대로 들어갔다.

통일전망대는 북한지역과 가까운 곳이라 카메라를 소지하지 않아 사진이 없다.

귀로에 DMZ 박물관에도 들렸으나 이곳 역시 빈손으로 들어갔다.

게다가 고성군에서 제1경으로 소개한 건봉사에선 제법 비가 내려 즐풍과 형님만 잠시 관광했다.

이렇게 둘째 날은 흐리고 비가 오고, 일부 지역은 카메라 지참을 하지 않았다.

 

 

귀가할 때 깜박 졸았나 보다.

눈을 떴을 때 2차선으로 달리던 차가 1차선의 중앙분리대를 박기 직전이다.

깜짝 놀라 급히 핸들을 틀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형 사고가 날 뻔했다.

핸들이 오른쪽으로 들어갔으니 1차선까지 먹는 거리가 있어 다행이지

2차선으로 핸들이 돌아갔다면 여유 공간도 별로 없는 데, 역시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다행히 아직은 살아있어야 된다는 운명이 우리 형제를 지킨 것이다.

이렇데 1박 2일의 짧은 강원도 여행을 무탈하게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