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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전라도·광주

고창 소요산 자락에 있는 미당 서정주 생가 주변의 풍경

by 즐풍 2022. 12. 15.

 

 

 

2022.10.7. (금) 오전에 잠시 탐방

 

 

이곳 주변도로를 다니며 근처에 미당 시문학관이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미당의 시 중 「화사」와 「국화 옆에서」는 누구나 다 알 만큼 유명하지만,

그가 일제를 위한 친일 작품과 전두환의 군부독재를 찬양한 시를 써 명성에 흠집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우리 문학에 기여한 공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미당의 애증을 덮고 소요산 가는 길에 보이는 생가 주변의 풍경을 담아본다.

 

 

 

 

 

□ 미당 서정주 (1915~2000)

생전에 15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약 70년의 창작 활동기간 동안 1,000여 편의 시들을 발표했다. 

그의 시는 뚜렷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거치는데 초기엔 원색적이고 강렬한 관능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미학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다가 노년에는 달관과 원숙미를 표방하는 쪽으로 귀착된다. 

현대의 시인들 중에서 만해, 소월, 지용 등과 함께 가장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시인 평가에 대한 각종 자료에서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 번역된 한국문학 자료 중 가장 많은 나라의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기록이 있으며 

생전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다섯 번이나 추천되었지만 수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나 사후에나 한국문학이 도달한 최고의 미학적 형상력, 또는 후대에게 미치는 가장 강렬한 미학적 

감화력의 주인공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동시에 일제 강점기 후반의 친일작품 발표 문제 및 독재정권 지지와 찬양 문제로 인해 

문학계 안팎의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출처_고창군청)

 

 

 

 

 

들국화란 꽃은 없다고 하지?

들국화는 야생화를 통칭할 뿐 정확한 명칭은 아니라고 한다.

구절초란 말이 맞겠지만, 그렇다고 구절초 옆에서라는 제목의 시는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

미당 생가에 어울리게 제 시기를 맞아 국화가 막 피어났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와 산돌

산에 가서 땀 흘리며 줏어온 산돌/  하이얀 순이 돋은 수정 산돌을/  국화밭 새에 두고 길렀습니다.
어머니가 심어 피운 노란 국화꽃/  그 밑에다 내 산돌도 놓아두고서/  아침마다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다섯 살 때

 

내가 고독한 자의 맛에 길든 건 다섯 살 때부터다.
부모가 웬일인지 나만 혼자 집에 떼놓고 온종일을 없던 날, 마루에 걸터앉아 두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가 

다듬잇돌을 베고 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것은 맨 처음으로 어느 빠지기 싫은 바닷물에 

나를 끄집어들이듯 이끌고 갔다. 

그 바닷속에서는, 산비둘기라든가 - 어머니한테서 이름만 들은 형제도 모를 새가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초파일 연등밤의 초록 등불 수효를 늘여 가듯 울음을 늘여 가면서, 

침몰해 가는 내 주위와 밑바닥에서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뛰어내려서 나는 사립문 밖 개울물 가에 와 섰다. 

아까 빠져 있던 가위눌림이 얄따라이 흑흑 소리를 내며, 여뀌풀 밑에 물거울에 비쳐 잔잔해지면서, 

거기 떠 가는 얇은 솜구름이 또 정월 열나흗날 밤에 어머니가 해 입히는 종이적삼 모양으로 

등짝에 가슴패기에 선선하게 닿아 오기 비롯했다.

 

 

ㅎㅎㅎ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가 없었으면 작년 동백꽃을 불러내지 못했겠다.

그 여자의 목에 걸렸던 동백꽃이 시큼털털한 육자배기에 튀어나왔나 보다.

여운이 남는 시다.

시를 이렇게 아크릴 판에 담아 걸었더니 황톳빛 붉은색은 여전히 판에 걸려 나오질 못한다.

주변에 막걸리 파는 집도, 육자배기 불러줄 여인네도 없으니 황톳빛은 계속 남아 있을까?

 

 

미당 생가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578

 

미당은 1915년 음력 5월 이곳에서 태어났다.

1942년 부친이 별세한 후 친척이 거주하면서 지붕을 슬레이트로 개조하였다.

1970년 경부터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방치되다가 2001년 8월에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바깥에 있는 행랑채다.

서정주 시인의 부친은 동아일보를 창간한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고 한다.

마름이라 소작을 떼이지 않기 위해 소작인들이 행랑채에 종종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마당엔 우물이 있었으니 살림살이하기엔 큰 불편이 없었겠다.

 

 

안채엔 광과 부엌이 보인다.

초가였을 망정 기둥은 반듯반듯한 게 제법 규모 있게 잘 지은 집이다.

내부 구조를 현대식을 변경해도 살림하기 좋은 구조다.

 

 

 

 

 

 

돌담을 흙으로 이겨 지은 담장이다.

흙에 습기가 차면 눅어 담장이 쉽게 무너지므로 담장 위로 판석을 깔아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했다. 

자연부락이라 길 따라 굽이진 담장이 아름답다.

 

 

小者 李 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기운 -서정주 

小者 李 생원네 무밭은요, 질마재 마을에서도 제일로 무성하고 밑둥거리가 굵다고 소문이 났었는데요

그건 이 小者 李 생원네 집 식구들 가운데서도 이 집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이 아주 센 때문이라고
모두들 말했습니다

옛날에 新羅 적에 智度路大王은 연장이 너무 커서 짝이 없다가 겨울 늙은 나무 밑에 長鼓만한 똥을 눈 색시를 만나서
같이 살았는데, 여기 이 마누라님의 오줌 속에도 長鼓만큼 무밭까지 鼓舞시키는 무슨 그런 신바람도 있었는지 모르지

마을의 아이들이 길을 빨리 가려고 이 댁 무밭을 밟아 질러가다가 이댁 마누라님한테 들키는 때는

그 오줌의 힘이 얼마나 센가를 아이들도 할 수없이 알게 되었습니다 -

"네 이놈 게 있거라, 저 놈을 사타구니에 집어넣고 더운 오줌을 대가리에다 몽땅 깔기어 놀라!"

그러면 아이들은 꿩 색기들같이 풍기어 달아나면서 그 오줌의 힘이 얼마나 더울까를 똑똑히 잘 알 밖에 없었습니다.​
                                                                                                               (출처_함라초당 블로그) 

 

 

미당의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이생원댁의 오줌줄기를 표현한 것으로

풍만한 육체를 지니는 한 여인이 대지 형태의 산등성이에서 자연이 주는 

다산과 풍요를 내포한 작품 설명이다.

 

 

눈들영감

 

“눈들 영감 마른 명태 자시듯”이란 말이 또 질마재 마을에 있는데요. 

참, 용해요. 

그 딴딴히 마른 뼈다귀가 억센 명태를 어떻게 그렇게는 머리끝에서 꼬리 끝까지 쬐끔도 안남기고 

목구멍 속으로 모조리 다 우물거려 넘기시는지, 

우아랫니 하나도 없는 여든 살짜리 늙은 할아버지가 참 용해요. 

하루 몇 십리씩의 지게 소금장수인 이 집 손자가 꿈속의 어쩌다가 떡처럼 한 마리씩 사다 주는 거니까 

맛도 무척 좋을 테지만 그 사나운 뼈다귀들을 다 어떻게 속에다 따 담는지 그건 용해요.
이것도 아마 이 하늘 밑에서는 거의 없는 일일 테니 불가불 할 수 없이 神話의 일종이겠읍죠? 

그래서 그런지 아닌 게 아니라 이 영감의 머리에는 꼭 귀신의 것 같은 낡고 낡은 탕건이 하나 얹히어 있었습니다. 

똥꾸녁께는 얼마나 많이 말라 째져 있었는지, 들여다보질 못해서 거까지는 모르지만....
                                                                                                                  -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더니 살려면 명태가 아니라 마른오징어라도 씹어넘겨야 한다.

이빨 없이 생명을 부지하려면 혀와 잇몸의 찰떡궁합은 자연히 터득하겠다.

 

오전에 미당 생가 마을을 지나 소요산을 올랐다.

소요산은 낮으나 하산길에 용암돔이라는 국가지질공원이 있는 특별한 산이다.

날머리는 교통편이 불편해 서해랑길을 제법 걸은 뒤에 차량을 회수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마을에서 오전에 못 본 마을길을 다시 걷는다.

 

 

고창 소요산과 용암돔이 궁금하면  

 

전북 고창의 국가지질공원인 소요산과 용암동

2022_205 2022.10.7 (금) 09:30~13:30 (4시간 탐방, 7.7km 이동, 30분 휴식) 고창에서 한 달 살이는 10월 25일에 끝난다. 이곳에서 갈만한 산은 선운사 도립공원이지만 가급적 가장 늦게 갈 생각이다. 단풍은 북

electee.tistory.com

 

 

 

당산나무

신목으로 신성시하는 당산나무를 원 형태로 감싸고도는 따듯한 모녀의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

 

웃돔샘

3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웃돔샘이다.

미당은 이 샘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간통사건과 우물이라는 시를 남겼다.

 

 

 

간통사건과 우물 - 서 정 주

간통사건이 질마재 마을에 생기는 일은 물론
꿈에 떡 얻어먹기같이 드물었지만
이것이 어쩌다가 주마염 터지듯이 터지는 날은
먼저 하늘은 아파야만 하였습니다

한정없는 땡삐 떼에 쏘이는 것처럼 하늘은
웨-하니 쏘여 몸서리가 나야만 했던 건 사실입니다
"누구네 마누라하고 누구네 남정네 하고 붙었다네"
소문만 나는 날은 맨 먼저 동네 나팔이란 나팔은 있는 대로 나와서
'뚜왈랄랄, 뚜왈랄랄' 막 불어자치고, 꽹가리도, 징도, 小鼓도, 북도,
모조리 그대로 가만있진 못하고 퉁기쳐 나와 법썩을 떨고,
남녀노소, 심지어는 강아지 닭들까지 풍겨져 나와
외치고 달리고, 하늘도 아플 밖에는 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픈 하늘을 데불고 가축 오양간으로 가서
가축용의 여물을 날라 마을의 우물들에 모조리 뿌려 메꾸었습니다
그러고는 이 한 해 동안 우물물을 어느 것도 길어 마시지 못하고,
산골에 들판에 따로따로 생수 구멍을 찾아서 갈증을 달래어
마실물을 대어갔습니다.

 

소요산이 품고 있는 우물터를 형상화했다.

 

 

노초산방

 

서정주 시인이 등단하기 전까지 글을 쓰시던 곳을 형상화한 작품

 

 

부안댁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 맵시가 마을에서 제일 이쁘다던 부안댁네 집도 이젠 사람이 살지 않나 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라는 특별함으로 마을 곳곳에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여러 작품을 설치했다.

덕분에 그의 시를 찾아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의 행적을 제쳐둔다면 우리 문학에서 차지하고 사랑받는 탁월한 시인이다.

미당과 함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여러 번 추천된 또 한 분의 시인도 함께 떠오른다.

늘 예기치 못한 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불운을 겪는 사람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