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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전라도·광주

위봉산 군립공원에 있는 위봉사

by 즐풍 2022. 12. 15.

 

 

 

 

2022.10.2. (일)  위봉산 산행 후 잠시 탐방

 

 

위봉산 산행은 위봉산성을 한 바퀴 돌아야 끝난다.

위봉산성 북단의 서쪽과 동쪽이 만나는 지점의 토끼 귀처럼 생긴 구간은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위왕 나선 산행이라면 조금 더 걸어도 시간 내어 다녀오면 더 좋다.

어차피 산행은 어느 정도 고행을 감수하며 다녀오면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위봉산 산행을 일찍 끝냈어도 임실의 옥정호 출렁다리와 정읍의 무성서원까지 탐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위봉산 자락에 있는 위봉사가 제법 멋지게 보여 잠시 들려보아야겠다.

위봉산을 다시 올 기회를 만들기 어려우니 위봉사까지 깔끔하게 보는 게 좋다.

이렇게 장거리 여행은 늘 숨 가쁘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 대한 불교 조계종 위봉사


위봉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사찰로,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위봉산 자락에 자리한 고찰이다.
고려말 나옹스님께서 중건하시고 조선 세조 때는 선석, 석잠 두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 말엽 포련대사에 의한 60여 칸의 건물 중수를 거쳐 1912년에는 전국 31本産중의 하나로

전북 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하기도 하였으나 해방 후 6.25 동란을 거치면서 급속히 퇴락했다.

폐사 직전인 1988년 현재의 주지 법 중 스님이 부임하며 도량정비를 시작하여 퇴락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관(官)과 협조하여 보수하고 여러 시주의 동참으로 100여 칸의 건물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년에 걸친 대작 불사로 위봉사는 다시금 중건되고 있으며, 

현재는 10여 동의 건물에 50~60명의 대중이 상주(常住)하고 있는 대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창건이래 수많은 도인이 거쳐가시고, 걸출한 선승(禪僧)과 명강사 등 무수한 인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 

위봉사는 오늘날 전북을 대표하는 비구니 선원이자 포교의 전당으로 그 역사의 장을 새롭게 열고 있다.
산내 암자인 태조암과 숙종 원년에 축조한 위봉산성과 행궁터,

완주 9경의 하나인 위봉폭포가 있어 역사적인 문화유적지로도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출처_완주군청)

 

 

 

 

 

사천왕문 안에 있는 사천왕 앞에서는 늘 작아지는 느낌이다.

부릅뜬 눈이며 긴칼에 창까지 들고 발로 마귀를 밟고 있는 사천왕 앞에선

즐풍도 한낱 보잘 것 없는 미물이 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들이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는다고 하니 무서울 것도 없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며 경건한 마을을 갖게 만든다.

 

봉황이 서식한다는 봉서루는 어떤 뜻을 갖고 있을까?

흔히 설법을 듣는 강당으로 이용한다고 하니 그중에 몇 명은 봉황처럼 큰 뜻을 품은

불자로 만든다는 뜻이겠거니 생각한다.

 

 

 

위봉사를 방문한지 두 달도 넘어 블로그를 작성하려니 어느 건물에 모셔진 부처님인지 모르겠다.

부처님은 세상 어느 곳에도 다 계실 테니 계신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다.

 

 

 

지장전 건물 가운데 창문은 뒷문까지 열린 게 텅 비었다.

명부전이나 시왕전으로 불린다고도 하니 대충 의미는 알겠다.

 

다소 기울며 자란 소나무 가지가 제법 실하다.

맨 위로 가지가 뻗으며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잘 잡으면 좋겠다.

 

종각에는 목어와 법고, 운판, 범종 등 종각 사물이 다 있다.

 

목어

목어는 말 그대로 물고기 모양인데, 물속에 사는 수많은 중생을 계도한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하는 스님과 불자들은 항상 깨어있으라는 뜻이라고...

 

 

법고

법고는 양면을 소가죽으로 만든 큰 북으로 사람을 비롯한 모든 축생을 계도한다.

수행자의 게으름을 경계하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이라는...

 

 

범종

범종은 그 소리가 장엄하고 여운이 길어 천상계와 아래로는 지옥까지 들려

특히 지옥고를 받는 불쌍한 중생들이 이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데...

 

운판

운판은 하늘과 허공을 나는 새와 같이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한다.

 

운판 사진은 따로 찍지 않았으나 종각 사물의 뜻을 기억하기 위해 일부러 옮긴다.

그렇다 한들 이 기억이 얼마나 오래갈지....

 

 

이 풍경 소리 한 번에 기억도 소리처럼 사라지는 건 아닐는지...

 

이 ㄱ 자 긴 건물 좌측엔 극락전이, 오른쪽엔 위봉사란 편액이 걸렸다.

 

ㄱ 자 건물의 우측을 정면에서 다시 잡으면 위봉사 편액이 뚜렷하게 보인다.

지붕의 양쪽 끝에 삼각형 붉은 풍판이 있는 걸 보면 사실 정면은 좌측과 우측의 건물이겠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사각형 건물로 가운데는 마당이겠다.

 

 

 

 

□ 보광명전(普光明殿)

 

위봉사는 백제 무왕 5년(604)에 서암 대사가 지었다는 설과 신라 말에 최용각이라는 사람이 절터에서

세 마리 봉황새가 노는 것을 보고 위봉사(圍鳳寺)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공민왕 8년(1358) 나옹화상이 절을 크게 넓혀 지었고 조선 세조 12년(1466) 석잠대사가 수리하였다고 한다.
위봉사 보광명전은 건축 수법으로 보아 17세기경에 지은 건물로 추정하며 ‘보광명전(普光明殿)’이라 적힌

현판은 조선 순조 28년(1828)에 쓴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 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불단 위쪽으로 운룡(雲龍)과 여의주 모양의 구슬을 장식한 닫집을 만들어 놓아 불상에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쪽 뒷벽에 그린 백의관음보살상을 비롯한 여러 불화와 비교적 채색이 잘 보존된 금단청은

차분하고 아늑한 법당 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우수한 옛 채색기법과 조선시대 목조 불전 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_문화재청)

 

 

보광명전 옆모습

 

나한전

 

나한전

 

극락전

 

관음전 건물은 ㄷ자 모양으로 양쪽에도 건물이 붙어 있다.

 

 

 

 

 

 

 

이 위봉사 편액은 좀 특별하게 양쪽으로 난과 대나무를 그렸다.

 

 

 

 

 

 

 

위봉사에 있는 많은 글과 기와 그림에서 한 점씩만 뽑아 올린다.

나머지는 즐풍 혼자 시간 날 때 봐야겠다.

 

 

 

 

 

언젠가 위봉산성을 보려고 완주군청에 대중교통을 문의했었다.

그때 담당은 행복콜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이번엔 자차를 이용해 전주와 완주, 정읍을 연결하며 쉽게 여행을 하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행복콜버스를 이용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