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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충청도·대전·세종

천주교 순례길의 마지막 여정인 아산 공세리성당

by 즐풍 2022. 3. 15.

2022_31

 

 

2022.3.6 (일)  오늘 여행의 마지막 일정

 

 

당진 여행을 나서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해미읍성, 해미성지에 이어 귀갓길에 아산 공세리 성당까지

들렸어도 이동이 많아서 그렇지 산행만큼 힘들진 않다.

예전엔 당진, 아산, 홍성 등의 너른 들판 사이로 삽교천이 지나며 배가 드나들던 곳이다.

이 세 지역 외에도 태안, 서산, 보령 등을 아울러 내포지역이라 한다.

내포(內浦)는 잘 알려진 명칭은 아니지만, 최근 홍성의 내포신도시에 충남도청 등 행정기관과 대규모 공동주택이 

들어선 후 지역을 대표하는 신도시가 형성되며 「내포」란 말이 뜨기 시작한다.

중국과 철도로 연결되기 전에는 내포가 중국과 해상으로 드나드는 게 가장 빠른 통로였다.

이런 이유로 충청도 해안은 해상으로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박해가 시작된 이후 순교자가 많이 나오게 되었다.

당진의 솔뫼성지, 합덕성당, 신리성지를 연결하는 구간을 「버그내 순례길」이라고 한다.

버그내 순례길에 대한 포스팅은 이미 끝냈고, 귀로에 만나는 공세리 성당을 마지막으로 정리한다.

솔뫼성지에서 삽교천 다리를 건너 불과 19km 지점의 공세리 성당을 연결한 구간을 「천주교 순례길」이라고 한다.

오늘 탐방한 서산, 당진, 아산뿐만 아니라 홍성이나 보령, 태안 등에도 천주교 순교지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 아산 공세리 성당    


1863년 조선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은 후 1866년 병인박해 때 공세리의 밀두리, 걸매리, 

해암리 신자 28명이 수원, 서울, 공주 등으로 끌려가서 고문, 옥사, 교수형 등으로 순교했다. 

박의서, 박익서, 박원서 삼 형제 모두 걸매리에서 살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난 이듬해인 1867년에 체포되어 

수원에서 순교하였고, 1988년 9월 20일 공세리 본당 앞마당에 삼 형제의 순교 묘를 써서 안치했다.

이후 봉헌된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에는 세 형제의 유해와 함께 박인서, 이 마리아, 이 씨 부인,

박홍갑, 박화진 알렉산드르와 조 모니카의 묘 표석, 그리고 순교자 김중백을 포함,

순교자 23위를 기리는 묘석이 모셔져 있다.

이렇게 순교자를 기리는 성지성당으로서의 역학도 하고 있는 공세리 성당은 오늘이 있기까지

초대 주임을 지냈던 드비즈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이 그 바탕을 이루었다.

드비즈 신부는 2대 기낭 신부가 1년 만에 전임하면서 초대에 이어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해

1930년까지 34년간 공세리 본당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발전의 터를 닦았다.

                                                                                                   (출처_천주교 순례길)

 

 

건축 당시 멀리서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왔을 정도였다.
충남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드비즈 신부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들을 불러 지휘 감독하면서 지은 1922년도의 성당이다. 

한국 근대건축의 형성과정에서 초기 건축양식의 도입과 발전 역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_천주교 순례길)

 

 

처음 고약을 개발하고 보급한 공세리 성당

 

예전엔 상처와 종기에 고약만 한 약이 없었다.

그 고약을 맨 처음 만들어 보급한 곳이 바로 공세리 성당이다.

1895년에 이곳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한국명 성일론) 신부님이 프랑스에서 배우고 익힌

방법으로 원료를 구입해 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당시 신부님을 도와드렸던 이명래(요한)에게 비법을 전수하여

이명래 고약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게 된 것이다.                 (출처_공세리 성당)

 

 

□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

 

한국 천주교회는 신유 기해 병오 병인 등 4대 박해를 통해 만여 명의 순교자를 낳게 되는 데, 

그 대부분이 내포지방에서 나왔다.
신유박해 때는 최초의 순교자인 하 발바리가 있었다.
병인박해 때 이곳 걸매리에서 신앙생활을 한 박씨 삼 형제인 
박의서(사바), 박원서(마르코), 박익서(세례명 미상)을 비롯하여 부부 순교자인 김필립보와 박마리아 

그리고 삼 부자인 이요한, 이 드로, 이프란치스코가 명광스럽게 순교했다.
이들을 포함한 병인박해 때 아산지역 출신 순교자는 모두 32명이었으며
각각은 서울, 수원, 공주 등으로 끌고 가 고문, 옥사, 참수형 등으로 순교했다.
봉헌된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에는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 세 분의 유해와 박인서,
이마리아, 이 씨 부인, 박홍갑, 박화진과 조모니카의 표석, 순교자 김중백을 포함한 스물세 분의 묘석이 모셔져 있다.

                                                                                                              (출처_공세리 성당)

 

 

 

공세리 성당은 1890년에 시작되어 1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성당으로 충청남도 지정기념물 144호이면서, 2005년도에 한국관광 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된 성당이다. 

 

마리아 동굴

 

 

 

새벽에 출발해 당진 왜목마을에서 일출 보는 것을 시작으로 바쁘게 움직여 아산 공세리 성당을 끝으로 일정을 마친다.

궁금했던 당진의 면천읍성 탐방에 이어 서산 해미읍성도 한번 더 보았다.

이어서 서산 해미성지를 시작으로 버그내 순례길의 신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 합덕성당, 솔뫼성지를 둘러보고

삽교천을 건너 아산의 공세리 성당에서 마무리한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오르기까지 이런 천주교 신도들의 순교를 거치며 많은 희생을 치른 대가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