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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충청도·대전·세종

당진 버그내 순례길의 종점인 솔뫼성지

by 즐풍 2022. 3. 15.

2022_30

 

 

2022.3.6 (일)  오후에 탐방

 

 

모처럼 차를 끌고 나오니 관광 장소를 많이 다닐 수 있어 좋다.

버그내 순례길 전구간을 걸어서 탐방하면 하루 정도 잡아야 하는 데, 차량으로 간단하게 성지만 돈다.

오늘 성지 순례엔 서산 해미성지와 아산 공세리 성당까지 포함시켜 모두 다섯 곳을 돌 예정이다.

관광지는 물론 성지마다 개별로 포스팅하니 양이 많아져 벌써 일주일을 넘게 헤매고 있다.

쓰기 싫을 때도 있으나 고름 내버려 둬 살 되는 게 아니니 또 붙들고 늘어져 빨리 끝내야 한다.

 

 

 

 

□ 솔뫼성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를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하였다.
‘내포’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는 장소이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에는 1784년 이승훈 세례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내지 천주교 문화와 신앙을 접하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확산되었던 실학사상의 분파인 서학이 내포 선비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내포의 서학자들은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내포의 양반, 중인, 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천주교로 발전하였다.

김대건 신부님의 10대 선조인 김희현이 아산 현감을 역임하면서 가문이 내포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9대 선조인 김의직이 충청 병마절도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에서 전훈을 세우자

가문이 대대로 토지와 벼슬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헌부 감찰과 통훈대부를 지낸 8대 선조인 김수완 때부터 가문은 솔뫼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1784년경 김대건 신부님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내포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서울 김범우의 집에서

교리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자 가장인 증조부 김진후(비오)도 입교하여 가문이 천주교 신앙으로 귀의,

솔뫼를 ‘내포 신앙의 못자리’로 만들었다.
김 신부님 가문은 천주교 신앙에 귀의한 후 잦은 박해로 가족들이 여러 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받다가

순교까지 하여 솔뫼를 ‘순교자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1906년부터 합덕 본당 주임 크렘프 신부님은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하여 인근의 토지매입을 시작하였고,

1945년에는 백 빌리버 신부님이 솔뫼에 김대건 신부 복자비(福者碑)를 설립하였다.
1973년부터 솔뫼 성역화 사업을 계획적으로 시작하여 1982년에 대전교구는 순교자 신앙을 가르치고 전하는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다.

국가와 지자체의 도움으로 2004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생가를 복원, 2005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을 건립하여

이제 솔뫼성지는 ‘순교자 신앙과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이다.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종한(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의 신앙이 싹튼 곳이며,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김대건은 이곳(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당시에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났다.

그러나 이미 증조부와 종조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어서 가세는 기울 대로 기울었고

또 어느새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몰라 조부 김택현은 김대건이 7세 무렵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했다.  

                                                                                         (출처_솔뫼성지)

 

솔뫼성지 입구로 들어서며 왕릉으로 들어가는 신도를 연상케 한다.

가운데 문은 신도이고 양 옆은 어도처럼 만든 왕릉의 길을 닮았다.

 

 

이 고통 어떻게 참았을까?

참은 게 아니라 당하면서도 형을 집행하는 집행자에게 원망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키는 대로 하기에 죄가 없다고 했다.

 

 

 

김대건 신부 기념관으로 들어가려니 문이 잠겼다.

 

 

□ 김대건 신부

 

증조부와 종조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어서 가세는 기울 대로 기울었고

또 어느새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몰라 조부 김택현은 김대건이 7세 무렵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했다.

김대건은 그곳에서 16세 때인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뽑혀

최양업(토마스)과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신품을 받았다.

1845년 입국한 김신부는 선교 활동에 힘쓰는 한편,

동료 최양업 부제와 외국 선교사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힘쓰다 1846년 6월 5일 체포되었다.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 만의 일이었다.

1859년 9월 24일 가경자, 1925년 7월 5일 복자품,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려졌다.

김신부는 조선 최초의 방인 사제이며 현실을 직시하고 진리를 외치던 선각자였다.

저서로는 22편의 서한이 있고, 한국 교회사에 관한 비망록 등이 있어 79위 시복자료가 되었다.

대전교구에서는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김신부 생가 복원을 결의하고

2004년 9월 22일 생가 안채 복원을 완성하였다.

1998년 7월 25일 충청남도는 성 김대건 신부 생가터를 충남 지방문화재 제146호 기념물로 지정하였다.

2005년 10월에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2014년 5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 사적지 제529호로 등록되었고

2014년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제3회 한국 청년대회가 대전교구에서 개최되면서

이 기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시어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솔뫼성지에서 가지게 되었다.

                                                                                                    (출처_솔뫼성지)

 

 

□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지 / 사적 제529호

'소나무가 산을 이루고 있다'하여 순우리말로 ‘솔뫼’라 이름 붙여진 곳으로,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한 자리이다.

솔뫼성지는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 김진후 비오

(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 (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한국의 베틀레헴’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나 1836년부터는 마카오에서 사제 수업을 받았으며,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 1846년 9월 16일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가톨릭 교회의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가톨릭 교회의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지난 2014년 천주교 아시아 청년대회 개최와 더불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여 전

세계적인 천주교 성지로 명성을 얻었으며, 사적 제529호로 지정되었다. 
                                                                                                        (출처_버그내순례길)        
                                                                                                     

 

십자가의 길

두 가지로 십자가의 길이 제작되어 있다. 예수님의 손을 주제로 모자이크화한 십자가의 길과

브론조로 인체 크기로 새로 설치한 환조 형태의 십자가의 길(김종필 작가 2012년 설치)이 있어

많은 순례자들이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숲 속에 설치되어 있다.

                                                                                                         (출처_버그내순례길)        

 

십자가의 길에는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14장면을 재현한 조각품이 설치돼 있다.

 

 

 

14 장면 중 그늘에 가려 화질이 떨어지는 건 올리지 않았다.

 

 

 

 

 

솔뫼라고 하기에는 부족할 만큼 산의 느낌은 없다.

이곳 지형은 솔숲이 더 어울릴 만큼 평지에 가까운 곳이다.

1만 여 평에 이르는 소나무 숲의 수령은 대개 200여 년 정도라고 하며 일부 300여 년 된 소나무도 있다.

 

 

□ 김대건 신부

 

김대건은 그곳에서 16세 때인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뽑혀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신품을 받았다.

1845년 입국한 김신부는 선교 활동에 힘쓰는 한편, 동료 최양업 부제와 외국 선교사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힘쓰다

1846년 6월 5일 체포되었다.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 만의 일이었다.

1859년 9월 24일 가경자, 1925년 7월 5일 복자품,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려졌다.

김신부는 조선 최초의 방인 사제이며 현실을 직시하고 진리를 외치던 선각자였다.

2014년 5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 사적지 제529호로 등록되었고 2014년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제3회 한국 청년대회가 대전교구에서 개최되면서

이 기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시어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솔뫼성지에서 가지게 되었다.

                                                                                                              (출처_솔뫼성지)

 

반원형의 ‘아레나’(Arena)다.

둘레에 12 사도 상이 서 있다.

아레나는 야외 미사나 공연 장소로 쓰이기도 하는데, ‘아레나’는 본래 그리스·로마 시대에 검투사들이 싸우던

‘피의 언덕’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12 사도가 고난을 당하면서도 세계에 예수님의 뜻을 퍼뜨렸듯이 김대건 신부님 역시 순교하기까지

신앙을 실천했음을 12 사도 상을 통해 배우고 신자들도 배운 대로 따르자는 뜻이 담겨 있다.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

 

 

 

김대건 신부

 

 

솔뫼성지 탐방을 간단하게 끝내고 바로 옆에 있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 성당 및 기념관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이곳에서 기리고자 하는 의도를 엿보고자 한다.

 

 

 

□ 성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 성당 및 기념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밀사들이 조선 입국을 위해 탔던 라파엘호(하느님이 보호하신다는 뜻으로 

페레올 주교님이 명명)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건축하였다. 

서해 폭풍우에 라파엘호가 돛이 찢기고 키까지 부러져 망망대해에 있는 수반과 같이 

방향성을 모두 잃었지만 성모님의 도움으로 조선에 입국할 수 있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모두가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 하였기에 외관을 붉은 색깔이 나는 소재를 사용하였고, 

가운데 큰길은 김대건 신부님의 드넓은 세계를 향한 기개를 표현하여 2006년 봉헌되었다.

                                                                                                                 (출처_솔뫼성지)

 

 

 

투박한 형상으로 예수의 생애를 닮은 작풍이 여러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도 눈에 띈다.

 

 

 

 

 

대리석은 화강암과 달리 가공하기 가장 쉬운 석재이다.

섬세한 문양을 표현하기 쉽고 흰색이라 경건한 마음을 들게 한다.

대리석이 동양에서도 생산되면 로마 신전이나 그 외 많은 작품처럼 멋진 석물이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 기념성당 및 기념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밀사들이 조선 입국을 위해 탔던 라파엘호(하느님이 보호하신다는 뜻으로 

페레올 주교님이 명명)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건축하였다. 

서해 폭풍우에 라파엘호가 돛이 찢기고 키까지 부러져 망망대해에 있는 수반과 같이 방향성을 모두 잃었지만 

성모님의 도움으로 조선에 입국할 수 있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모두가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 하였기에 외관을 붉은 색깔이 나는 소재를 사용하였고, 

가운데 큰길은 김대건 신부님의 드넓은 세계를 향한 기개를 표현하여 2006년 봉헌되었다.

                                                                                                                (출처_버그내 순례길)

 

 

집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의 당진 여행을 하며 솔뫼성지를 포함한 버그내 순례길을 쉽게 차로 돌았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버그내 순례길을 돌며 순교 성지에서 그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김대건 신부 가문의 누대에 걸친 희생은 온갖 박해에도 굴하지 않는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버그내 순례길을 탐방하며 성지에 깃든 정신을 알아가며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