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_18
2022.2.23 (수) 오전에 한 시간 정도 탐방
2년 전 온 세상을 강타는 코로나19는 백신에 맞서 계속 진화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해 간다.
최근에 진화한 오미크론은 위험도가 떨어진 반면 전염력이 강해 확진자 2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정도면 세상엔 코로나 병원균으로 가득하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집에 갓난아이가 있어 몸을 사려야 하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충주 중앙탑과 장미산성을 보려고 집을 나선다.
충주역에서 탄금대로 바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어 택시로 이동한다.
역사 시간에 우륵과 관련한 탄금대를 배운 기억은 있으나 정확한 정보는 없다.
탄금대는 신립 장군이 8청 명의 병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뼈 아픈 역사적 현장이다.
먼저 충주 세계무술공원부터 한 바퀴 돌려 살펴보기로 한다.
밖에서 들어올 때 충주 세계무술공원이란 편액이 걸렸으나 역광이라 들어와서 찍는다.
공연장
세계무술공원이라고 이름은 거창하나 특별히 볼 건 없다.
충주 세계무술박물관은 왼쪽 1층 절반만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특별한 것은 없다.
판크라티온 기념패 (기증 국가: 그리스)
판크라티온 꺾기 자세 (기증 국가: 그리스)
무술 투구 (네덜란드)
형태를 보면 16세기에 등장한 모리안과 같다.
모리안은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투구로 이탈리아식과 에스파냐식 두 가지가 있다.
이 투구는 이탈리아식으로 양쪽면과 투구 벼슬에 꽃과 꽃잎 모양이 새겨졌다.
하단에는 5개의 잎으로 이루어진 작은 꽃을 금색으로 입혀 일정 간격을 두고 장식하고 있다. (안내문)
갑옷 공예품(네덜란드)
브레이트 플레이트로 가슴만 덮는다. 단순하지만 활동성이 매우 좋다.
부적의 의미로 몇 개의 플레이트를 대는 경우도 있는데, 병사의 사시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안내문)
네덜란드의 도리깨라고 안내하고 있으나 철퇴가 더 어울릴 명칭이다
지금까지 본 플라타너스 나무 중에 제일 크다.
처음 자랄 때만 몇 번 가지치기했을 뿐 위로는 자랄 때까지 남겨 크기만 했다.
보통 가로수는 관리 편의상 팔과 목을 자르기만 하는 데,
이곳은 자라는 대로 두어 맘껏 두어 경이롭게 크다는 생각이 들 만큼 우람하고 크다.
월남참전 기념탑
호국탑
수변도로 일부는 자전거도로로 사용하고 있다.
충주호
혼-목 1994, 김희경 작
재목과 작품이 뭘 전달하려는 지 잘 모르겠다.
독립운동가이자 항일운동가인 권태웅의 감자꽃노래비
솟대
신립 장군
신립은 평소부터 성질이 잔인하고 사납다는 평판이 있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을 죽여 자기의 위엄을 세웠다.
수령들이 그를 두려워해 백성들을 동원해 가는 길을 닦았으며, 지나치게 대접했다.
비록 대신의 행차라도 이만 못했다. (징비록)
어느 날 신립이 유성룡을 찾아왔다.
"전쟁이 나면 그대가 책임을 맡아야 할 터인데, 그 방비가 어떻소?"
유성룡의 물음에 신립이 큰소리를 쳤다.
"전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왜구는 칼과 창을 사용하던 예전과 달리 조총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가벼이 볼 수 없을 것이오."
"조총이라고 쏠 때마다 다 맞힐 수 있겠습니까?"
신립은 끝내 일본의 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설픈 대비에 어설픈 졸장들이 우글거렸으니 사정이 어떠했겠는가.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1권에서)
신립은 충청도에서 8천 명의 군사를 징발해 탄금대를 지나 충주 단월역에 주둔했다.
이일이 상주에서 왜군에게 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충주목사 이종장과 종사관 김여물 등을 이끌고
새재 정찰에 나선 후 작전회의를 했다.
김여물과 이종장은 적이 승승장구하고 있으므로 새재의 좁은 협곡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했으나,
신립은 적은 보병이고 우리는 기병이라 들판에서 짓밟아 버리자고 했다.
왜군은 아무 거리낌 없이 새재를 통과하자 신립은 탄금대로 나와 평지에 배수진을 쳤다.
이때 군관 이운룡이 배수진을 보고 울면서 " 죽을 땅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만류했다.
신림은 크게 화를 내며 곤장 30대를 내렸다.
이운룡은 흐르는 피를 씻고 난 뒤 전투 대열에 끼었다.
왜군은 탄금대로 들어가 삼면을 완전히 포위하고 조총을 쏘아대며 함성을 지르고 기세를 올렸다.
배수진을 친 신립은 바늘 하나 빠져나가지 못할 형세에 처했다.
전투를 벌이기에 앞서 신립은 김여물에게 임금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적진을 앞에 두고 보고서를 쓰는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결과는 뻔하다.
신립은 탄금대 바위 쪽으로 밀려나 벼랑 끝에서 저항하다가 떨어져 월탄에 빠져 죽었다.
이로서 조선 최대의 전력이 완전히 궤멸되고 일본군은 또 한번의 승리를 기록했다.
왜군은 탄금대 전투를 끝내고 충주성으로 들어가 마음대로 노략질을 해댔다.
신립이 이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여지없이 사형감이었다.
죽음은 모든 책임을 벗겨주는 면죄부였다.
탄금대의 패전은 서울까지 왜군이 무인지경으로 밀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중 일부 편집)
신립이 이 벼랑 끝에서 싸우다 떨어져 죽은 바위를 열두대라 한다.
이렇게 깜도 안 되는 사람을 장군으로 세워 무고한 군사 8천을 잃었고, 나라를 위란에 빠뜨렸다.
왜군도 우려했던 새재에서 싸웠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대역죄인에게 나중에 영의정을 추증하고, 충장이란 시호를 내렸다니 조선의 논공행상은 엉망이다.
율-적(律-積) 1994 이철수 작
땅 1994 최은경 작
대흥사
탄금정
왼쪽 아래쪽은 탄금대교, 가로지르는 다리는 우륵대교이다.
탄금대 탐방을 끝내고 탄금 장례식장 앞에서 장미산 가는 404번 버스를 타려고 서둘러 하산했다.
10분을 기다린 끝에 장미산 행 버스를 탔다.
장례식장 뒤 강가의 흰색 나무가 오리나무 같기도 한데, 흰색이 무척 특징적으로 보인다.
말로만 듣던 탄금대의 궁금증은 풀렸다.
풀리긴 했으되 신립의 동상을 보며 혈압이 오른다.
이런 아픈 역사라도 알아야 이런 치욕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유난히 국가의 흥망이 걸린 중요한 선거다.
지칫 잘못하다 전쟁으로 치달을 위험을 느끼게 하는 후보가 있다.
전쟁의 戰 자도 모르는 병역 미필자에게 나라를 맡겨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어선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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