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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충청도·대전·세종

당진 안국사지 석탑과 마애불상

by 즐풍 2022. 3. 8.

2022_24

 

 

2022.3.6 (일) 오전에 잠시 탐방

 

 

오전에 당진 왜목마을에서 일출을 보고 장고항의 촛대봉과 주변을 탐방했다.

이어서 면천읍성을 둘러보며 절반 이상이 훼손되었고, 점차 복원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서해안으로 자주 출몰하는 왜적에 대비해 만든 읍성인데, 일제강점기 때 헐리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1906년에 을사늑약에 항거하기 위해 최구현 의병장이 일본군과 싸우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다.

 

두 곳을 둘러보고 서산 마애삼존불과 해미읍성으로 가는 길목에 먼저 안국사터로 들어선다.

이곳의 석탑과 석조여래삼존입상, 매향암각을 보려는 것이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석탑과 석조여래삼존불이 탐방객을 맞듯 화강암의 흰색이 푸른 하늘과 대비된다.

안국사는 조선시대에 폐사된 후 90여 년 전에 다시 일으켰으나 또 폐사된 사찰이다.

 

 

 

 

 

□ 안국사지 석탑

 

안국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이다. 

안국사는 창건된 해가 분명하지 않고, 

다만 절 안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통해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던 것을, 

1929년 승려 임용준이 주지가 되어 다시 일으켜 세웠으나 곧 다시 폐사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절터에는 이 탑 외에도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이 보존되어 있다.
탑은 아랫부분인 기단부(基壇部)가 다른 탑들에 비해 간단하고, 

2층 이상의 탑 몸돌이 없어진 채 지붕돌만 포개져 있어 다소 엉성해 보인다. 

탑신(塔身)은 유일하게 1층 몸돌만이 남아있는데, 

각 귀퉁이에 기둥을 본떠 새기고 한 면에는 문짝 모양을, 

다른 3면에는 여래좌상(如來坐像)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각 층의 지붕돌은 크고 무거워 보이며, 

처마 밑으로 깊숙이 들어가 4단의 지붕돌 밑면 받침을 밖으로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감을 잃고 있고 조각도 형식적이며, 

1층 몸돌이 작아서 마치 기단과 지붕돌 사이에 끼워져 있는 듯하여 우수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고려 중기 석탑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탑이다. 

                                                                                (출처_문화재청)

 

석탑은 안내문에 있듯 1층만 몸돌이 있고 나머지는 지붕만 얹힌 상태다.

대부분 탑이 홀수인 걸 감안하면 5층일 가능성이 많다.

5층엔 각진 돌 하나를 얹어 대충 균형을 맞추고 있다.

 

석탑 앞에 몸돌처럼 각진 돌의 양면에 돋을새김 한 문양이다.

 

이번엔 석탑 1층 몸돌의 세 면에 새겨진 문양을 담았다.

석조여래 삼존불 방향의 문양을 잘 보이지 않아 생략한다.

2층부터 몸돌이 없어 알 길은 없으나 적어도 2층 몸돌에도 이런 문양을 넣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바로 위에 있는 석조여래삼존입상을 담아본다.

머리에는 고려 전기 불상의 특징인 사각의 보개(寶蓋 ; 인도에서 귀인의 외출 시에 사용하던 양산을

불상의 머리 위에 갓처럼 씌운 것)까지 얹어 표현했다. 

 

 

□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唐津 安國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

 

안국사는 안국산(일명 은봉산)에 위치한 폐사지(廢寺地)로 1929년에 다시 세웠다고 하나 

또다시 폐사되었다.

이곳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 높이 5m에 가까운 큰 석불입상이 있다.
머리에는 커다란 사각형의 갓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신체의 비례상 어색하게 큰 편이다. 

불상의 몸은 대형화되었는데 인체의 조형성이 감소되어 네모난 기둥 같은 느낌을 준다. 

또 몸과 어울리지 않게 팔과 손을 붙여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붙여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에는 본존불을 모시는 보살상이 있는데, 

오른쪽 보살은 허리까지 묻혀 있고 왼쪽 보살은 머리만 파괴되었을 뿐 형식은 본존불과 같다.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구체화한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과 함께 주목된다.

                                                                                         (출처_문화재청)

 

본존불 우측의 보살상은 머리가 파괴되어 절반만 남은 상태이다.

왼쪽 보살과 거의 같은 형태로 손의 위치만 다르다.

 

왼쪽 보살

세 분 모두 머리가 지나치게 큰 느낌이다.

 

가사 밖으로 나온 발의 모양을 도 두라 지게 표현한 특징이 보인다. 

양쪽 보살의 가사엔 줄무늬를 넣었으나 본존불은 선을 넣지 않아 간단해 보인다.

 

 

 

 

 

 

 

 

매향 의식을 담았다는 글자가 두 군데 나뉘어 있다.

 

 

 

석탑 왼쪽으로 건물이 있던 주춧돌만 남아 옛 건물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폐사지에 남은 석탑과 삼존불이 한 때 이곳이 사찰이었음을 말해준다.

석탑의 몸돌이 이 주변에 있다면 언젠가 찾아낼지도 모르겠다.

지붕돌 위아래로 몸돌에 맞게 홈이 있다면 복원이 가능하겠다.

아니면 몸돌과 지붕돌의 균형에 따라 복원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의 석탑도 복원하는 마당에 못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