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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탐방/충청도·대전·세종

홍성읍 오관리 당간지주의 웅장함

by 즐풍 2022. 1. 19.

2022_06

 

 

 

2022.1.16 (일)  오후에 홍주읍성 탐방 후 들림

 

 

홍성에 온 목적은 홍주읍성을 보는 게 제일 크지만, 온 김에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아야 후회가 없다.

후회라기보다는 가성비를 높이려는 까닭이다.

백월산 등산에 이어 홍주읍성, 홍주향교, 천주교 홍주성지, 홍주의사총을 둘러본 후 이곳이 마지막 탐방 장소이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이나 작성 편의상 먼저 포스팅한다.

 

 

 

□ 홍주 당간지주(幢竿支柱)

당간지주(幢竿支柱)는 높이 4.7m의 화강석재 2개의 기둥으로 된 사찰 당간지주로서 고려 양식의 수법으로

12~13세기경 제작되었으며,

그 수법이 수려하여 현재 남아있는 석당간으로서는 나주 동문 밖 석당간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주변의 지면이 깎여나가서 기단이 없어졌고 주각(柱脚)만이 노출되어 있으며 주간(株間)에 간대(竿臺)가 있다.

간대 중앙에는 간주(竿柱)를 받는 직경 약 32cm의 둥근 구멍이 있으며,

지주는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본 당간은 ‘광경사(廣景寺)’라는 큰절에 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규모 및 창건과 폐사 연대는 알 수 없다.

 

당간은 만든 재료에 따라 철당간, 석당간, 목 당간으로 불리며

신라 때부터 석당간이 남아있어 두 개의 기둥 가운데 깃대(당간)를 세우도록 만든 것으로

사찰에서 당(幢)이란 깃발을 달아 세우던 것인데 큰 행사 때 사용되었다.
이 당간지주는 홍성읍내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월계천이 남문천과 합류되는 지점인

홍성읍 대교리 제방길 밑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를 광경사지라고 부르며, 광경사지의 남쪽에 원형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78cm의 간격을 두고 양 지주가 동서로 상대하여 서 있는데 지주의 내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바깥면의 중앙부에는 단면 반원형의 2조 돌대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정면과 후면에는 주연에 종대를 돌출시켰고 지주의 상단은 호형을 이루고

마주 보는 안쪽의 상단에만 장방형의 간구를 만들었다.

간대는 1매의 장대석으로 중앙에 원좌가 있고 중심에 지름 32cm, 깊이 4cm의 간공이 있는데

이 자리에 당간을 놓게 되어 있다.


현재 당간지주가 위치하고 있는 주변 일대가 고려시대의 절터로 전해지며,

여기에서 반출된 유물로는 홍성여중 정원의 ‘삼층석탑’이 있고 홍성읍 내법리에 위치한 용주사의 ‘석불좌상’이 있다.
※ 광경사지와 관련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미륵사지로 보는 견해가 있다.

                                                                                                              (출처_홍성군청)

 

 

등산 앱을 이용해 홍주 당간지주로 가다가 지나친 걸 알고 카카오 맵으로 바꾸어 길을 찾는다.

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금방 도착한다.

 

 

당간지주의 당(幢)은 사찰 입구에 꽂는 기(旗)의 일종으로 속칭 괘불이라고도 한다.
표면에 불화가 그려져 있다.
당간은 당을 달아두는 장대로 대개는 석재나 철제로 만들었다.
사찰에서 법회 등 큰 행사가 있을 때 당을 매달아 부처님이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기리거나,

중생을 계도하고 마군을 굴복시키기 위한 벽사적 목적에서 당간을 세웠다. 

                                                            (출처_1989년 문화재청의 홍주 당간지주 수리보고서 중 일부)

 

이 당간지주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차 침하되면서 기울어졌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1988.5.2~6.24까지 공사를 진행하며 바르게 세웠다.

당시엔 지금처럼 크레인이 없어 도르래와 나무를 이용해 어렵게 고정했다.

 

당시의 공사 현장 사진이다.

왼쪽 사진은 기울어진 상태를 보여주고, 가운데 사진은 나무와 도르래를 이용해 세운 장면이다.

오른쪽 사진은 드러난 하단부로 당간지주는 굵고 긴 각목처럼 생겼다.

다만, 아랫부분이 조금 더 두꺼운 정도다.

기둥 사이엔 간대(竿臺)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공사가 끝난 후 원래대로 맨 위 간대만 지상에 돌출되었다.

 

※ 사진은 1989년 문화재청의 홍주 당간지주 수리보고서 중 일부이다

 

 

간대는 길이 240cm, 폭 78cm, 두께 90cm의 자연석이다.

간대에는 당간을 세우고 고정시키는 원형 구멍이 32cm이므로 당간의 직경은 30cm 전후임을 알 수 있다.

원형 구멍의 깊이는 6cm이며, 원형 바깥으로 10cm 테두리를 둘렀다. 

이 간대가 원형 또는 직사각형 등 어떤 형태라도 잘 다듬어진 것에 비해 투박스러운 게 보기 좋다.

두 당간 사이를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이 당간지주는 흙에 묻힌 게 2.3m이며, 전체 길이는 6.34m이다.

바깥으로 돌출되게 두 줄을 넣어 간단하면서도 세련되어 보인다.

 

당간지주 안쪽 상단에 각각 네모진 홈을 넣어 당을 세웠을 때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쪽의 상단의 구멍은 높이 18cm, 폭 10cm, 깊이 18cm이고,

서쪽의 구멍은 높이 20cm, 폭 10cm, 깊이 16cm이다. 

 

오른쪽인 동쪽 당간지주 상단 크기는 62 × 40cm에 하단은 73 × 70cm이다.

왼쪽인 서쪽 상단 크기는 62 ×41cm, 하단은 72 ×69cm이다.

 

홍성 당간지주는 보물 제538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로 청주 용주사지 철당간은 만든 시기가 명확히 알려진 데다 희소성으로 국보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잠시 당간지주 탐방을 끝내고 시장통을 지나 홍성역으로 걷는다.

 

 

홍성에 대하여 거의 문외한이었으나 이번 여행을 통해 유서 깊은 도시라는 걸 알았다.

조선시대만 해도 홍주목이었으니 이 지역 주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일제강점기엔 만해 한용운, 김좌진 장군은 물론 900여 명의 의병이 분연히 일어나 일제에 항거하다 순직한

애국 충절의 지역이다.

많은 것을 알고 배우게 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