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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립공원 탐방/도립공원 전체

기차와 버스로 다녀온 대둔산 도립공원

by 즐풍 2021. 12. 15.

2021_170

 

 

 

 

2021.12.13 (월) 10:01~16:39 (6시간 38분 산행, 57분 휴식, 11.6km 이동, 평속 1.9km/h) 맑음

 

 

주말엔 미세먼지가 많아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했다.

게다가 1년 넘게 주말부부로 있다 보니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별로 나가지도 않는다.

주말엔 포근했는데, 오늘은 영하 5~7℃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로 미세먼지 없이 맑겠다고 한다.

코로나 시국에 백수가 산에 간다면 미세먼지 없이 쾌청하고 등산객도 별로 없는 평일이 좋다.

 

내년 2월 4일부터 20일까지 16일간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은 국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공해를 내뿜는 공장을 일시 중단시킬 것으로 믿는다.

잠깐이지만,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은 미세먼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겠다.

중국은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 전이고, 그 피해를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주는 나쁜 나라다.

 

대전역에서 내려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종점인 대둔산 휴게소까지 90여분 걸린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통행료까지 편도에 3만 원이 발생하나 대중교통은 1만 원이면 뒤집어쓴다.

대중교통이 한 시간 더 걸리긴 해도 백수에게는 가성비 좋은 안성맞춤 산행인 셈이다.

그러기 위해선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고 저렴한 교통편을 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 기암괴석으로 빚은 선계의 절경 대둔산도립공원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대둔산은 완주의 자랑이자 보물이다. 

곳곳에 드러난 화강암 암반이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고, 빼곡한 숲이 첩첩으로 쌓여 있어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려 온 곳이다. 

특히, 정상 부근에 있는 길이 81m, 너비 1m의 금강구름다리는 대둔산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놓쳐서는 안 되는 명소이다. 

금강구름다리를 건너면 약수정이 나오고 여기서 삼선 줄다리를 타면 왕관바위로 간다. 

봉우리마다 한 폭의 산수화로 그 장관을 뽐내는 대둔산은 낙조대와 태고사, 금강폭포, 동심바위,

금강계곡, 삼선약수터, 옥계동 계곡 등 신의 조화로 이룬 만물상을 보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북쪽에는 금강산 남쪽에는 대둔산이라고 했던가. 

가히 ‘호남의 금강(金剛)’이라 이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해발 878m 우뚝 솟은 최고봉 마천대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바위 봉우리들의 자태가 수려하다.
독특한 형상의 기암괴석들은 잘 다듬어진 조각품이다. 분재의 군락이다. 차라리 수석의 보고다.
눈 가는 곳 어디든 신비하고 웅장하다. 

아름답다. 

대자연의 범접할 수 없는 섭리 앞에 누군들 경건해지지 않을까.

                                                                                              [출처_완주군청]

 

 

대둔산 등산코스

 

 

대전역에 내려 314번 버스를 타고 머티네거리 정류장에 내렸을 때

대둔산 휴게소로 가는 34번 버스가 5분 전에 출발했다.

추운 날씨에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40분을 기다렸다.

종점인 대둔산 휴게소에 하차해 대둔산 입구로 가며 보는 대둔산 원경이 시원하게 보인다.

 

케이블카 상단의 바위들

 

34번 버스를 타고 오는 데 "다음 정류장은 곡남리 종점"이라고 한다.

잠깐 동안 멘붕이 온다.

대둔산 휴게소까지 가는 버스인데, 종점도 전엔 웬 종점인가 싶다.

버스 정류장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똑똑한 사람도 착각하기 십상이다.

 

아래 사진에서 34번 버스는 대둔산 입구를 1.6km 앞둔 대둔산 휴게소가 종점이다.

완주 버스는 고산터미널에서 대둔산 휴게소까지 운영함으로 대둔산 입구를 지나게 된다.

34번 버스 이용자는 완주 군내버스 이용객과 달리 거리의 손해를 보게 된다.

 

노선버스 하나 내는 건 사실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역 경계를 넘는 노선 개설도 어려운 편이나 도 경계를 넘는 건 더 어려운 문제다.

34번 버스는 충남 금산인 대둔산 휴게소까지 운영하는 데,

전북 완주군인 대둔산 입구까지 가려면 전북과 협의해야 한다.

지역 경계를 넘는 것도 지역 간 이해 다툼이 큰 데, 도 경계를 넘는 것은 

노선권 운영이나 업체·지역 간 수익 구조가 틀려 노선 개설에 상당한 진통이 따른다.

주중엔 승객이 별로 없으므로 지자체에서는 버스 운영의 준공영에 따른 보조금 지급도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로 당분간 대전의 34번 버스가 대둔산 입구까지 들어가는 건 어렵겠단 생각이 든다.

급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휴게소에서 대둔산 입구까지 내리막 길 15분 내처 걸으면 된다.

 

○ 대전 34번 버스시간표, 완주 군내버스(대둔산 휴게소↔고산) 시간표

 

 

□ 완주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1984년 1월 고부 농민봉기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의 근·현대사의 일대 사건이자 봉건적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세운 최초·최대의 민중항쟁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전국적으로 일어난 항쟁이기에 그 흔적이 대둔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대둔산은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어

동학농민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894년 2차 봉기 이후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운동군 주력이 삼례를 출발하여

여산, 논산을 거쳐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일본군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이지만,

화력과 조직력의 열세로 결국 패하였다.

우금티 전투 패배 이후 농민군 일부는 대둔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진지를 구축하고

관군·일본군에 맞서 항전하였다.

1894년 12월 중순부터 다음에 2월 중순까지 70여 일간 항전하던 농민군은

1895년 2월 18일(음력 1월 24일) 관군과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함락되었다.
대둔산 항전 지는 다른 지역의 동학농민군이 대부분 사라진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저항한 역사적 현장으로

동학혁명의 정신을 건강하게 보여 준다.

당시 원형이 상당 부분 보전되어 있어 동학농민 혁명 정신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곳이다.

                                                                                                                  (안내문)

 

산행을 왔으니 케이블카는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케이블카 종점으로 올라왔다.

여기서부터 대둔산을 조망하기 좋기 때문이다.

이쪽은 용문굴 방향의 암봉 군락이다.

 

케이블카로 넘어가는 구간의 바위들

 


완주군의 대둔산 금강구름다리는 30여 년 동안 등산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으나,

지난 2019년 4월 정밀 안전점검 용역에서 재설치 권고를 받았다.

완주군은 탐방객들의 안전한 등산을 위해 종전의 다리를 철거한 뒤,

총사업비 15억 5,400만 원을 투입해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

새 금강구름다리의 길이는 종전 50m에서 48m로 2m가 줄었으나 폭은 1m에서 1.2m로 넓어졌다.

다리 중간에서 전망할 때 이동 편의를 위해 넓힌 곳이 보인다.

 

금강구름다리와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

 

지난가을 이곳 단풍을 보지 못한 게 아쉽다.

내년 가을엔 단풍 구경하러 꼭 와야겠다.

그 전인 겨울에 상고대 피면 또 와야겠다.

 

금강구름다리를 건너와서 다시 본다.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좋아 보인다.

 

 

 

20여 년 전 이곳에 왔을 땐 사진사가 여기서 사진 찍어서 인화해 주던 곳이다.

사진사는 디카가 나온 이후 설 자리를 잃은 직업 중 하나다.

 

몇 번을 보고, 언제 보아도 멋진 곳이다.

 

삼선줄다리(삼선계단)의 아찔한 높이

 

 

 

 

 

삼선계단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금강구름다리

 

이 삼선계단은 삼선봉까지 36m 높이로 51도의 경사도를 올라가야 하는 아찔한 곳이다.

올라가는 일방통행로인데, 이를 모르고 내려온다면 경사가 너무 급해 추락 위험이 커진다.

 

 

 

저런 멋진 바위 하나하나 모두 올라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삼선계단을 내려와 다시 약수정 앞으로 내려섰다.

약수정 동쪽의 마대봉과 장군봉을 가까이에서 볼 생각이다.

 

마대봉으로 이동하며 보는 삼선계단

 

 

 

용문골 방향의 암봉 군락

 

마대봉, 장군봉 방향으로 올라오긴 했으나 어느 게 무슨 봉우리인지 알지 못한다.

이 높은 봉우리에도 조그만 돌탑을 쌓았다.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키며 농민군이 부패한 조정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1894년 12월 전봉준을 필두로 전라도 삼례에서 봉기하며 북진했으나 무기와 전투능력 열세로

곧 와해 수준으로 해제될 위기에 처했다.

농사만 짓던 농민군이 무슨 무기가 있고, 전략과 전술이 있을까?

12월 초 공주 전투에서 무기 열세로 퇴각할 때 고산, 동산, 화산의 농민군 1천여 명이 대둔산으로 들어왔다.

그 추운 겨울 이 산속에서 노숙하며 3개월간 싸웠으나 결국 모두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다.

동학 접주 김석순은 대둔산 석두골에서 한 살인 딸을 안고 150m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결하였다.

근세의 동학 농민군이 이곳 바위 틈새에서 저항하던 역사의 처절한 현장인 것이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던 우리의 산하는 말없이 늘 그 자리를 지킨다.

 

저 왼쪽 봉우리에 올라가서 볼 때 주변 풍경을 정말 좋다.

이 봉우리에도 누군가 돌탑을 쌓은 게 보인다.

 

 

 

건너편 칠성봉은 하산할 때 올라간다.

 

금강구름다리 

 

바위 산에는 우리 민족의 끈기를 보여주는 소나무가 억척스럽게 자란다.

이 소나무도 동학 농민군의 처절했던 역사의 순간을 지켜봤을 것이다.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

마천대 개척탑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 날 궂을 때 벼락 맞기 딱 좋은 위치다.

정상에 피뢰침을 설치하긴 했으나 가장 높은 곳이라 궂은날에는 오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마천대를 떠받치는 암릉에 촘촘히 자라는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주말이면 북적이던 정상도 평일이라 한가한 편이다.

정상은 전북 완주군에 속한다.

20년도 훨씬 전에 대둔산에 왔다가 갈 때 완주 반건시 곶감을 샀는 데,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오늘도 케이블카가 있는 상가 쪽으로 내려갔으면 샀을 텐데, 용문골로 하산하는 바람에 살 수 없었다.

곶감은 완주와 상주가 전국 최고의 맛이라 믿고 먹는다.

 

삼선계단 상단과 금강구름다리 

 

 

 

아래쪽 삼형제바위

 

장군봉 방향

 

마천대에서 내려와 남쪽 서각봉으로 가며 보는 마천대 아래쪽 바위

 

마천대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인다.

 

 

 

서각봉에서 보니 삼선계단과 금강구름다리가 잘 보인다.

두 명소 간 거리가 제법 된다.

 

 

 

 

 

좀 전에 오른 왼쪽 서각봉의 산불감시 CCTV와 오른쪽 개척탑으로 이어지는 연봉이 아름답다.

 

 

서각봉까지 갔다가 다시 개척탑을 지나 낙조대로 가는 길에 낙조산장을 들린다.

능선을 따라가지 않고 사면으로 난 길을 이용했다.

낙조산장 뒤에 있는 마애불도 살펴본다.

 

□ 논산 수락리 마애불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약 3m 높이의 바위 면에 얇게 양각하여 

조성한 입신상으로 그 높이가 2.7m에 이른다.

불상의 모습은 왼손을 펴서 오른쪽 가슴에 얹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곧게 펴서 앞쪽으로 보인 채 아래로 내리고 있다.

왼쪽 어깨를 지나서 전신을 두르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은 옷 주름이 발목까지 내려왔다.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비바람으로 마멸이 심한 상태이나 아직 완전한 형태를 보인다.

조각 수법이 조잡하나 토속적인 지방색을 보이고 있어 불상 조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안내문)

 

낙조대 

 

멀리 보이는 계룡산도 언제 한번 다녀와야 하는데...

 

바위야, 넌 이름이 뭐니?

 

위에 있는 바위가 아래로 쭉 이어진 풍경이다.

큰 바위 밑에 사망사고가 난 지점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촛대바위 

 

칠성봉

 

대둔산은 설악산, 월출산, 북한산 정도는 아니어도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멋진 산이다.

동남쪽으로 급한 경사엔 바위가 드러나 화려한 골격미를 자랑한다.

앞으로도 사계절 내내 자주 찾게 될 산 중에 하나다.

 

낙조대 방향을 암릉 군락

 

죽은 줄 알았던 소나무가 멀쩡히 살아 있는 걸 보니 무척이나 반갑다.

어느 블로그가 들어가니 이 소나무가 죽었다고 해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는데, 낭설이라 다행이다.

새봄에 다시 와야겠다.

 

대둔산 휴게소에서 대전 들어가는 4시 50분 발 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벌싸 오후 3시 22분이니 한 시간 30분 안에 대둔산 휴게소에 도착해야 한다.

용문골 입구까지 1.6km라는 데, 두어 군데 기웃거리며 2.2km를 걸었다.

 

내려오던 길에 왼쪽에 바위틈에 로프가 걸려 잠깐 올라가겠다고 낑낑대다 내려왔다.

그러다 이 용문굴을 지나며 좀 전에 낑낑대던 바위를 용문굴로 생각했다니 웃음이 나온다.

용문굴을 두 번이나 봤는대도 실수를 한 것이다.

갈길은 바쁘지만, 이곳의 명소인 용문굴을 건너뛸 순 없다.

 

□ 용문굴

 

'당나라 때 선도대사가 이곳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용이 문을 열고 등천했다.'고 하여

용문굴이라고 한다.

이 문을 통과하면 새로운 세강을 보게 되고, 신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전투원이 든 수천 개의 용기(龍旗)가 펄럭이던 골짜기이었기에 용문골이라 한다고 전해진다.

 

 

 

용문굴에서 보는 칠성대 방향

 

 

□신선바위(용의 입)

 

용문골에는 용의 입 모양 형상을 한 굴(신선바위)이 있다.

이 굴의 길이는 약 15m이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굴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농민군이 신선암 부근의 신선바위에 은신하였다.

높은 고지인데도 1년 내내 샘에서 물이 나와 천혜의 요새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문)

 

약수는 지금도 말없이 흐르며 신선바위를 지키고 있다.

 

 

용문골 삼거리에서 용문 바위를 들리기도 했으나 쉬지 않고 속도를 높여 2.2km 거리를

50분 만에 주파해 큰길로 내려섰다.

여기서 도로 900여 m를 걸어 대둔산 휴게소에 갈 준비를 하는 34번 버스에 올라탔다.

대전을 거쳐 대둔산까지 오고 가는 게 힘들지만, 산세가 좋아 산행 내내 즐겁다.

앞으로 자주 가게 될 산 중에 하나로 점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