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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립공원 탐방/도립공원 전체

녹음이 아름다운 승보사찰 순천의 송광사

by 즐풍 202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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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3. (월)   오전에 탐방

 

 

오늘 첫 일정으로 송광사에 왔는데, 법정스님께서 좋아하셨다는 불일암을 먼저 올라갔다.

이후 감로암을 거쳐 송광사를 마지막에 둘러보게 된다.

불임암과 감로암은 위치만 다를 뿐 거의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두 암자 모두 송광사 경내에 있으니 그저 이름만 다를지 실은 같은 사찰로 보아도 무방하다.

송광사는 승보종찰이라 규모가 크다.

천천히 둘러보며 사찰에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으로 시간을 지체한다.

 

 

 

□ 순천 송광사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림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 이름은 송광사 길상사였다.

100 칸쯤 되는 절로 30~40여 명의 스님이   있는 크지 않은 사찰이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인종  석조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입적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50여  동안 버려지고 폐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것은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 동안의(영종 27, 1197~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 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때부터 송광사가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유재란, 625 전쟁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있었다.  (안내문)

 

 

 

 

기도성취 영험도량 조계총림 ‘감로암

- 깨달음을 향한 도리천의  이슬 감로(甘露)

 

불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달고, 마시면 죽지 않는다 하여 감로라고 한다.

기도는 부처님과 하나 되는 수행이다.

조계총림 송광사 염불이던 감로암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

깨달음을 이루는 기도로 하늘의 이슬을 흠향하시기 바란다. (안내문)

 

 

송광사 보조국사비

 

 비석은 송광사의 크게 일으킨 보조국사(1158~1210) 출가  행적과 업적을 새겨 놓은 비이다.

1210년에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제자 혜림이 중심이 되어 보조국사의 행장을 모아 왕에게 탑비를 세워줄 것을 주청 하여 세워졌다.

이후에 비가 파괴된 것을 1678(숙종 4) 다시 세웠다.

보조국사의 호는 목우자(牧牛子)이고,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 법명은 지눌(知訥)이며, 탑호(塔號) 감로(甘露)이다.

출가  성씨는 정씨(鄭氏)이다.

황해도 시흥에서 태어나 8세에 출가하였고 평생을 수선(수선) 힘썼으며,

정혜쌍수(定慧雙修) 주창하여 조계종의 기틀을 세웠다.

※ 정혜쌍수(定慧雙修):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여야 한다는 불교 수행법

 

 

 

이곳은 율원이다.

 

승보종찰

 

불교에서는 귀하고 값진  가지 보배 불(), (), () 삼보(三寶) 한다.

한국 불교에는  삼보를 상징하는 삼보사찰(三寶寺刹) 있으니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이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보사찰,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의 공판을 모시고 있어 법보사찰, 

송광사는 한국 불교의 승맥() 잇고 있어 승보사찰이라고 한다.

한국 불교의 승맥을 잇는다는 것은 보조국사의 정혜결사 근본도량으로서, 

 보조국사를 포함한 16 국사를 배출한 수행도량으로서, 이를 이어 현대의 효봉, 최종, 구산, 일각서나 

스님들의 수행으로 한국 불교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안내문)

 

조계총림

 

송광사는 1969 조계총림이 되었다.

총림이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기관이 율원(律院) 

모두 갖춘 사찰을 뜻한다.

조계총림을 발족하면서 초대 방장에 구난 큰스님을 추대하여 한국 불교의 동량을 키우는

새로운 정혜결사와 수선(修禪) 도량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6 국사를 배출한 수행수행 정진의 도량으로서 승보종찰의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한 도량으로서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비사리 구시

 

절에서 국재를 모실  사찰로 모여든 대중들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목조 용기이다.

 

 

송광사 관음전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성수전)이라 하여 1903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다.

1957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하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안내문)

 

 

 

송광사 대웅보전 

 

지금의 대웅보전은 1951 소실  1988 송광사 8 중창 당시 다시 지어졌다.

대웅보전에는 삼세(과거 현재 미래) 제도를 염원하는 삼세불 ,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셨다.

 부처님의 좌우에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4 보살을 모시고 있다.

108 규모의 대웅보전은 독특한 건축형태와 단청으로 현대 한국 전통건축의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안내문)

 

 

송광사 약사전

약사전은 송광사 경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법당으로 내부에는 중생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님인 약사여래불 모시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여덟 팔(팔) 자 모양을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형태로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안내문)

 

송광사 승보전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 제자, 

16 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건물은 한국 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 중창 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 중창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안내문)

 

 

 

 

 

 

송광사 영산전

 

 건물은 영취산에 거주하며 법화경 설하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보물 1368호로 지정되어 있는 후불탱인 영산 화상의 설법하는 장면을 모사한 영신대회탱과 

부처님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인조 17(1639) 창건되었다.  (안내문)

 

송광사 삼청교  우화각

 

송광사 삼청각은 일주문을 거쳐 경내로 들어가는 계곡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삼청교는 능허교라고도 하는데, 네모난  19개로 만든 무지개 모양(홍교) 다리이다.

1707(영조 50)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화각은 삼청교육대 위에 있는 건물을 말한다.

우화각의 지붕은 입구에서 보면 여덟 팔(팔) 자와 비슷한 팔작지붕으로 보이고, 

입구 쪽에서 보면 인(인) 자 모양의 맞배지붕처럼 보인다.

우화각 안에는 송광사를 찾았던  문인들이  많은 시가 걸려 있다.

우화각에 걸린 송광사 현판 글씨는 혜공 김구진이 썼다. (안내문)

 

세월각 척주당

 

일주문 안쪽에 죽은 자의 위패를 두고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관욕처(관용: 불교에서 재를 올릴  영혼을 정화하는 ) 

세월각과 척주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혼백을 목욕시켰으며, 세월각은 여자 영가, 척주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로 사용되었다.

정면 1, 측면 1칸의 규모로 작은 건물이다. 

 건물의 내부는 비어 있다.   (안내문)

 

 

 

불경보다 쉬운 이런 말씀에 더 끌린다.

 

 

 

 

 

 

 

불교 신자가 아니니 사찰에 들어가도 건물마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그저 고요하고 안정되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그런 기분으로 사찰에 머무르기도 한다.

송광사가 16분의 국사를 배출했다는 승보사찰의 위치도 어떠한지 모른다.

다만, 국사라는 느낌은 크고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