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서원과 산지승원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

by 즐풍 2021. 11. 15.

 

 

2021.9.24 (금) 오후에 잠시 탐방

 

 

내장산 등산을 끝내고 내일 등산할 무등산으로 가는 길목의 무성서원을 들린다.
서원은 사찰과 달리 화려함이 없어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곳인데,
2019년 7월 6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기에 관심을 갖고 둘러보기로 한다.
전북 정읍시에 있는 작은 규모의 서원이다.

 

 

 

□ 무성서원

 

세계유산은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세계유산 협약에 따라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람표에 등록한 문화재를 말한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자연유산·복합유산으로 분류한다.

 

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16세기 중반~17세기 중반) 성리학 교육기관의 유형을 대표하는 9개 서원으로

이루어진 연속 유산이다. 서원은 한국의 성리학과 연관된 문화적 전통에 대한 탁월한 증거이다.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개 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의 중부와 남부 여러 지역에 걸쳐 위치한다.
서원은 중국에서 도입되어 한국의 모든 측면에서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성리학을 널리 보급한 성

리학 교육기관으로서 탁월한 증거가 되는 유산이다.

 

무성서원

 

무성서원은 신라 말(886년) 우리 고장 태산 태수로 부임하여 8년간 선정을 베푼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세운 데서 유래하였다.
서원은 1615년 건립하여 태산서원이라 했는데 1696년(숙종 22) 무성서원이라 사액되었다.

무성서원은 예(禮)와 악(樂)으로 백성을 교화한 선비문화의 중심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데,

자연경관 속에 입지 한 다른 서원과는 다르게 마을 속에 위치하여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서원의 보존과 운영에 참여해 왔다는데 특징을 보이고 있다.
무성서원은 19세기 말 정부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아니한 전라북도 내 유일한 서원으로

고운 최치원 선생, 「상춘곡」을 지은 불우헌 정극인 선생 등 이 지역에서 성리학을 보급하고

학문을 장려한 7분을 배향하고 있다.
특히, 무성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향약인 고현동향약을 시행하였으며,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이에 항거하여 1906년 면암 최익현을 맹주로

호남 최초의 의병을 창의 한 역사적 현장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세계유산의 가치

 

‘한국의 서원’은 한국의 성리학 문화 전통의 탁월한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추어 지역화되는 역사적 과정을 서원의 기능과 건축적 배치 등에서 잘 보여주는 유산이다.

                                                                                                [출처_정읍시청]

 

                                                                                                 [출처_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홍살문을 들어서면서 무성서원과 마주하게 된다.

 

 

 

 

 

현가루(絃歌樓)

 

무성서원의 문루 현가루의 현가라는 이름은 공자의 제자 자유가 노나라 무성의 수령이 되어

예악(禮樂)으로 백성을 잘 다스려 '현가지성(絃歌之聲)이 들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출처_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복원 공사 중인 현가루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에서 가져온 현가루 사진

 

방을 덮일 부엌엔 가마솥을 치웠다.

가마솥이 있어야 겨울에 따듯한 물로 세수를 할 텐데, 관리상 문제로 치운 걸까?

 

나무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대들보에 눈에 띈다.

 

사우로 들어가게 될 내삼문

 

                                                                                        [사진 출처_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태산사

 

신라 말 태산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최치원을 기리고자 세운 생사당이다.

성종 14년(1483)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으며, 현재 건물은 헌종 10년(1844)에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현재까지 정기, 비정기 제향의례가 시행되고 있다.

생사당: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는 표시로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백성들이 제사 지내는 사당

                                                                                                                              (안내문)

 

서호순 불망비각

 

1849년 철종 즉위년에 세운 것으로 비면에 현감 서호순 불망비라 새겨져 있다.

높이 1.23m, 폭 1.36m, 두께 0.16m (안내문)

 

 

서호순 불망비

 

 

신용희 불망비각

 

1925년에 세운 것으로 비신에는 통정대부 전비서감승 신용희 불망비라 새겨져 있다.

높이 1.16m, 폭 0.45m, 두께 0.18m (안내문) 

 

 

신용희 불망비

 

 

 

강수재

 

유생들의 거주공간이다.

원래는 동쪽 기숙사인 강수재와 서쪽 기숙사인 흥학재가 있었으나 현재 강수재만 안아 있다.

강수재는 숙종 22년 사액 후에 고직사(서원을 관리하던 사람들의 살림집)를 기숙사로 변경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24년(1887)에 세워진 것으로, 이후에 여러 번 수리했다.  (안내문)

 

뒤뜰  

 

병오창의기념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것에 반발하여 1906년 의병활동을 발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비이다.

최익현과 임병찬이 중심이 된 의병창의는 무성서원의 강회와 유림 동원력, 대표성을 

기반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무성서원의 위상과 지성사적 전통을 보여준다.

무성서원에서는 해마다 병오창의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여 이를 기념하고

정신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출처_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관리인 사무실

 

 

 

                                                                                            [사진 출처_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우리나라에 소수서원이 처음 발을 디딜 때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 사회를 반듯하게 이끌었다.
이후 많은 사원이 생기면서 당시 사회에 학풍을 일으키며 인재를 반듯하게 양성했다.
이런 순기능은 18세기 이후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는 여러 문제로 세상에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결국,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은 몰락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살아남은 서원 중 9개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이 서원들은 앞으로 국민의 관심과 사랑에 부응하며 현대인의 삶 속에서 올바른 정신적 가치를 심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