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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서원과 산지승원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

by 즐풍 2019. 6. 27.

 

 

 

 

 

2018.02.10.토  11:20~16:49(이동 시간 05:29, 이동거리 15.13km, 휴식시간 11분) 평균 속도 3km/h)  흐리고 미세먼지 많음

 

 

조계산이 아니라도 순천의 송광사는 꼭 보고 싶었다.

내 무신론자이긴 하나 산사의 고색창연한 정취에서 느끼는 포근함과 여유로움이 그리웠다.

불보 사찰인 경남 양산의 통도사는 스무 살 무렵 양산에 살던 고모님 댁에서 멀지 않아 두어 번 들렸다.

경남 합천의 법보 사찰 해인사는 가야산을 하산하면서 들렸던 기억이 있다.

이들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인 송광사를 조계산 등산을 핑계 삼아 오늘에야 비로소 방문하게 된다.

 

통도사는 불가의 보물인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간직한 사찰이고,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에 법보 사찰로 불린다.

이와 달리 송광사는 고려 시대에 가장 많은 국사를 배출하여 승보 사찰로 불리고 있다.

지금은 불교대학이 있어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지만, 예전엔 오로지 사찰의 몫이었다.

고려 시대라면 짧게 잡아도 630여 년 전의 일이라 이제 그 발자취가 남아 있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조계산 등산코스

 

 

 

 

아래 승선교

돌로 쌓은 승선교는 위 아래 두 개가 있다.

 

 

 

 

승선교(신선이 되는 다리)

보물 제40호인 선암사의 승선교는 전통 석조 무지개 다리다.

이 다리를 건넘으로써 오욕과 번뇌를 씻고 선계로 들어선다는 성스러움의 상징이다.

 

다리의 아치 사이로 들어오는 강선루를 묶어 명작을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로 가을 단풍철엔 많이 붐빈다.

이 그림은 선암사를 대표하는 간판 배경이다.

 

 

 

 

 

강선루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 온다는 뜻으로 손님을 높여 부른다는 의미다.

일주문에 이르기 전 누각을 세우는 일은 드문 일이기도 하고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는 선암사의 전통이기도 하다(안내문)

 

 

 

강선루 앞쪽 바위에 새겨진 글자

 

 

 

조계산 선암사

曹溪山의 曹는 무리, 마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姓氏로 많이 스이는 데, 우리나라는 曺로 쓰고 중국에선 曹자로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 같은 의미의 글자인데, 중국에서는 오로지 曹자 하나만 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한자로는 畓, 垈, 乭 등 약 200여 개의 글자가 있다고 한다. 

 

 

 

 

사진의 편액과 같이 선암사는 태고종 소속이다.

태고종은 대처승을 둘 수 있는 사찰이라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대하소설을 쓴 작가 조정래의 부친이 부지주로 있던 사찰이다.

조정래도 이 사찰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라도에서 태어난 그의 여러 소설을 읽다 보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나와 간혹 읽기 어려운 전라도 말을 만날 때도 있다.

 

한 때, 그가 쓴 "태백산맥"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빨치산이 나온다고 하여 꼴통들이 고발하는 바람에 오랜 싸움 끝에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니 이 시대의 아픔이다.

 

 

 

 

 

 

 

 

뒤깐(도지정 문화재 자료 제214호)

현재 화장실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선암사의 T자형 푸세식 화장실이다.

입구는 제법 넓어 여유롭게 들어서면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 화장실로 칸막이가 각각 8개씩 16개가 있다.

가슴 정도의 칸막이 너머로 들여다 보면 문이 없는 내부 공간은 다시 칵막이 세 개씩 마주보고 있다.

칸막이가 제법 길에 나와 있어 문이 없어도 볼일을 보는 모습이 보이지 않게 잘 가려진다.

지금은 시골이라 해도 이런 화장실을 쓸 사람은 없다.

 

 

 

 

 

살짝 들여다 본 화장실 내부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높이가 5m에 이르는 거대한 입상으로 표현 양식으로 볼 때 고려 중·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선암사의 암자였던 향로암이 있던 터

 

 

 

 

조계산 정상인 장군암

조계산은 가을 단풍 들 때나 이른 봄 동백꽃 필 때 제법 보기 좋겠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지금은 뭐 별로 볼게 없다.

산은 그리 어려울 것도 없이 적당한 시간만 할애하면 오를 수 있다는...

 

 

 

정상 찍고 하산하다 보면 이 배바위가 나온다.

배바위에 설치된 자일을 잡고 오르면 멀리 선암사 외에도 여러 풍경을 조망할 수 있으나 시계가 좋지 않아 싣지 않는다.

 

 

 

마을로 내려오면 보리밥집이 몇 군데 있다.

이 때가 벌써 오후 두 시가 넘은 시각이라 식사는 진작에 끝냈다.

산행에서 식사는 허기만 잠재울 뿐 아주 단촐하게 끝내는 성격이라 보통은 컵반으로 만든 미역국이나 사골곰탕국밥 등을 이용한다.

CJ와 오뚜기식품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주로 CJ를 이용한다.

오늘은 사골곰탕국밥을 준비하며 햇반은 미리 전자렌지에 돌렸는데, 막상 식사를 하려고 보니 깜박 잊고 배낭에 넣지 않았다.

마침 어제 아내 생일이라 준비한 케익을 넉넉히 넣어뒀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점심을 굶을 뻔 했다.

도시락이 준비되지 않았어도 카라멜이나 행동식이 배낭에 있었으니 주전부리로 허기를 재우면 이곳 보리밥집에서 요기를 할 수도 있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보리밥집을 이용하기도 한다.

 

 

 

 

보리밥집이 인기가 많은 지 서너 개의 식당이 보인다.

이 집은 아랫집 보리밥집이다.  

 

 

 

누룽지를 만드는 가마솥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

천자암 쌍향나무는 두 그루가 거의 붙어있다.

고려시대에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마무 지팡이를 이곳에 꽂은 게 이 향나무라는 전설이 있다.

담당국사는 왕자인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다.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 절을 하는 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보인다.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안내문 편집) 

 

 

 

 

 

 

 

 

 

 

 

 

천자암 산신각

 

 

 

천자암 

 

 

 

천자암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난 샛길로 갔어야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아니면 운구재로 돌아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운구재는 좀 전에 내려오던 길을 따라 좀 올라가야 한다. 

천자암에서 길 따라 생각없이 내려가다 보니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내려온 것을 알았다.

할 수 없이 송광사를 목표로 산줄기를 몇 개나 가로질러 보지만, 갈길은 멀기만 하다.

원숭이도 이렇게 나무에서 떨어졌다.

결국, 시간내에 도착할 수 없음을 알고 대장에게 따로 올라가기로 하고 KTX를 이용한다.

 

오늘 산행의 제일 큰 목표는 송광사였는데,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산행을 끝냈다.

천자암의 쌍향나무와 송광사를 맞바군 셈이다.

아쉬움을 남기며 새순이 돋고 난 뒤 연두색 초록이 돋보일 때, 아니면 단풍이 고울 때 송광사를 찾아야겠다.